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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星夜
작품등록일 :
2024.10.01 10:28
최근연재일 :
2024.10.17 12:17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990
추천수 :
76
글자수 :
93,726

작성
24.10.01 10:29
조회
586
추천
12
글자
5쪽

서장

DUMMY

산동악가는 대대로 군부의 요직을 배출한 가문이다. 당장 태상가주만 해도 전직 북방대장군으로 군정에 입김이 강했다.


그가 손자를 보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악군위, 넌 훌륭한 무관이 될 거다.”


그 장담대로 악군위는 천생 무관이었다.


벽창호처럼 엄준한 기질과 원칙적인 태도. 여덟 가지 분야의 적성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내기까지.


벌써 가문의 어른들에게 어엿한 준재로 인정받았다. 그것이 고작 열두 살의 나이에 드러낸 두각.


장차 산동악가는 물론이고 일백만 황군을 이끌어나갈 재목이 분명했다.


“기품은 늠름하고, 심지는 올곧도다. 악왕(鄂王)의 환생이 존재한다면 너를 말하는 것이겠지!”


악왕은 산동악가의 중시조 악비(岳飛)를 의미한다.


남송을 지킨 불굴의 명장.

충신의 대명사이자 민족 영웅으로서, 한족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기념비적 인물.


어린 소년에게 붙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명예로운 별칭이었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전 그저 존엄하신 천자께 영원한 충성을 바칠 뿐.”

“하하하, 그 말이 맞다. 본 가문이 이런 복락을 얻은 건, 전적으로 황상의 은혜 덕분이겠지.”


태상가주는 손자의 머리칼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흐뭇한 입꼬리와 별개로, 못마땅한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본가의 지원을 누린 주제에 의무를 기피하는 큰손주와 격이 달라.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앞으로 가문과 대명제국의 부흥에 이바지하거라.”


어린 악군위를 향한 칭송에는 늘 제국과 황제가 언급되었다. 피곤할 정도로 지겹다. 때로는 섬뜩하기도 했다.


─모든 건 황제 폐하를 위하여!


세뇌와 같은 음성이 뇌리에서 메아리친다. 강제로 주입된 가치관은 장엄한 몸가짐으로 체화된다. 태상가주는 흡족히 웃었다.


“역시 내 피를 이은 손주답군.”


사실 거창한 충심도, 애국심도 없다.

그러나 악군위는 광신적인 애국자마냥 스스로를 가장했다.


그것이 가문의 어른들이 바라는 이상적 인간상이니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


결정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런 음식이 다 식겠군. 자, 마음껏 먹으려구나.”

“네, 조부님.”


눈이 강아지처럼 빛난다. 재빨리 식기를 들며 호화로운 밥상을 맞이한다.


우걱!


악군위는 성숙한 모습과 다르게 유난히 식탐이 많았다. 무뚝뚝한 눈매가 거짓말처럼 풀리며 복스러운 눈웃음이 지어진다. 식사 시간이 바로 고된 훈련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맛있어!’


천생 무관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칭찬과 보상을 갈망하는, 그저 또래보다 조숙한 어린아이. 그것이 악군위의 본질이었다.


“먹는 게 그리도 좋니?”

“네, 형님.”

“참 볼 때마다 신기하고 안쓰럽구나. 그래도 네가 부러워.”


짙은 한숨이 들려왔다.


“난 이딴 가문, 억지로라도 정을 붙이긴커녕 지긋지긋하기만 하거든.”


악군위의 첫째 형이 강호로 몰래 출가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이었다. 본래부터 가문의 뜻과 어긋나는 반골 성향을 지녔다.


태상가주는 상심하는 대신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큰손주는 성정이 유약했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네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가족도 못 지키는데 제국이 무슨 소용이지.

불온한 의문이 문득 들었지만, 금세 접었다.


황홀한 만찬이 눈앞에 펼쳐졌다.


‘참 이해가 안 돼. 가문에 남아있으면 매일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원하는 걸 풍족하게 누릴 텐데. 어째서 이런 삶을 마다하는 거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게 뭐가 어렵다고.’


유치한 비웃음마저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그래도 형한테 버릇없는 생각을 가지는 건 옳지 않았다.


대신 음식을 포식하는 데 집중하며 기쁘게 웃었다. 그때 태상가주가 축배를 들며 외쳤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황상의 성은에 감읍하라, 잊지 마라! 너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황상의 윤허 하에 있음을.”


위화감이 드는 광경이었다. 악군위도 남전계퇴를 맛있게 뜯었다. 그리고 천장 너머 하늘을 가리키며 함께 어우러졌다.


“황제 폐하와 대명제국을 위하여.”


황상께 충성을, 제국에 영광을.


자명한 명제와 행동 원칙이다.

분명 의심해서는 안 된다.


"음···?"


헌데 오늘따라 식욕이 없었다. 악군위는 자그마한 머리를 갸웃거리며 이르게 식사를 마쳤다.


형의 빈 자리가 거슬리게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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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산동악가주 24.10.17 108 3 14쪽
16 비무 24.10.15 125 0 13쪽
15 하북팽가 24.10.14 138 1 14쪽
14 권역 24.10.11 138 1 15쪽
13 훈련 24.10.10 129 1 12쪽
12 파벌 싸움 24.10.09 157 1 13쪽
11 북방인 24.10.08 159 0 13쪽
10 흑교방주 24.10.06 175 2 13쪽
9 허공섭물 24.10.05 174 2 15쪽
8 치국평천하 24.10.04 207 4 13쪽
7 위용 +1 24.10.03 234 4 14쪽
6 영약 24.10.02 239 5 12쪽
5 증명 24.10.01 272 9 13쪽
4 전우 24.10.01 316 10 13쪽
3 북새풍 24.10.01 378 11 10쪽
2 거짓말 24.10.01 455 10 7쪽
» 서장 24.10.01 587 1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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