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 진출
“인터뷰 한다고 해”
다경이 내가 전화를 받는 동안 앞에서 입모양으로 말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언제로 시간을 잡죠?”
그러자 존 힐 기자가 자세한 것은 문자로 넣어주겠다고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시간에 뵙도록 하죠.”
나는 약간 찝찝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사건 이후 언론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생긴 게 사실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뭐 켕기는 거 있어?”
다경이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켕긴다기 보다는 또 내가 모르는 무슨 새로운 사건이 생겼나 해서”
“무슨 일이 있겠니? 요즘 네가 잘 나가니까 그냥 인터뷰 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럴까?”
나는 아무래도 MLB 사무국에서 조사한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간 게 아닌가 해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징계 같은 게 떨어졌다면’
나는 속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플레이오프에도 못 나가는 거 아닌가? 그러면 가뜩이나 어려운 팀에 나까지 민폐를 끼치게 되는 건데.’
“인성아, 너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걱정이 있는 거 같은데. 나한테 솔직히 털어놔 봐.”
다경이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 톤으로 내 침묵을 깨뜨렸다.
“걱정은 무슨. 지난번에 MLB 사무국에서 조사가 나왔는데 혹시 나쁜 결과가 나왔을까봐 그러는 거지.”
“나쁜 결과가 나올 이유가 있어? 모든 걸 다 소명했다며?”
“그래도 혹시 몰라서”
“괜찮을 거야. 우리 나가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다경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일어서자 다경이 가까이 오더니 팔짱을 끼었다.
“어?”
“왜? 이상해? 여기선 이러고 다녀도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던데”
“아니, 그건 그렇지만”
나는 다경의 과감한 행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처음 만날 때부터 다경은 늘 나의 허를 찔러왔다.
“난 그쪽이 누군지 알아요.”
내가 다경에게 말을 붙이기를 망설이자 다경이 먼저 내게 건넨 말이었다.
그 말 때문에 나는 용기를 내서 다경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더니 오늘은 먼저 팔짱을 낀다?
나는 다경이라는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내가 정말 좋아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앤가?’
하지만 다경은 나의 의구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더욱 살갑게 몸을 붙여왔다.
“너 지난 번 내가 어떤 남자애하고 친하게 지내는 걸로 오해했지? 그 애는 같은 동아리 남자애야. 특별히 사귀거나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구. 더구나 걘 여친이 따로 있었어.”
“근데 걔를 쳐다보는 네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그건 네가 그렇게 봐서 그런 거지. 나는 그냥 밤길에 우리 집까지 바래다 준 걔가 고마워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준 것 뿐이었어. 걔네 집이 우리 아파트 옆 단지거든”
“그래?”
나는 다경의 말을 듣고 약간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괜히 감정이 과잉되어서 내가 질투의 속마음을 들켜버렸던 것 같아서였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걷는 사이에 어느 새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저기 가서 먹자.”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날 밤처럼 나는 피스타치오 맛을, 다경은 초코 바나나 맛을 시켰다.
미국에서 낮에 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그 때보다 더 달콤했다.
내가 다경의 눈을 바라보며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때 웬 미국 남학생이 내게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인성 장이죠? 저 찐 팬이에요. 다저스 경기 잘 보고 있어요. 정말 멋져요.”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사인 공세에 약간 당황했지만 곧 그가 내민 공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한 학생이 사인을 받아가자 곧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우리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다경은 내가 미국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거봐, 너 스타 됐다고 했잖아.”
나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얼른 먹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런 거에 익숙지 않아서...”
“이제 곧 익숙해질 거야.”
나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너 차 어디에 세웠어? 내 차는 여기 있는데”
“내 차는 반대편에 있어. 태워다 줄래?”
나는 다경을 태우고 그녀가 지시하는대로 캠퍼스 도로를 요리조리 돌아서 반대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기야. 저기 서 있는 빨간색 차가 내 차야.”
나는 그녀가 내리기 전 다경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봐. 민망하게”
“아니, 너무 예뻐서”
그러자 다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지마. 징그럽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다경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우리 자주 연락하자.”
“그래. 나도 응원할게.”
그렇게 나는 다경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LA 타임즈 기자에게문자가 도착했다.
‘내일 오전 10시 어떠신가요?’
나는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존 힐 기자는 다음 날 10시에 정확히 다저스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아직 선수들이 모두 출근하기 전이어서 클럽 하우스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그는 다저스에서 친한 선수가 누구인지, 특별히 차별을 하는 선수는 없는지 물었다.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고 특별히 나쁜 감정을 가진 선수는 없습니다. 저는 저의 팀메이트들이 정말 좋은 선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가 양손을 쓰게 된 계기와 여러 가지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게 된 이유, 그리고 지난 번 커쇼에게 배운 새로운 구질에 관한 질문을 했다.
“오른 팔 팔꿈치를 다쳐 절망하고 있을 때 문득 양손을 다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왼손으로 던지는 연습을 했지요.
변화구는 제가 만나는 분들마다 다 사정을 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직구만 가지고는 성공하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그는 곧 이어 이제 곧 다가올 플레이 오프에 임하는 나의 각오를 물었다.
“제가 실제로 선발로 등판하게 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상황에서 나가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존 힐 기자는 내가 걱정한 MLB 사무국의 징계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힐 기자에게 지금 사무국에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먼저 물었다.
“그건 나도 들은 바가 없어요. 그런데 별다는 소식이 없다는 것은 별다른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나는 존 힐 기자의 이 말에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존 힐 기자는 자신이 예전에 취재해 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직접 물어볼 것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내년 시즌에 오타니가 투수로 돌아오고 일본에서 사사키 선수가 다저스와 계약하면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은 그야말로 아시아 선수들로 채워질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내가 계속 선발로 잔류하고, 오타니가 돌아오는 걸 전제로 하면 우리 팀의 로테이션 순서는 오타니 – 야마모토 – 사사키 – 나- 그리고 커쇼 아니면 플래허티 혹은 뷸러가 맡게 될 것이다.
요즘 들리는 소문으로는 커쇼나 플래허티가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정확한 로테이션이 어떻게 될 지는 내년 시즌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아시아계 4명에 미국인 1명이 로테이션을 구성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나는 다저스 마운드를 일본인 3명이 채울 정도로 인재풀이 두텁다는 게 부러웠다.
아니, 지금은 다르빗슈나 센가, 키쿠치같은 선수들이 다른 팀에 있지만 만의 하나 이 선수들까지 다저스로 오면 다저스의 마운드는 명실상부하게 일본인들이 차지할 수도 있다.
나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더 들어와서 일본 선수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후에 팀에 복귀하니 로버츠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아마 며칠 후에 열리는 포스트 시즌에 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지나가는 나를 황급히 불렀다.
“인성, 너는 이번 레귤러 시즌 마지막 경기와 와일드 카드 게임에는 등판하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오프 1차전에 나가라.”
다시 말하면 정규 시즌 마지막 시리즈인 샌프란시스코 전과 와일드 카드로 올라온 샌디에고와의 경기에는 등판하지 말고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 뉴욕 메츠와 붙을 것 같으니 그 게임에 나가라는 것이었다.
로버츠 감독의 생각은 경기 수가 적은 와일드 카드전은 플래허티와 야마모토 그리고 뷸러 같은 베테랑들이 차례로 나가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만일 한 게임을 지면 다저스의 막강한 불펜을 동원한 불펜데이로 운영할 복안을 가진 듯 했다.
뉴욕 메츠는 1번 타자 프란시스코 린도어를 비롯하여 마크 비엔토스, 피트 알론소, 스탈링 마르테 등의 강타자들이 즐비한 팀이다.
비록 금년 시즌에는 내셔널리그 동부조에서 필라델피아에 이어 애틀란타와 동률을 이루는 바람에 타이브레이커까지 치르며 와일드카드로 올라왔지만 저력은 만만치 않은 팀이다.
더구나 메츠의 1차전 선발은 일본인 투수 코다이 센가로 결정되어 있었다.
센가는 이번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하여 단 1승에 ERA도 3.38에 이를 정도로 부진했지만 작년 시즌에는 12승 7패에 ERA 2.98을 기록할 만큼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그의 포크볼은 유령 포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낙차가 커서 긁히는 날에는 타자들이 거의 손도 대지 못할 수준이다.
나는 샌디에고는 한 번 이겨 보았기 때문에 메츠라는 새 팀과 상대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츠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5승째를 올릴 수 있는 찬스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코칭 스태프들로부터 메츠에 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받아 들었다.
거기에는 메츠의 예상 라인업과 그 라인업에 들어간 선수들의 기록, 장단점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특히 프란시스코 린도어라는 선수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그는 포스트 시즌에 156타석 타율 .263에 8홈런 21 타점 OPS .822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친 8홈런이 모두 중요한 순간에 나온 홈런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당연히 이 선수 앞에 주자를 내보내면 안된다.
마치 다저스의 오타니 앞에 하위 타선 타자들을 내보내면 안 되듯이 메츠도 린도어 앞에 하위 타선 타자들을 내보내면 위험하다.
메츠의 하위 타선은 호세 이글레시아스, 타이론 테일러, 프란시스코 알바레즈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오른손 타자들이다.
나는 커쇼에게 다가가 메츠의 타선들을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우선 직구를 많이 던지지 말고 유인구로 잡아내는 게 좋아. 윌 스미스가 알아서 리드해 주겠지만 강속구만 믿고 던지다가 낭패를 당한 투수들을 여럿 보았어.”
“7,8,9번의 하위 타선도 변화구로 승부할까요?”
“그렇지. 직구는 보여주는 용도나 허를 찌를 때만 사용하고 바깥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나 밑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같은 공을 잘 섞어 사용해 봐. 나는 주로 커브를 사용했거든”
나는 커쇼의 조언을 머리 속에 넣고 프라이어 투수코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프라이어 코치 역시 커쇼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직구를 너무 아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필요하면 과감하게 몸 쪽으로 찔러 넣으라고 하는 점만이 달랐다.
“너 너클볼 던질 수 있잖아? 가끔씩 섞어 던져봐.”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어떻게 던져야 할지 대강 감이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직구를 던지되 남발하지는 말아라.
슬라이더나 스플리터를 활용해라.
가끔씩 너클볼을 활용하여 허를 찔러라.
대략 이 세 가지 조언이었다.
나는 정규 시즌이 끝나는 순간까지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그려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저스는 샌디에고와의 와일드카드 3연전을 2승 1패로 끝내면서 마침내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첫 게임에 내가 등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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