고요한 아침의 나라 (完)

흑마법사 케라드.
나는 놈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나의 검격은 그가 간단히 만들어낸 마법쉴드에 맥없이 막혀버렸다.
아린의 말대로 놈과의 전투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흑마법사 케라드.
당최 몇살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백발의 노인이 어째서 아린에게...
“누... 누님께서 여기에 어쩐일이십니까?”
케라드는 아주 곤란한 표정으로 쩔쩔메는 모양세다. 아린 역시 곤란하다는 표정은 마찬가지.
“야!! 왜 아는척해!!”
아린이 케라드에게 소리쳤다.
‘정말로.. 둘이 아는 사이라고..?’
아린의 호통에 케라드는 벌벌떨며...
“아..아니 누님.. 당연히 누님을 뵈었으면 인사를 드려야 마땅한데....”
“아유 정말! 너 때문에 다 망했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아.. 아린..! 아는 사이야? 어떻게?”
“호호.. 오빠.. 일단 내가 잘 타일러서 해결볼테니, 일단 돌아..”
케라드는 아린의 말을 끊었다.
“이놈!!! 이 분께서는 하늘을 지배하고, 대지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 레드 드래곤 아린 님이시다! 어디 함부로 건방지게 반말을 지껄이는 게냐!!”
‘드래곤..?’
아린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쓸데 없는 말을.... 또...”
아린의 분노 섞인 말은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묻어나왔다.
아린의 분노를 알아챈 케라드는 더욱 당황하여,
“아.. 누.. 누님 제가 실수라도...?”
“뭐...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아린... 너 드래곤이야? 이 케라드란 자식은 뭐고!?”
“나는 블랙 드래곤 케라드. 네놈이야 말로 어떻게 누님과 다니는거지?”
응?
그러니까.. 아린은 드래곤이고, 이 케라드란 놈도 드래곤인데.
아린이 이 놈보다 훨씬 세다.. 뭐 이런건가?
“하아....”
잠시 고민하던 아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케라드, 방금 네놈이 발라당 넘어뜨린.. 이 남자가 누군지나 알아?”
케라드가 방금 발라당 넘어뜨린 남자라면...
바로 나다.
“다.. 당연히 모릅죠. 인간 따위 제가... 알.. 필요가...”
“방금... 네 놈은.. 드래곤 신랑을 발라당 넘어뜨렸어..”
드래곤 신랑? 내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린”
“시끄러! 오빠는 일단 빠져!”
케라드는 화들짝 놀라,
“아니 누님! 드래곤 신랑이라니. 설마 이 인간남자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돼는 경우..”
“내가 한다면... 하는거야? 불만 있어?”
“허허... 부.. 불만이라뇨. 누님! 누님께서 하신다면 당연히 하시는 거죠..”
아린은 여전히 케라드를 째려보고 있다. 아린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뭘해야하지?”
화들짝 놀란 케라드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이고.. 형님 제가 실수를 했네요. 모쪼록 누님하고 늘 행복하십시오... 허허..”
‘마.. 말도안돼!’
“아린!! 네가 드래곤이라고? 분명 고블린들이 납치한 널 내가 구해줬었잖아..? 어떻게 된거야!?”
“크큭.. 내가 고블린 따위가 날 어떻게 납치해! 정말 둔하다니깐..!”
그러고 보면...
아린은 그냥 인간이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강력한 마력과 마법적인 재능을 가졌었다.
마법따위 모르고 살던 소녀가 소환술을 성공한 것이며... 거대한 뱀 소환에 이르기까지..
정말... 드래곤이란 말인가....
“그... 그보다 아린! 누가 신랑이야!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은거야!?”
아린은 배시시 웃었다.
“그래서.. 싫어..?”
음... 싫다? 아린이 싫은건 아니지만...
이런식의 전개는 곤란하지!
“싫다기보다.. 뭐 이런식으로 하는게 어디있어!?”
“뭐 드래곤 신랑이라면, 대단한 프로포즈라도 기대했던거야? 오빠?”
그딴걸 기대했을 리가 없다.
아린은 지금까지 내가 지켜야할... 내가 누구보다 아끼는 동생이었지. 혼인의 상대가 아니었다.
“흐하하하하! 누.. 누님 이 놈.. 드래곤 신랑 하기 싫은가 본데요.. 크카캬캬”
찌릿!
아린이 눈에 살기를 담아 놈을 째려봤다.
“아.. 노.. 농담입니다. 설마 아무리 어리석은 인간이라도, 드래곤 신랑이 되길 거절하겠습니까.”
왜? 승낙할 이유가 없다.
“거절한다! 아린, 지금까지 잘도 날 속였겠다... 정말... 실망했어..!”
“크크큭... 인간 놈이 아주 야무지게 튕기는데요 누님?”
곤란한 표정의 아린이 케라드에게 지시했다.
“하아... 케라드 드래곤의 전통에 대해 알려줘.”
끄덕..
고개를 끄덕인 케라드는 나를 보며,
“잘 들어. 드래곤 외에 종족이 드래곤의 신랑 또는 신부의 제의를 받으면 무조건 수락해야해.”
응? 왜?
“물론 이유가 궁금하겠지. 거절한다면... 그 종족은 멸족에 이를 것이거든. 인간인 네가 누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대륙의 모든 드래곤들이 나서서 인간을 멸족시킬 것이다.”
“헤에...? 그런 마.. 말도 안돼는”
“말이 왜 안돼? 룰은 힘을 가진 자가 정하는 법인데? 인간은 모두 죽을 것이고.. 가장 처음은 네 놈이 되겠지. 키킥”
아주.. 깡패가 따로 없다.
힘을 가진 자가 룰을 정한다. 그것은 모든 종족 불문 진리이다.
“그... 그래도... 결혼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아유, 오빠. 그럼 뭐 다 죽일까? 며칠 안걸려. 인간 따위 멸족 시키는데.”
“며... 멸족이라니.. 결혼 안한다고 멸족이라니... 그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살벌한 목소리.
“뭐? 내가 못할 것 같아?”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그녀에게 외쳤다.
“겨..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배시시..
배시시 웃는 아린.
“아.. 그거...? 오빠 정말.. 맘에 들어..!”
‘뭐.. 뭐야... 뭐라는 거야..!’
한 걸음 더 나에게 다가온 아린.
그녀의 마법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에 대한 두려움때문인지 움직일 수 없었다.
더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다가온 그녀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더욱 다가온 그녀의 입술.
쪽!
“사랑해. 오빠..! 이제 됐지..?”
발그레...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아린을 마음에 품은 것이.
“난 처음봤을 때부터!”
“응?”
“광산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오빠가 좋았다고!”
드래곤은 독심술을 쓸수 있나..?
위대한 존재. 드래곤이 마법이라도 쓴 것일까. 언제부턴가 품고 있었던 그녀를 향한 마음이 뚜렷해졌다.
“할거지!?”
아린이 내게 외쳤다.
“응?”
“결혼 말이야. 오빠!”
“아... 으응...”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 역시 진심이니깐.
그녀의 마음역시 나처럼 진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진심이야. 사랑해 오빠.”
래곤이던 인간이던. 우리의 사랑이 항상 진실하기를.
“그.. 근데.. 아.. 앞으로 어떻게...”
“아! 생각해봤는데. 여기도 이제 지겨워..”
“지겹다고..?”
“응.. 오빠 나랑 같이 떠나자.”
떠나다니?
이미 우린 알트란에서 어마어마하게 먼 이곳으로 떠나왔는데.
“저 멀리 동쪽 끝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있어. 그곳에서 오빠랑 둘이 살래!”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녀와 함께라면.. 사실 어딘들 상관없지만...
“아.. 아린.. 그럼 유느이트... 오트롱은? 우리 부족원들이... 인간들과 공생하게해서.. 모두 잘 살게 만들어야지.. 그게 우리 목표였고...”
“헤에... 그치? 오빠는 역시 따뜻한 인간이야.. 너무 마음에 들어..! 헤헤..”
배시시 웃는 아린의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들었지?”
이번엔 케라드에게 말을 건넨 아린.
당황한 케라드가 대답했다.
“뭐.. 뭐를요?”
“들었잖아. 이제 네놈 역할은 알트란으로가서 인간들이랑 오크들이랑 사이좋게 잘 살게하는거야.”
“아니.. 누님 제가 왜..?”
“불만있어?”
“아.. 아뇨 불만은 아닌데..”
“그럼 토 달지말고 그냥 해.. 뒤지기 싫으면...”
케라드는 꿀을 잔뜩 입에 넣은 듯 벙어리가 되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케라드.
“그리고 서큐버스 한테 달려간 오우거가 한 마리가 있어..”
“그.. 그런 멍청한 오우거가 있나요..?”
“하아.. 그러게.. 둘이 결혼시키고. 잘 사는지 지켜봐.”
그 밖에도 아린은 케라드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잔뜩 전달했다.
뜻 밖에 숙제를 받은 케라드는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지시를 감히 거절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대.. 대충 정리했고...! 그럼 이제 갈까..?”
“가..가자고? 어디를”
“말했잖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나.. 항상 행복하게 해줘야해! 알겠지..!? 헤헤!”
“그... 그래... 행복하자.. 아린..!”
끄덕..!
아린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한 눈에 담기 어려운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
이 위대한 존재는 보는이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빠..! 일루와!”
“어.. 어...?”
두둥실 떠오른 나의 몸..
나는 그녀의 목덜미로 천천히 이동했다.
“내가 붙들고 있으니깐.. 뭐 어디 붙잡을 필욘없어!”
그녀의 마법으로 나는 그녀 목뒤에 편안하게 고정되어 있는 듯 했다.
펄럭..펄럭..
“이제 갑니다요~~”
거대한 드래곤의 몸이 떠올랐다.
활공하기 시작한 드래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대륙을 가로 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활한 바다가 나타났다.
망망대해.
하늘을 날고 있는 아린과 나.
붉게 내려앉은 석양이 수평선을 물들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드래곤과 인간이 대양을 건너고 있었다.
“거기는 많이 낯설거야.”
“고요한 아침의 나라 말이야..?”
“응.. 그리고 힘들 수도 있어. 전혀 다른 문명의 세계거든.”
너와 함께 떠나는 새로운 세상.
“괜찮아.. 아린.”
“크큭.. 진짜 괜찮겠어..오빠..?”
“응! 우리, 함께니깐..!”
- 작가의말
그동안 제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공지를 통해...
독자님들에게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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