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이면...

밥 한 숟갈을 든 서아는 먹지 않고 한숨을 쉰다.
“아따 그카다 집 다~ 내려앉겠다.”
도통 먹질 않는 서아를 향해 지은이 한 소리 한다.
그런 지은의 등을 아주머니가 세게 후려치며 말한다.
“애한테 신경 끄고 니나 처무라.”
“아! 내가 틀린 말 했나? 밥상머리에 앉아가 내리 한숨만 쉬는구만.”
지은의 말이 맞는다.
벌써 다른 사람들은 밥그릇을 비워가는데 서아의 밥그릇은 전혀 줄지 않았다.
식사하는 내내 아주머니도 서아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 딸이지만, 딸의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한가지다.
‘정우도 배가 고플텐데......’
서아는 스멀스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밥을 보며 한정우를 떠올렸다.
그렇게 내버려두고 떠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
‘지금 나를 찾고 있으려나......’
매정하게 다가오지 말라며 돌아선 사람을 찾아올 사람이 어디 있겠다지만, 한정우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서아는 그런 한정우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하아......”
다시 서아가 한숨을 쉬자, 결국 아주머니가 서아에게 묻는다.
“서아야. 와 그라노?”
그제야 밥을 앞에 두고 한 숟갈을 들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며 서아가 정신 차리고 말한다.
“아, 아니에요. 그냥 잠시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밥을 한 숟갈 먹으며 씩 웃는다.
그 모습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핀 지은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남자가? 니 방금 남친 생각했제?”
지은의 말에 서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사래 친다.
“아니에요! 남자 친구 아니에요!”
그 반응이 더 재밌는지 지은은 얄미운 표정으로 서아에게 묻는다.
“그럼, 뭔데?”
그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서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 분하다는 듯 지은을 슬쩍 흘긴다.
“남자 친구는...... 아니에요. 그냥 친구......”
친구가 맞을까? 우리는 도대체 무슨 사이일까?
서아가 빨개지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은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서아를 내려본다.
그리고 고개를 얄밉게 까닥이며 말한다.
“그래. 친구라 치고. 금마랑 뭔 일 있었나?”
“그게......”
서아는 다시 바닷가에 있었을 때가 떠오른다.
거칠게 몰아세우던 한정우의 질문들.
그리고 대답할 수 없었던 나.
서아가 그 장면들을 복습하고 있을 찰나 지은은 서아를 꿰뚫어 본 듯이 말한다.
“싸웠네.”
“네? 아니에요!”
지은은 게슴츠레 서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싸운 게 맞구먼.”
서아는 그 얄미운 얼굴에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뭔데? 이 언니야한테 말해봐라.”
구미가 당기는 지은은 입맛을 다신다.
그녀는 자기 연애는 몰라도 남의 연애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싸운 건 아니고...... 약간 다툼이......”
서아의 말에 옳다구나! 하며 지은은 상을 내리쳤다.
“그게 싸운 거지. 그럼, 뭔데? 무튼, 왜 싸웠노?”
지은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눈썹을 꿀렁이며 서아를 바라본다.
서아는 말을 꺼내려다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셔도 돼요.”
그 능글맞은 얼굴에 넘어가려던 것을 겨우 참았다.
지은은 아쉬워하는 얼굴로 밥에 김을 싸서 입에 넣는다.
“그럼, 어떤 사람인데?”
다시 지은이 서아를 추궁하려 들자, 보다 못한 어머니가 지은의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고마해라! 남 연애 신경쓰지 말고 니꺼라도 잘 챙기라!”
지은은 매번 맞아도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몸을 배배 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 왜! 엄마도 토끼처럼 귀 쫑긋 세우고 잘만 들었잖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은의 말이 사실이니 아주머니는 덜컥 양심에 찔려 말을 더듬으며 변명한다.
“그, 그건! 서아가 엄마 친구 딸이니까 안카나. 저 가시나가 좋은 머스마 만나는지 걱정돼서 그카는기다.”
그 말에 지은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눈을 흘기며 말한다.
“내도 서아 아는 언니거든요! 지도 이 아가 좋은 아 만나는지 아니면 못돼 처먹은 새끼를 만나는지 걱정돼서 그라거든요!”
격양된 어조로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는 둘의 모습에 서아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둘의 눈치를 살피며 젓가락으로 밥알 하나를 집어먹으며 조심스레 묻는다.
“둘이 싸우시는 건가요?”
지은과 아주머니는 동시에 말한다.
“우리 안 싸우는데!”
***
어두운 골목길.
지은이 앞장서고 서아가 뒤따르고 있다.
지은은 늦은 시각에 서아 혼자 보내기 걱정되어 지은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추운 밤공기에 옷을 껴입어도 추운 지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모자를 눌러쓴 채 벌벌 떨고 있다.
“서아야 니는 안춥나? 으으으~ 추워 디지겠다. 올겨울에 마이 춥다 카던데.”
그리고 은근슬쩍 서아에게 달라붙으며 묻는다.
“여기...... 우리 둘 뿐인데 함 이바구나 해봐라. 도대체 어떤 놈인데?”
지은의 속내는 바로 이것이었다.
늦은 시각에 길 안내를 흔쾌히 수락한 것도 춥다며 벌벌 떤 것도 은근슬쩍 서아에게 그 남자에 관해 물어볼 심산이었다.
“아......”
서아는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다.
한정우와 그녀 사이를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서아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지은은 서아의 눈치를 살피고 묻는다.
“짝사랑이가?”
서아는 한정우에 대한 마음을 한정우에게 들킨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짓는다.
지은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놀리듯이 묻는다.
“금마를 보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미치겠나? 막 이불킥차고 바닥 두들기고!”
서아가 아무 말없이 눈이 동그래지자, 지은은 자기 자신을 뿌듯해하며 말한다.
“내 말이 맞네! 그럼, 고백해삐라! 와 망설이노?”
“그게......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요.”
“응?”
서아는 마음이 들킨 마당에 지은에게 숨길 게 뭐가 있냐며 한정우에 대한 마음을 늘어놓는다.
“저는 그 사람에게 무엇도 해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지금 그 사람이 무진장 어려운 시기인데 제가 힘이 되어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 제가 도움을 줘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참 이기적이죠?”
뭔가 두리뭉실한 서아의 설명에 지은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니 도움이면 금방 끝낼 일을 안 도와준다는 거제?”
“네.”
“에이 뭐, 굳이 도와주고 안 도와주고가 중요하나. 마음이 중요하지.”
그리고 지은은 돌아서 걸으며 서아에게 말한다.
“그런데 금마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잘 생각해봐라.”
“네? 그게 무슨......”
“그 감정은 니가 금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쌍하다고 착각해서 그런 걸 수 있다. 연애가 아니라 연민! 네가 금마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서아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한다.
‘아니야. 그건 연민이 아니었어.’
지은은 서아의 반응을 살피고 다시 뒤돌아 똑바로 걸어간다.
“아니면 말고. 그냥 니 마음을 확실히 정하라고 하는 말이다.”
서아는 앞서 걸어가는 지은의 뒷모습을 보고 망설이듯이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근데 참말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으면 금마가 니한테 애매하게 구는 것 같은데 맞나?”
“아니 그냥...... 그래요.”
“아고 답답하구로 그냥 때리치라. 어떤 놈인지 몰라도 상판대기 함 보고......”
순간 지은의 말이 끊긴다.
서아는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머리를 지은의 등에 콕 부딪힌다.
“어? 언니 갑자기 왜?”
서아는 지은의 얼굴을 보고 지은이 무언가를 보고 놀란 사실을 깨닫는다.
지은이 시선을 닿는 곳을 보니 서아 역시 놀란다.
“한정우?”
한정우가 백현석의 집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다.
“서아야?”
지은은 서아를 돌아보며 귓속말로 전한다.
“점마가?”
서아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은은 발랄한 얼굴로 서아의 팔을 두드리며 개방정을 떤다.
지은의 얼굴은 ‘오 좀 치는데’라며 서아를 추어올리는 듯하다.
지은은 고개를 슬쩍 돌려 한정우의 얼굴을 살피고 다시 서아를 본다.
다시 개방정을 떨며 소리 없이 난리를 친다.
서아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지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새초롬하게 말한다.
“크흠. 그럼, 언니야는 가볼 게 서아야.”
지은은 억지로 방언을 숨기려 하지만,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아의 옆을 지나치며 서아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더니 총총 걸어 사라진다.
“어, 언니 잘 가!”
서아는 어색한 몸짓으로 멀어져가는 지은에게 손을 흔든다.
단 2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서아는 한정우와 단둘이 남게 된 것이 약간 어색하다.
그 어색함이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덕 아래로 내려온 지은은 서아와 한정우의 모습이 사라질 때쯤 오두방정을 떨며 집으로 향한다.
“엄마! 엄마!”
난리를 떨며 집으로 들어오는 딸에게 아주머니가 학을 떼며 묻는다.
“또 와그라는데?”
“내 봤다.”
“뭐를?”
아주머니는 방정떠는 딸을 징그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서아 남친!”
그러나 서아의 남자 친구란 말에 눈이 커지며 묻는다.
“뭐? 어떤데? 괜찮더나?”
지은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하모! 못돼 처먹었도 저 얼굴이면 다 용서된다.”
눈이 높아 남자 사귀기도 어려운 딸이 그런 말을 하니 아주머니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딸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면 잘생긴 게 분명하다.
“아! 이럴 게 아니다!”
지은은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다.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지은을 따라 방에 들어가며 말한다.
“니 또 이상한 그림 그릴라카제!”
“아 쫌!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 일.러.스.트. 라고 몇 번 말하노! 내는 일.러.스.트.레.이.터. 고. 알겠나? 쫌 외워라.”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