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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별
작품등록일 :
2024.10.01 10:51
최근연재일 :
2024.11.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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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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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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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드러난 탐욕(5)

DUMMY

손이 닿기 직전, 얼음이 창처럼 날아와 쇠스랑을 멀리 튕겨냈다. 어느새 이목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금돼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말고 혼원경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안내할 것도 없다. 혼원경은 네가 물을 끌어 쓴 바로 그 호수다.”

몸을 사리기로 한 금돼지가 순순히 알려주자, 이목은 보목에게 따라오라는 듯 조용히 눈짓했다.

그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깊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보목을 끌고 혼원경 앞에서 선 이목은 금돼지의 말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보목을 주시했다.

동시에 그는 금돼지가 쇠스랑에 손을 대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네놈에게 딱 맞는 작은 호수구나.”

이목의 비아냥에도 금돼지는 음흉하게 웃을 뿐이었다.

곧이어 보목이 혼원경에 모습을 비추자, 커다란 오색 후광 속에서 푸른빛을 품은 승려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목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그의 턱이 단단히 다물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금돼지가 히죽거렸다.

“어때? 짐의 말대로지? 그래, 저 여자는······”

금돼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혼원경의 물이 갑자기 솟구쳐 금돼지를 덮쳤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강력한 물살이 그를 공중으로 날리면서 거침없이 출구로 쏟아져 나갔다.

수압에 눌려 틀어 막혔던 입으로 금돼지는 물을 토해내며 힘겹게 일어섰다.

혼원경이 있던 자리는 텅 빈 구덩이만 남아 있었다.

멍하니 그 자리를 바라보던 금돼지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 미친 이무기야, 네놈이 부순 것이 검단선사(黔丹禪師)의 정기(精氣)가 담긴 보물임을 아느냐? 네놈이 이런 짓을 하니 천벌을 받은 게다!”

금돼지가 분노에 차 외치는 순간, 이목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목은 금돼지의 턱과 볼을 한 손으로 거칠게 움켜쥐었고, 붉게 타오르는 그의 눈에는 매서운 살기가 서렸다.

“네놈의 농간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다. 내가 경고하지 않았느냐. 그 더러운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서늘하고 낮게 말을 내뱉은 이목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금돼지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금돼지는 반항하려 했지만,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이목의 눈과 마주한 금돼지의 눈에는 점점 깊은 공포가 자리 잡았다.

이목의 다른 손이 금돼지의 혀를 잡으려 뻗어올 때, 금돼지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자, 잠깐! 설화가 사실이라면 넌 아직도 온전한 용이 되고 싶겠지? 짐이 여의주를 대신할 보물을 알고 있다. 지금 혀를 뽑으면 넌 그것을 알 수 없을 게다.”

떨리는 목소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보통이라면 거래가 성립될 리 없었지만, 이목은 주저 없이 손아귀에 들어온 금돼지를 풀어주었다.

금돼지는 경직됐던 혀를 풀고 비열한 미소 끝에 입술 위로 두꺼운 혀를 날름거렸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짐이 듣기로 해인사가 용왕의 옥새(玉璽), 해인(海印)으로 창건되었다고 들었다. 짐은 그 해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네가 원한다면 찾아내 바치마. 그러니 저 여자는 짐에게 다오. 아니면 나눠 먹어도 좋다. 상상해 봐라! 보살의 힘이다, 보살의 힘. 네놈도 사실 탐나지 않느냐?”

조용히 듣고 있던 이목이 보목을 바라봤다.

숨죽인 채 긴장에 굳어있는 그녀를 바라본 이목은 다시금 금돼지를 주시했다.

이목이 흔들리고 있다고 확신한 금돼지는 보목을 힐끗 보며 입맛을 다시더니, 한층 더 교활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이제는 알지 않느냐? 누가 너를 농락하고 여의주를 깼는지 떠올려라. 아직 늦지 않았다. 짐과 함께 그 원한을 갚고, 완전한 용이 되어 천계로 가자. 짐이 너의 복수를 도와주마.”

거절할 리 없다는 확신이 금돼지의 가늘게 떠진 눈에 가득 차올랐다.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오만이 넘쳐흘렀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교활한 계획이 꿈틀댔다.

‘승낙해라. 비구니한테도 속은 놈이 짐을 감당할 리 없지. 여자만 먹어 치우면 너 따위는 짐의 상대가 못 된다. 보살도, 여의주도 모두 짐의 것이다.’

이목의 침묵이 길어지자, 금돼지는 더욱더 승리에 도취되었다.

그는 곧 있으면 숙원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에 차서 승낙을 기다렸다.

이목의 대답이 단호하고 냉정히 동굴에 울려 퍼졌다.

“필요 없다.”

자신만만하던 금돼지의 표정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당혹감으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목을 응시했다.

이럴 리가 없다며 그의 입술이 불안하게 떨리면서 희미하게 되물었다.

“거, 거절한다고? 짐의 제안을?”

이목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느긋하게 손톱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고의적으로 느리게, 천천히 금돼지를 향해 다가갔다.

“너 따위에게 놀아난다는 태도가 실로 거슬리는구나. 무엇보다, 천박한 너와 나 사이에 나눌 것이란 없다.”

냉담하고 단호한 이목의 대답에 금돼지는 공포에 사로잡혀 등을 대고 땅을 기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차가운 바닥이 그의 등 뒤로 스쳤고, 다가오는 이목의 손길을 보며 금돼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기에게 드리워지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 짐이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않으마. 숲도 제대로 관리하고, 가진 보물도 모두 줄 테니, 제발 살려다오.”

금돼지는 모든 자존심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두려워하며 바닥을 기면서도 그는 이목의 손길을 피하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여유롭게 자기를 따라오는 이목이 방심했다 싶을 때마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쳐 깨진 돌 조각을 이목에게 던졌다.

그러나 돌은 언제나 허무하게 이목의 손에 막혔고, 이목은 더 가까워졌다.

차갑게 내려다보는 이목의 눈에는 경멸을 넘어 금돼지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조소가 깃들어 있었다.

“지금 멈추면 죽이지는 않으마.”

더 이상의 반항이 소용없음을 깨달은 금돼지가 굴욕감에도 도망을 멈췄고, 이목은 그에게 예리한 손톱을 휘둘렀다.

금돼지의 발목은 거칠게 찢겨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동안, 이목이 보목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온 보목의 팔찌 위로 이목이 손을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투명한 물의 막이 퍼져 팔찌를 감싸며 팔찌의 피를 빨아들였다.

이목이 주문을 읊조리자, 막 안의 피가 둥글게 뭉치면서 곧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용으로 변해갔다.

작은 용은 생명을 얻은 듯 꿈틀거리더니, 막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방향을 바꿔 수직으로 낙하해 금돼지의 상처로 파고들었다.

금돼지는 발목에서부터 몸속을 헤집고 올라오는 고통에 온몸을 뒤틀었지만, 이목의 손에 눌려 꼼짝할 수 없었다.

풀려난 금돼지는 발목에 족쇄처럼 새겨진 붉은 문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대체 짐의 옥체에 무슨 짓을 한 게냐!”

“속박이다. 약조를 어기고 어리석은 짓을 하면 피가 네 심장을 태울 게다.”

믿을 수 없는 마음과는 달리, 금돼지는 무언가가 자기 심장을 휘감는 이질적인 통증을 느꼈다.

그는 마지막 시도로 협박하듯 외쳤다.

“만약, 이걸로 짐이 죽는다면, 네놈의 살생이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현명히 행동해라. 네 심장이 다 불타기 전에 내가 네 몸을 헤집어 강제로 살려놓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테니까.”

거짓이 없는 무자비한 경고에 금돼지는 낯빛이 하얗게 질리며, 입을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 그 전에 죽고 말게야.”

땅에 고개를 푹 숙이고 절망에 빠져 주저앉아있는 금돼지의 품에서 이목은 조요경을 꺼내 들고 동굴을 나갔다.

지금껏 눈치를 살피던 보목 역시 뒤를 따랐다.


동굴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보목이 다친 이목을 걱정하며 다가갔다.

그러나 이목은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잡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보목은 아파서 움찔했지만, 이목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지? 열반(涅槃)에 들었을 네가, 왜 다시 태어나 뻔뻔스럽게 내 옆에 서 있느냐 말이다.”

입으로 분노를 내뱉는 이목의 서늘한 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던 보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서늘한 감각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처음 마주하는 살기 속에서 보목은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이목은 침묵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이 너에게 내려진 벌일지도 모르지.”

이목의 태도에 보목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억누르지 못한 그녀의 표정에서 불쾌감을 느낀 이목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누구랑 착각하는지는 몰라도, 전 이런 대접 받을 이유가 없어요.”

계속되는 이유 모를 적대감에 보목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의지하거나 시선을 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혼자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그녀의 등 뒤에서 이목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네가 우연히 교룡림에서 나를 만나고, 가는 곳마다 신령이나 영물과 얽히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으냐 말이다.”

혼자 가끔 던졌던 의심이 이목의 입에서 나오자, 보목은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다가오는 이목을 보목이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매가 예리하게 좁혀지고, 단단히 굳어진 얼굴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골리듯 은근하게 던지는 암시에 보목은 혼란스러워졌고, 의문만이 머릿속에서 커졌다.

짧은 침묵이 흐른 그때, 보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그녀는 망설였다. 정도영 국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이목의 추측이 사실처럼 느껴지자, 보목은 전화를 받지 않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간, 몸을 추스르며 분통을 터트리던 금돼지의 주위에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동굴 입구에 턱이 없는 이매탈로 얼굴을 가린 자가 나뭇가지를 들고 서 있었다.

아이를 연상시키는 작은 실루엣에 수상한 탈을 쓴 그를 유심히 훑던 금돼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은 뭐냐? 인간의 영혼이라지만, 고단하다 못해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구나. 짐은 네놈같이 더러운 영혼은 먹지 않는다. 조용히 사라져라.”

금돼지가 굴 깊숙이 들어가려 할 때, 등 뒤로 들리던 휘파람 소리에 방울 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 순간, 금돼지의 몸이 이유도 모르게 경직되었고, 그의 등으로 무언가가 깊숙이 박혔다.

끔찍한 고통이 그의 신경을 타고 퍼졌지만, 동시에 경직이 풀려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금돼지는 쇠스랑을 휘두르며 반격하려 돌아섰다.

동굴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이는 이제 이매탈이 아닌 부네탈을 쓰고 있었다.

아이 같던 이매탈과는 다르게 키가 170cm 초반에 무당 옷을 입은 그가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부네탈은 붉은 날에 반짝이는 검은 등을 가진 칼을 들고 있었다.

두 뼘이나 되는 손잡이에 비해 칼날이 두 뼘 반을 겨우 넘는 독특한 모양의 칼은 무당이 굿판에서 쓰는 대신(大神)칼을 연상케 했다.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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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아름다운 그림(4) 24.10.31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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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드러난 탐욕(2) 24.10.17 3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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