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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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김태재
작품등록일 :
2024.10.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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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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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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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지하성전

DUMMY

마치, 성전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오래된 곳이긴 해도 아포칼립스 직전까지 관리가 충분히 되어 있던 곳이었던 듯, 거미줄을 제외하곤 나뒹구는 먼지 한톨이 없었다.

잘 깎인 돌로 된 벽을 만지작거리자, 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40년 전까지 대기업이었던 삼전기업의 LED 센서가 달려 있었다. 그때 뭐, 50년까지 보증해 준댔나? 이제 10년 남았다고 알려주고 싶다.


“이건 뭐······.”


사실 던전 발생이나 헌터들이 생겨나며 마법과도 같은 스킬들이 비교적 흔해지고, 지금 나만 해도 이동 스킬이나 상태창 같은 비현실적인 것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지금 이 시대에 신기한 것은 오히려 이런 쪽이었다.

새하얗게 잘 가꿔진 계단을 따라 한 칸씩 내려가자 드러나는 것은 사람의 손을 하나하나 타 만들어진 현실이 만들어진 비현실적 공간.

새하얀 벽에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그려진 불화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놓인 붉은 버섯모양의 핵.


그 앞엔 불교경전들과 웬 인명부가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에 불공을 드리러 오는 이들의 이름을 적은 것과 같이, 가족들의 이름과 기원하는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곳엔 제법 알 법한 이름들이 있었다.


“삼전그룹 이명하?”


그 시대에 사람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재벌총수들의 이름이었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 싼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거대한 핵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그 안에 있는 것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반인의 눈으로 계산하기도 어려울, 수백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은 금은보화들, 그리고 무게가 제법 나가는 팔만 불이 핵의 뒤편으로 주욱 늘어져, 기다란 복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복도의 끝엔 황금빛 문이 하나 있었다.


“눈 돌아가네.”


내가 찾으러 온 것은 이미 확인 되었고.

궁금한 건 이제 저쪽인데.


“구함.”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젠 말 안 해도 아네? 귀신이냐.”


나와 동기화니 뭐니하더마는, 아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내 마음 하나하나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눈치는 좋았다.


“금은 있어?”


[···상당량 있습니다.]


“금 말고 다른 것도 있다는 거네? 근데 왜 알려줄 수 없어?”


[그럴 권한이 제게 없습니다. 하나, 들어가신다면 말리진 않을 것이지만, 추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


궁금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은 어느 정도 챙겨놓아서 나쁠 게 없다. 그리고 무려 황금 팔만 불이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은 상당한 것들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장물아비 같아 보일지 몰라도 이런 금은 화폐보다 과거의 시간에서 사용하기 유리하다.


불상은 그대로 두고서, 목걸이나 골드바 같은 것들을 좀 쓸어 담았다.

범죄가 아니냐고? 이 시대엔 범죄가 아니다. 난 이걸로 내가 호의호식하려는 게 아니니까. 세계의 명운이 달린 문제니까······!


난 자기합리화를 한참 하다, 문 앞까지 다다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일단 핵은 흡수하면 주변이 다 무너질 거고.”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번보다 더 거대한 것이므로 상당한 시간을 취할 수 있으며, 중심핵이 사라지면 파생된 작은 핵들이 가진 에너지를 함께 흡수, 그것들의 시간 역시 흡수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걸 찾았네.”


[따라서, 이 일대는 초토화될 것입니다.]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 근방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좋지 못했으니까.


“금을 다 못 가져가는 것은 좀 아쉽네.”


[후대를 위해 남긴다고 생각하시죠. 그리고 이미 그런 말을 하기에 양심이 없을 정도로 담은 상태입니다. 언행에 주의해 주십시오.]


“아이들을 위한 투자야. 여유로우면 애들 생일에 케이크 사줄 수 있잖아. 과거의 내 통장이랑 비상금에서 찔끔찔끔 뺏어다 쓰는 건 별로였어.”


[도둑에게도 사연은 있으니까요.]


“도둑 취급인 거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우선은 이 세계의 명운, 다음은 아이들의 생존이 내 생존의 이유인 것을.


“위험한 것은 없지?”


[글쎄요. 들어가실 겁니까?]


“뭐, 죽진 않을 테니.”


[······.]


예전에, 구함이 정말 공구함일 때만 해도 난 갖은 위험을 마주하고도 잘 살았다.

물론 녀석이 구해준 것도 있었고, 웬만해선 죽음이 날 빗겨 갈 정도로만 다치곤 했으니까.


[죽진 않을 겁니다.]


무서운 이야기의 시작은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등 뒤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더 나은 것을 향해 겁 없이 달려드는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난 황금 칠 된 문을 열었다.


* * *


“뭐야.”

“······.”

“네가 왜 여기 있어.”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 적힌 금줄이 쳐진 산 중턱.

사표를 기다리고 있던 지훈과 출입금지 요청을 듣고 파견된 용지가 마주했다.

두 사람은 몇 번 마주한 선생과 제자라고 하기엔 다소 날이 서 있는 듯한 눈빛이 오고갔다.


“선생님은요?”


마치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지루한 기다림을 멈추고서 몸을 일으킨 지훈은 저보다 반 뼘은 낮은 곳에 서 있는 용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두 분 연애하세요?”

“···그럴 리가. 재단에서 확인해달라는 게 있어서 온 것뿐이야.”

“아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들어가신 지 한 30분 정도 됐어요. 저도 조금 기다리다가 내려가랬는데, 담임 선생님이 걱정되어서, 강 선생님 오시는 거 확인하고 가려고 기다렸어요.”

“······.”

“그럼, 저 먼저 내려갈게요. 잘 부탁드려요.”

“그래.”


용지는 질문에 대한 당황스러움보다도, 은연중에 풍기는 지훈의 느낌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어린 학생에게서 느껴질 불쾌함이랄 것이 뭐가 있겠냐 싶으면서도, 평소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용지는 괜히 훌쩍훌쩍 산을 내려 가는 지훈의 뒤를 오랫동안 지켜보다 제한구역으로 발을 들였다.


천령사.

1단계 대재앙인 질병 대유행 당시, 이곳에 살던 이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모여 사는 곳들이 취약했던 것에 비해, 이 절의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병사한 이들의 시신은 모두 화장되었고, 이곳은 천마재단의 사유지로 헌터국에선 관여하지도 않아 그대로 방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후는 뭐, 기후재해에, 던전 게이트 사태까지 일어, 사람들에게 잊혀진 곳이었다.


절로 들어가는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담이야 넘으면 그만이지만, 들어간 이가 있으니 열린 문 하나쯤을 있을 것 같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대웅전 후문 쪽이 열려있었다.


“이쪽에 볼일이 있던 건가.”


평범한 절의 형태를 지닌 곳이었다.

열려있던 창고엔 정돈된 농기구 같은 것들이 몇 벌 놓여있었고, 대웅전 뒤쪽엔 부러진 삽이 있었다.


“이 인간은 여기서도 삽질을 했구나.”


다만 그 부러진 삽이 제 기능은 하지 못한 듯, 애먼 땅에 파다 만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지나지 않는 곳이다 보니 한 사람이 다닌 족적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발길한 곳은 대웅전 입구.

그 안에 들어서자, 큼직한 본존불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에 문이 아닌 듯, 문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이 사람은 정체가 대체 뭐야. 도굴꾼인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물어보면 어쩐지 섭섭해할 것만 같은 사표의 얼굴을 떠올리던 용지는 서둘러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바깥과는 달리, 계단마저도 마치 던전에나 있을 법한 신전을 닮은 공간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단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위험하겠는데, 왜 이런 델······.”


지하층에 닿자, 한숨이 탁, 하고 나왔다.


“핵이잖아? 이 인간 대체······!”


다행히 저번처럼 균열이 발생할 정도로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핵이 가진 에너지가 온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걸 못 느꼈지?”


핵에서 뿜어내는 DDE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이 공간 안에 순환되고 있는 마력은 상당한 양이었으나, 자신을 포함한 헌터국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한 점이 의문이었다.

그걸 느끼고 이곳에 온 사표가 더 기묘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둥글게 마감된 벽을 따라 핵의 뒤편으로 가니, 기다란 팔만 불로 이어진 길이 보였다.

그 길의 끝에 나 있는 문에서 이 방을 채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짜, 겁이 없구나.”


용지는 이 겁도 없는 비각성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마력이 흘러넘치는 문 너머를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 스승님만 아니었어도.”


황금 같은 주말 말고는 개똥 같은 학교생활에 발암물질 같은 인간이지만, 그래, 아버지의 스승이니까. 하고 생각하는 용지였다.


* * *


건물에 깔린 채로 죽을 뻔했던 순간, 옮겨진 경험이 있다.

추락하다가도, 마물의 입에 삼켜지는 순간에도 구함에 의해 다른 곳으로 보내지곤 했다.

어쩌면, 나의 스킬은 구함 자체이고, 주특기는 이동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내 자의적인 이동보다는 어딘가로 던져지듯 보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긴 좀 다른데?”


내가 아는 이동이란 것은 최소한 이 지구 한정이다.

다만 지금 놓인 곳은 아, 뭐랄까.


“아하······. 망한 것 같은데.”


[열반에 오르셨음을 알려드립니다.]


“······나갈래.”


뒤늦게 겁을 먹은 나는 서둘러 나갈 문을 찾았으나, 문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가는 문은 스스로 찾으셔야 합니다. 김사표 님께서는 돌아가는 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 써서 이동해 주든가.”


[지금 이곳에 강용지 헌터도 들어와 있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이동 스킬이 없습니다.]


“걔는 왜 들어왔대? 겁 없대?”


사실 겁 없는 건 나였고, 강용지는 내 감시역이니 날 찾아 들어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쪽도 썩 ···많은 계산을 하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홀로 나가실 순 있지만, 강용지 헌터는 열린 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원래 세계로 나가는 문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동 스킬도 없고, 문도 안 생긴다고? 그럼 내가 그냥 찾아서 데리고 나가라는 말이네?”


[그래야겠죠?]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야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이미 말은 했습니다만.]


난 허공에다 대고 열변을 토하다, 다시금 뒤를 돌아 눈앞에 펼쳐진 곳을 살폈다.


온통 새하얀 곳에 모난 것이 없는 정말이지 안락한 상태.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저마다 가진 기운이 달랐다.

대단하게 뭘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의 주변엔 오색찬란한 오라가 감돌기에 알았다. 여기 보통 세상은 아니다.


“그래도, 열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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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화. 메움 25.01.15 6 2 13쪽
56 56화. 31세 정연준 25.01.14 6 2 14쪽
55 55화. 호박 마차 25.01.13 7 2 12쪽
54 54화. 사무치게 25.01.09 10 2 12쪽
53 53화. 엑스칼리버 25.01.08 8 2 14쪽
52 52화. 삵, 선생 그리고 물품함(6) 25.01.07 10 1 12쪽
51 51화. 삵, 선생 그리고 물품함(5) 25.01.06 11 2 13쪽
50 50화. 삵, 선생 그리고 물품함(4) 25.01.03 1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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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 삵, 선생 그리고 물품함(2) 24.12.31 12 2 11쪽
47 47화. 삵, 선생 그리고 물품함(1) 24.12.30 11 2 11쪽
46 46화. 충전 24.12.27 11 2 13쪽
45 45화. 고맙다 24.12.26 11 2 11쪽
44 44화. 마음 24.12.24 13 2 11쪽
43 43화. 유보 24.12.23 13 2 12쪽
42 42화. 바보의 시대 24.12.19 13 2 14쪽
41 41화. 생존을 향한 진심 24.12.18 14 2 11쪽
40 40화. 정체 24.12.17 14 2 11쪽
39 39화. 비각성 능력자 24.12.16 13 2 12쪽
38 38화. 무용한 위로 24.12.12 13 2 12쪽
37 37화. 연극 준비 24.12.11 13 2 11쪽
36 36화. 이해 24.12.10 13 2 13쪽
35 35화. 흰죽 한 솥 24.12.09 13 1 13쪽
34 34화. 4년 8개월 24.11.21 13 1 13쪽
33 33화. 열반 24.11.20 16 1 11쪽
» 32화. 지하성전 24.11.19 1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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