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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작품등록일 :
2024.10.01 11:12
최근연재일 :
2025.02.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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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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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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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다음날 새벽

DUMMY


현석와 그의 아버지처럼 불길한 전조를 느낀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점점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봇짐을 머리에 매거나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가는 사람들이 행렬을 이룬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풍선 옆에 바늘이 놓인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누군가 그들 중 하나를 건드린다면 도미노처럼 쓰러져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에 끌려 나왔다.


행여나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부모들은 아이의 손을 꽉 붙들어 매고 있다.


그건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설명이 없어도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인 그들이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이런 폭풍전야 속에서 태연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에서 이미 북한군이 서울 코앞까지 왔다며 강하게 주장하며 반대쪽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며 상대방의 의견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석은 지금 이 상황에도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이 무얼 믿고 안일하게 남아있는 것인가?


현석은 귓가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들은 무시하고 그저 아버지의 뒷모습만 쳐다보며 걸었다.


아버지는 두 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어머니는 봇짐을 머리에 이셨다.


옥경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두려운 목소리로 현석에게 속삭였다.


“이거 꿈이 아니지?”


현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옥경도 현석과 아버지가 느꼈던 불안을 느끼고 있다.


가슴 떨리는 설렘과 반대되는 극도의 긴장 상태.


상상하기도 싫은 정도로 불쾌한 긴장감이 그녀의 몸을 에워싼다.


그건 길거리에서 행렬을 이루고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 흘러넘치는 긴장과 불쾌함이 사람들의 몸속에서 새어 나와 거리를 가득 채웠다.


불경스러운 그것들은 점점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어 사람을 지배한다.


이 광경들은 옥경과 현석에게 똑똑히 보였다.


특히 아버지의 등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긴장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하다.


약간 굽어진 등에는 가족을 살리겠다는 가장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렇게 조금씩 현석과 옥경의 세상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


모두가 잠든 밤.


현석의 아버지는 몰래 부엌으로 나온다.


전등이 아닌 촛불을 피워 부엌을 밝힌다.


그는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미칠 지경이다.


벌써 며칠째 불면증이 이어지고 있다.


혹여나 아내가 깰까 봐 그는 찬장에서 조심스레 잔을 꺼낸다.


그 전날 아내가 사 온 막걸리가 담긴 양은 주전자를 찾은 현석의 아버지는 사기 그릇에 술을 따른다.


촛불이 일렁일 때마다 하얀 술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꿈틀댄다.


그렇게 한참 술잔을 바라보던 그는 단숨에 잔을 비워낸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알코올의 향기에 그는 잠시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다.


현석의 아버지는 이런 방법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임시방편일 뿐 해결 방법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석의 아버지가 이렇게 술에 매달리는 건 이 마음의 병은 그가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빈 잔에는 다시 술이 차오른다.


마치 아버지가 애써 죽은 아들에 대해 잠시나마 잊으려 해도 곧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한 잔 비워내면 다시 아들의 얼굴이 사라진다.


그러나 곧 다시 떠오른다.


꽃다운 나이에 저버린 아들의 모습.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


비굴하고 암울한 시대에 희생한 자식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


매 순간 가슴에서 타오르는 그리움의 불꽃은 안쪽에서부터 그를 갉아먹었다.


극도의 상실감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돋아난 혓바늘이 가라앉을 때쯤 다시 혓바늘이 돋아나 그를 괴롭힌다.


간혹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끼니를 거르는 때가 많다.


나날이 그의 몸은 야위어 간다.


어느 날에는 가끔 아버지를 부르는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늘었다.


얼마 전 셋째가 군을 모으고 있다는 말에 눈을 번득이는 것을 보았다.


현석의 아버지는 셋째의 눈빛만 보고도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앞서가 버린 형들을 보고도 셋째 녀석은 나라를 위해 제 청춘을 바치려는 것이다.


아비가 된 사람의 입장으로 그런 짓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셋째의 성격이나 성품을 알고 있는 아버지는 도저히 셋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셋째는 그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이다.


제 형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 같이 올곧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그 아이들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 기질은 부모가 울고불고하며 매달려도 말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첫째와 둘째 밑에서 보고 자랐으니 셋째 역시 그럴 터였다.


“아버지?”


그때 잠에서 깬 현석이 부엌으로 나왔다.


그나마 아버지에게 다행인 건 넷째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현석에게 어릴 때부터 한가지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미 셋째는 늦어버렸지만 넷째는 늦지 않았다.


“백현석! 얼른 들어가 마저 자라.”


아버지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현석에게 말했다.


현석의 여린 성품을 알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현석에게는 더욱 모질게 대한다.


현석의 마음은 흙과 같았다.


그 어떤 것도 잘 자라는 부드러운 흙.


아버지는 그것을 알기에 어릴 때부터 현석에게 한 씨앗을 심어 놓았다.


“그저 음침하게 구석에 처박혀 또 그림이나 그리고 있구나.”


“자고로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의를 위해 싸울 줄 알아야지.”


그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현석에게 내뱉었다.


그것도 맨정신에 할 수 없어 술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최악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했다.


“한심한 녀석. 사내아이란 녀석이 그림이나 그리다니. 천인공노할 짓이야!”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현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방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마음도 찢어진다.


현석의 마음속을 뒤덮어 꽃을 피워낸 씨앗은 현석이 제 형들처럼 불의에 참지 못하는 그 기질을 잠재우는 데 한몫했다.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더 이상 자식들이 죽어가는 꼴을 볼 수 없었다.


지금 현석에게 하는 짓으로 인해 그 어떤 천벌을 받아도 그가 할 말은 없다.


그는 그저 겸허히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 옛날 밤늦게 찾아온 맏이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벌어진 문틈 사이로 보였던 아이가 벌써 저만치 자랐다.


저 아이만큼은 제 형들과 달리 자기 삶을 살아갔으면 했다.


무심하게 제 아비, 제 어미보다 먼저 가버렸던 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았으면 했다.


현석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나왔다.


그리고 사진관 한구석에 놓아둔 보석함을 챙기고 입구 옆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보석함에는 이미 쇠막대가 붙어있다.


아버지는 보석함을 열어 겹겹이 놓인 여러 사진 사이에 고이 접어둔 그림을 꺼낸다.


그 어릴 때 이제 막 연필을 잡은 녀석이 글자도 때기 전에 그린 아버지의 얼굴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제발 저 아이만큼은......”


아버지는 그림을 가슴에 품으며 기도한다.


***


아버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비참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오?”


사람들은 인도교 앞에 모여 우글거린다.


방금까지 바쁜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려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혼란에 빠진 상태다.


“지금 건너려는 사람이 너무 많소. 더구나 옮겨야 할 군수 물자도 아직 많이 남아있소.”


이미 시간은 오늘을 지나 내일로 넘어가고 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인파가 파도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더구나 사람뿐만 아니라 군수 물자까지 옮겨야 하니 탈출이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석의 가족들이 인도교에 발을 올리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아버지는 진땀을 흘리며 가족들을 살폈다.


곤경에 처한 아버지의 얼굴이 고스란히 자식들과 아내에게 비친다.


“안돼......”


이 아이들만큼은 절대로 먼저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현석아, 옥경아 짐을 풀어라!”


아버지는 사람들의 소리에 목소리가 파묻힐까 봐 큰소리로 현석에게 외쳤다.


수많은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던 현석과 옥경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이들이 당황하며 묻자, 아버지는 두 손에 들려 있던 보자기를 풀어버린다.


내용물은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보자기 2개를 이어 묶는다.


아직도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에게 다시 아버지가 외친다.


“얼른!”


옥경은 아버지를 따라 보자기를 펼치고 내용물을 내버려둔 채 아버지에게 보자기를 건넨다.


현석은 옥경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녀를 따라 보자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풀기 시작한다.


현석이 챙긴 보자기 안에는 아버지의 보석함이 들어있었다.


그 보석함은 아버지에게나 현석에게나 소중한 것이었다.


아버지에게는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과 후대에 전해야 할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고


현석에게는 한없이 모질게 굴던 아버지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 담겨있었다.


현석은 보석함을 옆구리에 끼우고 아버지에게 보자기를 건넨다.


아버지는 보자기를 서로 묶어 연결한 다음 가족들의 손목을 서로 잇는다.


“아버지 말 잘 들어라. 이제 우리는 저 인파 속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절대로 이 끈을 놓치면 안 된다!”


아버지는 인파 속을 강행 돌파할 생각이다.


행여나 가족들이 서로 떨어질까 봐 보자기로 서로의 손목을 묶은 것이다.


“꼭 붙잡아라.”


아버지는 사람 사이사이로 파고들며 길을 찾았다.


손목에 묶인 끈으로 가족들의 존재를 느끼며 눈으로 인도교를 쫓는다.


다리 위에는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과 군인들이 보인다.


군인들을 보며 아버지는 셋째가 생각난다.


그저께 밤 몰래 셋째가 찾아온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은 이유는 셋째를 붙잡고 늘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군에 들어간 미운 자식이지만, 아버지는 다리를 건너는 군인들 사이에 셋째가 있길 바랐다.


아니면 이미 먼저 건너갔길 바랐다.


어쨌든 그 아이가 무사하길 바랐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앞에서 커다란 폭발과 비명이 들린다.


“꺄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들린다.


하늘을 찢는 듯한 커다란 소리는 사람들에게 파장을 일으켰다.


숨죽어 있던 공포와 두려움이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다리가 폭파됐다.


현석의 가족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로의 손목에 묶은 끈을 꼭 잡고 멈춰 서 있었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그 현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이미 전쟁은 그들 주위에 있었다.





작가의말


이 글은 그저 작가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글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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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재회 - 1부 끝 25.01.18 7 0 13쪽
102 마지막 이별 25.01.17 6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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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열매 25.01.13 5 0 15쪽
97 곳간 25.01.11 5 0 14쪽
96 그 남자와 아이 25.01.10 4 0 12쪽
95 두번째 이별 25.01.09 6 0 15쪽
94 이 대감 25.01.08 5 0 13쪽
93 새벽녘 25.01.07 7 0 11쪽
» 다음날 새벽 25.01.06 8 0 11쪽
91 그날 밤 25.01.04 7 0 9쪽
90 쌍둥이 25.01.03 7 0 13쪽
89 그동안 수고했네. 25.01.02 7 0 13쪽
88 극적인 연출 25.01.01 7 0 14쪽
87 살아 돌아왔다. 24.12.31 8 0 14쪽
86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24.12.30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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