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속 김대리는 광전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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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셔눅
작품등록일 :
2024.10.01 11:30
최근연재일 :
2024.10.21 23:59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701
추천수 :
59
글자수 :
81,593

작성
24.10.01 11:32
조회
124
추천
4
글자
11쪽

오늘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습니다.

DUMMY

“시발... 저것들은 뭐야...”


무너져 버린 일상이 주는 공포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어제도, 오늘도 매일 같이 들어와 죽어라 일한 사무실이었지만 변화된 세상 속, 어둠이 짙게 깔린 이곳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사무실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는 어둠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 속에는 자신을 향한 이유 모를 적의가 담겨있었다.


“그르렁”


위협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을 헤엄쳐 나온 그것들은 남자가 알던 무언가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고블린(Goblin).


녹빛 피부와 작은 체구.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길쭉한 코와 귀는 매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허름한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거칠게 손질된 나무 몽둥이로 무장을 하고 있는 초록의 도깨비.

흔히들 사람들은 그것을 고블린이라 불렀고 실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도 여러 매체에서 다양하게 표현된 친숙한 생명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묘하게 반가워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을 그 작은 악몽들이 달려드는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


“김대리!!”


오늘도 어김없이 고성으로 시작하는 하루.

아침부터 또 무슨 지랄을 들을지 이제는 걱정조차 되지 않았던 남자는 자신을 향해 매섭게 눈을 부라리는 작은 키의 배불뚝이 중년남자의 자리로 걸어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너 임마. 대리란 놈이 자료를 이따위로밖에 못 만들어?”


부장이 지시한 업무는 불과 전날 밤이었다.

그 전날 밤도, 전날 아침도 아닌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인 전날 밤.

심지어 그것은 부장 자신이 만나기로 되어있던 외국바이어와의 미팅을 위한 자료였다.

며칠 전부터 외국에서 중요 고객들이 방문 예정이라고 대표가 재차 얘기했지만 그는 골프를 치러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으로 인해 방문 당일인 오늘까지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부장님께서...”


“뭐?! 얌마!! 이거 너 때문에 계약 날라가면 어떻게 책임질거야? 어?!”


을의 위치에 있는 남자는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르며 부당함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것이 이곳에서 생존하는 유일한 생존법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아직 시간 좀 남아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다듬어보겠습니다.”


남자가 자리로 돌아가며 부장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발가락 양말과 손을 깍지를 끼며 혀를 찼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알아서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꼭 이렇게 소리를 쳐야 돼, 내가?”


타인에 대한 존중보다 무시와 멸시, 타인을 위한 배려보다 날 위한 욕심과 속임수.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 이곳이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좋소. 이곳에는 더더욱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김대리님, 괜찮아요? 너무 기분 쓰지 마요.”


자리로 돌아온 남자의 옆에서 남자를 위로하는 여자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한 손으로는 남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어보였다.

성심성의를 다해 전하는 위로.

하지만 남자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들어가 뒤 따라 들어온 여직원들과 함께 부장의 얘기를 했다.


“요즘 부장님 유달리 김대리님한테 까칠하시네.”


“그러게 김대리님이 일부러 자료 준비 안한 것도 아니고.”


“뭐...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대리님?”


“아니, 뭐. 그냥~ ”


“뭔데요?”


“아니~ 별건 아니구. 어제 김대리님 저녁에 자리에 없던 거 보니까 그냥 퇴근한 거 같던데. 부장님도 미리 시켰는데 제대로 안하고 그냥 퇴근했으니까 화가 날수도 있지.”


“어머, 진짜?”


“아니~ 뭐, 그렇다는 얘기야. 그냥~ 워라벨이네 뭐네 그런 거 중요한 거 알긴 아는데... 나도 좀 답답하다.”


안대리.

김대리보다 1년 먼저 입사한 그녀는 김대리에게는 사람 좋은 척 행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몰래 김대리에 대한 인식이 안 좋게끔 설계하고 있었다. 김대리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평가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일일이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 불씨가 거의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3년.

교수의 소개로 들어온 중소기업. 하루 빨리 돈을 벌어야 결혼도, 가족도 부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낸지, 아니 이곳에서 버텨 낸지 3년이 되는 오늘이었다.

김대리의 나이는 29살이 되었다. 남들보다 많았던 머리카락은 살짝 모자라보였고 자기계발에 사용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운동은커녕 제대로 된 식습관도 갖추지 못한 몸뚱아리는 안에서부터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수면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악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눈 밑의 다크서클은 점점 짙어져 갔고 직장 상사의 폭언과 주변 동료의 이간질에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사는 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곳을 그만 둘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 결혼해야지. 제대로 된 집은 구하고 결혼하고 싶어.”


“...그래, 그러자.”


달콤한 신혼생활을 꿈꾸며 안정적이고 행복한 결혼을 이루고 싶은 예비 신부의 바램.


“이번에 네 동생 유학비 좀 보태줄 수 있을까?”


“...그래, 알겠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 두 가지를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이 회사에 몸담고 있었다.

변변찮은 학벌, 스펙. 그는 자신의 일생의 절반을 아르바이트에 쏟았고 그런 삶이 후회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수였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인정을 받으면 어느 곳에서든 잘 할 자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자 그는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라리 오늘 당장 세상이 망한다면...’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은 마음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회사를 나가기 싫은 날, 그냥 뭐든 풀리지 않는 날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만약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인걸까?


***


“피해!”


옆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정신을 차린 김대리는 황급히 몸을 틀어 작은 도깨비가 휘두른 묵직한 나무 몽둥이를 피해 옆으로 굴렀고 둔탁한 소리가 바닥을 내리쳤으나 김대리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다른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나무 몽둥이가 관자놀이에 가까워졌을 때 김대리는 시야 안에 들어오는 고블린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실루엣을 보았다. 고블린에 집중된 포커스는 찰나의 순간 또 다른 실루엣으로 옮겨갔고 그는 이내 그것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안대리님?!”


연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골프채를 힘껏 휘둘렀다.

후두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붉은 색 피와 함께 고블린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는 구원자였지만 김대리는 감사의 인사보다는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정신차려요!”


그녀가 김대리의 목숨을 구해줬다.

대표란 작자가 사무실에서 틈만 나면 연습이랍시고 줄기차게 휘두르던 골프채를 그 작은 체구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리고 김대리에게 손을 내밀고는 그를 일으켜 세워 자신과 함께 이 상황을 타개하게끔 이성을 되찾게 했다.


“고맙습니다, 안대리님.”


겨우 정신을 차린 김대리는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건넸고 그것이 들리진 않았는지 아니면 일부러 못 들은 척 하는 것인지 안대리는 대꾸하지 않고 눈앞의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대략 10마리 정도 남아있는 이들은 동료가 죽자 울부짖으며 세차게 발을 굴렀다.

하지만 거대한 분노에 안에는 골프채를 들고 있는 안대리에 대한 공포심도 서려있었기에 쉽사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김대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도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만한 것을 찾았다.


[녹이 조금 슨 몽키스패너 - Lv 1]


그때 김대리의 뒤편에 놓여져 있던 몽키스패너의 바로 위에 녹색 글씨로 해당 몽키스패너의 이름이 허공에 뜬 것이 보였다.


‘이건 뭐지?’


눈앞에 뜬 초록색 글자를 신경 쓰기에는 지금은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다.

김대리는 녹이 조금 슬어있긴 했지만 지금의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지에만 집중했다.


그러고는 몽키스패너를 집어 들었다.

그립감은 물론 헤드 부분에 무게감이 느껴져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소 폭력적인 문장이 떠올랐다.


‘머리를 부수기에는 딱 좋겠어.’


***


[30분간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제한 시간 동안 모두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존해주세요.]

[웨이브 종료까지 30:00]


갑작스러운 지진, 건물이 붕괴되면서 보인 것은 파란색 글자로 된 문구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창밖의 혼돈과 곧이어 이어진 정전, 그리고 건물 밖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김대리는 한 가지 단어에 집중했다.


생존.


***


안대리의 옆에서 경계태세를 갖춘 김대리는 눈앞에 보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웨이브 종료까지 15:43]


[웨이브 종료까지 15:42]


[웨이브 종료까지 15:41]


‘아직 반밖에 안 지났네.’


앞으로 버텨야 하는 15분. 15분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 못했으나 적어도 15분간 눈앞의 고블린들의 공격으로부터 버텨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의 고블린들로부터 어떻게 버텨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그르렁...”


“안대리님, 제가 신호하면 탕비실로 뛰어요.”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그나마 멀쩡하게 문과 같이 남아있는 공간. 실내와 연결된 창문도 없어 외부에서 출입하기 위해서는 문외에는 없는 현재로서는 완벽한 패닉룸이었다.


김대리는 발로 의자를 걷어차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고 안대리는 그 길로 탕비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고블린들은 우왕좌왕하며 소리를 질러댈 뿐이었고 그 덕분에 김대리는 다른 한 손에 쇠파이프를 챙길 시간조차 벌 수 있었다.


건물의 잔해들과 사무실의 의자와 책상들은 자신들을 쫓아오는 고블린들에게 있어서 방해물이 되기 충분했다.

더욱이 시간에 쫓겨 심리적으로 초조해진 그들은 방해물들로 인해 좁아진 통로로 인해 뒤엉켜 김대리와 안대리를 쫓아오기 더욱 어려워했다.


안대리가 탕비실로 들어갔고 김대리도 그 뒤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이 작전은 김대리가 자신을 구해준 안대리를 믿었기에 실행했던 것이다. 그녀를 먼저 들여보내도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도 충분히 안전할 것일 거라는 판단.

하지만 안대리를 믿은 것이 가장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점점 닫혀가는 문틈사이로 보이는 안대리의 눈빛을 보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 개 같은 년.”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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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첫 번째 메인 퀘스트 : 던전 공략(1) - 대화 24.10.21 11 2 10쪽
16 불공정 계약 24.10.20 15 1 10쪽
15 세상일은 때론 생각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24.10.20 18 2 11쪽
14 피의 광기 24.10.15 22 3 10쪽
13 수상한 리더 24.10.15 27 2 11쪽
12 튜토리얼이 종료됩니다. 24.10.13 25 3 10쪽
11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24.10.12 29 3 11쪽
10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닙니다. 24.10.10 31 5 11쪽
9 아윌비백 24.10.09 3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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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던전에 갇혀 버린 날. 24.10.07 41 4 11쪽
6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지 말자. 24.10.07 45 4 10쪽
5 위험한 외출 24.10.05 50 4 11쪽
4 기싸움 24.10.05 55 5 12쪽
3 아무도 안 계세요? 24.10.03 61 4 12쪽
2 생존에 미쳐있습니다. 24.10.02 72 4 11쪽
» 오늘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습니다. 24.10.01 12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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