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하연은 항구 쪽으로 걷다가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 것을 발견했다. 항구에서는 불이 잘 나지 않는 환경인만큼 항구와 가까워질 수록 그의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러던 와중 저 멀리서 관군들의 무리가 행렬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는 커다란 마차가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이 곳에는 좀처럼 관군들이 오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저런 무리가 있다면 원인 하나. 아버지의 임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관군 무리가 다가오자 하연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대답해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무시한 채 걷기만 하였다.
“이게 사람을 무시해? 내가 어떤사람인지 알고 그러는 것이야?”
소리를 질러봐도 그 누구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사실 하연은 이미 죽은 사람이기에 그들과 교류를 할 수 없었다. 다른 차원에 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연이 이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후...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내가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없지! 내가 그 마차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주지!“
마차의 창문을 통해서 들어가려는 찰나,
‘어? 뭐야 왜 안열리지?’
하연이 창문을 열어 들어가려 시도했지만 꿈쩍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안이 보일까 계속 마차 위로 두리번거리며 안을 살펴보려 했지만 결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연이 포기하려는 그 순간, 마차의 문이 열렸다.
“여봐라 속도를 높여라. 이 속도로는 기한을 맞출 수 없다.”
“예 알겠습니다!”
잠깐 사이였지만 열린 문틈으로 이신 장군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 하연은 알 수 없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옆자리에는 아버지가 옮기던 금고가 보였다.
‘금고가 왜 저기 있지?’
마차 안에 알고 있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확인해 본 것인데 오히려 아버지의 금고를 발견했다.
그 생각은 구주가 이미 항구에 도착했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지금 여기서 시간을 버렸기에, 항구에 도착하게 될 구주와 우약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연은 항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연이 전력질주를 하기 위해 몸에 힘을 주자, 발목부터 하얀 기운이 서리며 앞으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실로 말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신체 능력에 놀란 하연은 달리다가 내자빠졌다. 앞으로 고꾸라져 세네바퀴 구른 하연은 멍한 얼굴로 다시 일어났다.
’어? 뭐지? 왜이리 빨라? 아 죽으니까 몸이 없어서 그런가?’
죽어서 몸이 없기에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한 하연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자신의 보법에 익숙해졌고 속도가 금방 붙었다.
항구 입구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 곳에선 정군이 이미 도착하여 망자들을 저승으로 보내고 있었다.
“호패를 보여라”
“호패가 없습니다. “
”그러면 이쪽으로 서”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하여 혼을 나누고 있던 정군은 하연을 발견했다.
“어? 너 뭐야 일단 호패 꺼내봐라”
“네? 여기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여기서 뭐하세요?”
“어? 너 뭐야? 너가 뭔데 강령이야! 너 뭐돼?”
“그건 저도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여기 무슨 일인가요?”
정군의 입장에서 하연이 강령 수준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하연의 뒤에 있는 23명의 영혼의 영향이라 지레 짐작했다.
정군은 하연에게 바쁘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말라는 듯 냥 이야기했다.
"여기는 바쁘니까 딴 곳으로 가라."
“그러면 이 자들도 저처럼 돌아다니게 되는 것인가요?”
“그것은 상황을 봐야지... 일단 오른쪽에 선 혼들은 바로 저승으로 갈 놈들이다.”
오른쪽에 서있는 수많은 혼들 사이에 ‘우약’이 하연의 눈에 띄였다.
하연은 그를 확인하자마자 하얀 빛을 내며 날라차기를 했다. 자신만의 보법이 이 곳에서 오면서 그새 다듬어졌는지 그 속도가 제법 빨랐다.
정군은 순식간에 몸이 푹하고 꺼지더니 금새 하연의 앞에 나타났다. 날라차기 하던 하연을 막고 선 그대로 잡아서 내동댕이쳤다.
“저리 가라고. 지금 업무 중이다. 내 망자는 내가 처리하니 선 넘지 말도록! 강령이라도 봐주지 않는다.”
“저 녀석이 나를 죽였다고요!!”
“뭐라고?”
살기를 내뿜으며 하연은 우약을 쳐다봤다.
우약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미안하게 됐네. 나는 구주의 말만 믿고 자네들만 죽이면 살 수 있는 줄 알았네. 결국 이렇게 나도 죽게 되었으니 똑같은 것 아닌가? 구주도 나와 같이 이미 죽었다네.”
”죽으면 다야? 야 이 개자식아 죽으면 다냐고!“
하연은 눈을 희번뜩이며 이미 죽은 우약을 한번 더 죽이겠다고 눈이 뒤집히며 날뛰기 시작했다. 하연의 몸에서 하얀 기운이 둥실둥실 휘몰더니 주위에 살기를 흉흉하게 내보냈다.
“저 녀석이 나를 죽였다니까! 지금 저 자식을 영멸시키고 제가 천계가겠습니다!“
하연의 입에서도 하얀 기운이 넘실넘실 넘쳐 올라왔다.
옆에 있던 정군은 곰방대에 불을 지펴 한번 빨기 시작했다.
”쓰읍.... 그래 너가 정의가 되겠다고? 이거 정신병이 제대로 왔네“
곰방대를 입에서 빼더니 그대로 하연의 머리통으로 직행했다.
하연은 빛살처럼 날아온 곰방대에 한 대 맞더니 그대로 땅바닥과 인사를 했다.
정군은 하연의 몸 위에 앉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하연아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아느냐?”
“알죠 제가 이제 저 녀석을 죽이고 저승으로 간다는 상황이죠! 사람을 바보로 압니까? 저승사자님이랑 똑같이 생긴 다른 분이 저에게 설명해줬습니다! 아주 명명백백하게 이해했습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설명했다고?“
”네!“
씩씩하게 대답한 하연과 달리 정군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하연아 일단 가만히 있어봐라 내가 이 일처리를 하고 잠시 부장님이랑 이야기 좀 해야겠다. 허튼 짓거리하지말고 가만히 있어라.“
정군은 곰방대로 연기를 연거푸 내뱉더니 고함을 한차례 질렀다.
”하!!“
고함소리에 연기는 포승줄로 변하더니 모든 영혼들을 줄줄히 묶었다. 그리고는 왼쪽 오른쪽 구분했던 것이 무의미하게 모두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영혼들이 일제히 줄에 묶여 줄줄히 저승문으로 들어가는 도중, 우약과 하연은 눈을 마주쳤다.
“어이 당신은 어디가! 나랑 할 일이 남았잖아! 이리와! 이리 안와?”
”이보시오 하연씨 그때는 진짜 미안하게 됐네... 나는 배움이 부족했던 사람이었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 뿐이야. 하루살이 같은 삶이 그저 끝난 거로 생각하게 나. 다음에 볼 때는 웃으면서 보고싶네“
”그런 말은 내가 용서한 다음에 하는 거 아닐까? 다음에 보면 넌 진짜 내 손에 죽는다. 알겠어? 저기 지옥 한쪽 구석에 쳐 박혀 있어! 내가 쫓아 갈 테니까“
마지막 말에 우약은 혀를 내밀어 약올리고서는 저승문으로 들어갔다.
“어? 우롱? 우롱을 해? 이게 진짜 죽고싶나? 아니 이미 죽었잖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하얀색 안광까지 비추면서 제자리에서 날뛰었다.
그러다가 한 쪽 구석에 죽어 있는 구주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 모른 척했다.
”아니 나는 저승에 언제가?!“
왠지 모르게 하늘에서 아버지 두천과 수아저씨의 한숨이 느껴졌다.
.
.
.
.
“가만히 있자. 가만히 있자. 가만보자. 좀만 가보자.”
정군이 여기서 대기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괜한 호기심이 생겨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었다. 하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배도 안 탔을 것이다.
하연은 솔직히 집에 가보고 싶었다. 지나가다 멀리서 본가를 보긴 하였지만 가보진 못했다. 그 때에는 구주와 우약을 잡아야했기에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갑자기 붕 뜨게된 하연에게 지금이 기회였다.
하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본가 방향으로 처음에는 걷기 시작했다. 걸음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하얀 기운을 남기며 질주하여 그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우리 집이네..”
그는 대문을 열어 들어가려 했지만, 꿈쩍 하지 않았다.
“아니, 내 집인데 내가 못 들어가는 것이 말이 돼? 이건 좀 아니지!“
문을 쾅쾅 두드리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좋아 그러면 담을 넘으면 되지~ 사람의 머리는 쓰라고 있는 것!”
7척은 되어 보이는 담장을 넘으려 하연은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뛰었다.
-파치치칙!
분명히 높이는 담장보다 높게 뛰었는데 넘어가는 그 순간 전기가 흐르더니 하연은 그 자리에 풀썩 떨어졌다.
“아니 내 집을 내가 못 들어가는 게 말이 돼? 진짜 선 넘네?“
독기를 바짝 품자 옆에 있던 우물에 있던 물이 부글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물이 부글거리는 소리에 하연은 우물을 내려다보기 위해 가까이 갔다. 그가 내려다보았을 때는 물이 부글거렸던 힘의 여파로 찰랑거리고만 있었다.
”사람이 죽으니까 진짜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이거 어떻게 집에 못 들어가나? 어머니도 뵙고 동희도 보고싶은데..”
동희는 하연이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던 머슴으로 원래 이름을 똥이로 하였다가 중간에 하연이가 이름이 이상하다고 바꿔달라고 떼를 쓰면서 동희로 바뀐 한 남자였다.
사실 하연이가 배를 타게 된 헛바람을 넣은 것도 동희였다. 배를 타면 서방의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맛난 것들을 먹을 수 있다는 망상놀이에 하연이는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배를 탄 것이다.
하연은 어쩔 수 없이 그저 집 앞에서 누가 집에 들어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한 스님이 집앞을 지나다 대문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 시선은 하연을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난으로 하연이는 스님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십니까?”
“어쩌다가... 어이하다 그러셨습니까... 쯧쯧”
혀를 찬 스님은 천천히 하연에게 다가왔다.
“네..? 제가 보이십니까??”
깜짝 놀란 하연이는 손을 휘적휘적 스님 눈앞에서 흔들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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