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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星夜
작품등록일 :
2024.10.01 10:28
최근연재일 :
2024.10.1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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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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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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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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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증명

DUMMY

동년배 경쟁자의 등장은 악군위에게 큰 반향을 불렀다. 어쩌면 위기의식일지도 몰랐다.


문득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니.


‘내가 산동악가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토록 강해질 수 있었을까···?’


일종의 자괴감이었다.

사실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기도 했다.


‘나는 류진과 달리 딱히 성장하는데 큰 걱정거리가 없었어. 오롯이 수련에 집중할 환경이었지.’


반면 녀석은 생사의 고비가 일상이었으리라.


‘난 영약을 물처럼 먹고, 전문 고수들이 옆에서 붙어 매일같이 지도해주셨지.’


녀석은 늦게 입문한 만큼 내공량도 보잘것없었다. 심법이 대성에 다다를수록, 육체도 영향받아 강인해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산동악가의 후기지수로 인정받기 전까지, 버텨낼 체력도 익힌 기술도 미천했으리라.


의문과 자괴감은 비교 대상을 잡아먹으며 더욱 커져만 갔다.


‘내가 류진처럼 힘겹게 살았으면, 이만한 강함을 가질 수 있었을까.’


계속 맴맴 돈다.

잡념은 여러 방향으로 갈래를 뻗어, 이상한 형태로 크기를 부풀리기까지 했다.


‘가문의 후광이라···. 생각해보니 늘 받기만 했지. 내가 손수 성취한 게 있긴 한 걸까.’


어릴 적에는 마냥 어른들의 뜻대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최근 형의 소식을 직접 전해 듣고서 약간의 회의감이 생겼다. 머리도 커지니 딴생각이 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돌이키면 우스웠다.


‘참나. 가문의 지원을 누릴 대로 누렸으면서 이제 와 반감이라니. 감히 의구심을 가질 자격조차 얻지 못한 주제에. 그저 황상과 제국에 충성을···.’


충성을.

문장이 차마 완성되지 않는다.


그들을 무작정 찬송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가문이 아닌 그들이 해준 게 무엇이 있는지···.


‘아니야. 불순한 생각하면 안 돼.’


악군위는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이것도 심마(心魔)라면 심마인가. 아무래도 상담해야겠어.’


고민이 있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털어놓아야 한다. 이는 가문에 지정한 명령에 가까운 규칙이었고, 악군위는 늘 철통같이 따라왔다.


물론 형에 관해서는 털어놓은 적이 없긴 했다.


그렇지만 딱히 대수로운 것도 아니고, 이런 고민은 미약할지라도 심마와 직결되기에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편이 좋았다.


“본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었을까라. 자네는 지닌 성취가 노력으로 직접 얻어낸 게 아닌 그저 환경이 준 산물이라고 느끼는 것이로군.”


진지한 자세로 들어주던 훈련 교관은, 눈썹을 구부러트리며 단호하게 외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데없는 고민이다. 왜 있지도 않은 가정을 하며 혼자 자신감을 잃는 거지? 너답지 않군. 류진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별로 강하지도 않은 게 참 팔자 좋은 잡생각이나 하기는. 다시 일러주마.”


교관은 깍지를 끼며 말했다.


“자넨 지금은 나이도 어리고, 치고 오를 수 있지만 언제든 벽에 부딪혀 좌절할 가능성도 크지. 단순히 조숙할 뿐인데 천재로 착각하고 추켜세워지다가 추락하는 사례는 허다하거든.”

“알겠습니다.”

“잊지 마라. 강호 전체를 따져보면 너 같은 재능은 많다는 것을. 괜히 심력 낭비하지 말고 무공을 갈고닦는 데 힘이나 써라.”


교관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말과 다르게 악군위의 재능이 썩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심란한 와중에 너무 몰아붙였다고 생각하는지 교관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뭐, 너와 같은 상황이라면 올 수 있는 고민이지. 이해한다. 그리고···.”


교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네라면 왠지, 본 가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더라도 대성했을 것 같네. 이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배님의 직감. 기뻐하게나.”


교관도 항상 기분 나쁜 말만 하지는 않는 듯했다. 이번만큼은 달가운 조언이었다.


그리고 증명할 기회는 며칠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 * *



난데없는 대규모 집결이었다.


“태상가주님께서 시찰 나오신다던데?”


산동악가에서 아직 정식 무사가 되지 않은 이들 전부가 넓은 터에 모였다.


악군위가 속한 기수를 제외하고서도, 밑 기수나 타 소속의 신참 무사들까지. 그 수가 물경 칠백 내외.


군부의 가문으로, 무공을 가르쳐 황실에 무인을 상납하기 때문에 단순 입문자들도 수가 매우 많았다. 그들이 모두 모이니 장관이 따로 없었다.


쿵.


발울림과 함께 연단에 누군가 올라섰다.

알아본 이들이 자그마하게 소리쳤다.


“태상가주···!”

“역시나 당당하신 풍채로군.”

“저분께서 바로 천하제일창(天下第一槍)···!”


군부의 상징. 역전의 대장군.


북방 군신(軍神)과 일대일 교전을 벌여, 무려 삼백 합을 겨루고도 살아남은 존재였다. 이는 절대로 얕볼 수 없는, 전설적인 업적이었다.


태상가주 악운황이 근엄하게 연설했다.


“위태로운 난세로다. 감히 북방 오랑캐들이 국경을 넘어, 대명제국의 위엄을 떨구었지. 크나큰 치욕을 겪는 나날이다.”


초월적인 시선이 좌중을 훑어봤다.

몹시 소름 끼칠 정도였다.


“이곳 자리에 모인 이 중 일부는 군부로 임관하겠지. 또 일부는 황실이나 지방 관군으로 갈 수도 있고, 또 일부는 본가에 남을 수도 있지.”


특별히 크지도 작지도 않다.

고도의 육합전성이라도 되듯, 적당한 음성이 광장 전체에 부족함 없이 번졌다.


“어느 집단에 뜻을 두었든, 너희는 조국의 평화를 지키는 데 일조하리라 여긴다. 본관(本官)은 대명제국의 장정인 너희들이 그저 자랑스럽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율감을 선사한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의 무게감.


“그러니 너희가 무예를 충분히 갈고닦아, 어느 위치에서든 가진 뜻을 충실히 펼쳤으면 한다. 하늘을 우러러,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하겠지.”


안광이 빛나며 장엄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 묻겠다. 내 바람만큼, 자네들도 거룩한 포부를 심장에 품겠는가.”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예!!””


수백의 목소리가 한데 뭉쳐, 커다란 함성을 자아냈다. 실로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훗. 목소리는 크군.”


태상가주는 주름진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한 듯 웃었다. 반면 눈가는 냉랭히 변함없었다. 마치 별 기대가 없다는 양.


그리고 섬뜩한 울림이 퍼졌다.


“말뿐인 장담이 아니라 몸소 증명해야겠지.”


───구우우웅!


돌연 장내 기류가 확 바뀌었다.

본신 무력이라고 부를 수준은 되기나 할까. 그저 전조에 불과한 힘의 편린. 그럼에도 저 막강한 존재감의 압박을 버티지 못해 벌써 몇몇 이들이 혼절하기 시작했다.


흐읍···!


악군위도 눈살을 찌푸리며 무형의 고압감에 저항하였다. 아직까지는 버틸 만한 수준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두려울 따름이었다.


‘저게 바로 조부님의 진면목인가. 이 정도 힘이라면 평상시에는 내 앞에서 조절하셨다는 뜻인데···.’


태상가주는 위엄 넘치는 자세로 섰다.

손에는 작은 목함이 들려 있었다.


“묵강단(黙綱丹). 본가에서 전해지는 비전 영약이지. 복용만으로도 근골이 질겨지며, 막대한 내공을 얻을 수 있다.”


귀하디 귀한 영약의 선사.

허나 수량은 한정되었다.


“단 한 사람이다. 재주껏 버텨봐라.”


후아아아앙───!


불현듯 돌풍이 불었다. 막강한 기도다. 이것이 바로 절세고수의 힘. 극히 일부를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거대한 흐름이 지어졌다.


“끄악···!”

“커헉···, 컥!”


개탄스러운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다. 단말마와 같은 신음이 짧게 터졌다가 뚝 멎는다. 하나둘씩 온갖 자세로 고꾸라진다.


내상이 심할 테다. 어쩌면 몇 날 며칠의 요양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이게 무슨···.’


악군위도 끔찍한 고통에 당황했다.


꽈악.


뒤늦게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문다.


“끄아악!”


시간이 점차 지난다.


압박감의 범위는 점차 좁혀졌다. 후방보다는 전방으로. 쓰러진 이들 때문에 위력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상가주에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역시나 연배가 많은 이들.

혹은 있는 집 자제로, 영약을 먹은 이들이 오랫동안 버텼다.


그조차 조만간 끝나갔다.


고작 열 호흡 정도의 시간.

어느덧 악군위가 속한 기수의 수습무사들까지 차례차례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직계 혈족이야.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야 해. 무조건 내가 마지막까지 서 있는다.’


그런 각오로 내리 버텼다.


“크헉!”

“으으악!”


계속 쓰러진다. 뒤편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시야에 잡힌 이들이 대다수 쓰러졌으니까.


저들을 보니 괜히 안심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빈구석을 헤집기라도 하듯, 고통이 훅 들어왔다.


과연 방심은 금물이었다.


“황상을 위하여!”


주입된 교육 탓일까. 누군가 크게 구호를 외웠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읊조리라고 진절머리 나도록 들었으니.


악군위도 따라 외치고자 했다.


“으윽··· 황, 황제···.”


어째서일까. 힘이 도통 나지 않았다.

괜히 붙잡지 않고 곧장 포기했다.


‘제길. 조금만 더 버텨야 하는데···. 언제 끝나는 거야?’


악군위는 옆으로 눈길질했다.

놀라운 광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류진. 저 자식. 영약도 못 먹었을 텐데···.’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다. 경악스러운 정신력이었다. 저러니 가문의 위세도 없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른 것이리라.


덕분에 오기가 생겼다.


‘지면 망신이다. 이겨도 한참이나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면 본전이야.’


절대로 질 수 없었다.


밥처럼 복용한 영약. 그로 인해 쌓인 내공량이 엄청났다. 나름 믿는 바였는데··· 단전이 비워졌다. 내공은 고작 십분지 일 각도 안 되어서 전부 소진되고 말았다.


이제부턴 정신력의 영역이었다.


살갗에 핏기가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아파진다. 시야 한 켠도 조금씩 불그스름해졌다. 아무래도 눈에 핏줄이 터진 듯했다.


‘나는 가문을 원망할 자격이 되는가?’


의문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나는···.’


세뇌의 주문처럼 정신을 거듭 몰아붙였다.

심리적으로 몰리니 남들이 목놓아 부르짖는 황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아득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한 줄기 반항심이 뇌리를 스쳤다.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바쳐···? 왜?


그것은 너무나 불경한 발언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의식의 수면 위에 솟아올랐다가, 속마음임에도 재빨리 사그라들었다.


이젠 못 버틴다. 포기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어느새 태상가주가 눈앞에 서 있었다. 기파의 압박도 더 이상 없었다. 안도감이 해일처럼 몰려온다.


“시험은 진작에 끝났단다.”


그런데 저 말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악군위는 확인차 곁눈질했다.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이상해. 아직도 서 있는데···.’


설마.


경악스러운 상상이 들었다. 악군위는 지친 고개를 억지로 돌려 두 눈으로 또렷이 확인했다.


그러자 태상가주가 싱글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 말이냐? 반 각 정도 버텼나. 대단한 정신력이었지.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반사적으로 원망이 들었다.


‘류진, 나쁜 놈! 쓰러질 거면 곱게 쓰러질 것이지 왜 서서 기절한 거야···?’


미워하고 싶어도 자리가 자리였다.

조부의 눈치를 보며 간접적으로 책망했다.


“···대체 언제부터 끝난 겁니까.”

“이 아이가 네 다음이었고, 그 후로 일 각이 더 지났지. 그 이상은 위험할 듯싶어서.”

“아, 조부님···.”


혼백이 나갈 듯한 기분이었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쓰러진다. 그것을 태상가주, 악운황이 받아냈다. 탈력감이 전신을 완전히 압제했다. 품 안에서 힘겹게 고개를 든다.


조부가 굉장히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이 할애비 덕분에 정신적으로 성취를 얻지 않았느냐? 너무 노려보진 말거라. 손주니까 봐주는 거란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무례를 범한 듯했다.

뭐, 지금은 딱히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황인지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만큼 빌어먹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니까. 아직도 여파로 신경질만 났다.


“이전에 교관한테 들었다.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은 성취라고 생각하였느냐? 하지만 잘 봐라.”


악운황은 천천히 목함을 열었다.

영롱한 빛깔의 영약이 번뜩였다.


묵강단. 이미 두 번이나 먹은 영약이었다.

섭취해봤자 별 내력도 늘지 않을 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넌 너 자신을 어떠한 조력도 없이 스스로 증명했다.”


가슴에 꽂히는 커다란 울림.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가문이 아니더라도 필히 어디서든 장성했을 거다. 이것은 내 손주도, 악가의 삼남도 아닌, 한 명의 무인 악군위에게 보내는 찬사이니라.”


악군위는 기쁘게 미소 지었다.

하하.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군.


그 말을 끝으로 점멸하던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몸에 새겨진 예절이 사라질 정도로 더럽게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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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흑교방주 24.10.06 17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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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위용 +1 24.10.03 232 4 14쪽
6 영약 24.10.02 238 5 12쪽
» 증명 24.10.01 271 9 13쪽
4 전우 24.10.01 314 10 13쪽
3 북새풍 24.10.01 376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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