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란 작전
“다른 그림을 말인가?”
김유덕 관장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 실례가 안 된다면 관장님의 모조품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김유덕 관장은 단상 위에 올려진 ‘별’의 모조품을 보면서 말한다.
“저 그림이 왜 필요한가?”
“자세하게 말해드릴 수 없지만, 저 그림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림을 해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해칠 수 있는 일이라니?”
내가 말을 꺼내고도 어이가 없었다.
모조품이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그의 작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한다니 말이다.
김유덕 관장이 그러한 것처럼 우 실장님도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 갑자기 이 인간이 왜 이러지?’라며 생각하는 우 실장님의 마음이 들린다.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 설명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사장님의 그림을 찾는 일밖에 없어요. 그 사실은 당연히 에릭 쪽에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우 실장님이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내 의도를 파악하고 말한다.
“그럼, 다른 그림으로 그들을 속이자는 겁니까?”
“네.”
우 실장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팔짱을 끼고 시선을 아래로 돌리며 말한다.
“그게 통할까요?”
“물론 에릭이 백현석의 그림이 여기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림의 특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분명 그가 이곳을 다녀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동원하여 그림을 찾아내고 이미 가져갔을 겁니다.”
내 말에 우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에릭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쪽에서 그림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 이진학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거겠죠. 이미 그림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진학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우 실장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아마 우리에게 미행이 붙었을 겁니다.”
우리 이야기를 통신기로 듣고 있던 나비가 말한다.
“주위에 수상한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냥!”
나비의 통신을 들은 모찌는 우 실장님의 품에서 하품하며 울음소리를 낸다.
“아 귀찮다냥~”
나비가 통신기 너머에서 모찌에 잔소리를 퍼붓는다.
“얼른 움직이라냥!”
모찌는 우 실장님의 품에서 뛰어내려 새침하게 착지한다.
“알았다냥~”
모찌는 도도하게 전시관을 나가버린다.
나와 우 실장님의 말을 듣고 있던 김유덕 관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에게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 역시 우리 대화에서 심각함을 감지한 것이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우 실장님에게 눈빛을 보내보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음속으로 말한다.
‘정우 님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머릿속으로 그에게 할 말을 정리한다.
최대한 산타에 대한 말을 제외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그에게 말한다.
“사실 지금 백현석 작가님이 위독하십니다.”
그 말에 김유덕 관장의 눈을 두 배로 커진다.
“뭐라? 그게 사실인가?”
당황과 슬픔이 섞인 눈동자는 내 말이 거짓이었으면 하는 눈빛이다.
“네. 그래서 저희는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보고 싶어 하시는 작가님을 위해 그림을 가져가려는 것입니다.”
김유덕 관장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군. 하긴 선생님도 나이가 있으시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그런데 미행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다시 우 실장님을 쓱 쳐다보지만, 그는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인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지금 그 그림을 노리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저희는 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다른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림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확답드릴 수 없지만, 일이 끝나고 그림이 무사하다면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통신기를 통해 치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미술관 주차장에 수상한 차량이 2대 있고, 주차장으로부터 100m 반경으로 수상한 자들이 포착됐다냥!”
이번에는 나비의 목소리다.
“세인트 호텔로 향하는 길목에도 에릭 측 사람들로 의심되는 사람들과 차들이 보인다냥!”
그리고 모찌가 말한다.
“방금 미술관을 어슬렁거리던 녀석은 내가 환심을 샀다냥~ 언제든지 그냥 빠져나가면 된다냥~”
그 사이 김유덕 관장은 고민에 빠진 듯 자기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단상 위에 그림을 쳐다보고 있다.
김유덕의 허가만 떨어지면 우리는 그림을 가지고 가면 된다.
우 실장님이 나에게 말한다.
“그런데 교란용으로 그림을 가져간다고 한들. 우리는 진짜 이사장님의 그림이 필요한데 그 그림을 어떻게 전달하죠?”
우리 둘이 따로 떨어져 그림을 전달한다면 상대방도 우리의 작전을 눈치챌 것이다.
“그럼, 다른 직원분께 도움을 부탁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가짜 그림으로 상대방을 속이고 있는 사이 다른 직원이 진짜 작품을 가지고 무사히 호텔에 전달하는 것이다.
우 실장님이 고개를 젓는다.
“진짜 그림을 옮기는 운반책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해야 합니다. 인해전술을 이용하면 모를까. 따로따로 움직이는 저희는 아직 약합니다. 호텔로 오는 도중 에릭에게 습격당할 확률이 높아요.”
우 실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래. 오히려 우리 직원들이 진짜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에릭도 알게 될 거야. 손에 넣은 그림이 가짜라는 것을. 에릭이 백현석 이사장에게 그림을 보여주기 전까지 그림이 진짜라는 것을 믿게 만들려면 우리의 교란작전을 눈치채면 안 돼!’
문득 생각을 떠올린 나는 김유덕 관장에게 부탁한다.
“저 관장님 마지막으로 어려운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김유덕 관장은 나에게 묻는다.
“그게 뭔가?”
“저희는 가짜 그림을 가지고 그 녀석들을 유인할 겁니다. 그 사이 관장님은 백현석 작가님의 작품을 옮겨주세요.”
방금까지 어깨만 으쓱이며 능글맞게 미소 짓던 우 실장님이 다급하게 말린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지금 그림을 빼앗으려 하는 자들은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는 녀석들입니다!”
우 실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유덕 관장은 나의 부탁을 단번에 수락하였다.
“비록 만나 뵙지 못했지만, 백현석 선생님은 나에게 스승 같은 분이야. 한 번이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리고 김유덕 관장은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한다.
“단 목숨을 거는 일이니, 부탁이 있네. 백현석 선생님의 작품을 옮겨주는 대신 SN과 협력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고 싶다네.”
우 실장님이 곤란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내가 우 실장님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우 실장님은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채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김유덕 관장은 눈을 번득이며 말한다.
“그럼, 관장실로 가지. 그림을 챙기게나.”
백현석 이사장의 그림은 우 실장님이 챙긴다.
나는 단숨에 단상으로 뛰어가 ‘별’의 모조품을 챙긴다.
그때 김유덕 관장이 나에게 말한다.
“그 그림 말고 더 좋은 그림이 있다네.”
***
우 실장님의 차 안.
“네. 김유덕 관장님이 직접 그림을 전달해 드릴 겁니다.”
나는 백아영에게 전화로 김유덕 관장이 백현석 이사장의 그림을 옮겨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백아영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정말 괜찮을까요?”
나는 그녀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당연하죠. 미행이 우리 쪽으로 시선이 쏠렸을 때 김유덕 관장님이 출발하실 겁니다.”
“아니요. 그것 말고 정우 씨와 우 실장님 말이에요.”
“네?”
백아영은 나와 우 실장님을 염려하며 말한다.
“미국에서도 집행국을 이용하여 정우 씨를 몰아넣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요.”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분명 에릭은 나를 몰아세우려고 위험한 일을 벌이겠지.
그러나 나는 그녀의 걱정을 덜기 위해 일부러 웃으며 말한다.
“괜찮습니다. 설마 차를 들이박기라도 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길을 막고 협박식으로 그림을 빼앗아 갈 것이 분명합니다.”
내 입이 방정이다.
“그럼, 호텔에서 봬요.”
우 실장님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전화를 끊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러세요?”
“방금 그 말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
우 실장님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의심하니, 나도 괜히 찜찜해지는 느낌이다.
우 실장님은 혀를 차며 말한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차가 보기보단 튼튼해서 크게 다치지 않을 겁니다.”
“뭐죠? 우 실장님은 이미 에릭이 차를 들이박을 것이라 확신하는 모습인데요.”
“뭐, 이미 제 머릿속에는 차가 부딪쳐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군요.”
우 실장님이 핸들을 잡고 앞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저는 괜찮습니다. 칼에 맞아도 쉽게 죽지 않는 체질이라.”
나는 우 실장님에게 묻는다.
“방금 그건 거짓말이죠? 칼에 맞고 죽지 않는다구요?”
우 실장님이 웃으며 말한다.
“하하, 저는 죽지 않아도. 정우 님은 어쩌실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우 실장님은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내가 우 실장님에게 실실 웃으며 말한다.
“헤헤....... 우 실장님,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나 우 실장님은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괜찮습니다. 처음에 아프겠지만, 금방 익숙해지실 거예요.”
***
“확실히 이 차가 좋긴 좋죠? 이 차가 아니었다면 더 다치셨을 겁니다.”
“아, 네......”
그때 통신기로 나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우 님! 괜찮냥?”
“윽! 분명 누가 금방 익숙해진다고 했는데...... 전혀 괜찮지 않아요.”
통신기로 나비와 치즈가 호들갑을 떤다.
“큰일이다냥!”
“빨리 앰뷸런스 불러라냥!”
그 사이에서 모찌는 차분하게 말한다.
“이미 우리 직원이 가고 있다냥. 조금만 기다려라냥~.”
나는 통신기로 묻는다.
“김유덕 관장님은 지금 어떠신가요?”
나비가 말한다.
“이제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거다냥. 그것보다 정우 님이 더 걱정된다냥!”
가만히 있던 우 실장님이 서운하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나는? 나는 걱정 안 해줘?”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더니 나비가 마지못해 말한다.
“우 실장님은 뭐......”
그렇게 통신이 끊긴다.
“그게 끝이야? 뭐야? 끊겼잖아!”
우 실장님이 통신기를 입게 갖다 대고 절규하듯이 말한다.
“나도 걱정해 줘!!!”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