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에 미쳐있습니다.
“문열어!!!!”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며 문고리를 밀고 당겨도, 분노를 실은 주먹으로 부서져라 문을 두드려도 열릴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굳게 닫혀버린 문 앞에서 김대리는 잠시 안대리에 대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점을 뒤늦게 상기했다.
“시발...시발...!”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매일 같이 물고 뜯던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구도, 가족도, 사랑하던 사람마저도 냉정하게 버릴 수 있는 무서운 인간이라는 것을.
“키에에에에엑!!”
망연자실할 시간조차 없었다.
동료가 죽어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고블린 10마리가 장애물 역할을 해주던 책상과 의자를 거침없이 부수며 자신을 향해 죽일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살의에 조금은 겁을 먹었지만 자신 또한 이대로 순순히 그들에게 목숨을 넘겨줄 의향은 없었다.
양손에 든 쇠파이프와 몽키스패너를 꽉 쥐고 고블린들을 향해 돌아서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래, 와라!!”
어쩌다보니 자신의 등을 지키기 위해 탕비실을 등지고 마치 탕비실 안에 혼자 숨어들어간 안대리를 지키는 원하지 않던 모습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 상황마저도 안대리가 노렸던 한 수 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자 더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난 꼭 살아남는다...!’
측면에서 책상을 밟고 뛴 고블린의 공격을 몸을 뒤로 젖혀 피한 뒤 쇠파이프와 몽키스패너를 동시에 내리찍어 고블린의 머리를 단숨에 뭉게버렸다.
고기로 둘러싼 단단한 수박을 깨부수는 느낌과 함께 쇠파이프가 울리는 소리까지... 불쾌한 감각이 전신에 흘러들어왔고 아직까지도 이것이 단순히 게임이 아닐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지니고 있던 김대리는 생경하게 느껴지는 첫 살해의 감각으로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되었다.
“키에에에엑!!”
“뭐 씨발!!!!”
자신들의 또 다른 동료 하나가 머리가 부서져 처참하게 죽자 고블린들은 더더욱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고 김대리 또한 그들의 분노 섞인 외침 못지않게 목이 찢어질 정도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으로 생존에 대한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며 달려들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정면에 있는 고블린의 어깨를 내려찍어 자세를 무너뜨리고 몽키스패너로 고블린의 머리를 두차례, 세차례 내려찍었다.
고블린의 머리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그의 피가 잔뜩 묻은 몽키스패너에는 살점이 눌어붙었다.
고블린의 눌어붙은 살점이 쿠션 역할을 한 탓에 모서리로 인한 공격 효율이 반감되었다. 그로 인해 즉사하지 않은 고블린은 몽둥이를 휘둘러 김대리의 오른쪽 갈비뼈를 가격했다.
“커헉!!”
거품을 입에 물 정도로 숨이 잠깐 막혀 몸을 움츠렸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고블린을 향해 온몸을 내던져 들이 받고는 그대로 쓰러뜨린 고블린 위에 올라탔다.
몸무게로 짓누르며 쇠파이프와 몽키스패너를 미친 듯이 번갈아 내려찍어 무자비하게 머리를 다져 또 다른 고블린의 목숨을 빼앗았다.
“하... 하악... 시발!!”
잠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몽둥이들이 날아 들어와 자신의 몸을 두들기자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휘둘러 거리를 벌렸다. 고블린의 눈에 쇠파이프를 창처럼 꽂아 죽이고 죽은 고블린의 몽둥이를 빼들어 남은 고블린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생존에 대한 집념.
집념을 넘은 광기가 된 생존을 향한 그의 집착은 이성을 잠식해 자신이 패고 찌르고 있는 것들이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했다.
방금까지 손아귀에 남아있던 폭력에 대한 불쾌감은 물론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살해 행위에 대한 망설임도 사라져버렸고 폭력과 살해에 점차 익숙해져갔다.
그저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 했던 행동들은 이제 자신의 적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공격을 휘둘러 목숨을 빼앗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김대리의 분노를 넘어 광기어린 살의에 절반의 동포가 죽자 고블린들은 뼛속 깊이 두려움을 느꼈다.
“난... 살아남는다...!!”
***
[웨이브 종료까지 00:15]
죽은 고블린들의 시체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김대리는 자신의 피인지 고블린들의 피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피웅덩이 위에 처참하게 짓이겨진 고블린들의 살점과 내장들이 뒤엉켜 있었고 아직 신경이 살아있는 시체는 움찔거리며 고통에 반응하고 있었다.
“끝... 끝났다...”
비록 생존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그저 30분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직장인이었던 자신이 무참하게 살해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왔던 사람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점차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에에엑...!!”
과도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둔화됐던 감각들이 돌아오면서 온몸의 고통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애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살해에 대한 거부감들은 구토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직 살아 있었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고블린보다 가장 쳐죽이고 싶은 여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의외로 실력이 좋네. 덕분에 살았어, 김대리.”
사람 속을 긁는 언제 들어도 역겨운 말투.
김대리가 힘겹게 작성해서 만든 제안서도 교묘하게 안대리 자신의 것으로 가져갔을 때도, 안대리가 펑크 낸 고객과의 약속에 대신해서 나가 고개를 숙여가며 수습을 했을 때도, 연이은 야근에 피곤에 쩔어 회식 자리에 가지 못했지만 술에 쩔은 안대리의 대리기사를 강요받았을 때도...
언제나 따뜻함을 가장한 비열한 미소와 감사를 모르는 무미건조한 말투를 하고 자신을 이용하고 나면 끝끝내 돌아오는 말.
“의외로 실력이 좋네. 덕분에 살았어, 김대리.”
고블린을 열이나 죽였는데 사람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다시금 몽키스패너를 들고 곧바로 안대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손을 올려 안대리의 머리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푸른 색 글자와 함께 알람이 울렸다.
[웨이브 종료 00:00]
[웨이브 종료 00:00]
[축하합니다, 생존자 여러분들. 웨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목표 달성에 따른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멸망 후 첫 번째로 맞이했던 위기가 끝났다는 메시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격하게 끓어올랐던 분노는 차츰 식어갔고 차분해져가는 심장에 이성을 되찾은 김대리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안대리를 죽이기 위해 높이 들었던 몽키스패너는 허리춤에 꽂았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으니까 이제 그만 꺼져주세요, 대리님.”
3년이라는 시간동안의 사회생활로 인해 습관처럼 나온 존칭.
이것은 그녀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아니, 그래도 상황도 상황인데 같이 행동 하는게 낫지 않겠어?”
김대리는 이를 악물었다. 뻔뻔해도 유분수지. 목 끝까지 차올랐던 욕을 간신히 참고 그녀를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려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회색
[구속의 사슬], [누더기 천옷], [부러진 몽둥이]
초록색
[고블린 노예의 팔], [고블린 노예의 다리], [멈춰버린 고블린 노예의 심장]
눈앞에는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내용의 메시지가 보였다.
고블린들의 시체 속에 보이는 초록색과 회색 글자로 기재된 무언가를 나타내는 명칭들.
‘아이템들인가...’
이것은 흡사 RPG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이템들의 이름 표기법과 유사했고 이름의 색깔이 다른 것은 색깔에 따라 등급이 구분된다는 것을 김대리는 알 수 있었다.
[전리품은 몬스터를 해치우는 데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차등으로 전리품이 지급됩니다.]
[전리품은 손짓을 하면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보관됩니다.]
[인벤토리에 보관된 전리품 뿐 아니라 모든 아이템은 언제든 다시 불러 꺼낼 수 있습니다.]
전리품들을 바라보자 떠오른 문구로 대략적인 전리품 획득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색깔에 따른 등급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설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 앞에 보이는 보라색 글자로 된 이름의 전리품은 어떤 용도인지 알기 어려웠다.
[지도 조각 - 고블린 노예왕의 거처]
‘지도 조각?’
눈앞에 보이는 보라색 이름의 지도 조각에 손가락을 대자 8인치 정도 크기의 작은 사각형으로 된 반투명이 지도가 펼쳐졌다.
지도상에서 깜빡이는 포인트가 있었고 아마 그것이 이 지도 조각이 나타내는 고블린 노예왕이 있는 지점을 표시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에는 필요 없겠지만 언젠가 멸망한 이 세상에 익숙해지게 되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김대리는 손짓해 지도를 접었다.
-띠링
[아래 전리품을 모두 입수하였습니다.]
[고블린 노예의 팔 x6, 고블린 노예의 다리 x4, 멈춰버린 고블린 노예의 심장 x10, 구속의 사슬 x3, 누더기 천옷 x6, 부러진 몽둥이 x5, 지도조각 - 고블린 노예왕의 거처]
‘팔, 다리들이 쓸모가 있으려나?’
자신이 입수한 전리품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김대리였으나 이 세상에 대한 시스템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겨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짝이 맞지 않는 팔과 다리가 있는 것에 굳이 연연해하지 않았다.
안대리는 잠시동안 허공에 손짓하는 김대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리에게 다가가 그의 행동의 의도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도 보이는 초록색 글자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지 봉투 모양의 아이콘과 함께 김대리의 눈앞에 또 다른 문구가 보였다.
[당신의 광적인 살해 행위에 누군가가 경의를 표합니다.]
‘경의?’
김대리는 편지 봉투 모양에 손을 대었다.
[핏빛 신사가 당신의 광기에 주목합니다.]
[생존을 위해 지금처럼 피가 튀는 살해 행위를 보여주세요.]
[언제나 붉은 핏빛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붉은 문구는 의문만 남긴 채 금새 사라져버렸다.
김대리의 주변에는 더 이상 회수할 전리품이나 아이템이 남아있지 않았다.
고블린의 시체와 붉은 핏자국이 가득한 혼란스러운 사무실. 모든 혼란이 일어나고 아직 3~4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어둠은 가실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띠링
그 때 웨이브의 시작을 알렸던 파란색으로 빛나는 문장이 허공에 크게 나타났다.
[제한 시간 내 파티를 꾸리세요.]
[제한 시간 - 15:00, 현재 파티원 01/04]
첫 번째 혼란이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그리고 김대리는 파티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나지막이 읊조렸다.
“시발...”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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