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쓸모
“뭐라고 하셨어요?”
아이들이 하교한 후 교무실에 늘어져 있던 나는 먼지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이것저것 살펴보느라 혼잣말을 잔뜩 하고 있었다.
“인사해도 답도 없으시고······.”
“아, 뭐 좀 생각하느라.”
알 수 없는 존재였던 구함은 생각보다 유용한 놈이었다.
가진 능력이라고는 오래 살고 죽지 않는다는 것, 그 덕에 키운 체력과 살면서 익힌 각종 지식은 제법 후한 ‘스킬’이 되었고 그것들은 또 다른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능력치나 상태를 보여주는 스킬은 노년의 눈썰미를 스킬화한 것인데 제법 쓸모있었다.
다만, 먼지와 단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치이-”
하지만 이 녀석의 기분은 그냥 얼굴이나 행동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삐졌어?”
“아니거든요.”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뭐 안 했어요.”
“뭐 안 하기는,”
꼭 아비와 자식 간의 관계 같은 나와 먼지는 지금 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관계다.
“오늘 맛있는 거 먹으려고.”
“맛있는 거요?”
“응, 샌드위치 만들려고 하는데.”
“···마침 치즈랑 햄 사 왔어요.”
“오, 통했네.”
“흥.”
그러면서 제 덩치만 한 가방을 들고 쫄쫄, 주방으로 가는 녀석이었다.
“빨리 와요. 배고파요.”
“예, 아드님.”
그러자 한 구석에서 꾸물꾸물 시꺼먼 것이 움직이더니, 반짝이는 검은 눈망울을 틔웠다.
“배고프다.”
“단비 너도 그만 좀 누워있고 일어나.”
“피곤하다.”
하는 짓은 영 늙은이가 아닐 수가 없다.
“빨리,”
차려진 밥상은 각양각색이었다.
인간이 먹을 샌드위치와 삵과 곰이 먹을 샌드위치는 아무래도 속이 다르니까.
삵인 먼지는 인간으로 있을 땐 아무거나 잘 먹지만, 고양이에게 위험한 음식 같은 건 좀 빼서 주는 편이다. 예를 들면 양파?
“너희도 들어서 알겠지만, 강용지랑 이준호 씨가 너희들 사정 봐 주기로 했으니 당분간은 종종 나가서 놀아도 좋아.”
“오! 정말요?”
“귀찮은데.”
“김단비, 너 그러다 데굴데굴 굴러다녀. 팔다리 안보이겠다고.”
“김먼지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먼지는 보통의 뚱냥이보다 조금 마른 정도의 체격이지만, 단비는 처음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던 때보다 보기 좋은 정도였다.
방안에 갇혀 사는 것이 답답할 만도 한데, 제법 이 안락한 삶을 즐기는 것도 같아 말은 안했지만 확실히 성장기라, 살이 빨리 붙는 편이었다. 맨날 잠만 처 자니까.
“아, 그리고 먼지야.”
“네. 주인님.”
“강용지가 널 만나보고 싶대.”
잘그락,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절 볼모로 넘기려는 것인가요.”
“볼모는 무슨, 그냥, 순수한 관심인 것 같아.”
“뭐요, 제 배를 가른다고요?”
“······.”
녀석, 강용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들은 뒤로는 강용지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아직 있었다.
이준호 씨에게는 제법 살갑게 말을 잘 거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삼자대면을 좀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거 아냐. 삵을 처음 본대. 무서운 사람 아니야.”
“주인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 속을 다 열어 본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라도 알아. 아무튼, 한번 만나자니까, 내일은 시간 비워둬.”
“···알겠어요.”
“부탁 좀 한다.”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부탁한다는 말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이 한 번의 만남에 세계의 명운이 걸려있다.
잘하자. 김먼지.
“아, 맞다. 주인님. 저 아까 바깥에 나갔다가 이 학교 교복을 입은 애를 만났어요.”
“학생을?”
“네. 그 동네엔 비각성자가 많이 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반이 아닌 다른 반 학생은 처음 봤는데, 걘 DDE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 애도 있나 보지.”
“세상엔 참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단 말이에요?”
“맞아. 그래서 오늘은 뭘 봤는데?”
“아, 오늘은 인기작 재개봉하는 곳에 다녀왔어요! 그건 OTT나 DVD로도 나오지 않아서 주인님께도 없다고 했던 건데, 운이 참 좋았죠!? 참, 오는 길에 팝콘 재료도 가져왔고요!”
“잘했어.”
먼지가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아니, 사실은 나와 구함말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
“거긴 정말 재밌는 게 많은 동네예요.”
구함을 통해 바깥세상을 구경해 오는 먼지가 가는 곳은 단순히 이 천마산 인근을 벗어난 시내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하고 참 닮은 것 같은데, 해를 세는 방법도 다르고, 사람 사는 모습도 다르고, 참 재밌단 말이죠?”
그곳은 40여 년 전 대한민국.
아포칼립스가 오기 전의 시간대의 인근 도시였다.
“천마산도 개발되어서 그런 상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반 아이들도 그런 것들 다 경험해 볼 수 있을 텐데.”
어느 날 생긴 공구함의 은신 기술은 날 과거로 데려다줬다.
평화롭고, 시끄럽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런 시대로.
그리고 먼지는 그런 나를 따라 그곳에 가 세상을 배웠다.
물론, 천마산 바깥을 나가본 적 없는 먼지는 그곳이 다른 지역 정도로만 인지했고, 난 그곳에서 음식과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해 지금껏 살아왔다.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치곤 참 치트에 가까운 능력이긴 했지만.
난 그곳으로 돌아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곳은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과 너무 달라서.
너무 까마득한 과거였고, 그곳은 나의 현실이 아니었다.
그곳의 시간도 흐를 것이고, 다시 아포칼립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미 사라진 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그러게, 그럼 그곳에 갈 필요도 없어지니까.”
“맞죠. 하지만 그곳도 전 나름 재미있어요! 두 다리로 걷는 거 얼마나 편한데요.”
“그래, 거기선 뚱삵이가 아니긴 하지.”
“아니,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요?!”
그래도 이 녀석이 좋아하니까.
아이들도 그곳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좋아하니까.
싫어도 그곳으로 가는 문 하나쯤은 열어 두고 있다.
언젠가, 이곳도 그때처럼 평화로워져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곳이 되길 바라면서.
“왜, 뚱삵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흥이네요.”
“남자가 자주 삐지면 재미없다.”
“뭐? 이, 굴렁쇠 같은 곰탱이가.”
“난 그런 말에 동요하지 않는다.”
먼지가 하악 거리는 데도 단비는 조용히 제 앞에 놓인 디저트를 여유롭게 베어먹었다.
“밥상머리 예절이 없군.”
하루 종일 잠만 자서 한쪽 얼굴이 한 입 먹은 찐빵 같아진 단비가 그렇게 말을 하니, 가만히 구경하던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나 이거 더 주라.”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에 놓인 밤양갱을 보며 침을 흘렸다.
“침 닦고 먹어.”
“응. 고마워, 주인님.”
예의를 말아먹은 것은 본인도 못지 않지만, 자각을 못하는 곰단비와, 아직도 뿔이 난 삵먼지와의 저녁 식사를 마치자 어느덧 새까만 밤이었다.
“야, 김단비. 양치하고 누워.”
“아, 인간. 피곤하다.”
“드러워, 김단비.”
“삵에게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곰가의 수치다.”
“알면 좀 하지.”
내게 지금 아이가 있었다면 아마 딱 이런 모양이겠지.
“나 수업 준비하고 잘 테니 먼저들 자.”
“넵! 무리하지 마세요!”
“응. 좋은 밤.”
어쩐지, 꽉 찬 이 체육관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괜히 허한 밤이었다.
* * *
“주인님?”
바깥이 푸르게 물든 새벽이었다.
수업 준비하다 잠깐 쉰다는 게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요.”
“난로 있어서 괜찮았어.”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불로불사시지만 무병장수하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 번 아프시면 며칠을 앓으시는 분이 쉬지도 못하고······.”
“그동안 오래 쉬었잖냐.”
나이는 들었어도 몸은 그대로인 것은 참 좋은 거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정신연령은 신체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니까.
녀석의 걱정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도, 난 아직 괜찮다.
“오랜만에 쓸모있는 사람 된 것 같으니 좋아.”
“좋으시다니 다행이지만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전 단비 데리고 산책 다녀오려고요.”
“녀석 일어났어?”
“미녀는 잠이 많지만 위대한 미녀는 부지런해야 한다며, 새벽 산책에 깨워달라 하더라고요.”
“별일이네.”
“말투가 이상하긴 해도 제법 귀여워요. 잘 키워봐야죠.”
녀석의 눈빛은 꽤 진지했다.
“제게 부하가 생긴 것은 처음이잖아요? 잘 부려 먹으려면 잘 키워야죠. 하하!”
“그게 목적인 거냐.”
“히히. 암튼, 들어가서 푹 쉬세요. 아이들 등교도 꽤 남았으니까요.”
“오냐. 다녀와라.”
들어간 방안엔 전기장판이 후끈하게 켜져 있었다.
발아래 쪽은 장판이 없는데도 따뜻한 것을 보아, 밤새 먼지가 데워둔 모양이었다.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나이들고 주책이지.
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모자란 잠을 더 잤다.
따스함에 달아난 것 같았던 잠도 금방 들었다.
푹 잠을 자고서 눈을 뜬 것은 해가 가득 든 아침.
바깥에선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고 한쪽에선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꽤 시간이 흐른 듯 했다.
얼른 수업 준비해야 할 터라 몸을 일으키려는데, 물먹은 이불 마냥 몸이 무거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머리까지 묵직한 게 단단히 몸살이 난 모양이었다.
“···먼지야.”
새벽 산책을 다녀온다더니 지쳤는지, 두 녀석 모두 골골 코를 골며 잘 뿐 불러도 답이 없었다.
이것들, 야생동물 출신 맞아?
“먼지······. 하······.”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목소리도 크게 나지 않아 바깥에 있는 아이들을 부를 힘도 없었다.
난 협탁에 둔 체온계를 꺼내 이마에 댔다.
공기가 차가운 데도 열이 38.4도까지 올랐다.
핸드폰을 열어 아이들이 있는 단톡에다 ‘교무실’ 세 글자를 찍어 보냈다.
아무나 본 사람 있으면 좀 와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생님! 왜요!?”
“오! 단비다!”
“와아아!”
아이들은 책상에 내가 없는 것을 보고서, 이리저리 찾아보는 듯하다, ‘강아지로 알려진 곰’ 단비를 발견하고 우르르 몰려갔다.
시끄러워 죽겠다.
“한 놈만 들어와······.”
“우와, 단비 잔다!”
“개 귀여워······.”
내가 하는 말소리는 녀석들에게 들리지도 않는지, 저들끼리 떠드느라 난리였다.
그러다 재진이가 두툼한 먼지의 꼬리를 보고서 내 침대 쪽으로 고갤 빼꼼 내밀었다.
그 뒤로 우리도 나타나 내 상태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 왜 누워계세요······?”
난 겨우 손을 흔들어, 녀석들을 가까이 불렀다.
“···시끄러우니까 한 놈 빼고 다 꺼져.”
“······넵.”
“야! 다 꺼져!”
“왜!”
“쌤 편찮으신 것 같아. 다 꺼져!”
“뭐어!?”
오히려 그 말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시커먼 놈들 열 놈이 내 침대를 둘러싸고 서서 날 구경했으니 말이다.
이거, 내 장례식이냐.
“선생님······.”
“나 안 죽어.”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막둥이 경의가 울자, 몇몇 놈들이 훌쩍거렸다.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
“미친놈들아······.”
“흐윽, 흡······.”
“몸살 난 거니까, 사람 죽이지 마라.”
“으어어어엉!”
“······.”
한참을 대가리 아프게 울던 녀석들은 내가 안간힘을 다해 던진 베개를 맞고서야 진정했다.
“몸살이다. 자습하고. 알아서 체력단련하고. 할 수 있지.”
“네! 당연하죠!”
“그래. 교탁에 수업자료 준비했으니까 유인물 해결하고, 다음 주부터 연극 수업할 거니까 역할도 나누고 보고해.”
“네! 보건실에서 약도 받아올까요?”
“됐어. 그냥 쉬면 돼. 가라. 수업 시작.”
“알겠습니다.”
난 아직 괜찮다고 자신하던 나는 업보빔을 맞아 K.O.패 당했다.
으, 대가리 울려.
서랍에 넣어둔 약을 하나 꺼내 먹고서 다시 잠들었다.
우당탕탕,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운동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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