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퇴사합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김대리를 비롯한 파티원 대부분이 보금자리로 들어왔다.
경기장 입구를 지나자 드넓고 푸른 인조 잔디밭이 펼쳐졌다.
비록 듬성듬성 비어있고 지면이 갈라진 부분이 있고 경기장의 관중석과 돔으로 된 천장이 깨져있는 부분 때문에 아포칼립스의 분위기를 버리진 못했지만 이곳이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성사원이 기지개를 펴며 뒤로 누우며 말했다.
자신의 등에 최사원이 업혀있다는 것도 잊은채 말이다.
“으악!! 죄송합니다!”
“야, 이 멍청아!! 정신 안차려?!”
구반장도 긴장이 풀렸는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평소처럼 성사원을 꾸짖으며 꿀밤을 때렸다. 정인턴은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모두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존에 대한 압박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한까지 몰려있었던 것이다.
‘보금자리가 맞네.’
김대리는 이미 도착해있는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며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찾기 위해 보금자리 안쪽을 돌아다녔다.
울며 잔디밭 위를 걸어 다니는 이들이 있었고 관중석 위에서 목 놓아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쏟으며 서로를 부둥켜 안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가족들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 행운의 사람들이다.
“시발... 역시 없나...”
그리고 행운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대리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입구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이미 포기하고 잔디밭에 앉아 땅바닥을 치며 통곡을 했다.
자신이 부양하고 있는 가족들, 미래를 약속한 여자친구. 세상이 멀쩡할 때는 어쩔때는 좀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자신에게 기대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많고 바라는 것과 지켜줬으면 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김대리는 언제나 그들에게 무심했다.
늘 그들이 옆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가족이 곁에 있는 평범한 삶이 계속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상이, 평범함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지금처럼 일상과 평범함을 잃어버리고 난 뒤였다.
김대리는 파티원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
“괜찮아요.”
하지만 그 모습을 정인턴에게 보였다.
어느새 김대리의 뒤에 와 있는 정인턴은 말없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김대리는 정인턴의 행동에 괜찮은 척하거나 그녀를 피하지 않았다. 지금은 본인조차도 스스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만히, 그리고 조용하게 흐느끼며 마음속으로 가족의 안전을 기도했다.
“근데... 정인턴 가족 분들은...?”
마음이 진정된 김대리는 눈물을 닦고 정인턴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울음 때문에 코가 막혀 코맹맹이 소리로 묻는 것이 우스웠는지 정인턴은 웃음을 보였다.
“아... 저는 가족이 없어요.”
김대리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했네요.”
당황해하는 김대리의 모습에 정인턴은 손사레를 치며 김대리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그녀는 고아였다.
부모도, 형제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던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지원을 받아 다닌 후 그 뒤에는 졸업 후 편의점, 찜질방, 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곳이 김대리가 있는 회사였다.
회사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곳에 들어와 일해본 것이 여기가 처음이었기에 아무리 직원들이 이상하고 회사의 시스템이 엉망이어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정인턴에게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되니 회사 또한 어쩔 수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서운했다.
“다 잘 될 거에요.”
“그렇겠죠?”
김대리는 정인턴을 위로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펼치며 애써 웃어보였다.
잘 될 거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세상이 불바다가 된 지옥 같은 상황에서 하는 희망찬 격려와 기대가 다른 이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오히려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을 몇 번이나 구해준 김대리가 하는 말이었기에 조금은 신뢰가 가고 안심이 되었다.
[제한시간 00:05:30]
[제한시간 00:05:29]
“어머 어떻게 해...!”
“빨리! 빨리 들어와요!”
그때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알람이 전광판에 떴다.
사람들은 모두 입구에서 소리치며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응원했다. 어떤 사람은 직접 보금자리 밖으로 나가 다친 사람들을 부축해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힘내요! 힘내!!”
“자 여기요! 제 손잡아요!”
가까스로 들어온 사람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잔디밭 위에 드러누웠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들어온 부상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모두가 무사히 들어올 수는 없었다.
제한시간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보금자리 안의 사람들조차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제한시간의 종료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안의 사람들은 밖의 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목소리를 크게 높여 응원하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죄송해요...!”
심지어 어떤 이는 다리가 불편한 밖의 사람들을 구조 하다 말고 그를 두고 먼저 보금자리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제한시간 00:00:00]
[제한시간 00:00:00]
“어서들어와요!!”
“조금만 더 힘내!!”
“아... 안돼!”
“난 들어갈 수 있다고!!”
“도와주세요!!”
안에서 밖의 인원들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와 밖에서 안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는 알람에 가려져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제한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보금자리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그리고 던전에 갇혔을 때와 같이 경기장에 장막이 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장막은 조금 달랐다. 반투명의 형태로 바깥의 상황이 보이는 장막이었다.
반투명의 장막은 입을 닫는 것처럼 틈하나 없이 위,아래로 맞물려 외부와 완전한 단절을 이뤘다.
“으아아악!!”
그리고 반투명의 장막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젠장!!”
“살려줘...웁!!”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에 집중해 시선을 돌렸다.
비명과 함께 사람들의 머리가 점점 부풀어 올랐고 비대해지는 이마와 압력으로 튀어나오는 눈동자, 코와 입은 그 구멍이 찢어져 하나가 되고 마침내 풍선이 부풀어 터지듯 사람의 머리도 터져 주변에 파편을 남겼다.
“꺄아아아악!!”
“시발 저게 뭐야!!”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로 비명을 지르며 이 광경을 목도했다. 어떤 이는 열리지 않는 장막을 두드렸고 어떤 이는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 그 어딘가의 감정에 사람들은 휩쓸려 보금자리 내부에는 어느새 두려움만이 남아있었다.
목만 남은 사람들은 그대로 땅바닥 위로 쓰러져 움찔거리며 피를 쏟아내며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끔찍한 죽음을 보며 한편으로는 만약 주어진 임무 중 하나라도 실패했으면 몬스터에게 죽거나 아니면 저렇게 머리가 터져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다행이에요, 시간 안에 들어와서...”
정인턴도 김대리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 모순적이게도 두 사람, 아니 보금자리 안의 사람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아, 글쎄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 때 경기장 안쪽이 시끄러워졌다.
“아뇨 똑똑히 봤어요!”
“얌마! 니가 뭘 봐, 보기는!”
“이 사람 자기 도와주려는 사람 밀쳐서 시간 안에 들어왔어요!”
“이 어린놈의 자식이! 못하는 말이 없어 어른한테!”
“밖에서 죽은 사람 생각은 안 해요?!”
“글쎼 나 아니라고! 난 아까 들어왔다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은 김대리와 정인턴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반쯤 까진 머리, 튀어나온 배. 이기적인 말투와 타인을 무시하는 철저히 오만한 태도.
나이가 곧 사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꽉 막힌 생각은 그의 태도와 말에서 철저히 드러났다.
박부장이었다.
“어어! 김대리!!”
두 사람은 그를 외면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야, 김대리! 너도 살아있었어? 이야~ 이거 정말 반가운데?”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반가워 할 만큼의 친밀한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박부장은 그를 탐탁치 않아했고 김대리 또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포칼립스가 찾아온 탓인지 박부장은 김대리에게도 친밀함을 보이는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무슨 꿍꿍이지?’
김대리는 박부장의 속내를 의심하며 그의 반가운 인사를 철저히 무시했다.
“야!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박부장.
그는 그저 김대리로부터 필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원한 것이었다.
그의 부름에 김대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았을 때 김대리의 마음속에는 그를 향한 내적 분노가 가득했다.
안대리만큼이나 혐오했고 그와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김대리 오랜만이야!”
여전히 김대리에게 친밀한 척 손을 흔드는 박부장의 모습을 보자 김대리는 속이 뒤틀렸다.
그리고 그 동안 품 속에서 고이 간직하고 썩혀두고 있던 흰 봉투에 사직서라고 쓰여진 봉투를 꺼내었다.
“부장님.”
그는 박부장을 불러 사직서가 들어있는 봉투를 가장 세게 얼굴에 던졌다.
“이 새끼가 미쳤나?!”
박부장은 김대리의 사직서를 맞은 뒤 얼굴에 붙은 봉투를 뒤집었다.
한문으로 친절하고도 크게 적힌 문자. 그리고 박부장은 분노에 사로잡혀 김대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가 멱살을 잡자마자 몸이 거꾸로 들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김대리는 땅에 박혀있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부로 퇴사합니다. 이 시발새끼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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