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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
작품등록일 :
2024.10.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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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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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 남자와 아이

DUMMY


어느덧 새벽의 푸른 빛이 세상에 깔렸다.


여전히 산길을 헤매고 있는 옥경과 현석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무의미한 발걸음을 옮긴다.


옥경의 눈에는 다 똑같은 수풀과 나무들뿐이라 계속 똑같은 곳을 맴도는 느낌이다.


하나 남은 오라비인 현석은 부모를 잃은 충격에 벙어리가 된 것인지 아무 말이 없었고 그저 옥경의 뒤만 따라다닐 뿐이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옥경이 이 못난 제 오빠를 데리고 이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건만 쇠막대로 이 대감의 머리통을 내리칠 때를 제외하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고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만 있으니 어디 하나 마음을 기댈 곳이 없던 옥경은 외롭고 춥고 서러웠다.


그래도 얼마 전 나이테에 대한 글을 읽은 옥경은 나무의 나이테에서 간격이 넓은 곳이 남쪽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어느 쪽이 북쪽인지 남쪽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방향 감각마저 무색해질 정도로 깊은 산골에서 무사히 남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초여름의 산길은 생명의 활기가 가득하다.


그것들은 전쟁으로부터 먼 존재들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짙은 녹색의 잎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옥경과 짙푸른 녹음의 생명들은 너무나도 다른 처지였다.


그리고 적어도 북한군의 총구가 저 푸른 풀잎들을 향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 그것이 옥경이 가장 부러운 것이다.


옥경은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다.


왜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인가?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어린 옥경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풀어낼 수 없던 원망은 결국 그녀를 뒤따라오는 현석에게 향했다.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현석에게 옥경은 돌아선다.


옥경이 발길을 멈추자, 현석도 따라 멈추었다.


“야!”


옥경은 신경질적으로 현석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야!”


옥경은 다시 한번 그를 보며 소리쳤지만, 현석은 보석함을 끌어안고 몸을 움츠릴 뿐이다.


“야아아아! 이 머저리야!”


그녀는 두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그를 불렀다.


그간 쌓였던 울분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현석의 태도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현석에게서 보석함을 뺏었다.


현석은 그 보석함은 껴안고 다니며 위험한 외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내면의 세상으로 숨어들어 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던 옥경은 그런 제 오빠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그녀는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데 그저 숨고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석의 처지가 꼴사나웠다.


어머니 아버지도 이 못난 아들이 뭐가 좋다고 제 목숨을 다 바쳐 구해낸 것인가?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어서도 이 인간을 책임져야 하는가?


아직 어린 나이였던 옥경에게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품에서 보석함을 빼앗긴 현석은 순간 상실감을 느낀 얼굴로 멍하니 옥경을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화난 얼굴로 바뀐다.


현석은 보석함을 빼앗은 옥경을 더 이상 동생이 아닌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라 인식하였다.


그는 갑자기 옥경에게 달려든다.


그녀보다 작고 왜소했던 그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몰라도 그는 옥경을 밀어 바닥에 넘어뜨리고 보석함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녀를 피해 수풀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옥경은 현석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한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야! 그래! 멀리 가버려! 나도 더 이상 너랑은 같이 못 있겠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속이 편할 줄 알았지만, 옥경은 눈물이 터져버린다.


그녀는 서러운 마음으로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옥경은 근처 나무에 기대어 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


옥경이 눈을 떴을 땐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였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옥경은 잊고 있던 개운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숲속에 달랑 혼자 남겨진 옥경은 다시 벌써 어둑해지는 숲속의 분위기에 서늘함을 느낀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면 등골이 오싹하다.


이제 그녀는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발목을 붙잡는 현석이 없으니 후련하게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옥경은 그 자리에서 혹시나 현석이 돌아올까 봐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으니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산길을 헤매다가 사고를 당할 바에 차라리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가던 길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옥경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현석이 사라진 수풀 속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현석을 기다린다.


그러다 결국 해는 모습을 감추고 달이 하늘로 떠올랐다.


어두운 숲에 홀로 남겨진 옥경은 감각이 예민해진다.


무언가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얼핏 짐승의 울음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들었다.


옥경은 그저 잘못 들었을 것으로 여기며 애써 태연한 척하였다.


그러나 그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주위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는다.


혹여나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는 들짐승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꼭 쥐고 귀를 쫑긋 세운다.


잔잔한 바람에 풀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사르륵 사르륵.


옥경은 숨죽이고 눈을 감았다.


우지끈.


무언가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다.


옥경은 눈을 뜨고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불길한 빨간 불씨 2개가 아른거리고 있다.


“설마...... 헙!”


옥경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비명을 겨우 참아내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는 이 대감의 고을 사람들이 아직 현석의 가족을 찾기 위해 이 산을 뒤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착란을 일으키는 듯한 불씨의 움직임에 옥경은 그들에게 처참히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것들이 우리 어머니를 죽이고 나를 찾으러 온 게 틀림없어!’


옥경은 잔악하게 어머니의 생명을 유린한 이 대감 부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생각만으로 오한을 느낀 옥경은 더 이상 그들을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포기한다.


옥경은 그 불씨가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치 처음부터 옥경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던 그녀는 결국 그 불씨가 고작 몇 미터 앞까지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온다.


“꺅!”


갑자기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와 꽂히자, 옥경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옥경이 이제 곧 죽겠구나 싶어 운명을 받아들이려 할 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형! 갑자기 화살을 쏘면 어떡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들린 아이의 목소리에 옥경은 눈을 떴다.


그녀의 앞에는 10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와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이는 놀란 옥경의 모습을 보며 덩치가 산만 한 남자에게 말한다.


“저것 봐! 저 누나가 놀랐잖아! 아이고, 내 속은 속이 아니야~”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가슴을 두드리며 그 남자를 답답하게 쳐다보았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기른 그 남자는 어리숙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옥경을 향해 다가오던 그 불씨는 그들이 들고 있던 횃불이었다.


아이가 옥경에게 묻는다.


“누나 괜찮아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옥경은 그들이 먼저 그녀에게 화살을 쐈으면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이 이상했다.


아이는 들고 있던 횃불을 그 남자에게 맡기고 옥경이 기대어 앉아 있던 나무에 다가가 화살을 뽑는다.


그런데 옥경은 그 화살촉이 꽂힌 부근에 뱀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이는 머리에 화살을 맞은 뱀을 보여주며 옥경에게 말한다.


“항상 숲속을 다닐 땐 조심해야 해요. 무엇이 갑자기 튀어나올 줄 모르니까요.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것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나타나죠.”


아이는 뱀이 익숙한 모양인지 죽은 뱀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흔들어 보였다.


옥경은 뱀의 비늘에 횃불의 빛이 닿아 반짝일 때면 소름을 느꼈다.


아이는 뱀을 자루에 담아 어깨에 둘러메더니 옥경에게 말한다.


“그런데 누나. 왜 혼자서 이 산에 있어요? 여기가 얼마나 험한데!”


아이는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옥경을 쳐다보았다.


횃불이 주는 따뜻한 기운으로 잠시 안도감을 느낀 옥경은 아이에게 말한다.


“그게...... 지금 전쟁이 났어! 북한군이 우리를 공격했다구! 결국 난 북한군을 피해 도망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옥경은 그간 있었던 일을 제외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비록 아이이긴 하지만 처음 만난 이 아이에게 굳이 모든 걸 다 풀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이 대감이 주위 다른 고을에 알려 계속 해서 현석과 가족들의 행방을 쫓을 수도 있기에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점도 있었다.


전쟁이란 단어에 아이는 형과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사람들인가?”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아이의 언행에 옥경은 흠칫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입을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산 아랫자락에 커다란 무언가와 사람들이 있는 걸 보았어. 하나같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말이야.”


아이는 애써 그들의 흉내 내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의 말이 맞다면 북한군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왔다는 의미였다.


옥경은 아이와 그 남자에게 말한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야 얼른 도망가야 해!”


그때 옥경의 배에서 소리가 크게 들린다.


꼬르륵~


아이는 옥경의 얼굴과 찢어진 옷가지를 보더니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옥경이 얼마 동안이나 음식을 먹질 못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아이는 형을 보며 자루를 들고 말한다.


“형, 이거 이 누나랑 나눠 먹자? 어때?”


아이의 말에 덩치가 큰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의 반응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옥경에게 말한다.


“알겠으니까 누나.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여긴 밤이면 멧돼지가 돌아다녀서 위험해. 이 시간에 이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죽을 짓이야.”


옥경은 처음 만난 그들의 호의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아직 현석이 돌아오지 않았고 그가 이 어두운 숲속에서 돌아다닐 것만 생각하면 걱정되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멧돼지가 돌아다닌다는 아이의 말에 더욱 현석이 걱정되었다.


옥경은 이들이 현석을 보지 않았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교복을 입은 사내 녀석 하나 못 봤어? 나보다 조금 작고 왜소하게 생겼는데.”


아이는 놀란 눈으로 그 남자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옥경에게 말한다.


“어! 봤어. 혹시 약간 넋이 나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산길을 헤매길래. 우리가 무사히 산 아래로 돌려보냈어.”


옥경은 혹시나 현석이 산 아래에 있는 북한군에게 잡히지 않았을까 염려하였다.


아이는 그런 옥경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마. 아무래도 그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 같아서 그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내려보냈어.”


아이의 말에 옥경은 한시름 놓았다.


그때 그 남자는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아이에게 다가와 횃불을 돌려주고 어깨를 툭툭 쳤다.


아이는 그 의미를 알고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누나 얼른 가자. 형이 멧돼지 울음소리를 들은 모양이야. 이래 봬도 우리 형 귀가 정말 좋거든.”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는 횃불을 휘저으며 주위를 살피더니 뱀이 든 자루를 어깨에 메고 돌아섰다.


주위에 멧돼지가 있다는 말에 겁을 먹은 옥경은 결국 그들을 따라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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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쿠키 항아리 25.02.11 6 0 14쪽
110 혹시 몰라...... 25.02.10 6 0 10쪽
109 아름답고 이상한 25.02.08 5 0 12쪽
108 잠시만요! 이거 표절...... 25.02.07 5 0 16쪽
107 쿠키 25.02.06 5 0 15쪽
106 산타의 나라 25.02.05 5 0 12쪽
105 성인이란 무엇인가? 25.02.04 5 0 12쪽
104 정해진 운명 25.02.03 5 0 11쪽
103 재회 - 1부 끝 25.01.18 7 0 13쪽
102 마지막 이별 25.01.17 6 0 16쪽
101 형과 동생 25.01.16 8 0 15쪽
100 마을 25.01.15 5 0 10쪽
99 도망 25.01.14 4 0 13쪽
98 열매 25.01.13 6 0 15쪽
97 곳간 25.01.11 6 0 14쪽
» 그 남자와 아이 25.01.10 5 0 12쪽
95 두번째 이별 25.01.09 7 0 15쪽
94 이 대감 25.01.08 6 0 13쪽
93 새벽녘 25.01.07 7 0 11쪽
92 다음날 새벽 25.01.06 8 0 11쪽
91 그날 밤 25.01.04 8 0 9쪽
90 쌍둥이 25.01.03 8 0 13쪽
89 그동안 수고했네. 25.01.02 8 0 13쪽
88 극적인 연출 25.01.01 7 0 14쪽
87 살아 돌아왔다. 24.12.31 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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