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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다섯별
작품등록일 :
2024.10.01 10:51
최근연재일 :
2024.11.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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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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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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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자(2)

DUMMY

산림청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십 대 후반의 정도영(鄭道令)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계룡산의 조사를 나섰다.

효율을 위해 동료들과 흩어져 각기 다른 길을 택한 그는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던 중 웅장한 폭포를 마주했다.

은선폭포(隱仙瀑布)라 불리는 이 폭포는 계룡팔경의 하나로, 두 뼘 두께의 홍색장석질 화강암 바위가 아파트 15층 높이로 쌓여 있었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거세게 수면을 내리쳤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만들어낸 운무가 햇빛을 만나 찬란한 무지개를 그려내는 장관에 정도영은 숨이 멎을 듯 감탄했다.


여름 산행에 땀범벅이 된 정도영은 시원한 폭포에 매료되어 열기를 식히고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싶던 그는 주머니에서 투박한 2G 폴더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에서 풀숲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정도영의 앞으로 갈색 털을 휘날리는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발굽도 뿔도 없어 노루라고 생각한 찰나, 송곳니가 드러난 입으로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자기가 고라니라고 인상 깊게 주장한 그것은 사냥꾼에게 쫓기듯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낀 정도영은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고라니는 그의 코앞을 스치며 빠르게 지나갔다.

무서운 기세로 계곡을 가로질러 도망치는 고라니를 멍하니 바라보던 정도영은 곧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


가방과 소지품을 확인하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가방을 다시 뒤진 그는 휴대전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계곡 쪽을 보며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비싼 휴대전화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망설인 끝에 정도영은 결심을 굳혔다.

정장 재킷을 벗어 넥타이와 셔츠, 바지까지 곱게 접어놓은 그는 조심스럽게 계곡에 발을 디뎌 휴대전화를 찾기 시작했다.


맑은 계곡물이라 바닥이 보이긴 했지만, 사방에 피어난 운무가 시야를 가렸다.

물살을 따라 이리저리 손을 휘젓던 중, 마침내 손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다.

급히 그것을 붙잡아 물 밖으로 끌어 올리니, 잃어버렸던 휴대전화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휴대전화를 살폈다.

잘 말리면 괜찮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계곡을 빠져나가려던 그의 눈앞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올리고 황금 꽃과 붉은 구슬로 장식된 황금 비녀를 여러 개 꽂은 여인은 청색 비단 치마 위로 금색 봉황을 수놓은 하얀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부드러운 얼굴선과 맑은 호수를 닮은 눈동자에서 지어진 미소는, 그녀의 어깨에 걸친 검은 천에서 은은하게 발하는 후광과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당신이 계룡산에 내려온다던 정도령(正道令)이신가요?”

‘내려온다던’이라는 표현이 걸렸지만, 여인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된 정도영은 생각이 멈췄다.

그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정도영(鄭道令)이 맞기는 한데, 당신은 누구시죠?”

“저는 하늘에서 당신을 만나러 내려온 선녀, 동화랍니다. 당신은 바로 제가 찾던 분이에요. 부디 저랑 혼인해 주세요.”

산에서 처음 만난 미인이 자기가 선녀라며 뜬금없이 결혼을 요구하자, 정도영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의심했다.

그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흘끗 보았다.

이십 대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되지 않은 둥글넓적한 얼굴과 통통한 몸매는 이성이 첫눈에 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외모였다.

그녀의 속셈을 파악하려 고민하던 그에게 선녀라고 자칭한 동화가 정도영이 벗어놓은 옷을 보란 듯이 흔들었다.

“만약 혼인을 거절하시면 이 옷을 가져가겠어요. 설마 이 산속에서 그런 망측한 차림으로 다니실 생각인가요?”

장난기와 진지함이 반쯤 뒤섞인 그녀에게서 어딘가 불안한 광기를 감지한 정도영은 물에 들어가 있음에도 계속 입이 탔다.

거절하면 그녀는 정말로 옷을 가져가 버릴 것 같았다.

산 중턱에서, 그것도 근무시간에 속옷 바람으로 직장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상상에 암담해진 그는 우선 그녀를 설득해 보기로 결심했다.

“저기, 아가씨.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우선 제 옷을 돌려주시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게 어떨까요?”

억지로 미소를 지은 정도영이 신중히 말을 골랐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으로도 숨기지 못한 긴장감에는 정체 모를 여인의 과격한 요구에서 느끼는 낯선 위화감과 마음 한구석 미인을 두고 피어오르는 묘한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성을 두고 나오는 다른 두 판단에 그는 혼란을 느끼며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그녀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동화는 타협점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을 애매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꼈다.

장난기를 완전히 거둬들인 그녀가 정도영의 옷을 단단히 움켜쥐며 돌아섰다.

“그냥은 안 돼요. 저랑 혼인해서 아이 셋을 낳는다고 약조해야 돌려드릴 수 있어요.”

망설임 없는 단호한 어조는 농담이 아닌 진지한 협박이었다.

정도영은 몇 차례 다시 설득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다가 마지막에는 도리어 설득당하고 말았다.


산에서 내려와 동화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도영은 그녀의 마음이 단순한 치기나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은 나누는 진짜 부부가 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게 세 남매의 아버지가 되었죠. 설마 그녀의 미적 기준이 조선시대에서 멈춰 있고, 그녀가 정도령이라 부르는 사람이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구세주인 줄은 몰랐습니다.”

정 국장의 설명이 끝나자, 이목과 보목의 시선이 순식간에 동화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어느새 붉어진 볼을 반지 낀 왼손으로 가리며 수줍어했다.

“네, 제가 서방님의 옷을 훔쳤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설레네요. 물에 젖은 듬직한 등판과 탄탄한 허벅지, 그리고 그런 서방님께 바위에 놓인 옷을 들고 용기 내 청혼하던 순간이요.”

과거를 황홀해하면서 회상하는 동화에게 보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그거······ 협박 아닌가요?”

눈치를 살피는 보목에게 동화는 살짝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요. 그건 과거부터 천계에서 내려오는 고유의 청혼 방법이랍니다. 사랑을 스스로 쟁취한다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요?”

당당한 그녀의 대답에 보목은 놀라 입을 벌렸다. 신령은 다들 원래 이런가 싶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이목이 말끝을 흐렸다.

“참으로 흉흉하구나······”

이목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면서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보목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정 국장과 동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려와는 달리 그들의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한 보목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꺼냈다.

“그럼 두 분의 계획은 뭔가요?”

신중하게 던져진 질문에 정 국장은 잠시 침묵했다.

생각에 잠긴 그는 식어버린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원래 이것부터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려 했는데 너무 먼 길을 돌아왔네요.”

정 국장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사무실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무거운 결단을 내린 듯이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그가 보목에게 물었다.

“보목 주무관님, 지금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보목은 멈칫했다.

그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직감한 그녀는 이야기 흐름상 긍정적인 대답은 정답이 아니라고 예상했다.

“불공평한 세상 말인가요?”

정답을 맞혔다는 듯, 정 국장은 걸음은 멈추고 보목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에 만족한 그는 다시 사무실을 천천히 거닐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고작 백 년도 살기 힘든 인간에 비해, 영물과 신령의 수명은 비교할 수 없이 길죠. 그런데도 그들은 늘 세상에서 숨죽여 살아갑니다. 만약 그들이 긴 세월 동안 세상과 더 활발히 소통하고, 지식과 문화를 나눴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인간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수의 사람만 그들과 교류하니, 엄청난 낭비가 아닐까요?”

정 국장의 질문이 사무실은 깊은 정적을 남겼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동화와 대답할 생각조차 없는 이목 사이에서, 보목만이 대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정 국장은 사무실의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흔히 왕은 타고난다, 혹은 봉황이나 기린 같은 신령들이 왕을 점지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죠?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

가만히 경청하는 보목을 향해 정도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화의 깊이를 더해갔다.

“사실, 우리나라 상류층의 일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령들과 교류하며 협력해 왔습니다.”

정 국장의 눈빛이 보목과 이목을 오가며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

애통과 분노 그리고 이상이 어지럽게 뒤섞인 그의 말은 갈수록 감정이 고조되며 사무실을 채웠다.

“산림특수보호국의 설립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각 지역 산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목적은 신령과 그들의 영역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정 국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결심한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이 체제를 바꾸려 합니다. 더 이상 소수만이 영물이나 신령과 교류해 이득을 취하는 시대가 아닌, 그들도 직접 사회에 참여해 인간과 공존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제 목표입니다.”

확고한 신념이 담긴 정도영의 말에 보목은 감탄보다는 불편함이 앞섰다.

마치 정치적 선전 방송을 들은 기분에 작은 반발심이 생긴 그녀는 반문했다.

“설마 부탁하신다는 게 영물이나 신령을 이용한 반란이나 혁명은 아니겠죠?”

도발적인 질문에도 정 국장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폭력 같은 방법은 그저 새로운 권력자만 만들 뿐, 부당한 체제를 바꾸지는 못하겠죠. 저는 합법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그래서 우선 장관이 되려고 해요.”

침착하게 설명했지만, 보목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정 국장의 미소는 마치 일을 가볍게 여기는 인상을 주었고, 보목은 오히려 더 미덥지 않게 느껴졌다.

“혹시 장관이 되실 계획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보목의 의심에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동화가 부드러운 미소로 분위기를 풀며 정 국장 대신 입을 열었다.

“조만간 세상에 큰 이변이 닥칠 겁니다. 우리는 그걸 막아 성과를 올릴 계획이에요. 그러려면 예언이 적힌 정감록 원본이 필요해요. 두 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정감록을 가져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큰 이변이라는 말에도 보목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지구 온난화나 멸망론 같은 이야기는 넘쳐났지만, 대부분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마치 해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쏴도 막상 현실에서는 실감 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이목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허황되구나. 그리고 부탁하는 방법이 틀렸다. 부탁할 때는 적어도 이쪽이 얻을 이익을 먼저 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


작가의말

이 에피소드부터 복선 회수와 액션이 많아질 겁니다.

지금까지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추천과 선호작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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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름다운 그림(7) 24.11.03 14 0 12쪽
34 아름다운 그림(6) 24.11.02 19 0 12쪽
33 아름다운 그림(5) 24.11.01 15 0 11쪽
32 아름다운 그림(4) 24.10.31 17 0 12쪽
31 아름다운 그림(3) 24.10.30 21 0 12쪽
30 아름다운 그림(2) 24.10.29 20 0 12쪽
29 세상을 바꾸는 자(8)~아름다운 그림(1) 24.10.28 19 0 12쪽
28 세상을 바꾸는 자(7) 24.10.27 20 0 12쪽
27 세상을 바꾸는 자(6) 24.10.26 18 0 11쪽
26 세상을 바꾸는 자(5) 24.10.25 20 0 12쪽
25 세상을 바꾸는 자(4) 24.10.24 25 0 12쪽
24 세상을 바꾸는 자(3) 24.10.23 26 0 12쪽
» 세상을 바꾸는 자(2) 24.10.22 29 0 12쪽
22 드러난 탐욕(6)~세상을 바꾸는 자(1) 24.10.21 31 0 12쪽
21 드러난 탐욕(5) 24.10.20 37 0 12쪽
20 드러난 탐욕(4) 24.10.19 34 0 12쪽
19 드러난 탐욕(3) 24.10.18 28 0 11쪽
18 드러난 탐욕(2) 24.10.17 31 0 12쪽
17 흘려버린 추억(6)~드러난 탐욕(1) 24.10.16 27 0 12쪽
16 흘려버린 추억(5) 24.10.15 32 1 11쪽
15 흘려버린 추억(4) 24.10.14 33 1 11쪽
14 흘려버린 추억(3) +2 24.10.13 44 2 12쪽
13 흘려버린 추억(2) 24.10.12 38 4 12쪽
12 두 개의 구름(3)~흘려버린 추억(1) 24.10.11 3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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