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유일한 방법
대책은 있다.
그러나 그걸 어디 내세울 생각은 없다.
어차피 요즘 세상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것들 투성이면서도 인간들은 모든 것을 수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기준이 DDE 보유량. 나는 ‘0’이다.
그 ‘0’이라는 숫자는 이 사회에서 그런 의미다.
‘쓸모없음’.
내 스스로가 불로불사이고, 던전 게이트가 열리기 전 핵을 흡수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들,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사회에서 비각성자는 그런 대우를 받는다.
만에 하나 당국이 내 정체를 믿는다 쳐도, 내 안전은 보장하지 못한다. 당장 생포된 마물들처럼 실험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실제로 귀환자의 일부는 소리, 소문도 없이 실종되기도 했다.
그래서 난 귀환자라는 신분 아래 내 지난 40년의 행적을 모조리 지웠다.
“그, 일단 이 손부터 좀 놓으시면······.”
“아, 예.”
자신이 남의 멱살을 잡고 끌고 왔다는 자각마저 없던 것인지. 그녀의 눈은 여전히 새하얀 빛을 발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마력이 들끓고 있군요. 당장에 문이 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겨야겠어요.”
“마력이라는 게, DDE와는 다른 거죠?”
“예.”
짧게 대답한 강용지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꺼내 쓰고서 성큼성큼 산길을 걸어갔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까?”
강용지가 마력을 느끼듯, 난 미약하게 나마, 핵에서 방출되는 DDE를 느낄 수 있다.
그녀가 가는 방향은 핵이 있는 곳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뇨. 마물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네?”
“마물, 이요.”
그녀는 마치 사냥감을 찾는 맹수처럼 날 선 눈빛을 하고서 낙엽진 땅을 뛰어 내려갔다.
“그럼 저는 다른 곳으로······.”
“아니, 같이 움직입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마물들의 마력이 흐르는 중간에 생체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거기 있다는 건가요.”
“아마도요. 거기서 아이들을 만나 들어온 문으로 나가면 됩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무언가와 싸워본 적이 없을 것이다.
뭐, 해 봤자 친구들이나 형제들과 주먹다짐을 해 본 게 전부일 거고, 지금 이곳엔 무기로 쓸만한 것도 없었다.
“따라오십시오.”
핵을 흡수하기만 하면 일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균열 안에서 핵을 없앴을 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아이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행인 점은 지금 느껴지는 DDE의 양도 수영장 라커룸에서 흡수했던 것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아이들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탄내가 점점 가까워졌다.
연기가 퍼지지 않아 시각보단 후각에 의존해야 했고, 내 감각보단 강용지의 눈을 더 믿어야 했다.
“아직은 균열의 공간형성 에너지가 자리 잡기 전이라, 놈들의 마력이 감지되긴 해도 실체를 드러내진 못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투명인간과도 같은 상태죠.”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할 거라는 말입니까?”
“아직까지는요.”
그 말을 하는 강용지의 얼굴은 썩 밝지 않았다.
“혹시, 김 선생님은 할 줄 아는 무술이 있습니까?”
“태권도······는 배웠습니다.”
“언제요?”
“50년 전에요.”
“······.”
“무기는 다룰 줄 아는 게 있습니까?”
“아, 사격할 줄 압니다. 권총부터 샷건까지 잘은 아니더라도 쓸 줄 알죠. 옛날에 천마고에 사격부가 있었는데, 담당 교사도 했었습니다. 그때 용규가 국대 선발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그럼, 받으십시오.”
강용지가 메고 온 가방에서 대 마물용 권총 두 자루가 나왔다.
“양손잡이시던데. 맞습니까.”
“···예.”
“그럼, 장전하세요.”
“예?”
“몸을 숙이시고, 12시 방향 바위 앞으로 쏘세요. 급소는 대략 땅에서 150cm지점입니다.”
“무슨,”
그때였다. 뭔가 묵직한 것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순간 보인 그것은 날 선 도끼였다.
“안 쏘면 당신이 죽습니다. 어서!”
숙이라더니, 날 바닥에 처박은 강용지는 내게 정면을 맡기더니 패도 두 자루를 꺼내 후방의 무언가들을 베어냈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살점이 베어지는 듯 불쾌한 소리가 났다.
탕!
탕!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그냥 감으로만 쏘라니.
이건 국대가 와도 쏘기 힘든 거라고.
탕!
탕!
그래도 난 카우보이라도 된 듯 양손에 쥔 총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강용지가 말한 곳을 향해 두 발씩 쐈다.
“1시 방향 밑동만 남은 소나무 자리 왼쪽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탕!
내가 지금 잘 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날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강용지도 불쾌하다는 듯 몸을 탁탁, 털더니 나무 기둥에 검을 팍, 하고 꽂으며 말했다.
“뭘 믿고 그리 나대시는가 했더니.”
“···나대요?”
“운이 좋았던 걸로 칩시다.”
“제가 뭘 잡긴 한건가요? 제 눈에만 안 보이는 건가요?”
“제 눈에만 보이는 겁니다. 고블린들이 있었어요. 냅다 도끼부터 던지기에, 맞대응한 것이고요.”
“고블린이요? 하지만, 방금 해를 끼치지 못할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
“균열이라는 것은 던전과 우리 세계의 미세한 간극입니다. 일종의 동기화를 위한 중간 지대 같은 거라 보시면 됩니다.”
“점차 형체를 드러낼 거라는 말입니까?”
“네. 아직까진 DDE를 느끼는 게 전부일 겁니다.”
“그 말은······.”
“저를 보고 공격한 거라는 말이죠.”
“······.”
그러니까, 얘 말은 비각성자인 내가 혼자 왔으면 괜찮았을 거란 이야기잖아. 그러게, 바깥에 있으라니까 왜 따라와서 이 사달을······.
“빨리 이동합시다.”
“···예.”
한참을 걸었는데도 해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이 균열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시공간이 뒤틀렸다’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꼭 꿈속의 미로 같은 곳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어쩐지 같은 곳을 걷는 것만 같았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겠죠? 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예.”
어쩐지 대답이 뜨뜻미지근하다.
“아이들이 어디에 있을까요?”
“······.”
강용지는 가던 걸음을 뚝, 하고 멈추고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위엔 까마귀 한 마리가 정지비행하듯 같은 자리에서 날고만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
선글라스를 벗은 강용지는 자신이 서 있던 바닥의 낙엽을 털고, 파헤치듯 걷어냈다.
그러자, 그 아래에 불을 피웠던 잔해가 드러났다.
내가 준 초콜릿 바 껍질과 구워 먹다 남은 밤 껍데기도 있었다.
“여기, 아이들이 있었나 봅니다.”
“예.”
“그럼, 이 근처에······.”
“아뇨.”
“아니라니요?”
“이 근처가 아닙니다.”
바위와 소나무 밑동이 남아 있는 그곳은 한 30분 전 고블린이 나타났다던 그 자리였다.
“하지만, 이건 분명 아이들의 흔적인데······.”
초콜릿 바 비닐을 봐선 분명한데, 뭔가 이상했다. 마치, 불을 피운 게 수년은 지난 일인 것처럼.
지금 이곳엔 온기도,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도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습니다.”
“잘못 왔다고요?”
“지금 제 눈엔 이 자리에 아이들의 생체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총 네 명이고 165cm 정도 되는 아이 하나, 190cm 정도 되는 아이 하나, 둘은 170cm 정도 되는 아이까지 총 네 명이네요. 맞습니까?”
호야, 지훈이, 우영이, 진우가 딱 그 정도하는 신장을 가졌다.
그런데, 여기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균열이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라, 아무래도 잘못 발을 들인 듯합니다.”
“방법은요?”
“방법은······.”
그런 방법을 알고 있다면 지금껏 헌터국이 균열에 들어와 핵 깨부수고 던전 발생부터 막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에 균열의 문을 찾아 나갈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죠. 이 균열을 없애는 것.”
“···그거면 됩니까?”
“예. 하지만 말이 쉽지, 던전 발생 직전 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핵에 노출 시에 변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고요.”
“제가 가진 방법이 그겁니다만,”
“예?”
강용지는 내 말을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
“DDE 감응 능력이 있습니다. 핵을 없앨 방법도 알고 있고요.”
지금 이 상황에선 나를 숨길 필요가 없다.
아니, 어떻게든 아는 대로 다 불고서 이 사람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비각성 능력자입니다. 아, 물론 공인된 것이 아니라 제 맘대로 붙인 이름입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가능하시다는 거죠? 핵은 어디에 있고요?”
“핵은 아까 우리가 들어온 길 반대편, 정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예.”
“못 미더우십니까······?”
“아닙니다. 더 해 보세요.”
강용지는 몹시도 믿기 어렵다는 말투로 날 의심했다.
“제가 올라가 핵을 없앨 테니, 혹시모를 일을 대비해, 여기서 아이들을 지켜주시겠습니까.”
“제가 뭘 믿고······.”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은근히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다 들어가는 것도 다 보인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난 여기서 죽는 수가 있다.
그런데 나만 죽으면 다행이지. 이대로면 아이들도 구하지 못하고 던전은 열릴 것이다.
“절 못 믿으시겠다면 아버지를 믿고 딱 한 번만. 제 말대로 해 주십시오.”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파파걸 강용지는 제 아비 이야기를 하니 태도가 순식간에 바뀐다.
“길만 알려주시면 금방이면 됩니다.”
도박이다. 그녀의 신뢰를 얻어내는 일보다도, 지금 이 상황에서 핵부터 없애 버리는 것이 맞는지가 말이다.
하지만 다른 수는 없다.
“제게 DDE가 없으니 마물들은 저를 보지 못하고, 공격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강 선생님이 여길 맡고 계시는 게 합리적이죠.”
“······.”
한참을 고민하던 강용지는 내게 단검 하나를 건넸다.
“우리가 온 방향으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바위에 붉은 표시를 한 지점이 나오면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세요. 거기서 10분 곧장 가면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 드리겠습니다.”
“······.”
“그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전 왔던 길로 이 균열을 빠져나갈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
“그 말 잊지마시고,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강 선생님이라도 꼭 나가세요. 반드시요.”
남은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둥, 영영 못 돌아올 것만 같은 말을 한마디 더 하려다, 그렇게 친근한 사이도 아닌 마당에 부담될 것만 같아,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용규 볼 낯이 없으니까.”
녀석, 그래도 애는 잘 키웠네.
* * *
타닥, 타닥······.
곧 해가 질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하늘은 밝고, 타오르는 연기는 계속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았다.
핸드폰은 여전히 먹통이었고,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반장, 이 밤 맛있다. 얼른 먹어봐.”
“체 한다. 물도 챙겨 마셔.”
“응. 호야, 너도 먹으면서 까.”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호야와 우영이가 밤을 까는 사이, 지훈이 형은 그저 말없이 허공만 보고 앉아있었다.
“형.”
“어, 반장.”
“밤 먹어. 버섯은 싫어하지?”
“응. 고맙다.”
귀환자는 비각성자라도 우리보다는 대우가 좋은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연구 목적이나 사례 수집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훈이형은 항상 뭔가 우울해 보였다.
“형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마라탕.”
“그게 뭐야?”
“있어. 옛날에, 향신료 넣고 끓인 고깃국물 요리.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
“오, 우리가 먹는 나물국 같은 거랑은 차원이 다르겠네. 어떤 날에 먹었어?”
“꽤 달라. 학교 야자 땡땡이치고 친구들이랑 먹으러 갔었어.”
“좋았겠네.”
“응.”
가끔, 옛이야기를 해달라 그러면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좋았어. 눈 깜짝할 새에 못 먹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먹을 걸 그랬네.”
“그렇게나 맛있구나? 나도 먹어보고 싶다.”
“나중에 만들어 줄게. 레시피는 어디 찾아보면 나올 거야.”
“오, 정말?!”
“응. 정말.”
다른 아이들은 나이도 많아 보이는 형더러 멍돌이형, 돌부처 하고 부르지만. 알고보면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나가면 꼭 만들어줄게. 밤이랑 물은 안 모자라?”
“응. 덕분에.”
“그래. 다행이네.”
우리 중 가장 맏형이라고, 반장인 나보다 아이들을 잘 챙기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험난한 세상에 겨우 믿을 만한 존재 중 하나였다.
“형들, 빨리 와봐!”
“왜, 뭔데!”
“여기, 총알이 박혀 있어!”
“뭐?”
“가자. 혹시 모르니 불 끄고, 조금 외진 곳으로 가야겠다. 누군가 구하러 와 주면 좋겠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
“···응.”
반드시 이곳을 나가, 그 마라탕이라는 걸 꼭 먹고 싶다.
선생님, 얼른 구하러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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