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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다섯별
작품등록일 :
2024.10.01 10:51
최근연재일 :
2024.11.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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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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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6)

DUMMY

너구리 영감은 밧줄에 묶인 상태로 바닥에 엎드려 떨어진 붓촉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전문가의 진중한 자세를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는 묶인 팔 대신 코끝으로 붓촉을 섬세하게 훑으며 냄새를 맡았다.

“그래, 떠오르는구나. 이 촘촘한 붓촉의 포근한 질감, 결정적으로 세월에도 변치 않는 은은한 윤기. 이건 신령의 꼬리털로 만든 붓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이지.”

보목은 도둑질도 극에 달하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느끼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너구리 영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코끝으로 붓촉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쓸어내렸다.

“시작부터 끝까지 균일한 굵기와 탄력을 유지하면서도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것을 보면, 이 붓은 틀림없이 족제비 털로 만들어졌다.”

“정말로 고칠 수 있어?”

불안과 기대감을 뒤섞인 가용의 물음에 아까와 달리 희망이 서린 표정을 본 너구리 영감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삼각산(三角山)에 재료로 쓸 만한 녀석들이 있지. 너희가 녀석들의 꼬리털만 구해오면 붓을 고치는 건 쉬운 일이다.”

안도한 가용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목과 보목이 꼬리털을 구해오는 동안 그녀는 너구리 영감과 나군을 감시하기로 했다.


너구리 영감이 말한 삼각산이 북한산(北漢山)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목과 보목은 다음 날 산을 올랐다.

산봉우리를 하나 넘자 맑은 계곡이 나왔다.

봄비로 불어난 계곡은 투명한 물줄기가 바위와 자갈을 비추며 경쾌하게 흘러내렸다.


너구리 영감이 알려준 대로 보목은 이목을 앞세워 물가에 섰다.

유심히 물속을 들여다보니, 헤엄치는 물고기와 조약돌이 비치는 맑은 물 위로 물고기의 비늘들이 흩어져 떠다니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비늘의 양에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던 보목에게로 성난 목소리 하나가 물살을 흔들었다.

“누구냐? 누가 겁도 없이 나 천달(川達) 님의 계곡을 기웃거리느냐?”

우렁찬 목소리로 정적을 깬 무언가가 계곡의 끝에서부터 뱀처럼 검고 긴 몸으로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쳐왔다.

기포를 일렬로 뿜으며 물속을 달리던 그것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곧이어 웅장한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용오름처럼 물기둥을 타고 오른 존재는 보목과 이목의 앞으로 폭포 같은 물벼락을 쏟으며 내려왔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물방울이 차가운 안개가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안개 속에서 통통한 꼬리를 거칠게 튕기며 걸어 나온 것은 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수달(水獺)이었다.

그는 수염을 위아래로 실룩거리면서 작은 입을 움직였다.

“참으로 건방진 뱀이구나. 감히 현 한반도 민물 포식자의 정점인 이 천달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오늘 네놈의 주제를 확실히 가르쳐주마.”

자기를 천달이라 소개한 수달은 둥글고 작은 눈으로 이목을 한껏 노려보며 통통한 볼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이목을 위아래로 훑고는 ‘쉭-쉭’ 소리를 내면서 재빠르게 덤벼들었다.


잠깐의 전투가 끝나고 천달은 이목의 손아귀에 목이 잡힌 채 목도리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자신감 넘치던 그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라면 암갈색의 매끄러운 털에 감춰진 특유의 탄력 있는 근육으로 거친 물살을 우아하게 헤엄치듯 자기보다 큰 상대도 쉽게 사냥해 왔던 그였는데, 지금은 너무도 쉽게 붙잡혀버렸다.

“어, 어째서······?”

이 생소한 상황에 적응할 새도 없이 천달은 커진 눈으로 이목이 들어 올린 주먹을 마주했다.

“자, 잠깐, 날 때린다고? 난 천연기념물인데?”

필사적인 외침도 이목의 손길을 멈추지 못했다.

몇 차례의 진한 접촉 끝에, 마침내 이목 일행의 사정을 들은 천달은 반듯이 무릎을 꿇었다.

다만, 겸손해진 무릎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여전히 결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 사정이 딱하니 내 요구를 들어준다면 내 꼬리털을 나눠주마.”

결연한 얼굴에서 나오는 건방진 말투에 이목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다시 몇 번의 손길이 더 오가고 나서야 천달은 완전히 기가 죽어 작은 목소리를 떨었다.

“······도와주시와요. 그럼, 제 꼬리털을 바칠게요.”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져 간절함만 남은 천달이 보목은 안쓰러우면서도 어딘가 귀여운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늠름했던 등장이 어울리지 않게 축 처진 그의 곁으로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일단, 어떤 일을 도우면 되는지 말해줄래요?”

“이 계곡은 예전부터 제가 지켜온 곳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기가 산신령이라고 주장하는 담비가 나타나 산에 있는 모든 것은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저를 내쫓으려 해요. 두 분이 그 녀석을 산에서 몰아내 주시면 제 꼬리털을 바칠게요.”

이목과는 달리 보목의 부드러운 태도에 긴장이 풀린 천달이 차분하게 자기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도움을 약속하는 이목 일행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담비가 있는 장소를 설명해 주었다.


천달이 알려준 장소는 북한산의 전나무 숲이었다.

전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침엽수 특유의 뾰족한 잎 사이로 햇빛이 지나며 얼룩진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은은한 나무 향이 감도는 고요함 숲이 미세하게 흔들리자, 정적을 깨는 우렁찬 고함이 숲에 메아리쳤다.

“겁도 없이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 산달(山達) 님의 영역을 기웃대다니, 주제를 깨닫게 해주마. 어리석은 뱀아.”

목소리와 동시에 실루엣만 겨우 식별될 정도의 그림자가 나뭇가지를 밟고 날렵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를 오가며 속도가 붙는 그림자를 보목은 눈으로 좇기에만 급급했으나, 이목은 여유롭게 간간이 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찰나, 그림자의 속도가 급격히 올라가 보목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두의 눈을 따돌린 그림자는 어느새 이목의 등을 주시했다.


용수철처럼 탄력적인 노란빛 육체가 나무의 반동을 타고 번개처럼 이목의 목덜미로 날아들었다.

예리한 송곳니가 이목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 이목은 몸을 돌려 그림자를 단번에 움켜쥐었다.

“어떻게······”

사냥의 정석대로 상대의 목덜미를 뒤에서 기습했던 ‘산달’은 계곡에서 만난 ‘천달’보다 길고 날렵한 몸통과 기다란 꼬리를 가진 담비였다.

신령은커녕 영물마저 아닌 시절부터 스스로를 타고난 싸움꾼이라 자부했던 그는 지금, 종류도 모를 파충류의 손아귀에 매달린 채 상당한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 몸을 놓을 기회를 주마. 괜히 후회할 짓 말고 당장 내려놓아라!”

“글쎄, 하찮은 쥐새끼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하겠느냐.”

산달의 위협에도 이목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고 오히려 비웃었다.

상대의 도발적인 표정에 산달의 둥근 귀가 떨렸다.

화가 난 그는 검은 머리 뒤로 이어진 두터운 줄무늬를 따라 상체의 노란빛 털을 순차적으로 꿈틀거리게 했다.

털끼리 맞부딪히며 일으킨 마찰에 전기가 흐르더니, 산달의 털이 곤두서면서 강렬한 전광이 이목을 덮쳤다.


전광과 함께 손으로 흘러 들어간 다량의 전류에 자신만만해진 산달의 입가에는 미소가 스쳤으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한 치의 미동조차 없는 이목의 얼굴과 가까워지는 주먹이었다.

조건만 갖춰지면 벼락까지 다루는 이목에게 고작 마찰전기가 통할 리 없었다.

그러나 용을 본 적 없던 산달은 여전히 이목을 그저 특이한 뱀으로 여겼기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태어나 처음 겪는 굴욕에만 의문을 표했다.


최근 비슷한 사례를 몇 번 보아온 보목이 고개를 저을 무렵에서야 이목의 손길이 멈췄다.

그제야 맞으면서 고민하던 산달이 이유를 깨달았다는 듯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는 비장의 무기라도 숨겨둔 것처럼 자신감 있게 입을 열었다.

“너희가 멍청해서 잘 모르나 본데, 이 몸은 멸종위기종 2급이다. 알아들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내 귀한 몸에서 이 더러운 손을 떼라.”

지금까지 본 사례 중에서 최악이었던 산달의 발상은 마치 유언처럼 이목의 손길을 끌어당겼다.

얼마에 시간이 지나고 축 늘어진 산달이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어. 어째서냐? 혹시 내가 노란목도리담비라서? 내, 내가 검은담비 같은 천연기념물이 아니라서 이렇게나 때리는 거냐?”

산달의 애처로운 질문은 이목이 손을 멈출 때까지 이어졌다.

정말로 자기가 왜 이런 대우를 받는지 모르던 산달은 다른 의미로 대단한 면모를 보인 끝에 이목의 손에서 무기력하게 축 늘어졌다.

이런 뚝심이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목은 천달과 산달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안했다.


산달이 깨어나기 전, 보목은 혼자서 천달을 만나러 계곡에 돌아왔다.

천달은 그녀에게서 신체(神體)를 가지고 전나무 숲으로 오라는 이목의 말을 전해 듣고서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평온하던 수면에 파문이 일고, 얼마 안 가 천달이 물속에서 튀어나왔다.

번들거리는 그의 입에는 검은 광택이 도는 흑요석이 물려 있었다.


천달과 보목이 숲에 도착하고서야 뒤늦게 깨어난 산달은 자기 신체를 챙겨 오려 민첩하게 나무를 타고 올랐다.

그가 내려오기에 앞서 천달은 소중히 안고 온 흑요석을 조금이라도 더 광택을 뽐내기 위해서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내려놓았다.

“이 흑요석은 내가 어릴 때 우연히 주운 것이야. 이 정도 보석을 가진 나라면, 분명 이번에 계곡이 아니라 산신령도 될 수 있겠지.”

천달이 자랑스러워하는 사이, 나무에서 내려온 산달이 목에 걸친 멧돼지 가죽을 자랑스레 펼쳤다.

“이 멧돼지 가죽은 과거 형제들과 함께 첫 사냥에서 얻은 전유물이다. 이렇게 강한 나라면 이 산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일 테니, 산신령 자리는 당연히 내 차지겠지.”

서로가 각자의 이유로 승리를 확신하며 이목에게 기대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를 신중히 살피던 이목은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처음부터 너희 중에는 산신령이 없었구나.”

당황한 천달과 산달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목이 자기들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표정이 상했다.

하지만 이목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출할 용기는 오직 산달에게만 있었다.

“이 간사한 뱀아, 우리가 포기하면 네가 이 산을 날로 먹으려는 속셈이지!”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산달의 격앙된 표현, 그중에서도 뱀이라는 말에 이목의 눈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 미묘한 변화에 산달의 눈높이와 목소리가 급격히 낮아졌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목이 입을 열었다.

“산신령이나 토지신이 되는 방법은 하나다. 원래 주인을 죽이든 내쫓든, 빈자리에 신체를 담아 차지하는 것. 그게 본질이지. 산에 속한 계곡 같은 자연물은 산신령과 합의해서 여러 신령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산에 주인은 하나다. 그런데 이 산에는 너희가 신체를 가져왔음에도 여전히 주인이 있다. 즉, 진짜 산신령은 따로 있다는 뜻이지.”

“그럴 리가! 내가 분명히 삼각산 여우를 쫓아내고 산신령이 됐다는 노신선(老神仙)에게서 돈을 주고 샀는걸. 확실한 증거도 있다.”

산달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크게 외치더니, 나무 위로 올라가 한자로 적힌 낡은 문서를 들고 내려왔다.


작가의말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욕망을 가득 담은 에피소드입니다.

심지어 산달과 천달 장면은 이솝 우화 느낌을 조금 넣어봤는데 어떠셨나요?

혹시 마음에 드셨다면 추천과 선호작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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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름다운 그림(7) 24.11.03 14 0 12쪽
» 아름다운 그림(6) 24.11.02 20 0 12쪽
33 아름다운 그림(5) 24.11.01 15 0 11쪽
32 아름다운 그림(4) 24.10.31 17 0 12쪽
31 아름다운 그림(3) 24.10.30 21 0 12쪽
30 아름다운 그림(2) 24.10.29 20 0 12쪽
29 세상을 바꾸는 자(8)~아름다운 그림(1) 24.10.28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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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상을 바꾸는 자(2) 24.10.22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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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드러난 탐욕(3) 24.10.18 28 0 11쪽
18 드러난 탐욕(2) 24.10.17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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