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정우 님?”
“아 우 실장님 오셨어요?”
아직 기차가 도착하기 2분 전.
나는 플랫폼에서 우리를 쫓아온 우 실장님을 태연하게 맞이한다.
우 실장님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정우 님?”
나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왜 그러십니까?”
우 실장님은 생각을 읽으려는 듯 내 눈을 노려보며 한참을 서 있더니 내 의중을 파악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말한다.
“됐습니다. 이렇게 됐으니 돌아갈 수밖에 없겠죠.”
“돌아가다뇨? 어디로 말입니까?”
내 물음에 우 실장님은 입을 이상하게 벌리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라도 이 상황에 그런 말을 꺼내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우 실장님은 자기 이마를 치고 학을 떼며 말한다.
“당연히 서울이죠!”
나는 마치 무언가 깨우친 듯 입을 아~하고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서울이군요.”
다시 한번 내가 능청스럽게 대답을 하니 우 실장님은 속이 터져 화를 내기 시작한다.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장난을 치는 듯한 나의 태도에 우 실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곳까지 왔는데!”
때마침 멀리서부터 기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우 실장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고 냉소를 지으며 말한다.
“갑자기 영월역 근처에서 차가 밀려 놓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기차가 들어오자, 서아는 다시 긴장감에 내 손을 꼭 잡는다.
서아의 얼굴은 결연에 찬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다.
우리가 완전히 우 실장님에게 벗어나기 전까지 불안한 모양이다.
기차는 바퀴와 철로가 마찰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 멈춰 선다.
문이 열리며 몇몇 사람들이 내린다.
우 실장님은 사람들이 내린 문을 향해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자 얼른 타시죠.”
직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짐을 들고 먼저 기차에 오른다.
우 실장님은 얼른 타라는 식으로 얼른 고갯짓하고 기차에 가볍게 뛰어오른다.
서아는 한숨을 쉬고는 그를 따라 기차에 오른다.
내가 아직 기차에 오르기 전 먼저 자리를 잡을 우 실장은 나를 보며 손짓한다.
그리고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듯 검지와 중지로 자기 두 눈을 가리키고 나를 콕 찍는다.
나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기차에 오른다.
객실 칸으로 들어가기 전 서아는 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기차에 오른 것을 확인한 그녀는 문을 열고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우 실장님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여기!”
우 실장님은 우리의 좌석을 알고 있었는지 우리 바로 옆에 자리를 예매했다.
그는 우리를 슬쩍 보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말한다.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짐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뭐......”
다른 직원들도 우리가 앉은 자리 앞뒤로 자리를 잡아 우리를 포위한 형색이다.
기관사님의 알림과 함께 문이 닫히고 점점 창밖의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아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처음 올 때처럼 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닌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우 실장님은 눈을 감은 채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크게 하품하며 오로지 차창 너머만 바라보는 우리를 흘깃 보더니 말한다.
“제가 웬만해선 두 분을 가만히 두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하아~”
좀처럼 하품이 멈추지 않는 우 실장님은 한 번 더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한다.
다들 우리를 쫓느라 많이 피로해졌는지 앞좌석과 뒷좌석에도 하품 소리가 들린다.
“아니...... 우리는 두 분의 여행을 위해 준비했는데...... 갑자기 우리가 보낸 직원 2명이 기절한 채 호텔로 돌아왔지 뭐예요.”
***
한정우와 이서아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작전을 세우고 있던 지휘통제실.
“갑자기 왜!”
한정우와 이서아를 관찰하고 있는 화면이 치지직 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호 전달 상태가 불량합니다!”
노이즈가 더 심해지더니 결국 화면이 끊긴다.
직원들이 다급히 한정우와 이서아를 찍고 있던 새들과 대기 중인 수십 마리의 새들에게 무전을 보내지만,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도통 돌아가는 상황을 정리할 수 없던 우 실장은 커플 팀에게 통화를 걸어보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연락이 끊기다니!”
순간 우 실장님의 머릿속에는 불길한 생각이 떠오른다.
‘설마? 에릭이?’
우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기고 곧바로 통제실을 나선다.
“혹시나 연락이나 통신이 올 수 있으니, 여러분은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럴 상황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긴급팀에 연락한다.
타이밍 좋게 멈춰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른다.
“저 지금 내려갑니다.”
***
“그런데...... 오는 내내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버려 평창, 삼척, 태백, 단양까지 찍고 왔습니다. 하아~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영월에 도착했고 다른 연락책들도 아침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습니다. 하아~ 겨우 정우 님을 찾아서 하아~”
어제 우리만큼이나 우 실장님에게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모양이다.
“하아~ 하~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는데...... 커플팀이 기절한 채 동물의 모습으로...... 호텔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하아~ 눈이 계속 감기네...... ”
우 실장님이 하품이 전염되어 모든 직원이 하품을 연달아 내뱉는다.
“아~ 피곤...... 쿨~ 쿨~”
우 실장님이 코를 골기 시작한다.
서아는 조심스레 앞좌석을 살피고 나는 뒷좌석을 살핀다.
“와......”
나는 주머니에서 키링 하나를 꺼낸다.
어제 아저씨가 선돌에서 잃어버린 키링과 같은 곰 캐릭터가 잠옷 차림으로 긴 베개를 끌어안고 쿨쿨 자는 모습이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손 위에 키링을 내려보며 작게 읊조린다.
“도대체 아저씨의 정체가 뭐야?”
그때 제천역에 도착했다는 기관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제천역에 정차할 예정입니다. 내리실 분은......”
나와 서아는 혹여나 그들이 잠에서 깰까 봐 숨소리마저 죽인 채 조심히 빠져나온다.
짐은 직원분들이 끌어안고 있었기에 챙기지 못하고 몸만 내린다.
조용히 객실 칸을 빠져나와 내리시는 분들의 행렬에 몸을 실었다.
제천역에 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마저 살 떨리게 느껴지던 우리는 애타는 마음으로 얼른 앞사람이 내리길 기다렸다.
계속 우 실장님과 직원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들이 깨지 않을까? 우리를 쫓아오지 않을까?
마을을 졸이던 우리는 무사히 기차에 내린 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서아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마른침을 삼킨다.
우리는 기차가 완전히 역을 떠나기 전까지 지켜보았다.
그편이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기차 문이 닫힐 때쯤 창 너머로 깨어난 우 실장님과 직원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허둥지둥 움직인다.
우 실장님은 창을 두들기며 나에게 뭐라 말하지만, 기차 소리에 들리지 않는다.
서아는 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한숨을 쉬고 말한다.
“나 정말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어!”
나는 그녀를 따라 앉고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멀어져 가는 기차를 쳐다본다.
나를 원망의 목소리로 부르는 우 실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차가 사라질 때쯤 나는 시간을 살피고 서아에게 말한다.
“우리도 얼른 가자. 조금 있으면 기차가 들어올 거야.”
“그래.”
조금 진정이 된 서아가 일어나자,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일어난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서아가 나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 아저씨 정체가 뭘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주머니에서 영수증 2장과 차표 2장을 꺼낸다.
‘어떻게 아저씨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알고 있었을까?’
기차 소리가 들린다.
서아가 소리가 나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걸 타면 되려나?”
“응.”
나는 영수증과 차표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기차가 우리 앞에 멈추고 서아와 나는 그 기차에 몸을 싣는다.
***
“저는...... 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서아는 꽁지머리 아저씨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의지가 담긴 서아의 눈빛을 바라보던 아저씨는 우리에게 키링과 영수증 2장, 차표 2장을 건넨다.
그걸 건네받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수증은 제천역에서 안동역으로 가는 기차표였고 차표는 안동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하는 차편이다.
“아니...... 아저씨가 어떻게?”
아저씨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마치 이때를 위해 준비한 듯이 우리에게 티켓을 건넸다.
“제천역에서 내려 안동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십시오. 그리고 안동 터미널에서 부산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키링은......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이게 무슨.......”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멀리서 우 실장님과 직원들이 보인다.
아저씨는 그들을 보았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얼른 떠나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역 안으로 도망친다.
아마 이대로라면 우 실장님에게 붙잡혀 돌아가겠지만, 아저씨의 말대로 일이 풀려갈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괜찮을까?”
서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당연하지!”
***
한정우를 쫓아 우 실장이 영월역으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 그는 꽁지머리의 아저씨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치 아저씨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아저씨는 영월역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보고 다시 택시에 오른다.
“이런 손님이 타 계실 줄 몰랐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손님은 아무 말이 없다.
아저씨도 한마디도 없이 운전한다.
“당신이 직접 관여하실 줄 몰랐습니다.”
손님이 먼저 입을 연다.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나?”
손님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자네는 일은 참 잘하는데 생각보다 융통성이 없어. 불쌍한 아이들이야. 좀 도와줘도 되지 않겠나?”
그 말에 손님이 불쑥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말한다.
“산타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가 아니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손님은 다름 아닌 산타였다.
“어허 손님. 그러시다가 다치십니다. 벨트를 매고 계셔야죠!”
산타는 장난을 치는 아저씨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고 벨트를 맨다.
“내가 누굴 도와주는 게 뭐 어때서? 내 마음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룸미러로 산타의 얼굴을 살핀 아저씨는 험악한 산타의 얼굴을 보고 말한다.
“어허 얼굴 풀게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많이 ‘위험한 시기’이지 않나? 한 명이라도 자네를 돕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리고 그 편이 나에게도 좋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산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다만! 이 이후로는 그 아이들이 길을 찾을 수 있게 내버려두십시오. 알겠습니까?”
“알겠네. 내 그리하지.”
산타는 룸미러로 아저씨의 얼굴을 슬쩍 보고 말한다.
“그런 걸로 알고 이제 가보겠습니다. 저기 내려 주십시오.”
“응, 그냥 가면 되지 않나? 산타의 기본 소양은?”
산타는 룸미러에 달린 키링을 가리키며 말한다.
“능력을 쓸 당시 옆에 저게 있으면 능력을 쓰지 못하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아이들이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저 키링을 이용하신 거 아닙니까?”
산타의 말에 아저씨는 차를 세우고 산타에게 돌아보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한다.
“그런가? 나는 모르는 사실이네.”
“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죠.”
산타는 한숨을 쉬며 택시에서 내린다.
산타가 내리자, 택시는 저 멀리 숲길로 들어서며 사라진다.
산타는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돌아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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