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제물 부두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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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뤼투나읫
작품등록일 :
2024.10.01 11:48
최근연재일 :
2025.01.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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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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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몽에 떨어지다

DUMMY

뤼델은 품 속에서 꺼낸 칼날을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칼날을 가로로 세워 가볍게 당긴다. 볼은 어려움 없이 저며진다.


붉게 물든 칼날로 허공을 그으며, 뤼델은 낮게 읊조렸다.


"{가니온}"


허공을 찢으며 나타난 거대한 입이 차가운 입김을 내뱉었다.


"뱉어라."


이빨들의 간극이 형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진다.


그리고 그 끝없는 어둠의 틈새로 뤼델의 물건들이 쏟아졌다.


두 성직자들에게 급하게 숨겼던 그 물건들.


그것들이 마루를 구르는 꼴을 보며, 뤼델은 도 손을 마주 비볐다.



.

.

.




별들이 공포에 떠는 밤이었다.


수많은 눈을 가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밤하늘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사방에 스며든 밤의 조각들은 끔찍한 광경을 본다.


차가운 도끼질 소리.


웅혼하고도 음산한 주문.


퍼드득대는 메뚜기 날개.


다시, 도끼질 소리. 바느질. 박제된 짐승.


흐르는 피. 인골. 흩날리는 재.


그리고, 웃음.







.

.

.








골목의 밤은 찬연하고 따스했다.


절제된 말발굽 소리가 좁은 골목을 누빈다.


말발굽 소리는 정갈하고 규칙적일수록 그 조용한 참혹함을 내포한다.


살인에 길이 든 말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투레질 없이 보조를 맞춘다.


백오십 마리 말들의 육백 개 말발굽 뒤로,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걷는 사백 개 발자국이 있었다.


검은 베일로 된 망토를 착용하여 갑주의 은은한 광휘를 감춘 그들은, 그러나 그 걸음의 갈피마다 명멸하듯 드러나는 빛살 탓에 마치 행군하는 별무리처럼 보인다.


그들은 페일의 성기사들. 마법적 추적을 통해 파악한 이교도의 현 위치를 쫓아 이동하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정지."


신성기사 하스엘의 조용하고도 명료한 명령.


"전투 태세."


총원 사백 명의 성기사단은 그 순간 백색의 물결이 되었다.


절도보다 품위가 짙게 느껴지는 동작으로 완전하게 도열한 군대는 하스엘의 손짓을 기다렸다.


하스엘은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초라한 민가 하나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곳이... 이교도의 거처.'


모든 연구가 배교로 간주되기에 그 무엇도 알려진 바 없는 이단은, 그 무지만큼의 공포를 일으킨다.


하스엘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투르샤먼 사태가 아니다. 성가신 형제 하나의 소행이었을 뿐이야.'


페일이라는 사자는 굶주림에 지쳐도 사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토끼가 자신을 모욕한다면, 온 힘을 다한 공격으로 일격에 부숴 버린다. 그것이 교회의 방식인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하스엘은 오른팔을 들었다.


왼가슴팍에서 오른쪽 몸통 바깥으로. 하스엘의 팔이 움직였다.


서로의 빛으로 그것을 확인한 성기사들은 그 신호에 따랐다.


화라락ㅡ


사백 개의 불빛이 거리에 떠오른다.


별들이 눈부실 듯한 신성 광휘들.


베일 망토를 벗어든 성기사들은 다가오는 전투를 느꼈다.


본능적인. 혹은 야수적인 감각.


하스엘의 장검이 천천히 뽑혀나왔다.


스르르릉ㅡ


검집을 벗어난 칼날은 밤을 마시며 빛났다.


그 빛은 주변의 광휘처럼 따스하지 않다.


별빛처럼 파랗게 타오르는, 그 불경스러운 목적만을 떠올리는 차가운 검광.


하스엘은 팔을 곧게 뻗어 민가를 겨냥했다.


그런 그를 극점으로 하여, 성기사단은 삼각형을 그리도록 도열해 있다.


꼭짓점에는 하스엘이, 그의 뒤로 퍼져 나가듯 삼각형을 그리는 기마병들, 그들의 배후로 뚫린 공백을 메우는 보병들과 중앙에 밀집한 집행관들.


하스엘은 민가보다는 그의 검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한다."


성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힘있게 움켜쥐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대를 형제로 부르지 않노라. 신과 세계를 등진 자여, 그 죄의 무게를 느껴라. 신의 빛 아래에서, 그대에게 전해질 은혜는 없다."


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칼날을 받으라!"


폭풍 같은 돌격.


함성 따위 없다. 그들은 소리 없는 단검처럼 현관과 양측 외벽으로 갈라져 돌진했다.


그제서야 첫 번째 소란이 일어났다.


쿠과광쾅쾅ㅡ!


총 세 면을 박살 내며 기마병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거대한 나무 파편과 톱밥들이 거창하게 흩날렸다.


집 안은 일반적인 민가보다는 넓은 편이었지만 말들이 돌아다니기 적합한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입구를 뚫는 역할이었던 그들은 그들이 만든 균열 너머로 빠르게 퇴장했고, 보병들이 투입되었다.


철컥철컥철컥철컥ㅡ


철제 군화가 마루를 때리는 소리.


그들은 투입 즉시 모든 문을 열어젖히고 수색했다.


부산스러운 소란들.


이윽고 체포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하스엘은 이런 보고를 듣게 되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다?


"그럴 리가, 이 정도 거리에서도 마기가 이렇게나 짙은데..."


생명이 타는 내음. 적어도 누군가가 있기는 해야 느껴지는 것이 가능한 마기다.


하스엘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등불을 들고서 직접 들어섰다.


철컥, 철컥, 철컥...


하스엘을 포함해 대략 열두 명 정도가 뛰어든 집 안은 좁고 부산했다.


군사들은 무언가 맥빠지면서도 불길한 감각을 느끼며 신성기사를 따라 횃불, 촛불 등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두 번째 소란이 시작되었다.


퍼드드드득!


밤의 틈에 숨어 있던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무슨...?!"


키기기기긱ㅡ!


그것들은 타오르는 모든 불빛을 향해 몸을 던져 함께 사그라들었고, 끔찍한 냄새와 함께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하스엘은 메뚜기들이 몸으로 뒤덮어 꺼 버린 등불을 내던지며 칼을 쥐었다.


"주술이다! 모두 무기를 뽑아라!"


병사들은 일사불란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서, 하스엘은 바깥을 향해 지원을 명령했다. 아니, 명령하려 했다.


"...어?"


균열은 없었다.


한밤중의 건물처럼 완전한 단색의 어둠만이 그들의 주위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내부의 군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외벽 아래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무언가가 집 전체를 휘감은 것이다.


내부와 달리 바깥에는 달빛과 별빛이 있었고, 그것은 그 아래에서 독특한 윤곽을 그리는 형태의 것이었다.


"...뱀 허물?"


말을 탄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구멍을 완전히 덮는 크기의 뱀 허물. 그것은 마치 진짜 뱀인 양 쉬쉿대며 밤하늘을 향해 목을 세우고 있었다.


그 몰이성적인 괴현상을 목도한 성기사단은, 그 위대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멍청히 얼어붙었다.


이윽고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 들렸을 때. 그제서야 외부 병력들은 현실감을 되찾았다.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지휘관과 두절된 병사들이었지만, 그들은 혼돈에 빠지지 않았다.


어떤 목소리가 외쳤다.


"라이렛 자매!"


하스엘의 부관, 라이렛이 응답했다.


"예!"


"신성기사 하스엘 형제를 보좌하던 자매님이 지금부터 본 병력의 지휘관이오! 명령을 내려 주시오, 신성기사여!"


군단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명령을 내려 주시오!"


신성기사는 직위가 아닌 자격.


라이렛은 지체하지 않고 외쳤다.


"하스엘 형제를 비롯, 내부의 병사들을 지원해 구출해 낸다. 집행관 형제들이여, 벼락을!"


쉰 명의 집행관들이 일시에 두 손을 치켜들었다.


쉰 명. 보병의 사 분의 일도 되지 않는 수.


그런 숫자가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쉰 명이 일천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영창도, 주문도 없다.


그저 신성적 감응과 신성력의 공명에 의해, 그들은 같은 순간에 신성력을 폭발시켰다.


곧게 뻗은 두 손에 영그는 광채.


그들의 두 손이 주먹을 쥐자, 검은 하늘이 붉게 울렁였다.


라이렛은 낮게 읊조렸다.


"...불벼락!"



.

.

.





하지만, 그들 중 열두 명은 그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없었다.


한참 전부터.


모든 빛과 소음으로부터 차단된 내부.


집 안의 열두 성기사들은 폐소공포증과 자폐증을 동시에 일으키고 있었다.


어둠을 칼로 베려 드는 동료 하나를 간신히 저지시킨 하스엘은 크게 일갈했다.


"그마ㅡ안!"


온갖 광태가 멈췄다. 어둠만이 갑작스런 침묵에 스며들었다.


하스엘은 분노로 공포를 억눌렀다.


"형제들이여, 이 무슨 작태인가! 신의 깃에 싸인 채 생을 걷는 우리가 고작 눈앞의 어둠 따위에 패배해서야 되겠는가!"


기사들의 눈에 광채가 돌아왔다.


"공포를 버려라!"


[안녕, 봉황의 깃털 뭉치들.]


광채는 사라졌다.


음산함. 그보다 더 깊은.


공포로 빚은 웅혼함으로 그들을 깔보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스엘은 칼자루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누구냐!"


[이단을 잡으러 왔겠지, 응? 하지만 그 인간은 여기 없는데.]


그 목소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쇠토막의 마찰이나 오래 된 북소리. 멱을 따이는 짐승의 단말마가 뒤섞여 내질러지는 듯한 괴성이었지만, 그것은 의미를 갖추고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성기사들은 다시 폐소공포증을 앓기 시작했다.


하스엘은 부서질 것 같은 정신을 다잡고 두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영창을 외웠다.


<루멘테르!>


그의 검신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본래 기사들은 성직자이긴 하나 마법을 운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스엘은 다방면에서 우수한 성기사였으며, 신성력에의 신체 감응력도 뛰어났다.


또한 교회의 무구는 모두 성직자의 강화를 거친, 넓은 의미에서의 성물.


미약하나마 신성성을 띠는 하스엘의 검은 주인의 영창에 응했다.


메뚜기 따위가 꺼뜨릴 수 없는 신의 광휘 아래, 그리 넓지 않은 건물 내부는 순식간에 드러났다.


"...!"


한마디로 끔찍했다.


헛바람 삼키는 소리, 갑작스런 딸꾹질들.


하스엘의 기적에 가까운 마법에 잠시나마 돌아왔던 성기사들의 결속력이 다시 결딴나기 시작했다.


그 괴악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대신, 선물을 주겠어. 마음에는 하나도 안 들 거야.]


"신이시여..."






.

.

.






"신이시여... 저게 무슨!"


매우 놀랍지는 않은 우연의 일치에 의해, 두 신성기사는 같은 순간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쉰 명의 집행관들이 끌어내린 오십 줄기의 작열하는 벼락은 정확히 민가의 지붕을 향했다.


하지만, 갑자기 허공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아무것도 없는. 밤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아가리가 모든 불벼락을 마셔 버린 것이었다.


본래 집행관들의 파괴력을 여실히 알고 있는 성기사단은 어이없음과 동시에 공포를 느꼈다.


라이렛과 그녀의 성기사단이 그저 황망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뱀 허물이 움직였다.


[벼락을 불러냈지? 그럴 것 같더라. 상징에 목메는 머저리 집단 같으니.]


괴기스럽다못해 신에 대한 모독 같은 목소리.


사백 명, 그러니까 삼백팔십팔의 병사들은 오두막 안의 열두 명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당혹을 느꼈다.


라이렛은 그녀의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누구냐!"


뱀 허물은 외벽의 모든 구멍을 막고 있는 몸체는 그대로 둔 채, 하늘을 향한 머리 부분을 흔들고 있었다.


머리 없이 목에서 끝나는 거대한 허물. 심지어 무두질된 피혁처럼 곧게 펼쳐진 상태인 허물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대는 광경은 그야말로 불경스러웠다.


라이렛은 마른침을 삼키며 재차 질문했다. 그러지라도 않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았기에.


"누구냐 물었다!"


뱀의 목 중간 부분이 칼로 그어지듯 열렸다.


그런 식으로 허물의 결을 따른 틈을 만든 뱀 허물은, 마치 그것이 인간의 입이라도 되는 양 가로로 목을 돌렸다.


그리고 그 괴악한 입을 열었다.


[무어라 떠드는지는 내게 들리지 않아. 하지만 너희들 전부 뒈질 준비 하라는 말은 남겨 주겠어.]


밤이 차갑게 불타올랐다.












작가의말

시험 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연재 속도를 좀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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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마귀와 세례자 24.11.03 37 2 12쪽
22 마귀와 전쟁한다는 것은 24.11.01 39 3 12쪽
21 대담한 광태 24.10.31 4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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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교황의 분노, 황제의 준동 24.10.29 51 3 11쪽
18 사탄마귀가 돌아왔다 24.10.28 47 5 13쪽
17 아무도 살아 나갈 수 없다 +1 24.10.27 43 3 13쪽
16 번개 치는 낮 24.10.26 45 3 11쪽
15 절체절명 24.10.25 48 4 12쪽
14 사면초가 24.10.24 48 5 12쪽
13 뒤바뀐 추격전 24.10.23 47 4 12쪽
12 의심과 말로 24.10.22 4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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