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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다섯별
작품등록일 :
2024.10.01 10:51
최근연재일 :
2024.11.09 14:5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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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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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3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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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4)

DUMMY

그들은 파주시에 자리한 ‘헤이리 예술마을’로 들어섰다.

널찍한 거리 곳곳에는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각상과 독특한 건축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으며, 생태 친화적인 거리 어디에서나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예술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가용은 마치 살아 있는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마을을 걸으면서 자기가 붓을 도둑맞았던 그날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 얼마 전 가용이 처음으로 ‘헤이리 예술마을’에 방문한 날이었다.

예술적 풍경에 취해 골목을 거닐던 그녀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아이를 발견했다.

약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왔다가 엇갈렸다고 했다.


가용이 아이를 데리고 미아센터로 향하던 중, 멀리서 한 노인이 다급히 다가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그는 본인을 아이의 할아버지라 소개하며 부주의로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사과했다.

노인은 감사의 뜻으로 가용에게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대접하며 화가를 꿈꾸는 손자를 위해 멀리서 왔다고 이야기했다.


얘기를 나누던 중 가용은 갑작스러운 복통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노인과 아이는 물론이고 그녀의 소지품까지 사라진 상태였다.

가게 사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CCTV를 확인해 보니, 가용이 자리를 비운 사이 노인이 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떠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이어서 한 너구리가 가게로 들어와 가용의 소지품을 물고 달아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장은 최근 마을에 자주 나타나는 너구리가 물건을 훔치는 일이 빈번하다고 설명하며, 야생동물이라 경찰 수사도 어려워 골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용은 노인과 아이가 너구리 영물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


너구리를 찾기 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지던 보목 일행이 수공예품을 파는 소품 가게를 지날 때였다.

개나리처럼 밝은 노란색 상의에 멜빵바지를 입고 소담스레 통통한 볼에 해맑은 미소를 띤 어린아이가 가게에서 나왔다.

익숙한 얼굴에 앙증맞은 체구를 가진 어디서든 볼법한 평범한 아이를 가용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 꼬마야! 쟤가 붓이 없어진 날 만난 아이라고.”

모두가 일제히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가용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의심을 받아도 증거가 있냐고 우겼을 아이는 그들 사이에서 이목을 보고는 머리털이 솟으며 기겁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에게서 둥그스름한 세모 모양의 귀와 짧고 통통한 꼬리가 솟아났다.

너구리 특징을 보고 확신이 든 가용이 아이를 잡으려 달리자, 어느새 온전한 너구리가 된 아이도 주변을 둘러보고는 쏜살같이 도망쳤다.

“거기서! 내 물건 돌려줘.”

분노에 찬 가용의 외침이 뒤에서 울려 퍼졌지만, 보기보다 날쌘 너구리의 발걸음은 경쾌했고, 몸놀림은 기민하게 골목을 누비며 점점 거리를 벌려갔다.

분노에 차 있던 가용의 목소리가 간절함으로 변했을 때는 이미 너구리가 그녀를 가볍게 따돌려 사라졌을 때였다.


가용을 따돌린 너구리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소품 가게에서 슬쩍한 장식품을 꺼내 살폈다.

그 순간,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너구리가 고개를 들자, 이목이 공중에서 날아오르듯 덮쳤다.

뜻밖의 등장에 놀란 너구리는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해보고 지면에 처박히면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주변의 참새들이 흩어져 날아갔다.

탈출하려 몸부림치던 너구리는 자기의 머리를 단단히 내리누르는 이목의 힘에 얌전해졌다.

뒤늦게 따라온 가용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다행이다.”

이미 붓을 되찾은 것처럼 밝아진 가용은 근처 가게에서 밧줄을 사와 너구리를 단단히 묶었다.

그들의 본격적인 추궁은 보목이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밧줄에 묶여 바닥에 앉힌 너구리는 일반적인 너구리보다 훨씬 커서 새끼 곰처럼 보였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 짧고 통통한 흑갈색의 다리와 도톰한 발바닥의 육구는 경계심보다는 귀여움을 불러일으켰다.

보목이 너구리 앞에 무릎을 굽히고 부드럽게 물었다.

“너구리야, 넌 이름이 뭐니?”

보목이 가까이 다가오자 살짝 움찔한 너구리는 그녀가 상냥해 보이는 미소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난 나군이야.”

“미안해, 라쿤이었구나.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갑자기 나군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불쾌한 심기를 한껏 드러내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나군을 그저 귀엽게만 바라보던 보목은 그가 왜 자기를 위협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난 너구리야! 이름이 나군이야, 장나군(張纙捃).”

자랑스러운 자기소개를 애완동물의 재롱처럼 취급하고는 ‘라쿤’으로 알아들은 보목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나군이 계속해서 이빨을 드러냈다.

그제야 이유를 깨달은 보목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미안해, 너구리를 본 것도 처음이라 실수했어. 그런데, 나군아. 너희가 저번에 가져간 붓, 그러니까 만물일색모필은 지금 어디 있어?”

나군은 보목의 사과에도 고개만 돌린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군의 결연한 태도에 곤란하던 보목의 앞으로 이목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나섰다.

아이와 연이 멀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치던 그는 나군에게 다가가더니, 나군의 작은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예로부터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는 이것이 약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군의 머리로 꿀밤이 꽂혔다.

움찔하면서 놀란 나군 뿐 아니라 뒤에 있던 보목과 가용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목은 태연하게 다시 꿀밤을 먹였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꿀밤이 쌓이자, 나군의 결연했던 태도는 눈 녹듯 사라졌다.

“알았어, 알았어! 붓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더는 때리지 마.”

“가져간 목적은?”

이목의 추가 질문에 나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뭐?”

본능적으로 나온 한마디에 피식 웃은 이목은 마지 대답이 그것뿐이냐는 듯 다시 손을 올렸다.

“그 붓으로 금괴나 보석을 그려서 도둑질도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어!”

눈물을 글썽이며 다급히 외치는 나군의 태도에 이목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은 머리에서 손을 거두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나군의 할아버지인 너구리 영감이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군이 안내하겠다고는 했지만, 신령이 아닌 나군은 사람들에게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너구리치고는 크죠? 그렇다고 7살짜리 애를 밧줄에 묶고 가면 더 난리가 날 텐데, 어쩌면 좋죠?”

보목이 난감한 표정으로 밧줄에 묶인 나군을 바라봤다.

나군을 풀어주자니 다시 도망칠 것이 우려되었고, 사람 모습으로 데려가자니 숲이 아니라 경찰서로 직행할 상황에서 보목과 가용은 나군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군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멀지 않은 공원의 깊은 숲속이었다.

거의 다 왔다는 나군의 말과 함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숲의 한가운데 있는 넓은 공터였다.

공터 한쪽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 위에는 하얀 너구리가 수많은 참새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보목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는 손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분노에 차 윽박질렀다.

“이 간악한 유괴범들! 감히 금쪽같은 내 손자에게 무슨 플레이를 시키는 게야!”

하얀 너구리의 목소리가 공터를 쩌렁대게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은 대형견 목줄이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이상한 눈빛으로 간혹 품종을 묻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목줄을 잡은 보목은 뻔뻔스럽게 포메라니안이 섞인 믹스견이라고 둘러댔다.

그 모든 상황을 자기가 그려낸 참새들에게 들었던 하얀 너구리는 처진 눈가로 게슴츠레 뜨인 호박색의 눈을 번뜩이면서 바위에서 내려왔다.

두 발로 선 그는 나군보다도 압도적으로 커서 1.6미터에 육박했고, 온몸을 덮은 하얀 털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유달리 수복한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그는 너구리였음에도 마치 신선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남의 집 귀한 손자를 개 취급하고 폭행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너구리 영감은 바닥에서 나뭇잎을 집어 들었다.

나뭇잎이 그의 손에서 흔들리자, 점점 먼지가 일어나더니 하얀 연기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피어난 연기는 순식간에 여러 장의 무명천으로 변해 허공에 펼쳐졌다.

펼쳐진 천에는 미완성된 그림들이 가득했고, 즉신불의 경전처럼 주변 나무와 풀을 휘감으며 반구의 모양으로 주변을 둘러쌌다.

이어서 너구리 영감은 필관(筆管)이 파란색, 하얀색,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녹색으로 빛나는 붓을 꺼내 들었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그림으로 무명천을 채워도 점 하나 차이로 완성되지 않은 그림은 그저 허상일 뿐이지. 즉, 이런 뜻이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인 너구리 영감은 바닥에 펼쳐진 무명천의 한 그림에 붓으로 점 하나를 찍었다.

그러자 바닥에 펼쳐진 천이 꿈틀거리면서 하얀 모래가 솟아올랐다.

모래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주변을 건조한 사막으로 바꿔버렸다. 너구리 영감은 자신만만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이 공간에서 무기를 가진 자는 오직 나뿐이다.”

사막으로 바뀐 땅의 공기는 건조해졌고, 천장은 미완성된 그림으로 뒤덮여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물이라고는 먹물로 그려진 그림만이 남은 황량한 세계를 보목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너구리 영감이 처음부터 이목의 무기가 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철저히 준비했을지 모른다는 짐작에 그녀는 이번만은 이목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보목의 우려와는 달리, 먼저 달려든 것은 이목이었다.

“이 붓은 변신술이나 환각하고 유난히 상성이 좋아. 혹시 들어봤나? 일본에는 ‘여우는 7가지 변신, 너구리는 8가지 변신’이라는 말이 있다더군. 그만큼 변신술에 있어서는 우리 너구리를 따라올 자가 없다는 뜻이지.”

달려오는 이목을 보며 너구리 영감은 여유롭게 웃으며 붓을 휘둘렀다.

하얀 모랫바닥으로 잉크 방울이 흩어져 떨어지더니, 하나의 그림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신기에 가까운 재주로 실체화된 그것을 너구리 영감은 모래와 같이 이목에게 던졌다.


모래가 일으킨 연기 속에서 돌멩이가 어린이 뜀박질처럼 느릿하게 날아오는 것을 본 이목은 콧방귀를 뀌며 너구리 영감에게 계속해서 돌진했다.

그러나 돌멩이가 그의 앞에 다다르기 직전, 돌멩이가 연기를 내며 날카로운 단검으로 변했다.

본능적으로 이목이 뒤로 물러나 단검을 붙잡으니, 그의 손에서 단검이 모래로 돌아가 흩어졌다.

그 사이 너구리 영감은 모랫바닥에 빠르게 여러 개의 돌기둥을 그려 천장까지 닿을 발판들을 만들어냈다.

“우리 너구리의 변신술은 모양만이 아니라 무게까지 조절하지. 환각과 실체를 넘나드는 공격에서 네놈은 얼마나 버틸까?”

돌기둥 위에서 너구리 영감이 이목을 내려다보며 천장에 점을 찍자, 무수히 많은 화살이 천장에서 솟아났다.

화살들은 너구리 영감의 도술에 의해 연기에 휘감기더니 창처럼 커져 이목을 향해 떨어졌다.


작가의말

부디 즐거웠던 10월이길 바라며 11월은 더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추천과 선호작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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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름다운 그림(7) 24.11.03 14 0 12쪽
34 아름다운 그림(6) 24.11.02 20 0 12쪽
33 아름다운 그림(5) 24.11.01 15 0 11쪽
» 아름다운 그림(4) 24.10.31 18 0 12쪽
31 아름다운 그림(3) 24.10.30 21 0 12쪽
30 아름다운 그림(2) 24.10.29 20 0 12쪽
29 세상을 바꾸는 자(8)~아름다운 그림(1) 24.10.28 19 0 12쪽
28 세상을 바꾸는 자(7) 24.10.27 20 0 12쪽
27 세상을 바꾸는 자(6) 24.10.26 18 0 11쪽
26 세상을 바꾸는 자(5) 24.10.25 20 0 12쪽
25 세상을 바꾸는 자(4) 24.10.24 25 0 12쪽
24 세상을 바꾸는 자(3) 24.10.23 26 0 12쪽
23 세상을 바꾸는 자(2) 24.10.22 29 0 12쪽
22 드러난 탐욕(6)~세상을 바꾸는 자(1) 24.10.21 31 0 12쪽
21 드러난 탐욕(5) 24.10.20 37 0 12쪽
20 드러난 탐욕(4) 24.10.19 34 0 12쪽
19 드러난 탐욕(3) 24.10.18 28 0 11쪽
18 드러난 탐욕(2) 24.10.17 31 0 12쪽
17 흘려버린 추억(6)~드러난 탐욕(1) 24.10.16 27 0 12쪽
16 흘려버린 추억(5) 24.10.15 32 1 11쪽
15 흘려버린 추억(4) 24.10.14 33 1 11쪽
14 흘려버린 추억(3) +2 24.10.13 44 2 12쪽
13 흘려버린 추억(2) 24.10.12 38 4 12쪽
12 두 개의 구름(3)~흘려버린 추억(1) 24.10.11 3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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