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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작품등록일 :
2024.10.01 11:12
최근연재일 :
2025.02.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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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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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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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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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벽녘

DUMMY


사람들은 원통한 현실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바로 눈앞의 다리만 건너면 되는데 그 다리가 끊어졌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질서나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던 아이들에게 전쟁이란 무엇인지 친히 알려주었다.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이 허무하게 궁지에 내몰린 사람들은 비참하고 원통할 뿐이다.


현석과 그 가족들 역시 그러했다.


특히나 현석의 아버지는 속이 타들어 간다.


방금 폭파된 다리 위로 셋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닐 거라 굳게 믿었지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곡소리에 불길한 상상만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버지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말도 되지 않는 상상에 잡혀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옥경과 현석.


이 아이들만큼은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꼭 지켜낼 것이다.


그때 그의 아내가 그의 손을 잡는다.


문득 아내와 눈이 맞은 현석의 아버지는 아내가 별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눈빛의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아내 역시 그와 같이 자식을 잃은 상실을 품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는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석의 아버지는 그 눈빛에서 잠시나마 안위와 위로를 얻고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강을 건널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말에 현석은 바로 아래 강을 내려보았다.


머리 위에 해가 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어두운 밤하늘 아래의 한강에는 마치 그 안에 괴물이 숨어져 있는 것처럼 두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내린 비는 겉으로 보기에 약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 탓에 불어난 강은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악어처럼 주둥이를 벌린 채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그 주둥이로 뛰어들었다.


그 안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불어난 강은 그들을 쉽게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잔잔한 강은 잔악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분명 사람들은 강 건너편으로 열심히 헤엄치고 있지만, 그들의 몸은 조금씩 물살에 쓸려간다.


강물은 위아래로 출렁이며 사람의 힘을 빼놓았기에 수영이 쉽지 않았다.


살고자 강물에 뛰어들었건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출렁이는 물결과 잔잔하면서도 생각보다 강한 물살에 이미 극도로 피로한 상태의 신체 조건이 맞물려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고단했다.


그것도 모르고 뒤에 있던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이 물에 뛰어드니 따라 뛰어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몰아닥치는 인파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물에 빠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허우적거리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한다.


그 손짓은 살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면 위로 빠져나온 그들의 얼굴은 지옥을 마주하고 있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도 그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처참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현석은 곧바로 고개를 돌린다.


그는 너무 두려웠다.


도저히 강을 건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몇몇 사람들은 나루터에 묶여 있던 나룻배에 올라탔다.


한사람이 나룻배에 올라타자, 누구 하나 거를 것도 없이 하나같이 나룻배에 달려들었다.


배 위로 올라탄 사람들은 다급히 배를 묶어둔 줄을 풀고 떠나려고 하지만 이미 배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인원이 올라탄다.


그 사실을 파악한 사람들은 배 위로 오르려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살겠다고 겨우 배를 붙잡은 사람의 손을 쳐낸다.


그들은 배에 오를 때와 올라탔을 때의 마음이 달랐다.


그 누구도 도와주려는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배가 떠나자, 배가 있던 자리에는 배에 오르지 못하고 물에 빠진 사람들만 남아 있다.


그렇게 배를 띄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물에 빠져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강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타도 끄떡없던 배는 평소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올라탄 탓에 배는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요동치는 배에 놀란 사람들은 평정함을 잃고 발버둥 치는 바람에 결국 배는 뒤집어진다.


현석은 방금 그 배 위로 갓난아기를 품고 있는 아주머니가 올라탄 것을 보았었다.


사람이 이렇게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가?


이렇게 허무하게 생이 저버릴 수 있는가?


살려달라는 비명과 부모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먼저 살겠다며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밀쳐내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분명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온 것이 분명한데 그들의 모습은 전쟁과 다를 게 없었다.


존엄성과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광경에 현석은 깨달았다.


이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는 이제 그걸 알았냐며 현석을 타박한다.


그때 옥경이 현석의 손을 덥석 잡는다.


“야! 정신 차려!”


넋을 놓고 지옥을 관람하고 있던 현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현석은 옥경에게 묻는다.


“우리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이게 지옥이 아니면 뭐야......”


비에 홀딱 젖은 현석은 몸을 떨기 시작한다.


그건 단순한 오한 같은 것이 아닌 극심한 공포로부터 비롯된 떨림이었다.


옥경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현석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정신 차려!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럼에도 현석의 마음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현석은 아버지의 보석함을 꼭 품에 끌어안는다.


현석은 포기하고 싶었다.


차라리 그냥 바닥에 누워있다가 자기 몸 위로 탱크가 지나갔으면 한다.


아버지는 현석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고 더욱 초조해진다.


이대로 두었다간 여린 아들의 정신이 와해할 것이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 그는 문득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이제 손목의 끈을 풀어라.”


아버지는 손목의 끈을 풀면서도 그것을 유심히 노려본다.


현석은 아버지가 바라본 곳을 따라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강 가장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방치된 뗏목이 놓여 있었다.


사람 3명이 나란히 비좁게 앉을 정도의 크기였다.


분명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띌만한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그 뗏목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현석아. 옥경아.”


현석의 아버지는 조용히 아이들을 불렀다.


“뗏목이 우리 가족이 타기엔 알맞지만, 다른 사람들과 타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이걸 옮겨야 해.”


분명 이 사실을 들키게 되었다간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확실하다.


현석과 옥경도 그 사실을 알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어머니에게 보석함을 맡기고 현석은 뗏목의 꼬리 부분을 아버지는 뗏목의 머리 부분을 잡고 올렸다.


옥경은 주위에 뗏목의 노를 찾았다.


아버지의 발이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현석의 발도 물에 잠긴다.


현석과 아버지는 조용히 뗏목을 물 위에 띄운다.


어머니는 그사이 봇짐을 풀어 보석함을 챙겨 넣은 뒤 다시 봇짐을 싼다.


그리고 그 봇짐을 뗏목 한가운데에 올려둔다.


아버지와 옥경은 노를 나눠 들고 뗏목 앞자리에 앉고 현석과 어머니는 뒷자리에 오른다.


질서와 규칙이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현석의 가족은 그에 대해 그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노를 저었다.


점점 사람들의 소리가 아득해질 무렵 빗소리와 물살을 가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방향이 맞는지, 한 곳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노를 젓는다.


빗방울이 등골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서늘함을 느낀다.


뗏목은 일렁이는 물살에 맞추어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뗏목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듯 불길한 소리를 내었다.


삐걱 삐걱.


뗏목을 묶은 끈이 부실한지 뗏목이 흔들거리는 듯하다.


가족들 모두가 그 사실을 파악했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지금 그들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여기서 뗏목이 불안하다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면 줄에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이제 막 강의 중간 지점을 지나는 찰나 뗏목에 무언가 걸렸다.


물을 첨벙이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손이 튀어나왔다.


하얗게 질려버린 그의 얼굴처럼 가족들의 얼굴도 질려버린다.


어두컴컴한 물속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손에 놀란 것이다.


그 사람은 뗏목을 잡고 무작정 뗏목 위로 올라탈 시도를 하였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그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침착하게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진정하시오! 그러다간 뗏목이 뒤집어질 것이오. 침착하게 천천히 올라오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충격에 빠진 그는 살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결국 그의 손길과 발길에 아버지가 맞는다.


“억!”


그는 점점 더 발악하기 시작한다.


뗏목에 매달려 억지로 올라오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그가 현석의 팔을 잡고 물귀신처럼 끌어당긴다.


“어! 어! 어!”


현석의 몸에 그 사람의 무게가 실리면서 뗏목이 기울어진다.


결국 현석은 그의 손길에 끌려 물에 빠진다.


***


물에 빠진 현석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진다.


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그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몸은 점점 식어가고 굳어간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이대로 죽는구나.’


그때 그를 감싸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누구지?’


몸이 붕 떠오르며 햇살과 같은 온화한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 아버지군요.’


현석은 눈을 뜨고 확인하지 않아도 그 손길이 아버지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온화한 얼굴은 그림 속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석은 아버지만큼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없다는 셋째 형님의 말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 모진 말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비수처럼 꽂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째 형님이 그 그림을 펼쳐 보여 주었을 때 그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 그림 위로 떨어진 눈물 자국이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알 것만 같았으니까.


***


똑!


현석의 눈두덩이 위로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제야 현석은 눈을 떴다.


“여기는......”


정신이 돌아오며 멈추었던 감각이 살아난다.


“아버지!”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옥경이다.


“아버지! 제발 눈 좀 떠보세요! 아버지!”

“여보! 나 혼자 두고 가지 말아요. 여보!”


이번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린다.


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본다.


아버지다.


아버지가 하늘을 보고 눈을 감은 채 웃고 계신다.


아버지가 바라본 하늘엔 샛별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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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정해진 운명 25.02.03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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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마지막 이별 25.01.17 6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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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곳간 25.01.11 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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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두번째 이별 25.01.09 6 0 15쪽
94 이 대감 25.01.08 5 0 13쪽
» 새벽녘 25.01.07 7 0 11쪽
92 다음날 새벽 25.01.06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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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동안 수고했네. 25.01.02 7 0 13쪽
88 극적인 연출 25.01.01 7 0 14쪽
87 살아 돌아왔다. 24.12.31 7 0 14쪽
86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24.12.30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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