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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별
작품등록일 :
2024.10.01 10:51
최근연재일 :
2024.11.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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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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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신물(4)

DUMMY

다음 해에 이식과 호난의 아이가 태어났다.

인간은 신을 닮게 태어났고, 영물은 신을 닮으려 수행했기에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람과 닮았었다.

문제가 있다면 태어난 딸에게 여우의 꼬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출산으로 지친 호난을 대신해 딸의 꼬리를 자르는 이식의 얼굴은 심히 어두웠다.

여우구슬을 삼킨 이후로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왕도 아닌 호난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 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람, 아니, 존재가 하나 늘어났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식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성이 강했던 그는 그 생각을 억누르고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호난을 격려하며 딸을 품에 안았다.


1613년, 이식은 세자를 가르치는 정7품 시강원 소속 설서(設書)로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년이 지난 1615년 음력 2월 13일, 백아곡에 조부모의 무덤을 이장할 때였다.

이식의 다섯 살 된 딸은 그의 각별한 보살핌 아래 티끌 하나 묻지 않고 자랐으나, 언제부터인가 식욕이 지나치게 왕성해져 하루에 고기 세근을 먹고도 모자라 뱀과 개구리를 가지고 놀다가 잡아먹었다.

이 모습을 보는 부부의 눈길은 서로 달랐다.

호난은 자기가 어릴 적을 떠올리며 딸을 귀여워했지만, 이식은 딸이 탐탁지 않았다.

“대체 사람이 어찌 뱀과 개구리를 잡아먹는단 말이냐!”

이식은 딸을 어르고 달래며 꾸짖었지만, 도무지 고쳐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부 사이의 비밀이던 일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기씨가 개구리를 잡아먹는다는구먼.’

‘개구리면 그나마 낫지? 글쎄 얼마 전엔 뱀을 잡아먹는 것도 봤다지?’

‘이식이 조부모 묘를 잘못 이장해서 늦둥이 귀한 딸에게 짐승 귀신이 들린 거 아냐?’

소문은 날로 번져갔고, 그럴 때마다 이식의 얼굴은 나날이 구겨졌다.

세자의 스승인 자가 조부모의 묘를 잘못 건드려 하나 있는 여식에게 짐승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은 그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치욕이었다.

하지만 그가 변해가는 것을 아는 이는 오직 호난뿐이었다.


불신과 불안이 커지던 어느 저녁, 밥상에 곶감이 올라왔다.

“과거에 넌 내게 뭐든지 줄 수 있다고 했었지?”

“그랬소. 그런데 부인은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물으시오?”

갑작스러운 호난의 물음에 손끝이 떨린 이식은 들고 있던 수저를 밥상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마주한 호난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 여우구슬 돌려줄 수 있겠느냐?”

호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가르며 담담하게 울렸다.

이식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호난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그의 무릎이 밥상을 쳤고, 그 충격으로 곶감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져 방 안을 굴렀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식은 말없이 등을 돌리고 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고 결연했지만,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가 나간 방 안에 홀로 남은 호난은 허탈함에 잠긴 듯 고개를 떨구었다. 적막이 속에서 그녀는 홀로 쓸쓸히 침묵을 지켰다.


집을 나온 이식은 굳은 얼굴로 빠르게 기방을 향했다.

달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본래 이식이 이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이런 것인지 모호했으나. 그는 오직 자기를 위한 욕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언제 저 요망한 것에게 구슬을 빼앗길지 몰랐거늘. 금수(禽獸)라 한들 가족을 중히 여긴다고 착각해 백년해로를 약조했던 내가 어리석었구나. 저것으로부터 내 것을 지켜야 한다.’

호난에게 품었던 애틋함은 이미 분노와 배신감에 잠식된 지 오래였다.

여우구슬을 돌려주면 자기의 모든 정기를 빼앗기리라 믿은 그는 땀에 젖은 손을 주먹 쥐며 결연한 표정으로 기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환한 기방의 불빛 아래에서 술에 취한 관리들이 웃음과 즐거움에 젖어있었다.

이식이 그곳에 들어서자, 평소 음주와 가무를 멀리하던 그의 등장에 관리들은 놀라면서도 반갑게 그를 자리로 초대했다.

낯설게 느껴지던 분위기에서도 자리에 앉은 이식은 금방 적응하여 그들과 어울렸다.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래전 서당을 다니던 한 영특한 아이가 날이 갈수록 기운을 잃고 쇠약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이는 산에서 어떤 여인이 나타나 입을 맞춘 후부터 몸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지요. 학식이 깊었던 스승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이에게 입을 맞출 때 입안으로 무언가 들어오면 반드시 그것을 삼키라고 일렀습니다.”

이식은 잔을 기울이며 말을 멈추고는 주변 관리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이 자기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확인한 이식은 다시 무겁게 말을 이어갔다.

“다음 날, 여인이 다시 나타났고 아이는 그녀가 입안에 넣은 것을 삼켰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갑자기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변신해 도망쳤지요. 알고 보니 여인이 아이의 입에 넣은 것은 여우구슬이라는 보물이었습니다.”

언제나 진지하던 이식의 말에 기방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몇몇은 농이라고 여겼으나, 대부분의 관리는 그의 이야기를 단순한 전설로 치부하지 않았다.

이식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절박하게 외쳤다.

“그 여우가 아직도 살아 제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발,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간절한 이식의 외침에도 관리 중 몇은 의심스러워했지만, 세자의 스승이자 임금의 총애를 받는 그에게 쉽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기방에는 오직 이식의 편에 선 몇몇만이 술기운에 취해 목소리를 내었다.

“택당(澤堂, 이식의 호) 선생의 고민은 우리가 해결해 드리리다. 그런 요물이 어찌 세상에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다음날, 이식의 이야기는 조정의 중대한 안건으로 다뤄졌다.

관리들은 이를 심각하게 논의했고, 왕은 평소 총애하던 이식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왕은 어명을 내려 나라를 어지럽힐 요물, 즉 호난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대신 회의가 있었던 저녁, 호난은 창가에 앉아 이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방안으로 하얀 연기가 스며들며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과거에 맡아본 적 있는 향에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호난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하인이 남령초를 태운 화로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상황의 위험성을 감지한 호난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은색에서 본래의 은백색과 푸른색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곧장 방을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관군이 호난의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관군들은 사냥개들을 풀어 그녀를 추격했다.

지붕으로 올라 사냥개와 관군을 피하던 호난의 눈에 관군을 지휘하는 이식이 들어왔다.

“금수 같은 녀석. 오늘 네놈의 간을 씹어주마.”

배후가 이식이라는 확신이 들자, 호난의 마음에는 깊은 배신감이 일었다.

이식을 향해 달려들려던 그녀는 문득 그의 뒤에 숨은 다섯 살 된 딸을 보고 멈춰 섰다.

겁에 질린 딸을 보고 생겨난 짧은 망설임 사이, 관군들의 화살이 날아들었고, 사냥개들이 짖으며 달려들었다.

이식은 보란 듯이 딸을 안아 들고 지휘를 내렸다. 호난은 절망과 찢어지는 슬픔을 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살을 등에 맞으며 절박하게 도망치는 그녀의 뺨으로 피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사건 이후, 1616년 음력 1월 이식은 일가를 데리고 백아곡(白鴉谷)으로 이주했다.


1619년, 이식은 새로운 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남을 얻었다.

그 결과 호난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딸은 집안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고, 겨우 아홉 살에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별채에서 지내게 되었다.

소녀는 그늘진 별채에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와 멀어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하루를 채웠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이식은 오랜 친구들의 추천으로 이조좌랑에 등용되었다.

그는 곧 둘째 아들을 얻었고, 1625년에는 예조참의, 동부승지, 우참찬 등을 역임하며 셋째 아들까지 얻었다.

그의 사회적 위치가 계속 상승하는 가운데, 그의 상관 중 한 명이 과거 호난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며 충고했다.

“서애대감 류성룡의 형이신 겸암선생 류운룡께서도 일찍이 구미호였던 새어머니와 그 사이에서 나온 이복동생을 남의 손을 빌려 죽였다고 하네. 그것이 어찌 그들이 잔인해서겠는가? 놔두면 일가족이 짐승에게 당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자네도 잘 생각하고 행동하시게.”

이 말에 이식은 자기 집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도 차마 열다섯이 된 딸을 제 손으로 해치지는 못한 그는 한겨울에 그녀를 마구간에 가두기로 결심했다.

떨리는 손으로 여린 발목에 직접 족쇄를 채운 이식은 과거 딸의 꼬리를 잘랐을 때처럼 ‘필요한 일’이라고 되뇌며 자물쇠를 잠갔다.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의 손에 가축처럼 갇힌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지만, 이식은 닫힌 마구간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그녀의 절규를 외면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들이 싸늘하게 빛났고, 헛간의 짚에는 서리가 내려 하얀 눈꽃처럼 변해 있었다.

쇠사슬에 묶인 소녀는 어두컴컴한 마구간에서 얇은 이불을 덮고 떨고 있었다.

그 이불은 어릴 적부터 그녀를 돌보던 노비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주인 몰래 넣어준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추위에 지쳐 잠이 든 소녀의 귀로 여우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얼어붙은 눈을 간신히 뜬 소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마구간 문을 부수고 들어온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눈처럼 하얀 소복을 매화처럼 물들인 여인은 손에 탐욕으로 검붉어진 구슬을 쥐고 있었다.

그림처럼 고운 여인은 손에 묻은 피를 소복에 정성스럽게 닦아낸 뒤, 깨끗해진 손을 내밀었다.

“괜찮다. 이제는 괜찮아. 이제는 이 어미랑 같이 살자꾸나.”

얼어붙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여인의 눈빛에는 슬픔으로 가득했지만, 손길만큼은 누구보다 따스했다.

그립고도 익숙한 품에 안긴 소녀는 몇 년 만에 편안히 잠들었다.

이 사건이 있고 조선에는 구미호에 관한 다양한 전설이 분화되어 전해졌다.


1633년, 청계산 산골짜기에서 호난과 함께 지내던 소녀는 어느새 호난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식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호난을 그녀는 어머니라기보다는 자기를 구해준 은인으로 여겼다.

가끔 몸이 아플 때면, 호난은 소부터 토끼까지 각종 짐승의 간(肝)을 구해와 구워주었는데, 정성을 넘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지극한 보살핌이었다.

약과 고기가 귀한 시절, 고위 관료나 먹을 법한 사치스러운 부위를 정성껏 챙겨주는 호난을 그녀는 자연스레 따르게 되었다.

“간은 예로부터 생기(生氣)를 발생시켜 혼(魂)이 머무르는 곳이니, 이것을 다 먹고 얼른 나아야 한다. 특히 토끼의 간은 용왕도 못 먹는 귀한 것이니, 꼭 먼저 먹으렴.”

남들이라면 농담처럼 들을 말도 은빛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호난이 하면 진짜처럼 들렸다.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끔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상하게 대해주는 호난이었기에 소녀는 이상함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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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름다운 그림(7) 24.11.03 14 0 12쪽
34 아름다운 그림(6) 24.11.02 20 0 12쪽
33 아름다운 그림(5) 24.11.01 15 0 11쪽
32 아름다운 그림(4) 24.10.31 18 0 12쪽
31 아름다운 그림(3) 24.10.30 21 0 12쪽
30 아름다운 그림(2) 24.10.29 20 0 12쪽
29 세상을 바꾸는 자(8)~아름다운 그림(1) 24.10.28 19 0 12쪽
28 세상을 바꾸는 자(7) 24.10.27 20 0 12쪽
27 세상을 바꾸는 자(6) 24.10.26 18 0 11쪽
26 세상을 바꾸는 자(5) 24.10.25 20 0 12쪽
25 세상을 바꾸는 자(4) 24.10.24 25 0 12쪽
24 세상을 바꾸는 자(3) 24.10.23 26 0 12쪽
23 세상을 바꾸는 자(2) 24.10.22 29 0 12쪽
22 드러난 탐욕(6)~세상을 바꾸는 자(1) 24.10.21 31 0 12쪽
21 드러난 탐욕(5) 24.10.20 37 0 12쪽
20 드러난 탐욕(4) 24.10.19 34 0 12쪽
19 드러난 탐욕(3) 24.10.18 29 0 11쪽
18 드러난 탐욕(2) 24.10.17 31 0 12쪽
17 흘려버린 추억(6)~드러난 탐욕(1) 24.10.16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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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흘려버린 추억(4) 24.10.14 33 1 11쪽
14 흘려버린 추억(3) +2 24.10.13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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