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외출
[제한 시간 48:34:42]
기숙사를 나온 지, 아니 회사를 빠져나와 목적지를 향해 걸은 지 하루가 경과되었다.
평상시보다 피로감이 배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평상시와는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건물 잔해를 넘고 길가에 넘쳐나는 시체들을 피해 길을 걸었다.
무언가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들과 시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피냄새들과 고약한 오물냄새가 섞인 대기는 오염되어 한발을 내 딛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듯 했다.
“저희... 조금 쉬었다 가요...”
몸이 멀쩡한 사람도 걸어가기 힘든 거리였다. 그만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다리의 상처로 강과장에게는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고된 걸음이었다.
상처의 회복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마저도 제한시간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앞으로... 이틀 정도...’
게다가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온전히 걷고 휴식하기만을 반복한다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길을 지나는 때마다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그들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았다.
고블린 뿐만이 아니었다.
미쳐버린 들개들은 아무리 고통을 줘도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고통 따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복부에 강과장의 날카로운 마대자루가 박혀있더라도 강과장의 목을 향해 입질을 계속했다.
송아지 크기 정도로 비대해진 비둘기들은 날카로운 부리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하지만 비대해진 몹집과는 달리 뇌의 크기는 그대로라 뭉쳐 다니며 날아오르다 서로 부딪혀 동료들끼리 공격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미쳐버린 들개가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고 비둘기들은 그저 그들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면 잘만 피할 수 있었다.
“젠장...! 또 나타났어!”
하지만 이 중 가장 이들을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고블린 스토커(Goblin stalker)였다.
“키키키킥!!”
일반적인 고블린에 비해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평범한 고블린들과는 달리 지능이 비상했다. 연두색, 녹색, 짙은 풀색 등 색의 명도만 다를 뿐 대개 녹색 계열에서 벗어나지 않는 피부색을 하고 있었지만 이 개체는 조금 달랐다.
“도망쳐!”
검은 색의 피부를 한 이 개체는 다른 고블린들처럼 어딘가에 속박되어 의무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들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선제 공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김대리의 파티를 응시하고 있었다.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김대리 또한 그들이 그리 위협을 주는 몬스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언가 친절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눈동자는 김대리에게 충분히 경계심을 심어주었다.
고블린 스토커들은 김대리의 파티가 지나온 길을 따라오며 그들을 관찰했다.
김대리 또한 그들을 눈치 챘지만 섣부르게 그들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파티에서 유일한 공격인원은 김대리 본인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빠지면 이 파티는 전멸이다.’
고블린 스토커들도 김대리가 자신들을 향해 먼저 공격해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는지 점차 대범하게 개체수를 늘려가며 파티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것은 마치 사냥의 때를 노리는 하이에나와 같은 불길한 전조였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사냥에 돌입했다.
“저리 꺼져!!”
고블린 스토커들의 무서운 점은 비상한 머리도 있었지만 그 특이성으로 인한 집요함에 있었다. 작은 체구를 커버하기 위해 더욱더 잔혹하게 상대를 상처입히고 확실하게 상대의 목숨을 끊어 죽일 수 있게 잘 제련된 무기들은 김대리의 파티가 갖고있는 엉성한 무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대리님! 살려주세요!”
“으아아악! 김대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블린 스토커들이 여지껏 그들을 사냥하지 못했던 이유는 김대리의 생존에 대한 집요함 또한 그에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기에 가까웠고 김대리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원동력이었다.
“죽어!!!”
그렇게 잘 잡은 고블린 스토커의 수는 4마리였다.
8마리였던 동료들의 수가 반으로 줄자 고블린 스토커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물러났다.
머리가 비상했기 때문에 김대리의 파티가 위험에 처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머리가 비상했기 때문에 파티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잘 했어요, 김대리님. 역시 믿음직하다니까.”
안대리는 여전히 강과장과 정인턴의 위험에는 몸을 숨긴 채 김대리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지금껏 몬스터들에게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은 강과장과 정인턴, 그리고 김대리 자신 뿐이었다.
“대체 어디에 가 있던 거에요?”
김대리는 안대리를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안대리는 몬스터에게 위협받지 않았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구해줘야할 목숨이 줄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만큼 멀쩡한 상태의 전력이 준다는 뜻이기에 김대리는 안대리의 몫까지 더욱 열심히 몬스터를 죽여야했다.
“저는 싸움을 못해서요. 싸움은 우리 김대리님한테 맡길게요. 기숙사 나올때도 그랬잖아요. 김대리님이 다 처리하시기로~ 기억 안 나시나?”
“하...”
김대리는 당장에라도 그녀의 머리를 깨부수고 싶었지만 최소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할 수는 없었다. 김대리는 더 이상 언쟁을 하지 않고 고블린 스토커의 전리품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아래 전리품을 모두 입수하였습니다.]
[고블린 스토커의 팔 x3, 고블린 스토커의 다리 x2, 멈춰버린 고블린 스토커의 심장 x4, 고블린의 피 묻은 단창 x2, 부러진 고블린 칼 x1, 멀쩡한 고블린 단검 x2, 멀쩡한 고블린 칼 x1]
‘고블린 칼과 단검이라.’
그동안 쥐고 있던 공구들보다 훨씬 더 무기스러운 느낌의 전리품을 손에 넣은 김대리는 고블린 칼을 손에만 쥐었다.
거친 질감의 손잡이와 코등이가 없는 칼은 칼이라기보다 날카롭게 제련된 철 덩어리에 가까웠다. 손잡이 끝에 붉은 털실 뭉치가 달려있지 않았으면 그것은 더더욱 칼이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몽키스패너보다 무게가 나갔지만 그 무게감으로 인해 오히려 휘두르는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기분 좋나 봐요? 새로운 장난감을 얻어서?”
“뭐라구요?”
“아니에요~”
안대리는 김대리의 모습을 보고 한 마디 조롱을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안대리는 종종 김대리의 속을 긁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투 중에 모습을 감추는 것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 전투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오늘은 우선 여기서 묵으시죠.”
***
[제한 시간 32:27:40]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걷고 휴식하는 것만 반복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 괴물들을 상대하며 쌓인 피로도로 인해 목적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피곤에 찌든 이들이었다.
“거기 누구십니까?!”
30시간 이상 경과되자 처음으로 본인들 이외에 처음으로 들은 사람의 목소리.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손전등으로 김대리와 그 일행들의 모습을 비추며 신원을 확인했다.
“그 쪽은 누구십니까?”
눈이 부시게 비춰오는 손전등 불빛을 손으로 가리며 김대리가 대신 대답했다.
“저흰 생존자입니다! 혹시 군인은 아니신가요?”
“안타깝지만 저희도 생존자입니다!”
“아 그래도 다행이네요! 반갑습니다!”
두 그룹은 거리를 좁혀오며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후줄근해진 김대리 파티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왼쪽 가슴에 우림 가구라는 명찰이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있는 이들은 김대리 파티가 걸어온 곳과는 반대 방향에서부터 걸어왔다.
이들 역시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우림 가구라는 곳에서 일하던 가구제작자들 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도 뭐 마찬가지로 같은 회사 사람들입니다.”
김대리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 사람은 구반장이라는 이들의 리더격 인물이었다.
덥수룩하게 나있는 수염들과 헝클어진 머리카락들은 그간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작업복에 듬성듬성 묻어 있는 핏자국들은 이들 또한 갑작스레 멸망한 세상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살해라는 행위를 망설이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도끼가 살벌하네...”
김대리의 뒤에서 강과장이 작게 속삭였다.
이들과 김대리의 파티가 다른 점은 그들은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무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끼를 들고 있는 구반장을 시작으로 못총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박사원, 직소를 손에 들고 있는 최사원과 등대기톱을 등에 맨 성사원까지.
비록 등에는 고블린 스토커로부터 얻어낸 칼을 매고 있었지만 직전까지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휘두르던 김대리나 부러진 마대자루를 사용하고 있는 강과장, 장도리를 들고 있는 정인턴에 비하면 우림 가구의 생존자들은 말 그대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몇이나 죽였어요?”
그 때 빨간 머리로 염색을 한 성사원이 김대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김대리에 비해 나이도 어려보이는 그는 180cm인 김대리에 비해 머리하나 차이 나는 신장을 지녔지만 왜소한 몸에 비해 거친 기세와 호전적인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몇이나 죽였냐라.
“야이 이놈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구반장은 성사원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꾸지람을 했다.
“죄송합니다. 아이 요 어린놈의 자식이 세상이 멸망하고 나니까 머리가 어떻게 됐나봅니다.”
“괜찮습니다.”
“뭔 괴물새끼들 죽이는 걸로 경쟁을 하고 지랄이야!”
김대리는 구반장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성사원을 향해 말없이 다섯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성사원은 김대리의 손가락을 보고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양손을 모두 펼쳐 보이며 자랑해보였다.
김대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성사원은 내심 강해보이는 김대리에 비해 자신이 죽인 몬스터의 숫자가 많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성사원은 김대리의 사인은 한 자리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실까요?”
구반장의 제안에 김대리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척봐도 모든 인원들이 높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김대리는 자신과 자신의 파티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김대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무언으로 의사를 물었다.
그들 또한 우선은 뭉쳐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좋습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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