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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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김태재
작품등록일 :
2024.10.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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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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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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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식구(1)

DUMMY

뭐, 곰?

이게 그 아까 들었던 곰 사체의 고깃덩이?

그냥 곰 새낀데?


“내놓아라! 난 배가 고프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놈이 태어난 지 몇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곰이라는 것이다.

고깃덩이가 아닌 게 어디야.


“먹고 싶으면 부탁을 해.”

“내가 왜 너 따위에게 그런 부탁을 해야 하지?”


녀석의 송곳니는 뾰족하긴 해도 작았다.

세상 무해해 보인다는 말이다.

걸려있는 건지, 안 놓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의 덜미를 잡아당겼다.

일단 이건 고생한 우리 애 먹을 밥이라서.


“아아! 놓아라!”

“난 작고 귀여운 것에 약한 편이긴 하다만, 너 지금 내 구역에 들어와 놓고 밥 내놔라, 놓아라 명령질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냐? 곰은 영역에 민감한 동물로 알고 있는데.”

“어차피 인간보단 곰이 더 강하다!”

“······?”


난 엉망이 된 고등어구이를 내려놓고서, 군장 배낭의 절반 정도밖에 안 하는 곰을 들어 제대로 살폈다.

일단 말하는 것을 보니 먼지 같은 DDE 영향 개체인 듯하고, 새끼인 것을 보아 주변에 어미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녀석이 주장하는 ‘강하다’는 의견은 다소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비쩍 말랐고, 다시 들어 무게를 재어 봐도 작고 가벼웠다.


“어미는.”

“없다.”

“뭐, 박혁거세냐?”

“눈 떠보니 이 숲이었다.”


옛날, 웹소설 같은 데나 나오는 전개에 헛웃음이 났다.


“언제 깨어났는데?”

“오늘 아침.”


오늘 아침이라면, 헌터국에서 찾고 있다는 그 ‘정체불명의 수상한 고깃덩이로 추정되는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


“정체는 뭔데?”

“강력한 힘을 가진 곰이다!”


먼지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고, 나약한 새끼 주제에 악을 쓰는 모양새가 말이다.

새끼 곰은 자꾸만 고등어구이 쪽으로 눈짓하며 침을 죽죽 흘렸다.

이걸 헌터국으로 보내버려야 하나, 밥을 줘야 하나.

언제 죽더라도 나랑은 상관없는 돌연변이 개체지만 어쩐지 남 같지 않았다.


“이거 줄 테니 꺼져라.”

“···안 그래도 떠날 거니까 인심 쓰는 척하지 마라.”


어른 말하는데 따박, 따박 말대꾸는.

새끼치고는 말본새가 영 별로다.

뭔가 회귀나 환생 같은 걸 해 어린 곰 새끼가 된 거라면 모를까.

난 이미 너덜거리는 고등어를 녀석의 입에 물려 후문으로 돌려보냈다.


“별 것 아닌 놈 같아서 보내준다. 이 근처엔 얼씬거리지 마라.”

“뭐, 뭣? 퉤! 나도 더러워서 다신 안 온다!”


여긴 마물 처리반에 이어 맹수인 우리 먼지까지 있어서 한 말인데, 괜히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놈은 고등어를 허겁지겁 먹더니 훌렁, 풀숲으로 사라졌다.

몸이 작고 검은 놈이니, 숨어 사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별놈 다 보겠네.”


난 서둘러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을 우리 먼지를 위해 고등어를 한 마리 더 꺼냈다.

어쩐지 바깥에 어수선한 소리가 났지만 무엇이 어찌 되었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노릇한 고등어를 또 하나 구웠다.


“잘 도망갔겠지.”


* * *


월요일 새벽.

먼지를 데리고 산책을 갈까 싶어 둘러보니 헌터국 사람들은 모두 철수한 뒤였다.

월요일이라서 그런 건지, 아님, 그 마물 사체 조사가 끝난 것인지는 미지수다.

다만 장막이 걷혔고 그 자리에 있던 마물 사체 조각들이 깨끗하게 처리되었기에 잘 처리 된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스승님.”

“어, 일찍도 왔네.”

“전화로 전달 드리기엔 보안 문제가 있어서요.”

“뭔데.”


파랑이가 아침 일찍 헬멧도 없이 달려와서 하는 말은 나에 관련한 이야기였다.

어제, 이준호라는 헌터국 사람이 나에 관한 신상을 묻기에 대충 얼버무렸다는 것.

그는 이번 대피 당시 나의 행적들에 관해서도 물었다 한다.


“거기에다, 이번 그 마물 사체 조사건 말입니다.”

“아, 어.”

“학교나 재단 동의 없이 진행된 것이라, 쫓겨난 것입니다.”

“쫓겨나?”


천마재단의 모체인 천마그룹의 회장이 그 이야기를 접하고 극대노를 했단다.

천마산은 영험하기 그지없는 명산이며, 마물들을 학교로 끌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다 망쳐 놓은 주제에 무슨 조사를 하겠다고 무단침입한 것이냐며 말이다.


“헌터국이 와서 조사하고 다 치워주는 게 그리 나쁜 일인가.”

“그 양반이 좀, 그런 편입니다. 제 것 남 못 주는 성정이다 보니.”


마물 조사를 통해 재해 지구로 판명나면 그 즉시 해당 지역은 국가 관할로 편입된다.

아포칼립스 이후 천마그룹은 나라에 수많은 것들을 내주면서도 딱, 이 산과 학교 일대를 내어주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양반 꽤나 욕심 많고 고지식한 양반임이 틀림없었다.


“아무튼, 지금 당장 물러는 났지만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겠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참, 그··· 고양이 말입니다.”

“아, 먼지?”

“예, 삵이지요?”


고양이라고 암만 해 봤자, 구시대 정규교육을 받은 노인들을 속일 방법은 없다.


“맞아.”

“말도 알아듣던데, 마물입니까?”

“마물은 아냐. 말은 좀 하지만.”

“···말을 하다니, 그런 게 마물이죠.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거, 보니 웬만한 고양이보단 크던데요. 어제 보았던 그 곰처럼 변할까 걱정됩니다.”

“착해. 말도 잘 듣고. 몇십 년 동안 내게 발톱을 세운 적도 없어. 나한텐 자식 같은 녀석이야.”

“하지만······.”


제자이자,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살아온 파랑이의 걱정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이 세계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니, 어느 날 갑자기 먼지가 흉포한 마물로 변해버려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스승님을 못 믿는 건 아닙니다.”

“믿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르치면 다 돼. 녀석은 나한테 공존하는 법을 배웠어. 웬만한 고등학생들 정도의 지능이고.”

“그렇게나 고등 생물이란 말입니까?”

“새끼 때부터 키웠거든.”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겉으로 드러내지도 마시고요.”

“걱정은 마.”


괜찮을 거라고 믿는 거 말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파랑이는 내게 몇 가지 더 이번 사건들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신관으로 돌아갔다.


“이럴까 봐 속세에 내려올 생각이 없었지.”


공연히 심란해진 마음에 먼지가 좋아할 식단으로 아침을 차렸다.

나나, 아이들이나, 먼지나, 모두 이 세상에서 환영할 만한 존재들은 아니란 생각에 입이 썼다.


* * *


“오늘부터 정상 수업이다.”

“으엑.”

“저희 이제 다음 단계로 집 짓기 같은 수업하면 안 돼요?”

“학교에 놀러 왔냐? 저, 쳐 자는 김우리 깨워라. 민호야. 유인물 나눠줘라.”

“네엡······.”


그래도 확실히, 저 구관에 있을 때보다 아이들이 활기차졌다.

저들이 만든 교실이라 그런 것인지, 아님, 역경을 함께 이겨냈다는 동질감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건 둘째고. 수업시작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다.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마음과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정해진 교수학습안은 있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울 법한 것만 골라 가르친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 살면서 모르면 안되는 그런 이야기들 같은 것 말이다.


“그 시절에도 아포칼립스가 왔었나 봐요.”

“가을에 별이 많긴 하죠.”

“아무 걱정 없는 거 좀 부럽다.”

“야, 진짜 아무 걱정 없다는 소리겠냐?”


아이들에게 이런 시구나 주제 하나를 내밀면 질릴 때까지 떠든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입씨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고 느끼는 것도 제법 있다.


“우리 별에도 봄이 오겠죠?”


봄은 매년 찾아온다. 기후변화로 변해가도 꽃이 피는 그 계절은 봄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서 우리도 봄을 기다릴까 봐요. 저 때에도 분명 봄이 찾아왔으니까. 우리에게도 봄이 오지 않을까요.”


반드시 올 걸 아니까 기다리는 거다.

비록 그 시인은 그 봄을 만나지 못했지만.


“저 때 사람들도 많이 힘들었겠다.”

“별을 세는 건 저 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우리도 이번에 별 셌잖아요. 주말에 또 여기 오고 싶어요.”

“맛있는 거 왕창 먹고!”

“그게 본심이냐.”

“헤헤. 우리 다음엔 떡 구워 먹어요!”


한 시대를, 그것도 스스로 어찌할 바가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한없이 고된 일이다.

매일을 살 방법을 궁리하고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

어찌 되었든 살아가는 것.


아이들에게 언젠가 봄이 올 거라고, 그러니 우리 같이 별을 헤어보자고.

그런 마음을 담은 수업이었다.


어쩌다 먹는 이야기로 흘러갔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소리내어서 읽어보고 감상 한 줄 이상 적어서 뒤편 나무에 붙여 놔라.”

“네엡!”

“다음 시간은 야외수업. 밭일할 거니까 옷 갈아입고 집결.”

“오! 아······.”

“오후엔 천마산 왕복있어. 알지.”

“예······. 알아요.”


재난 후 월요일이라고 봐주는 법은 없다.

인생 실전인 거, 지난 주에 느껴봐서 잘 알 테니 말이다.


“참, 그런데 구관 공사는 언제 시작해요?”

“오늘 오후부터래. 왜, 뭐 가지고 올 거 있어? 지금 가봤자 남은 게 없을 텐데.”

“급식실에요! 거긴 안 부서졌던데. 상태 괜찮은 것들 좀 더 가져오려고요.”


안 그래도 조리도구가 부족하긴 했다. 쭈그려 앉아 생선 굽는 건 무릎이 다 나갈 일이다.


“텃밭 가기 전에 한번 들르자.”

“넵!”


먼지는 아이들이 수업하는 사이, 볕이 잘 드는 영화관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귀엽다며 한껏 만져주자 녀석은 꽁해있던 기분이 제법 풀린 듯 했다.


“먼지야, 잘 지키고 있어 형아들 저기, 물건 가지러 다녀올게.”

“먀.”

“아이구, 대답도 잘하네.”


녀석들은 막냇동생이라도 들인 마냥 녀석을 귀여워했다.

멍청하게 생긴 얼굴이 뭐, 제법 귀엽긴 하지.


내 입으로 학교 종 흉내를 내자 모인 녀석들은 차에 짐수레를 달고 그 뒤를 따라왔다.

구관에서 다 망가진 비가림막 아랫길을 따라 간 곳엔 급식실이 나왔다.

다행히 입구 쪽만 망가지고 조리실은 쓸만했다.


“조리도구 필요한 거랑, 유통기한 지났어도 밀봉된 거 있으면 챙기자.”

“넵!”


아이들이 기구들을 옮기는 사이, 식재료 창고에 들어선 나는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사사사삭!’ 바퀴벌레 소리 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잠깐만.”

“왜요? 뭐 있어요?”

“어, 그런 것 같아서. 일단 내가 들어가 볼 테니까, 신호 주면 들어와라.”

“왜요, 왜, 또 뭔데요······!”


내 반응에 아이들은 질겁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긴장하진 않았다.


“별거 아니니까 일단 기다려.”

“···넵. 안에 들어가서 꼭 말해 주세요.”

“오냐.”


아이들은 어느새 각종 조리도구를 무기처럼 들고서 문 앞을 지켰다.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될 일인데?


난 조심스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신관에서 받아온 식재료들을 정리해 둔 곳이라 저장 기한이 긴 것들은 여기 냉장고에 보관해 뒀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마주한 것은······.


“안 갔냐?”

“······.”


시꺼먼 곰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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