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여덟 명을 모두 죽인 김대리의 모습은 자신이 알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매일 뒤통수를 쳐도 아무런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김대리.
그를 대놓고 폄하하고 깎아내려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김대리.
심지어 갑작스레 찾아온 아포칼립스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위해 김대리를 고기방패로 사용했는데도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너무나 순진한 그런 김대리였다.
“기... 김대리...”
그랬던 그가 아무렇지 않게 고블린이나 다른 몬스터를 죽이듯이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무기를 들고 있는 건장한 성인 남자 여덟 명을.
이는 안대리 자신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렸다.
김대리는 창을 한번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휘두르더니 안대리의 귀를 잘라냈다.
“꺄아아아악!!”
고통에 신음하며 귀에서 흐른 피가 안대리의 목 아래로 흘러내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안대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의 순간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아파, 아파!!’
‘누구야? 누가 그랬어?!’
‘왜 손에 피가 묻어있지?’
‘귀가 너무 아파... 왜...?? 내 귀가 왜 아파?’
상처부위를 막으며 자신이 흘린 피를 직접 본 안대리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기... 기, 김대리! 자... 잠깐 내말 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차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주춤할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김대리는 창을 다시 고쳐 잡고 그녀의 어깨를 찔렀다.
“아아아아아악!! 시... 시발!!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좀!!”
그녀의 발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대리는 이번에는 그녀의 허벅지를 찔렀다.
“이 미친새끼야!!!!”
안대리의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시선을 올려 자신의 앞에 다가온 죽음의 사신을 마주하자 안대리는 다리에 입은 상처도 잊어버린 채 무릎을 꿇었다.
“대... 대리님! 김대리님! 제... 제가 잘못했어요! 지...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누가 시켰어! 진짜 시발 누가 시켜서 그래!!”
무릎을 꿇은 허벅지에서는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닥을 적실 정도로 뿜어져 나왔지만 그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누가 시켰는데?”
김대리는 창을 그녀의 목에 대고 차갑게 물었다.
“헤헤... 헤헤헤... 대... 대리님도 알잖아요? 우... 우리 같은 특별한 사람들한테만 보이는 선택받은 메시지!”
정신이 나가버린 것인지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피 묻은 손을 합장하고는 하늘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신? 핏빛신사가 신이라고?’
그녀는 무엇인가 단단히 착각하는 듯 했다.
특별한 사람들이라던가, 선택을 받았다던가, 자신을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메시아라도 되는 것 마냥 주변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김대리 자신 뿐 아니라 안대리 또한 핏빛신사처럼 보이지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누군가와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뭐... 뭐야?”
그러자 보라색의 메시지가 안대리의 눈 앞에 보였다.
[음침한 모략가가 안대리의 경솔함에 경고를 보냅니다.]
“시...발 무슨 이런 상황에 경고야 경고는!! 내가 지금 뒤지게 생겼는데 이 모ㄹ...!”
더 말하려고 했던 안대리는 마치 무언가가 입안에 들어간 듯 더 이상 말을 하지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웁...! 우웁?”
그녀의 주변에 보랏빛의 연기가 피어오르며 굵직한 손가락 형태를 희미하게 갖췄다. 손가락은 안대리의 입안에 들어가 있었고 천천히 안대리의 입이 가로로 찢어질 정도로 점점 더 많이 들어갔다.
“아악... 와아아악...!”
안대리는 괴로워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위, 아래로 들어간 총 열두 개의 손가락은 윗니와 아래턱을 붙잡은 형태를 하고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악!!!”
안대리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턱이 비정상적으로 벌어져가며 아래로, 아래로 점점 더 찢어져갔다.
뿌득거리는 뼈가 벌어져 부러지는 소리, 근육이 찢어지고 살이 늘어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며 벌어지는 상처부위에서 점점 피가 흘러내렸다.
“하... 하려져...!”
살려달라는 마지막 외마디와 함께 안대리의 턱이 완전히 찢겨져 나갔다.
배꼽아래까지 길게 찢어져 몸이 찢기며 그녀의 내장까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체가 되어버린 그녀는 힘없이 땅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
미지의 존재에 의해 잔혹하게 몸이 찢겨진 그녀의 모습을 본 김대리는 말없이 시체가 된 그녀를 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고 했지만 자신의 의도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죽임당해 처참한 모습이 된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잘 가요.”
나지막이 속삭이는 김대리는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안대리를 포함한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도 마치 몬스터처럼 전리품들이 눈에 보였다.
김대리는 안대리와 사람들의 시체에도 손짓을 해 전리품들을 인벤토리에 채워 넣었다.
하지만 그리 생각보다 많은 것은 얻지 못했다.
그들은 쓸 만해 보이는 것 위주로 입수하며 이곳까지 온 듯했기 때문이다.
“김대리님...?”
“형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김대리는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온 안대리와 성사원을 보았다.
빛을 잃어버린 그의 눈동자에 두 사람은 두려움을 느꼈다.
김대리는 그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안대리를 처참히 죽인 연기의 형체가 공중에 흩어져 사라지기 전 침묵을 원한다는 듯 보라색 손가락을 입술에 갔다 댄 행동을 취한 것을 떠올렸다.
“별 일 아니야.”
***
[파티의 인원이 부족합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조건이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임무 달성을 위해 파티 인원을 보충하십시오.]
[제한시간 15:00]
15분까지는 딱히 필요 없었다.
여기 서로 파티를 원하는 생존자가 마침 두 명, 두 명 씩 짝지어 있었으니 말이다.
김대리는 구반장과 성사원에게 파티를 권유했다.
“좋아. 대신 이 난리가 어디서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부터 해주게.”
김대리는 구반장의 요구에 한숨을 작게 내쉬며 안대리와의 관계부터 세상이 멸망한 뒤 안대리의 만행과 자신이 던전에 갇혀버려 지금 모습을 드러낸 얘기까지 간략하게 전달했다.
안대리라는 사람을 신용하지는 않았던 구반장도 자신의 파티가 갑자기 겪게 된 이 상황에 그녀를 한시라도 빨리 내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구반장은 납득을 하면서도 김대리가 숨기고 있는게 있음을 탐탁치 않아했다. 하지만 인간의 소행임이 아닌 것이 분명한, 사람을 손쉽게 찢어 죽이는 미지의 존재를 구반장 본인의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더는 김대리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럼 보금자리까지 잘 부탁하네.”
[파티 인원수를 달성했습니다. 이대로 파티를 조직하시겠습니까?]
[Yes / No]
“고맙습니다.”
김대리는 구반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대리마저 배신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부하 직원이자 소중한 전우들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구반장의 마음을 김대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대리 자신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구반장은 끝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을 믿어주었다.
[Yes]
[파티를 조직하였습니다.]
그 사실은 김대리가 구반장을 끌어안고 보금자리까지 가야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럼 이제 다시 이동하실까요?”
“아... 그 전에...”
구반장은 김대리를 보며 머뭇거렸다.
“뭔가 용건이라도 남으셨을까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구반장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김대리는 알 수 있었다. 구반장의 시선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신의 동료들에게 향해있었다.
“저 분들도 데려 가시죠.”
그제야 구반장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모두가 자신의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이 험하고 궂은 길을 마다하지 않고 위험천만한 몬스터들을 헤쳐 나가며 이를 악물고 보금자리까지 오는 이유. 그 이유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시체가 됐어도 그들의 가족들이 애타게 자신의 아들, 남편, 혹은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생각하면 구반장은 그들을 이 흉한 곳에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보금자리까지 김대리는 구반장, 성사원, 정인턴과 박사원, 최사원, 그리고 강과장까지 총 일곱 명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
김대리는 강과장을, 구반장은 박사원을, 성사원은 최사원을 업었다.
이대로 몬스터가 나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헛된 기대와 불길한 생각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키에에엑!”
길목에 남아 있는 고블린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료까지 업고 있는 상황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한없이 불리했지만 김대리는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평소만큼 빠른 움직임은 순식간에 달려드는 고블린의 목을 쳐냈다.
너무 강해져버린 김대리의 모습을 본 성사원은 감탄했다.
“안대리가 형님을 죽이려는 이유가 있었네요.”
“근데, 안대리한테는 어쩌다가 당한거야?”
안대리는 끝까지 안대리다웠다.
김대리가 던전에 갇힌 4시간 동안 김대리가 사라져버렸고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으니 우선은 자신이 파티의 리더가 되어 이끌겠다고 했다.
당연히 주변인들은 김대리를 두고 가는 상황에 너나할 것 없이 불만을 표했지만 안대리는 다시 모략을 펼쳤다.
김대리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는 두고 먼저 가라고 하셨어요! 라는 말을 반복하며 걸음을 재촉했고 그 이후 갑작스럽게 마주한 생존자 파티에게 다가간 안대리는 그들에게 무어라 속삭였고 이후 그들로부터 기습을 당한 강과장과 박사원, 그리고 최사원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 뒤는 김대리가 나타나서 그들을 모조리 죽인 것이다.
“형님이 그 때 딱 나타나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김대리도 간담이 서늘했다.
조금만 더 그 던전에 잡혀있었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테니.
“저기 봐요!”
정인턴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경기장이 보였다.
그리고 경기장 위에는 파랗게 빛나는 글자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보금자리]
- 작가의말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