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팔자
본디 내 사주에서 나는 큰 나무란다.
그것도 근처에 꽃이 피어난.
남들이 들으면 예쁘다며 좋다며 말할 수 있지만, 그 꽃이 내가 가진 것들은 다 가져간다더라.
다시 표현하자면 내 것을 모조리 다 앗아간다는 것이다.
원래라면 사주를 믿지 않는 어머니가 내가 너무 일이 풀리지 않자, 철학원에 다녀오신 결과이다.
참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초등학교 땐 나와 똑같은 그림을 그린 내 짝꿍이 교내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처절한 색감을 가진 나는 뿌듯해하며 괴이한 색으로 도화지를 칠해갈 때 내 짝꿍은 색만 다른 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중학교 땐 가정 수행평가가 3일 남기고 전학생이 왔다.
가정 수행평가는 작은 쿠션 만들기였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지정하며 그 아이에게 쿠션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어라 일렀다.
그 수행평가 그 친구는 A+ 나는 B 받았다.
담임 선생님이 이게 어찌 된 일 이냐며, 어떻게 알려준 사람이 더 성적이 낮을 수 있냐며 따져 물었다. 그날 가정 선생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B+이 되었다.
물론 그 친구가 금손이라 결과물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 친구가 만들기 수행평가를 B 위로 받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땐 교외프로그램으로 다른 학교에 가서 입시를 위한 논술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소속된 반에는 학군이 센 고등학교 애가 한 명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딱 첫 수업만 참석하고 그다음부터 얼굴이 비치는 일이 없었다.
매일 임시 담당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를 때마다 없었기에 그 녀석의 이름은 외우기 쉬웠다.
그런데 어느 날 3학년 부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대뜸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그 프로그램 명단에 내가 없다면서 나를 혼내는 것이다.
평소 나를 아는 선생님이라면 이 녀석 성격에 땡땡이치는 건 절대 불가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담임 선생이나, 나를 혼내던 그 부장 선생이나 오로지 공부 잘하는 애들만 관심이 있었기에 나에 대해 알 리가 없다.
그날 선생님에게 대차게 까이면서 그 선생의 모니터에 비친 명단을 보았다. 그 빌어먹을 녀석의 이름이 적혀있고 내 이름이 없었다.
다행히 그때 같이 참여한 프로그램에 내 친구도 있었고 초등학교 및 중학교 동창이 함께 수업을 들었기에 그들의 증언으로 무사히 해프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학교 때는······. 대학원에 갔다.
철학원에서 했던 그 소리가 마치 사실이라는 것처럼 내 인생이 증명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제삿날에 어머니의 양수가 터졌다. 다들 안달복달하며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서는 어째선지 지금 오지 말고 나중에 오라 했더라.
그래서 어머니는 제사가 끝나고 이틀 후에 나를 낳으셨다.
철학원을 다녀온 날, 어머니는 좀 더 빨리 나를 낳았더라면 이런 팔자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며 슬퍼하셨다.
“괜찮아, 엄마.”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후련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와 사업하면 친구가 내 뒤통수를 친다더라.
뜬구름 잡는 생각을 집어치어야 한다더라.
내가 직접 일구어낸 돈이 아니면 내 것이 아니더라.
남들 사주에는 돈이 넘쳐난다고 하는 데 왜 내 사주에는 그런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없는 돈으로 술을 사주며 그나마 좋은 이름을 구하지 않았다면 호래자식이 되었을 팔자. 집을 말아먹었을 팔자.
정말 좋은 이름이었는지 내 이름을 지어준 분은 내 이름을 짓고 이틀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듣기엔 아버지가 그 분에게 술을 사주셨을 때 아주 쌩쌩하셨다고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콧대 옆에 자리한 점을 빼야 하냐며 내심 고민이 많았다. 대충 관상학을 찾아보니 이 점도 너무 착해서 남들에게 사기를 당하기 쉽다고 한다.
얼굴도 두리뭉실하게 생긴 터라 사이비들도 많이 꼬였다. 대학교 때 첫사랑 누나도 사이비였다.
에이, 모든 게 사실이면 내 인생 너무 하드코어인데······.
그래도 나쁘지만 않다.
내가 인덕이 많다더라.
내가 미역국을 별로 싫어하는 터라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먹지 않았는데도 인덕이 많다더라.
음······ 사람한테 뒤통수 맞기 좋은데 인덕이 많다니······. 이거 사람을 사귀어야 해, 말아야 해?
이제 막 창업한 곳이나 새로 시작된 곳에 취직하게 되면 내가 회사의 체계를 잡고 거래처 뚫고 회사를 수월하게 만들어 놓으면 회사를 나오게 된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사내 정치질이다. 힘든 일이라도 굳건히 버티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기랄. 아닌 건 아니라 해야 하는 성격이라 청탁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 내쳐버리니 회사의 입장에선 곱게 바라보지 않지.
아니 공장에서 채취한 샘플 그대로 분석한 결괏값인데 그걸 조작하면 쓰나!
게다가 이 판이 좁아서 다른 곳에 취업하려니 전에 다니던 회사의 사장이 입김이 샌 탓에 항상 퇴짜 맞는다.
그날도 그렇게 퇴짜를 맞고 멍하니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스마트 뱅킹에 들어가 남은 돈을 보자니 346,580원. 내일 보험비, 스마트 폰 요금, 교통비 명목으로 200,000원 정도 나간다.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정수지? 집주인 아줌마!”
아줌마의 억양이나 말투로 보아 좋은 소리는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내 이름을 잘못 부르신다.
“이번 월세가 들오지 않길래 전화해 봤어. 언제 줄 거야?”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조금 있으면 월급 들어오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아니? 정수 총각! 이번이 몇 번째야? 사람이 멀쩡하면 뭐 해? 착실한 일을 해야 돈을 벌지. 매번 그렇게 편의점 알바만 뛰면 답이 나와?”
또 시작이다.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나 때는 어쨌다. 우리 아들 봐라. 열심히 공부해서 돈 잘 벌지 않느냐는 등 골치 아픈 소리를 늘어놓는다.
“네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꼭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늦긴 늦어도 한 번도 빼먹은 적 없으시다는 걸 아시잖아요. 네?”
그렇게 전화를 끊는다.
비굴하다. 나에게 기관총처럼 쏘아진 모진 말들을 참으며 웃어야 한다.
그간 알바를 하며 이 돈을 충당하였지만, 이번 달 월급은 그 머저리 같은 편의점 사장 새끼가 바쁘다는 이유로 월급을 미룬 지 한 참 지났다.
노을이 지는 하늘에 구름이 떠가며 흘러간다. 아~ 내 인생도 떠나간다.
그때
“보자~ 보자~ 얼굴에 억울함도 그득하고 성실하게 생겼네!”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그 사람은 체크리스트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손으로 네모난 창을 만들어 카메라 흉내를 낸다.
“호구력도 완전 만렙이군! 옛날에 사기당한 적 많죠?”
“네?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갑자기 대뜸······.”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 그 사람과 마주할 때 그 사람의 키가 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2m는 되려나.
내가 185 정도 되는데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위로 들어야 한다.
“기부도 하고 있네~”
그건 길 가다 붙잡혀 억지로 가입한 것이지만 입을 다물었다.
“도와준 사람도 많구나! 와, 이 할아버지는 나도 도와주기 힘들었을 텐데!”
그 사람은 할아버지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빈 시장 수레를 끌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머뭇거리던 할아버지.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려 다가가 보았을 때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움직이지 않으셨다. 내가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알려드려도 그 자리에서 계셨다.
처음 그냥 지나쳐 버렸지만 내가 다 올라왔을 때 역시 그 자리에 계셨다. 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수레를 끌고 올라왔다.
그때는 몰랐는데 할아버지의 옷은 많이 더러워져 있었고 바지에는 오줌이 새어 나와 흠뻑 젖으셨더라.
“이건 그때······.”아니 이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지?
그 사람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흥미가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내려보며 말한다.
“드디어 찾았다! 당신 나랑 일 하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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