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술사 뤼델
특별히 차갑지도 살갑지도 않은 바람이 도시의 거리를 맴돈다.
들떠 나부끼는 흙먼지는 없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이 쉼 없이 짓이긴 이 도시의 땅엔 먼지 한 톨 베풀 만한 인정도 없는 듯하다.
제국력 522년 8월 33일, 윈덴. 통칭 바람의 도시의 가을녘 오후는 여느 때처럼 적당히 흘러갔다.
그리고, 바쁜 도시의 뒷세계는 더욱 잔혹한 법이다.
오후의 햇살조차 고개를 들이밀지 못하는 지하 골방 아래, 세 명의 청년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넷이었지만, 셋으로 치부하는 것이 옳을 듯했다.
정상인이라면 세 명과 한 구가 있다고 말했을 것이기에.
“제기랄, 이 양반은 뭐 이런 데서 살았던 거야?”
“그 칼 잘 닦아 놔, 밀. 살점 같은 거 붙었다 눌으면 구역질 나더라.”
“염병. 난 지금도 피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암흑 속에서 분주하게 번득이는 검광과 일상적으로 다루어지는 죽음 이야기.
윈덴의 뒷골목에서 사람과 유품 장사를 하는 불량배 패거리들이다.
칼슨과 밀, 에버트. 그들은 그날 분의 작업을 성공하고 전리품을 찾는 것이었다.
대략 10분 전, 혼자 사는 어떤 남자의 반지하 오두막을 급습해 난도질한 그들은 그의 낭자한 피를 밟으며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일단 집주인만 살해하면 남겨진 물건을 팔아 치우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작업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집안 꼴이 왜 이래?”
오두막의 내부는 자폐적 염세주의의 표상 같은 모습이었다.
반 줌의 햇빛만이 그 빛살을 던지는 어둑하고 좁은 내부, 모든 방향에는 무질서하게 붙여진 선반들이 즐비하다.
모든 것이 제각각인 선반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약간만 잘못 건드려도 쏟아져내릴 것처럼 무언갈 잔뜩 얹고 있다는 점이다.
깃펜, 검붉은 액체가 담긴 병, 썩은 과일 껍질, 염소뿔, 대못과 망치, 이빨 뽑는 집게, 어설프게 박제되어 썩어 가는 짐승 사체, 기타 기묘한 물건들.
그리고 평소 자신들의 일에 언제나 윤리적 자괴감에 시달리던 밀을 가장 소스라치게 한 건 방부 처리된 누군가의 머리였다.
“우우...웨에엑...!”
“악, 제기랄, 밀! 저리 꺼져서 토하지 못해!”
불쌍한 밀은 에버트의 말을 따라 오두막의 구석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요란하게 구토해야 했다.
“칼슨, 저 자식은 조만간 갈아치워 버려야 하는 거 아냐? 저래 가지고선...”
“그래도 저놈 조심성 때문에 안 걸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냐, 에버트. 가서 등이나 두드려 줘.”
칼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등불에 불을 붙여 천장에 매달았다.
그제서야 어두운 방안엔 한낮에 어울리는 불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따스한 불빛 아래로, 걸레짝이 된 남자가 분명하게 떠올랐다.
상태는 끔찍했다.
주로 어깨와 가슴팍, 옆구리와 등을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한 그 몸은 초점 없는 눈으로 불빛을 관망하고 있었다.
길고 치렁한 머리칼은 그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에 푹 젖어 있었고, 입가에서 아직 뜨겁게 흐르는 피 때문에 남자는 무언가 중얼대고 있는 듯했다.
상처의 정도, 흘린 피의 양, 당한 공격의 수준은 모두 남자에게 시체의 명칭을 부여하도록 하는 증거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밀과 칼슨과 에버트는 절대로 남자를 시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봐, 남의 집에 문도 안 두드리고 들어오면 쓰나, 응?”
남자는 살아 있었으니까.
“으... 아아아아아악ㅡ! 뭐야!”
“제기라아아아알!”
남자가 상체를 일으키자 핏덩이를 잔뜩 끌어안고 있는 머리카락이 얼굴과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얼굴에 수없이 그어지는 시뻘건 선들의 향연이 간지럽다는 듯 얼굴을 쓸어만진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다.
옆구리에서 두루룩 흘러내리는 내장들.
밀은 그만 혼절해 버렸고, 그대로 자신의 토사물에 머리를 처박아 버렸다.
하지만 아무도 밀을 비난하고 비웃을 수 없었다.
에버트는 바지를 적시고 있었고, 칼슨은 생전 가본 적 없는 교회를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아아, 주여, 주여!”
남자는 한손으로 자신의 내장을 주워 모으며 남는 손을 사래쳤다.
“시끄러, 시끄러. 하는 짓거리에 어울리지도 않게.”
그러고는 남자는 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사람 장사꾼들이군, 응?”
남자의 목소리는 음산하고 카랑카랑했다.
칼슨은 쥐고 있는 단도가 성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부여잡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미, 미안합니다, 비, 빈집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냐, 아냐. 이해해. 너희 같은 시궁창 인생도 먹고살 거리는 있어야지.”
남자는 뱃속에 내장을 쑤셔 넣고는 벌어진 칼자국을 꽉 움켜쥐었다.
비릿한 피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처럼 흘러내렸다.
에버트는 자신도 차라리 밀처럼 기절해 버렸으면 하는 상상을 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당자, 당장 나가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바닥에 드러누워 무릎을 꿇었다.
남자는 천연히 말했다.
“아냐, 사과하지 마. 나도 당장 시체가 필요했는데. 두 명 정도.”
정적. 조금 더 냉랭한.
간청의 외침은 순식간에 괴괴한 침묵이 되었다.
엎드린 채 땅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굳은 두 사람을 보며, 남자는 피로 질척한 뒤통수를 긁적였다.
“으흠, 자기들은 살고 싶다는 거지. 이기적인 것들. 뭐, 좋아, 둘이 한 명 정해. 그리고... 읏샤!”
남자는 오두막 구석으로 걸어가 엎어진 밀을 들어올렸다.
“이 친구는 확정이고. 그렇...?”
검광의 번득임.
“내려놔!”
밀을 들어올린 후 다시 칼슨과 에버트를 돌아본 남자는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칼날에 주춤했다.
칼슨은 남자가 뒤를 돈 틈을 타 소리 없이 일어서 남자를 겨눈 것이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일종의 발악이었다.
“내려 놓으라고 했어...!”
“이봐, 위험하게 이런 걸ㅡ”
“내려 놓으라고, 이 개자식아아!”
마지막 고함은 칼슨의 것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등불의 그림자 아래에 숨은 채 기어서 남자의 발치에 도착한 에버트는 남자의 오금을 걷어찼다.
퍼억ㅡ!
“윽?!”
남자는 밀을 놓치며 넘어졌다.
철퍽!
남자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그러나 양이 너무 많아 오두막의 판자 바닥이 다 마시지 못하여 웅덩이가 된 피 속으로 거창하게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푸드드드드드득ㅡ!
“뭐, 뭐야?”
장엄하게 튀어올라야 할 붉은 물보라는 없었다.
남자가 넘어진 자리에서 물보라처럼 튀어오른 것은, 끔찍하게 많아 유체처럼 보이는 독충과 메뚜기 떼였다.
진짜 물보라처럼 잠시 동안 허공을 유영한 그 추악한 피조물들은 이윽고 오두막 바닥으로 일제히 쏟아져내렸다.
“흐ㅡ아아아악ㅡ!”
퍼드드드드득ㅡ 퍼드드드드득ㅡ
따각따각따각따각ㅡ
악몽처럼 많은 다리를 가진 지네 떼가 검은 강물처럼 기어온다.
땅에 떨어진 순간 판자를 박차고 날아오른 적갈색 메뚜기 떼가 온 사방에서 날개친다.
덩어리진 메뚜기 떼 사이에 끼어 잠시 동안 날아다니던 누런 전갈이 칼슨의 미간에 툭 떨어졌다.
“아아아아아악!”
칼슨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손에 들린 대거로 자신의 얼굴을 좍 그었다.
두 동강 난 전갈과 함께 칼슨의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하지만 칼슨은 아픈 줄도 모르고 대거로 땅을 베려 들기 시작했다.
지네들이 그의 발을 타고 오르려 했기 때문이다.
눈 앞을 끝없이 날아다니는 메뚜기 떼 탓에 시야는 깜빡이는 것만 같다.
칼슨은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에버트는 상황이 더 나빴다.
얼굴에 들러붙은 박쥐들을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던 에버트는 이윽고 발작하며 나자빠졌다.
그의 바지 아래로 기어 들어간 지네들이 맹독의 발톱으로 그의 종아리를 할퀴어 댄 탓이다.
온 몸이 고통과 경악과 공포와 맹독으로 쭈뼛쭈뼛 마비되어 가는 듯한 감각.
시야는 아득해져 갔고, 주변의 끔찍한 환란에의 현실감은 사라져만 갔다.
그래서, 에버트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알지 못하고 죽었다.
뻐걱!
하지만 난리통에 깨어난 밀은 에버트가 어떻게 죽는지 알 수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등불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에버트는 그대로 목이 부러져 고꾸라졌다.
밀은, 그 찰나의 순간에 등불 속에 바글바글 타죽고 있는 메뚜기 떼를 보았다.
“으아아아악ㅡ! 에버트으ㅡ!”
“제기랄, 밀! 무슨 일이야!”
칼슨의 외침에 밀은 무어라 대답했다. 하지만 칼슨은 듣지 못했다.
[음웨웨웨웨웨웨웨ㅡ]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검은 염소가 죽음 같은 울음을 토했다.
염소의 머리를 불태우는 이교도의 아발라 의식. 그 반쯤 불탄 머리가 세상에 대한 영원한 증오와 저주를 담은 목소리로 울부짖는다면 이러할까.
반은 그림자로, 반은 어스름의 윤곽으로 이루어진 그 시커먼 염소는 곧장 칼슨을 들이받았다.
[음웨ㅡ웨웨웨ㅡ!]
“꺼흑!”
칼슨은 문자 그대로 ‘접혔다’.
그의 몸에서 짓이겨진 지네 갑피와 메뚜기 날개 조각이 튀어나왔다.
나동그라지던 칼슨은 한 바퀴째에 숨을 멈췄고, 두 번째 바퀴에서 생을 멈췄다.
밀은 자신의 뒤꿈치를 벤 채 누워 있는 칼슨의 시체와 눈을 마주치고 온 몸을 굳혔다.
밀은 기절하기 직전 자신을 비난하던 두 동료가 자신이 깨어나자 마자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본 것이며,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어지러운 시야와 시끄러운 괴성들 속에서, 밀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곤충들도, 박쥐도, 혼란도.
날짐승들은 모래처럼 사그라들었고, 독충들은 바닥으로 스며들듯 침잠했다.
염소는 불타 없어졌고, 그 모든 소음들은 전부 사라져 귓가에 멍멍한 잔영을 남겼다.
하지만 목이 부러진 채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처박은 에버트와 반으로 접힌 칼슨의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 남자도.
밀의 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밀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제 혼자군?”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자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남자는 양 손을 깍지꼈다. 원래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깊은 자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뤼델.”
“...뤼델?”
“무한한 육신의 부두술사이자, 교회의 염증이요, 황제의 편두통이지.”
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뤼델을 바라보았다.
뤼델은 의자를 끌며 밀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드드드득ㅡ!
밀은 흠칫 놀라며 물러서려 했지만, 다리가 풀린 탓에 버르적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의자에 앉은 뤼델은 허리를 숙여 칼슨의 주검에 쥐어진 대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부터 손등까지 붉은 자상을 그었다.
그 기괴한 자해 행위에 밀은 불가해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공포는 더욱 진해졌다.
뤼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은 땅으로 떨어지며 메뚜기가, 지네가 되었다.
밀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건...?”
뤼델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신성력도, 신력도 아닌. 시전자의 신체를 빌어 작용하는 금단의 마법, 부두술이지.”
부두술사, 뤼델...
밀은 경련했다.
“설마···!”
밀은 새삼스럽게, 뤼델의 온 몸에 그려진 검은 문신에 집중했다.
그것은 교회의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교회가 직접 봉인한 부두술사.’
“사탄마귀 뤼델!”
뤼델은 즐겁게 웃었다.
“카하하, 그래, 그런 이름으로 불렸지. 퍽 오랜만이군.”
밀은 턱을 덜덜 떨며 뤼델을 가리켰다.
“투르샤먼 사태... 황제의 진노... 페일의... 페일의 교황성에 불을 지르고... 세 명의 추기경을 죽였던... 신의 공적. 그게, 그게 당신이라고!”
“그게, 그게 나다. 그리고 너의 웃기지도 않는 이 친구들은 그런 내 집에 쳐들어온 거지.”
뤼델은 앉은 채 칼슨의 시체를 걷어찼다.
칼슨은 마치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널브러졌다.
밀은 ‘진실된 우정에서 발현되는 분노’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흐린 눈빛으로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칼슨 모양의 고깃덩이는, 더 이상 밀에게 공포와 절망 말고는 다른 감정을 주지 않았다.
따각따각따각따각...
뤼델이 만들어낸 곤충들이 어두운 오두막을 기어 다닌다.
따각따각따각따각...
밀은 초췌한 얼굴로 뤼델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응?”
“미안합니다...”
밀의 목소리가 젖어들어갔다.
“살려주십시오...”
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살려주십시오...”
뤼델은 허리를 숙여 밀의 머리를 짚었다.
밀은 크게 움찔했다.
“밀. 이라고 했나?”
“예, 예...”
“이것 봐, 밀.”
“예.”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지?”
때로는, 말은 물리력을 가지기도 한다.
추상 같은 지적에 얻어맞은 밀은 쇳소리 같은 신음을 토했다.
이윽고, 밀은 자신의 목덜미를 감싸쥔 채 경련하기 시작했다.
“...아아.
“죄책감은 면죄부가 아니지, 밀. 응? 너는 너보다 더 최악인 동료들에 묻어 가면서, 너는 사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있으니 그르지 않다고 믿으며 살았을 테지. 피비린내 나는 돈으로 냄새 나는 생을 이어 가며. 고해 한 번 하지 않고.”
“아아...아아.”
“너는 개자식이야, 밀. 추천하건데, 용서 따위 구하지 마.”
밀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뤼델을 바라보았다.
그렇잖아도 어둑한 오두막에서 올려다본 얼굴은 윤곽조차 없이 검었다.
팔처럼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뤼델의 얼굴로 올라갔다.
그 팔에 들린 대거의 엷은 검광은 소르륵 사라졌다.
뤼델은 입 속에 대거를 넣은 것이다.
“무슨...”
투둑,
쩌억ㅡ
대거의 첨단부가 볼을 꿰뚫자, 당겨진 천이 찢어지듯 뤼델의 입이 갈라졌다.
이제 붉게 물든 검광을 뿜는 대거를 들게 된 뤼델은, 그것으로 허공을 가르며 읊조렸다.
"{가니온.}"
대거가 긋고 지나간 경로의 윤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처가 벌어지듯 윤곽은 틈이 되어 갈라졌고, 심연 같은 어둠이 틈새로 비어져나왔다.
그것은 어둠을 삼키는 어둠이었다.
빛의 후퇴에서 드러나는 어둠이 아닌, 드러남으로서 빛을 살해하는. 어둠으로서 존재하는 어둠.
세상과 하계(下溪)를 잇는 차원의 갈피, 그 공허가 허공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엔 ‘입’이 있었다.
이빨을 가지고, 숨결을 토하며, 깊고도깊은 어둠을 머금은, 한 아름의 지름을 가진 거대한 입이.
"...아아.”
뤼델은 나직히 말했다.
“삼켜라.”
거대한 입이 허공의 틈을 벌려 내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죽음의 이름으로 베어물었다.
콰득ㅡ!
이빨이 닫히는 즉시 입은 사라졌다.
그리고, 밀의 무릎을 꿇은 하반신이 고꾸라졌다.
털썩.
그 무정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소음은 사라졌다.
뤼델은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며 오른무릎에 팔꿈치를 얹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얼굴의 깊은 자상은 사라져 있었다.
적막을 살해한 환란도 사라진 어두운 골방. 그 어둠에 녹아든 침묵만이 방 안에 자욱했다.
괴괴한 침묵이었다.
뤼델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방 안은 영 난장판이었다.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시체 두 구와 반 구.
장판을 자욱이 물들여 놓은 피.
간신히 정돈되어 있던 선반을 다 헤집어 놓은 흔적.
떨어져 박살 난 등불까지.
뤼델은 한숨을 쉬었다.
“누가 다 치우라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뒈져 버린 거야?”
뤼델은 반만 남은 밀을 바라보며, 청소를 시키고 죽였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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