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신과 전재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마부의 얼굴이었다.
“장군님 지금 해가 중천입니다.”
마부가 멋쩍게 웃으며 그들을 깨웠다.
동시에 일어난 이신과 전재는 얼굴을 서로 쳐다 보았다 이신은 씨익 웃으며 이를 보였다.
“내가 말했지 않느냐. 악몽을 꾸게 된다고.”
그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있는 전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일어났다. 전재는 아직도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신과 자신에게 나타났던 경험을 저 금고를 만졌을 때부터 겪어 왔지만 내색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니 그가 대단히 느껴졌다.
“장군님! 그러면 어제 늦게 일어나신 것도 이것 때문입니까?”
“상상은 너에게 맡기마. 어서 오너라.”
이미 마차에 탄 이신은 서둘러 마차를 타라고 전재에게 손짓했다.
‘언젠가는 당신을 반드시 넘겠습니다.’
서둘러 마차로 뛰어가는 전재의 마음 속에는 강한 호승심이 자리했다. 어쩌면 이 마음은 금고로부터 온 것일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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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은 하연과 법찬을 뒤로한 채, 서둘러 저승으로 돌아왔다. 하연의 문제를 확인하기 보다, 급한 그의 몸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예모가 있는 심판의 전당을 먼저 가기로 했다.
그는 심판의 전당으로 빨리 가기 위해 평소에는 열지 않는 비밀통로를 열었다. 비밀통로의 입구는 불에 타오르는 듯 매우 위험해 보였다.
“하··· 이거 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지···”
그가 비밀통로 쪽으로 뛰어들자 마치 통로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를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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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궁 안에 있는 심판의 전당>
그가 용의 모양으로 된 석상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앗뜨뜨뜨···. 뜨거워!!! 이래서 내가 이거 빼자니까···.”
그가 망토에 붙은 불씨를 탁탁 털어내며 심판의 전당을 향해 발걸음을 부지런히 놀렸다.
입구에 다다르자, 심판의 전당은 거대한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문으로 정군을 맞이했다. 문의 높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정면으로는 여러 신들의 문양들이 세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저승의 역사와 영혼의 여정을 상징하는 듯, 복잡하고 꼬인 형태로 이어지며, 모든 생명이 심판 받아야만 하는 운명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문 위로는 하얀색의 문지기가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흑옥’으로 심판의 전당을 지키는 존재이다. 그의 검은 눈은 문을 지나려는 모든 영혼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영혼 속 깊이 감춰진 진실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영혼의 저울은 모든 영혼의 생애를 재며, 그들의 선악을 가늠하는 도구였다. 흑옥은 누구도 그 저울을 속일 수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정군은 평소처럼 문 앞에 섰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거대한 문, 그리고 그 문을 지키고 있는 흑옥이 있었다.
“열어라. 부장님을 뵈러왔다.”
흑옥은 수많은 영혼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운명을 재어왔고, 그 앞을 지나가는 모든 자들은 그와 마주쳐야만 했다. 정군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흑옥의 눈은 찬란하게 빛나는 옥처럼 깊고 검은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지만, 그 눈에는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통과시킨 경험이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정군의 영혼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오랜만이군. 정군”
순간, 정군과 흑옥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정군은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수 차례 여기를 지나왔었지만 흑옥의 눈빛은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흑옥의 눈빛 속에는 알 수 없는 심연이 담겨 있었고, 마치 그가 정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모든 과거와 죄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승의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눈, 그리고 그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정군에게 알 수 없는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흑옥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정군은 곰방대를 천천히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괜히 곰방대를 입에 가져다 한 모금 빨았다.
“우리끼리는 그냥 빨리빨리 열어주지 그래?”
입에 물은 연기를 흑옥에게 괜히 내뱉었다.
이미 저승의 수많은 일을 겪어낸 정군이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흑옥의 존재는 그에게조차 위압감을 주었다. 그러나 정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흑옥은 정군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영혼의 저울이 가볍게 흔들렸고, 그 울림이 전당 앞에 메아리쳤다. 그것은 흑옥의 침묵 속에서 허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라.”
정군은 짧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흑옥은 여전히 그의 뒤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 정군은 무겁게 열리는 문을 열었다. 그가 심판의 전당 안으로 발을 들이는 그 순간,
“너의 앞에 억겁의 무게가 있다.”
흑옥이 정군에게 말을 했다.
“망부석처럼 지키는 너만 할까.”
정군은 그의 말에 지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전당으로 들어갔다. 전당의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혔다.
‘저 녀석은 여기 올 때마다 왜 계속 같은 말을 하는거야.’
지나갈 때마다 같은 말을 하는 흑옥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정군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말이 정군의 마음을 건드렸다.
정군은 길게 펼쳐진 대전을 지나 예모의 집무실의 앞까지 도착했다.
그가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두 세번 했다.
‘후우 후우’
그가 집무실에 들어가자 예모가 기다렸다는 것 마냥 웃음을 지었다.
“어서와라. 너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부장님께 정군이 인사를 드리옵니다.”
정군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는 예의를 갖추었다.
“됐다. 일어나라. 다른 애들처럼 전서를 날리면 되는 것을 굳이 찾아올 이유가 있더냐?”
예모는 모든 일처리를 전서로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나서는 것을 안 좋아하기에 모방체로만 움직이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그를 직접 만나러 찾아왔다면 큰일인 것이 분명하였다.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그가 수천의 인장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였다.
그의 머리 속에선 수천의 인장이 자신의 몸을 지배했을 때가 떠올랐다.
하연을 죽이려고 하였을 때, 강력한 힘과 어두운 기운이 그를 사로 잡았다. 그것은 인장 발동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몸은 점차 이질적인 감각에 빠져들었다. 수천의 인장은 점점 더 강하게 그의 정신을 억누르고, 수천의 의지가 자신을 조종하려는 것을 느꼈다.
그 때 정군은 영체의 모든 기를 모아 인장의 힘을 억누르고 나서야 그는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인장은 때때로 강하게 그의 정신을 억누르고, 자신을 조종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급하게 예모에게 찾아왔는데 이 사실을 알리려 할 때마다 몸이 굳어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이 그의 목과 팔다리를 감아 올리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예모는 눈 앞에 있는 정군이 말을 하다가 멈춘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 어디 아픈 것이냐? 병가를 내려온 것이야?”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정군을 향해 예모가 손가락을 휘갈기자, 정군의 몸에 정기가 순간적으로 폭발하듯이 증가했다.
폭발하며 온 몸을 휘돌아간 정기는 수천의 인장을 잠시나마 제압했다.
“부장님, 그것이 아니라, 수천과의 싸움 이후로, 제 몸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정군은 자신이 원래 말하려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음··· 그 사건 이후로 네 몸에 과부화가 온 것일 수도 있군. 그건 어쩔 수 없다. 저승사자들은 맨 처음 주어진 힘의 변동이 크지 않으니··· 방금 너에게 있던 영체 손상을 복구해주었으니 앞으로 몸이 멈추거나 그런 현상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너는 내가 하사한 선물이 있지 않느냐. 그것만 잘 다룬다면 전에 만난 수천조차 이길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말거라.”
정군은 인장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저 다른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저는 그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스스로를 단련한다는 연유로 망각의 심연에 갈 생각은 하지말거라. 내 너를 매우 아끼기에 하는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돌아가도록 하여라.”
망각의 심연은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실종되었던 장소다. 한 때, 그 안에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들어서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그곳을 찾아갔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곳이었다.
정군은 말을 마치고 예모의 집무실을 나왔다. 아무런 소득 없이 나와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정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의 손을 곰방대에 가져갔다.
예모가 하사한 이 곰방대는 그에게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예모가 저승사자 시절에 사용하던 무기였다. 이것은 재사용시간이 존재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무기를 한 차례 완전 모방이 가능한 무기였다.
그 중요한 선물을 만지는 순간, 그는 예모가 자신을 신뢰하고 아껴줬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마다 그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자신의 의지가 되살아났다. 수천의 인장이 발동할 때 조차도, 곰방대를 쥐면 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예모의 따뜻한 기운이 그를 보호하는 듯처럼 느껴졌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아기가 태어납니다. 슬슬 긴장되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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