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아니라 산적
왼쪽 바지 주머니 속 휴대 전화가 울린다.
그 진동에 내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만 같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화면에 떠 있을 이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여보세요?”
“정수지? 집주인 아줌마!”
아줌마의 억양이나 말투로 보아 좋은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내 이름을 잘못 부르신다. 내 이름은 한정우. 한정수가 아닌 한정우다.
“이번 월세가 들오지 않길래 전화해 봤어. 언제 줄 거야?”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조금 있으면 월급 들어오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아니? 정수 총각! 이번이 몇 번째야? 사람이 멀쩡하면 뭐 해? 착실한 일을 해야 돈을 벌지. 매번 그렇게 편의점 알바만 뛰면 답이 나와?”
또 시작이다.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나 때는 어쨌다.’, ‘우리 아들 봐라. 열심히 공부해서 돈 잘 벌지 않느냐?’는 등 골치 아픈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 말은 거짓이다. 내가 알기론 그 집 아들래미 ‘동식’인가 ‘동석’인가 하는 녀석은 어딘가 취직할 만한 녀석이 아니다.
공부를 잘하기는 무슨? 잔머리와 거짓말 수완이 좋아 엄마를 속이고는 양아치들이 할 법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고 있었다.
뭣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자기 아들이 비싼 정장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 대기업을 다닌다는 제 아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네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꼭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늦긴 늦어도 한 번도 빼먹은 적 없으시다는 걸 아시죠.”
“하여튼 뚫린 입이라고 말을 잘하지! 잔말 말고 오늘 안으로 보내! 알았어?!”
다분히 신경질적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평소보다 5분 일찍 끝났다는 것이다.
그 잔소리 폭격에 벗어난 나는 한숨을 쉬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허름한 정장을 입은 채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오늘도 몇 번의 실패를 겪어야 했다.
밀린 월급을 재촉하다 빌어먹을 편의점 사장에게 해고 통고받고, 오늘 본 면접은 느낌상 떨어질 것이 분명했고, 방금 다른 회사의 서류 심사 탈락 문자까지 받았으니까.
노을이 지는 하늘은 구름이 유유자적하게 흐른다. 나도 그냥 저 하늘에 뜬 구름처럼 바쁜 삶이 아닌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야!”
대뜸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지인을 만난 것이겠거니 싶었다.
“야. 사람 말이 안 들려?”
그러나 내 착각이었다. 그는 내 얼굴 앞에 그 흉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사람이 부르면 대답해야지.”
그의 행각에 나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검은 정장에 컬이 들어간 중단발, 검은 수염. 거기다 검은 선글라스까지 쓴 그자는 떡 벌어진 어깨와 아주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니, 어느 조직의 행동대장 즘으로 보였다.
그런 자가 껄렁껄렁하며 내 앞에 아른거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너, 취준생이지?”
그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그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네?”
나는 불쾌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 역시 나와 눈을 맞추려는 듯 허리를 펴며 똑바로 선다.
그때 그와 마주 선 내 키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어디 가서도 작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에 비하면 내가 훨씬 작아 보였다. 그의 커다란 덩치가 한몫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니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우리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하긴 이런 곰 같은 인간이 서 있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그는 갑자기 재킷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지금껏 내가 봐왔던 명함과 달리 그 명함은 바탕이 빨간색이었고 그 한가운데에 하얀 글씨로 ‘산타’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그 명함과 그의 행세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았다.
‘삐끼네.’
그 덩치나 옷 차림새. 더구나 ‘산타’라는 이름까지 쓰인 명함. 분명 그는 어느 클럽이나 나이트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됐습니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런 곳에서 일 안 해요.”
그 말이 그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그는 다시 한번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다시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물었다.
“그런 곳이라니? 어딜 말하는 거야?”
“그야 클럽이나 나이트 같은 곳이겠죠. 에이~ 이름이 산타가 뭡니까? 산타가?”
별명을 지어도 어떻게 산타라고 지었는지 원... 그의 생김새로 보아 내가 알고 있는 산타와는 매우 거리감이 있었다.
내 머릿속의 산타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푸근한 몸매와 미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빨간 털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지금처럼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산적이 아니라.
“산적이 아니야! 산타라고!”
나는 그가 대뜸 화를 내어서 당황하기보다는 산적이 아니라는 말에 더 놀랐다. 나는 그에게 산적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됐고! “너, 나랑 일하자. 내가 너 산타로 만들어줄게.”
나는 불쾌한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산타라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나 말고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설령 정말 산타가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처럼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때마침 버스가 와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붙잡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 말고 버스에 타올랐다.
받은 명함은 정류장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사람도 포기했는지 버스 창을 통해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나는 대놓고 무시하며 좌석에 앉아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버스가 정류장을 떠난다. 나는 곁눈질하며 버스 정류장에 남아있는 그 사람은 확인했다. 여전히 손을 흔들며 서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이거 놓고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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