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스님은 하연에게 점점 다가왔다.
그러고는 하연을 통과하더니 그대로 대문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어? 제가 보이십니까? 안보입니까? 뭐지??”
스님은 대문을 이리저리 매만지더니 조용히 읊조렸다.
“이렇게 비싼 나무로 대문을 만드시면 제가 지나칠 수 없잖습니까...”
그리고는 대문을 두드렸다. 하연은 혐오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계십니까?“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스님은 좀 더 힘을 주며 대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그저 지나가는 ‘법찬’이라는 중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이 괜찮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동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마님. 법찬이라는 스님이 드릴 말씀있으시다고 하십니다.”
“내가 직접 마중나갈테니 기다리거라.”
시간이 좀 흐르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하연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얼굴은 그전에는 없던 주름이 생겼다. 얼굴에 지친기색이 역력했지만, 어딘가에는 희미한 빛이 남아있었다. 하연은 어머니가 마주한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하였다.
아들이 어머니 앞에 서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 앞에 있는 스님만 비출 뿐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어머니의 어깨에 닿으려 해도, 그저 허공일 뿐이었다. 그녀는 죽은 줄도 모르고, 그리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눈빛을 길 위에 고정한 채, 하연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 했다.
하연은 울부짖었지만, 목소리는 어머니에게 닿지 않았다. 그토록 가까이 있지만, 그녀의 눈에도, 손에도, 마음에도 닿을 수 없었다. 그저 그 기다림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연은 스스로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 어떠한 말도, 위로도 전할 수 없는 영원한 침묵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하연은 깨달았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구주를 원망스럽고 이 상황을 보게 만든 현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스님이 먼저 입을 뗐다.
“법찬이라고 합니다. 무상한 세상 속에 인연을 맺고자 하오니, 자비로운 마음으로 시주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공덕이 쌓여 복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유명하신 분께서 오셨군요. 먼저 안으로 드시지요”
스님과 어머니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하연도 분노와 슬픔에 차올라 따라 들어갔다.
“차를 먼저 드시지요.”
”차 향기가 좋군요. 감사합니다.“
집안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동희가 마당쓰는 소리만 들렸다.
”이 집 근처에 영혼이 하나 떠도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머니의 대답에 스님은 부적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선 먼저 부적을 쓰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적이라면 저번에 오신 현철 스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역시 하연이 집에 못 들어오게 된 원인은 현철스님의 부적이었다.
현철스님이라면 이 지역에서 명망 있는 스님이었다. 현철스님이라. 그것은 법찬의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그의 말에 얼굴의 표정이 살짝 찌그러졌다.
“아... 현철스님이라면 믿을만 하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나 더 쓰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 하나가 더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나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님이 부적을 그리는 동안, 그들이 앉은 자리 옆에 하연도 덩달아 앉아 어머니를 계속 쳐다보았다. 이제 헤어지면 한동안 못 볼 것이라 생각하니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근심이 무엇이길래 무엇을 그리도 쳐다보십니까?“
하연은 놀란 얼굴로 법찬을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그 물음에 답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아들이 근처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들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아비를 따라간다는 서찰만 남기고 아비를 따라간 것 같은데, 멀리가서 그런지 소식조차 없습니다. 그이가 전쟁 중이라면 서찰이라도 간간히 보낼 터인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한 번도 그런 서찰이 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기다림에 지친 그녀의 눈동자는 어딘가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아직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는 듯 반짝였다.
“아들과 남편께서는 그렇게 되셨군요.”
법찬이 부적을 다 그렸다. 완성된 부적을 보니 살면서 처음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별도 그려져 있는 부적은 처음 본 하연이 곁눈질로 법찬의 얼굴과 부적을 훑었다. 그 순간, 하연은 곁눈질로 법찬과 눈을 마주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찬이 이리저리 만지면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기도가 방에 울리자 하연의 귀가 따끔거리며 머리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기도는 계속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연의 몸이 무거워졌다. 기도는 하연을 짓누르기 시작해 점점 그의 몸을 터트릴 것처럼 사방에서 압력이 가해졌다. 하연이 가만히 견디지 못해서 힘을 분출하기 직전 그의 기도는 끝이 났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어머니에게 현철스님의 부적들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현철스님께서 아무에게 가르쳐주지 말라 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현철스님이 우려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걱정마십시오.”
법찬의 대답에 주저하던 어머니는 담장의 모서리 부분들을 가리켰다.
“담장의 구석마다 부적을 뭍어두었습니다. 현철스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말라고 하셨지만 워낙 법력으로 유명하신 분이니 믿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그전에 시주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동희야 가져오너라. 무거워서 나가실 때쯤 드리려 하였으나 말씀하시니 지금 드리겠습니다.“
동희는 어깨에 시주 주머니를 지고 나왔다.
법찬은 시주 주머니를 건네받고는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쌀이 가득 담겨있었지만 법찬의 얼굴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현철스님이 받은 것을 똑같이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어머니의 안색에 당혹감이 비췄다.
“사실 그것이 좀 부담이 됩니다. 그때에는 집안 사정이 넉넉했던지라 많이했었습니다. 지금은 넉넉치 않습니다.“
’아니 스님이 어떻게 시주를 더달라고해? 이상한사람이네. 지금 준것도 엄청 많구만!‘
하연은 가뜩이나 많은 쌀을 받은 스님이 더 달라고 하는 광경이 이상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주시는 시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집안을 위해서 그리고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 더 해주시죠.”
법찬의 말에 하연은 화가 치밀었다.
‘우리는 이미 죽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한다는 말인가?’
하연은 그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에게 삿대질을 하며 보이지 않을 몸동작을 해대었다.
“근처에 귀신이 날뛰고 있습니다. 시주를 좀 더 해주시죠”
이 말에 하연은 화들짝 놀랐다. 뭔가 자신을 보는 것 같으면서 못 보는 것 같은 아리송한 행동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금고를 열었다. 하연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보았을 때 금화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가 열었을 때는 금화가 10개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어라? 왜 이리 없지? 근래 집안에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이야?’
하연은 혼자 남겨진 어머니 걱정 가슴에 아리었다.
그러던 와중 어머니가 금화 2개를 가슴에 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가뜩이나 얼마 없는 금화를 2개나 법찬에게 건네 주었다.
“커다란 불공에 감사드립니다. 이 치성이 하늘에 닿아 집안에 좋은 일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연은 없는 살림에 사기꾼 손으로 금화가 들어가는 것이 대단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하는 일에 불안감과 걱정이 더해지면서 하연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야이 귀신이 잡아먹을 놈아! 어머니에게 무슨 짓거리야!!”
하연은 법찬을 향해 소리쳤다. 법찬은 그의 소리를 들은 것 마냥 잠깐 움찍했다
하연이 우울하든 말든 상관없이, 법찬은 시주 주머니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불경을 외우며 현철의 부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쓴 특이한 부적을 현철의 부적에 감싸고는 다시 땅에 묻는 행동을 하였다. 집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부적을 뭍은 곳을 파해 치고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였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시주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 평안하세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합장을 한 뒤, 고개를 숙인 법천은 그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잠시 그대로 멈추었다가 자세를 곧추었다.
”미천한 중이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머니, 그동안 그리워하신 아들에 대해 제가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렴풋이 아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겁니다.“
“이곳에 있다니요?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지, 어디선가 살아 있을 겁니다.”
법찬은 깊은 숨을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계속 말했다.
“사실은 그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향한 깊은 그리움과 집착이 그를 이승에 묶어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들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갑작스레 놀라며 손을 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동희가 어머니를 부축했다.
”야이 떙중아. 그만한 돈을 받았으면 그냥 가면 되지!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는! 도련님이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개수작을 부려?!“
동희는 옆에 떨어져 있는 돌을 주먹에 쥐고는 법찬을 위협했다.
”말도 안돼요... 제 아들은 죽지 않았어요... 어떡하든 그이가 아들을 지켰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법찬에 부정하는 어머니의 흐느낌이 시발점이 되어 동희는 법찬에게 달려들었다.
법찬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하고는 동희 턱을 주먹으로 가격해서 기절시켰다.
“잠시 쉬시지요...”
법찬은 동희는 없는 사람 취급하며 어머니의 손을 붙잡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어머니,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인연 속에서 일어납니다.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떠난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이제는 어머니께서 그를 놓아주실 때입니다. 아들의 효심이 지극하여 그 먼 곳으로 갔는데, 혼으로라도 집으로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이승을 떠나 극락으로 가야만 어머니의 마음도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제가 아들을 보내줘야 하나요? 곁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는데... 이제 떠나 보내야만 하나요?“
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답했다.
“어머니의 그리움이 아들을 이곳에 붙잡았지만, 이제는 그가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도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로 그를 천도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천도길은 제가 인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찬은 염불을 시작하며, 어머니에게도 마음 속에서 하연을 놓아주기를 기도하도록 권했다. 이러한 상황에 하연은 넋이 나갔다. 나를 모른 척했다는 배신감. 그리고 나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알려 슬프게 하였다는 분노와 자신의 죽음을 알려주었다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아들에게 한마디 남기시죠.“
법천이 하연이 서있는 쪽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게 하였다. 그리고 손으로 어머니의 눈가에 법력을 주입하자 그녀는 점점 뚜렷해지는 하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연아... 하연아...!!”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둑이 무너진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 패인 주름을 타고 흘렀다.
”어머니... 제가 보이시는 겁니까...“
감동적인 모자의 상봉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으라 했잖느냐. 정하연.”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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