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교관님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늘 품던 생각이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하나만 더! 그래, 그거다. 할 수 있잖아? 하나만 더 가자! 좋아. 하나 더!”
진득한 땀내와 고통스러운 신음.
산동악가의 훈련생들은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훈련을 이어 나갔다. 이따금 육성으로 내뱉기도 했다.
“악군위, 넌 우수하지만 그뿐이다. 강호에 너 같은 기재는 수두룩하다.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라!”
훈련 교관은 거짓말할 때 눈썹이 살짝 올라가는 버릇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거짓말에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내가 훈련생이었을 적에는 이깟 고된 훈련,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흘 밤낮을 행군한 뒤에도, 자진해서 철갑옷을 입은 채 온종일 창법을 연마했지. 황실과 군부에서 나를 어찌나 탐냈는지 원. 한 삼십 년은 더 말뚝 박을 걸 그랬나.”
교관은 허풍이 심했지만, 전혀 얕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십이귀창(十二鬼槍).
산동악가를 대표하는 성명고수 출신이다. 매화검수보다 족히 반 수 위는 쳐줘야 한다는, 최정예 무사.
군부에서도 십 년 넘게 종군하며 온갖 대전장에서 공적을 세운 괴물이다. 그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악군위는 묵묵히 훈련을 받아왔다.
“너희는 오늘부터 임무에 돌입하게 된다.”
삼 년이 더 지나, 열다섯 살이 된 해였다.
“묵룡파. 산동 덕주의 사마외도 무리다. 양민을 수탈한 건 물론, 대규모 학살에다가 관으로 향할 공납까지 빼돌렸지. 멸문이다.”
악군위는 훈련 과정을 건너뛰었기에 같은 기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았다. 십 척(尺)이 넘는 장창까지 쥐니, 언뜻 보기엔 새파란 애송이 티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활약은 가장 두드러졌다.
“소악귀(小惡鬼)다, 소악귀!”
경외의 호칭.
사파 잡것들이 기겁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도주는 허락되지 않는다. 창격이 긴 거리를 주파하며 죽음을 선고한다.
고작 열다섯 살에 얻은 위명은 몹시도 살벌했다. 동료에게 경의를 사며 임시 집결지로 복귀할 때였다.
“···형님?”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포박된 채 무릎을 꿇은 악군위의 첫째 형.
그리고 입꼬리에 걸린, 질 나쁜 미소.
“드디어 왔는가. 복귀가 좀 늦었군.”
훈련 교관이 악군위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가죽신이 첫째 형을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참 공교로운 우연이지 않나. 유감스럽게도 자네의 형이 이곳에서 잡혔네.”
목소리의 높낮이가 굴곡졌다. 훈련 교관은 악랄하게 웃으며 턱을 매만졌다.
“산동악가의 후계자이면서 의무를 저버리고 강호로 도망치다니. 즉결 처분이지. 본가의 율법은 군법과 같이 지엄하거든.”
“······.”
“다만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데···. 어때. 아우 된 자로서, 자네가 손수 형의 마지막을 보내주겠는가?”
악군위는 항상 철통 같이 명령을 따라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훈련 교관의 섬뜩한 눈빛이, 선명한 악의가 몹시 곤욕이었다.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랜 망설임은 현실을 부정하고, 시간을 끌려는 의도로만 보였다.
“저는-”
“힘들다면 내가 대신 보내줘야겠지.”
머뭇거림이 길어지자 훈련 교관은 널찍하고 긴 칼을 들었다.
참마도(斬馬刀).
말을 베기 위한 도검.
그것이 첫째 형의 머리 위로 향했다.
──스각!
참격이 단숨에 내리 찍히고, 목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선혈이 흩뿌려진다.
불편한 적막이 길게 흐른다.
주변 동료들마저 어찌할 줄 모르고 눈치만 살폈다. 혈육의 죽음, 그것도 당사자를 배려하지 않은 살해의 형태.
- 미친놈인가?
공통된 의견이 모두의 뇌리를 지나쳤다.
그때 광적인 웃음이 번졌다.
하, 하하하.
훈련 교관은 땅바닥에 떨어진 목을 주웠다. 손으로 흙먼지를 툭툭 털고 앞으로 내보였다.
“역용술(易容術). 내력을 주입해 체내 근육을 고정하여, 얼굴을 바꾸는 잡기술이지. 그리고 이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도 가능해.”
끄드드득─
악군위의 형으로 보였던 자.
그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애당초 외관이 흡사했다. 역용공까지 사용하니 얼핏 보기엔 감쪽같았던 것이다.
“다만 사후까지 유지하긴 힘들지. 본래는 네 반응을 살피려고 했는데··· 으음.”
“교관님께서는 저를 시험에 빠트리신 거였군요. 일부러 내적 갈등을 유발하고 어떤 대응을 하는지 보기 위해서요.”
“그렇지. 자네는 역시 눈치가 빨라. 당황한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별 재미 못 봤어.”
재미라니.
고약한 단어 선정이었다.
“그야, 처음부터 작위적인 상황이었으니까요. 조금만 이성을 유지하면 이상함을 알아챌 수 있지요. 세월이 지났는데 얼굴도 그대로고요.”
군부의 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끊임없이 상대를 속이고 시험에 들게 하여 충심을 평가한다. 하물며 일반 병졸도 아니고 고위 무관이 될 자에겐 더더욱 엄했다.
그리고 산동악가 역시 이런 악질적 사고방식과 가풍(家風)이 강했다. 악군위의 형이 참지 못하고 도망친 것도 지금과 비슷한 이유일 테다.
짝, 짝짝.
커다란 갈채가 시험을 통과한, 아니 그 이상의 통찰력을 보여준 소년을 칭송했다.
“훌륭해, 훌륭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적의 의중을 짐작한다라. 위대한 대장군의 자질이로군. 자네 같이 유능한 사람이 출세해야 병사들의 희생이 덜 할 텐데 말일세.”
“감사합니다, 교관님.”
악군위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내색 없이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당연한 일인듯 칭찬을 받아들였다.
‘오늘도 교관의 거짓말에 당했구나.’
─라고 속으로 넋두리할 때였다.
“그런데 자네 그거 아나?”
불현듯 교관은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했다. 마치 수줍은 고백 같지만, 실상은 오싹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삼 년 전 강호로 뛰쳐나간 산동악가의 장남은, 사도 대방파에 붙잡혀 강제로 입문하게 되었지. 본가로서는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치욕이야.”
“······!”
흐트러짐 없던 악군위의 동공이, 지진했다.
뇌리에서 숱한 상념이 저 말을 이해하고자 거듭 상황을 분석했다.
턱, 그리고 두터운 손길이 어깨를 만졌다. 평온한 목소리가 짓궂게 소년을 다독인다.
“다음이 찾아온다면 실전이라네.”
저벅.
뒤돌며 멀어져만 가는 발걸음은 악군위의 망상을 부풀렸다. 뒤늦게 좇아 진상을 묻고 싶은데, 이상하게 발이 땅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석양의 빛무리를 어둑한 인영이 가리며, 손을 뒤로 흔든다. 악군위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교관님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그러고 보니 눈썹이 올라갔던가?
불분명한 기억은 비참한 소식의 진위를 꿈결처럼 덮으며, 내면의 동요를 잠시 진정시켰다.
진실은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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