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의 사투

검신에 어리는 불빛에 드러난 광경은, 마치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망상장애 환자의 그림 같았다.
바닥은 끊임없이 꿈틀댄다.
그것은 온 사방을 뒤덮은 벌레 떼.
거실의 벽에는 사람이 걸려 있다. 신체 부위를 누덕누덕 기워 만든 사람이.
그리고 시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발치에는 괴상한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박제된 것으로 보이지만 거의 반쯤은 썩어들어간 동물.
정갈하게 갈무리되어 있어 더 기괴한 인간의 두개골.
그리고 붉은 장작.
하스엘은 이교도가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 그제서야 제대로 실감했고, 크게 전율했다.
'...아발라의 불꽃!'
생명을 빌어 타오르며 열기 대신 죽음을 내뿜는 악마의 숨결.
그 푸른불이 장작의 중심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찌할 새도 없이, 불꽃은 커다랗게 타올랐다.
화르륵ㅡ
푸른 화염이 벽에 걸린 남자의 발치에 닿자, 남자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를 목매달고 있던 올가미가 가볍게 출렁이고, 사지와 목. 기타 장기를 꿰매어 놓은 실이 팽팽히 당겨진다.
창백한 불빛으로 가득 찬 민가. 보이지 않는 밤. 기워진 남자.
그런 충격적인 광경 아래에서, 두개골의 턱이 움직였다.
그러자 끔찍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이 친구는 내 주술적 걸작이지. 작품명을 짓자면, 나로 만든 타인이라고나 할까?]
남자의 손이 번쩍 들리더니 휘적휘적 흔들렸다.
장난기 어린 말투와 장면이었지만 그 끔찍스러운 목소리는 모든 유쾌함을 앗아갔다.
하스엘은 이미 아무 의미도 없어진 빛을 내뿜는 검을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그의 주위에서 공포에 경련하는 성기사들의 중얼거림이 넘실댄다.
"이럴 순 없어..."
[부두술이 발산하는 마기는 시전자의 자취를 말해 주지. 여기서 시전자는 이 친구가 될 거야.]
남자의 팔이 다시 기묘한 방향으로 홱 들리더니 저 자신을 가리켰다.
[부두술의 시전자는 신체를 바친 자. 너희는 날 찾을 수 없다.]
남자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어떤 곳을 가리켰다.
그 손은 마이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교도의 거주지를 방문해 봤다는 이유에서 탐색에 투입되었던 그는, 불쌍히도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반쯤 썩은 짐승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구리인지 개인지 여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진 짐승은 남자의 다리에 매달려 그의 어깨까지 기어올랐다.
그것이 남자의 어깨를 지나 곧게 뻗어 마이라를 가리키고 있는 팔뚝까지 올라올 동안,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짐승은 남자의 검지를 물어뜯었다.
으드득ㅡ!
하스엘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이라는 그와 동시에 동생을 영영 잃을 것만 같다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다.
두개골의 턱이 삐걱댄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
[[르칼브]]
피로 맺힌 운명은 그 순간 공포를 뛰어넘어 맥동했고, 그것은 장형의 고함으로 터져 나왔다.
"마이라ㅡ!"
고함은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형ㅡ"
푸아악ㅡ!
마이라는, 가이라의 가슴에 깊게 사무치는 한 마디 말과 함께 목구멍에서 핏줄기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이어지는 고성은, 고함이 아닌 비명이었다.
"마이라아ㅡ!"
듣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끔찍하게 갈라지는 괴성.
비명은 이제 열한 명이 된 성기사단 전체에 전염되었다.
단 한 사람, 하스엘을 제외하고는.
하스엘은 떨리는 동공으로 매달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언제 풀렸는지 모를 다리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차가운 아발라의 불 앞에, 하스엘은 경배하는 듯한 태도로 남자에게 물었다.
"...왜...?"
남자는 대답 없이 피가 뚝뚝 흐르는 손가락의 방향을 틀었다.
그의 목덜미에 송곳을 박아넣었던 짐승이 다시 그의 몸을 타고 사삿대며 돌아다녔다.
해골이 다시 입을 연다.
짐승의 부자연스러우리만큼 인간을 닮은 앞발이 송곳을 휘두른다.
[[르칼브]]
"끄하ㅡ아아아악ㅡ!"
이번엔 다른 성기사가 무릎을 부여잡으며 나뒹굴었다.
오금에서부터 무릎까지 그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는 송곳이 푸른불의 반사광으로 희뜩하게 빛난다.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
짐승은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해골의 턱이 삐걱댄다.
남자의 손가락은 다시 방향을 틀었다.
파란 밤.
하스엘은 검붉은 피가 흐르는 남자의 손가락 단면을 마주했다.
.
.
.
라이렛 카러스. 허나 성직자가 된 이후 쭉 라이렛 자매였던.
그녀가 돌발 상황에 즉시 신성기사로 추대된 것은, 그녀가 우수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 속에서 단체 공황을 겪고 있는 성기사단을 향해 그녀의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휘우웅ㅡ!
밤을 베어 내는 날카로운 휘파람.
성기사단의 눈에 초점에 돌아왔다.
라이렛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검으로 뱀을 겨누며 사납게 외쳤다.
"그 따위 말을 내뱉은 뒤에는 무엇이 뒤따를지도 잘 알고 있겠지, 이교도의 사역마여!"
그녀는 이미 저 괴물이 자각 없이 정해진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채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말은 전해지지 못할 경고가 아닌, 그것을 가장한 임무 하달이었다.
무엇이 뒤따를지.
이교도의 사역마.
성기사들은 그들의 지위를 떠올렸다.
신의 이름을 업은 군사력.
그러자 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신의 위광 아래에서 싸우는,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들인 그들이 지금 저깟 괴물에게 모욕을 당한 것이다.
저 괴물은 무엇인가?
이교도의 사역마.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떠올렸다.
바람의 도시에 방문하여 이교도를 척살한다.
저것이 나를 분노케 했고, 신의 의지가 저것을 말살하라 하신다.
분노는 공포를 쫓고, 사명은 의지를 불지핀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ㅡ
그들은 각자의 칼자루를 힘있게 움켜쥐고 갑옷을 제대로 받쳤다.
기수의 흥분을 느낀 말들의 긴장.
집행관들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새로운 신성적 기류.
라이렛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게 해 주십시오!"
다시, 군단의 목소리.
"싸우게 해 주십시오!"
라이렛은 날카롭게 웃었다.
"봉황의 이름으로ㅡ"
"ㅡ허락한다!"
우레 같은 함성. 노도 같은 질주.
두두두두두두두두ㅡ
사백 명의 성기사가 각자의 무기를 내세우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
.
.
하스엘은 놓친 검을 집어 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른발목과 왼팔뚝.
하스엘이 잃은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스엘은 황망히 쓰러져 바닥을 적시는 자신의 피를 바라보았다.
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ㅡ
바닥에 얼굴을 붙이자 온 발치에 가득했던 벌레들의 소음이 들려왔다.
하스엘은 눈을 감았다.
그의 앞에 쓰러져 있는 가이라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명치에 대못이 박히는 공격을 당했던(이 표현은 벽에 걸린 남자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가이라의 시신은 얼굴에는 큰 손상이 없었고, 그는 마치 자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하스엘은 그의 눈가에 검게 남은 눈물 자국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오, 형제여... 형제를... 잃은..."
하스엘은 팔꿈치까지밖에 남지 않은 팔을 들어올려 가이라의 얼굴을 만졌다.
"..."
끄아아아아악ㅡ
또 누군가가 남자에게 지목당한 모양이었다.
"...하하."
털썩.
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울림.
하스엘은 닫힌 눈꺼풀을 비집고 돋아나는 눈물을 내버려두며 성전을 되뇌었다.
"...봉황의 깃 속에 숨쉬는 우리는... 그대의 자손이니, 형제와 자매로서 서로를... 섬기라. 모든 생명은 백깃의 부름에서 왔으니, 세계의 모든 것은... 우리 형제들이요... 자매들이니라."
하스엘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지난날 삶이 빠르게 눈가를 스쳤다.
"그대가 길을 잃을... 지라도... 백깃의 빛이 그대를 이끌리니... 봉황의 날개 아래에선 어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
끄아아아악ㅡ
털썩ㅡ
따각따각따각따각따각ㅡ
"..."
"주여... 나의 주여. 백깃의 봉황이시여..."
살려 줘, 제기랄, 죽고 싶지 않아ㅡ
단숨에 죽지 못한 자가 또 있는 모양이었다.
"너무... 너무 어둡습니다, 나의 주여..."
이럴 거면 더 방탕하게 살아 봤을 걸. 이렇게 죽는다니, 내가, 내가ㅡ
"나의 삶에 내린 시련을... 시련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스엘은 그 말을 맺지 못했다.
그저 눈물흘리며, 하스엘은 말했다.
"그 시련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주여."
두두두두두두두...
그런 그의 귓가에, 땅으로부터 고동치는 어떤 울림이 들려왔다.
.
.
.
라이렛의 검이 여섯 번째로 어둠을 갈랐다.
"진격하라, 형제들이여ㅡ!"
웅장한 말발굽 소리.
온 사방에서 쏟아지는 신성한 벼락 줄기들.
신의 광휘로 충만한 무구를 휘두르는 병사들.
성기사단은 그 위대한 이름을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우측에 달려든다, 벼락을!"
쿠르르르르ㅡ 콰과광쾅쾅ㅡ!
라이렛은 그녀를 노리고 달려들던 검은 짐승이 벼락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기사단의 돌격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불길한 짐승들 중 하나가.
썩어들어가는 신체와 역겨운 냄새, 지옥의 목소리 같은 울음을 토하는 그 짐승들은 그들의 반쯤 죽은 육신을 부딪혀 오며 덤벼들었다.
칼날에 베이면 썩은 내장을 흩뿌려 대고, 벼락에 맞으면 덩달아 폭발하여 온 사방에 토사물처럼 걸쭉한 내부를 퍼뜨려 대며.
그것들은 마당에 흥건하게 스며든 피의 열기로 빚어진 저주스러운 짐승들이었다.
[음우우우우우우우ㅡ]
한때 소였던 듯한, 그러나 이제 썩고 뒤틀린 괴물인 짐승이 또 다시 라이렛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ㅡ앗!"
크게 휘두른 칼날이 뼈를 자르는 감각이 전해진다.
두 앞다리를 잃은 짐승은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비통하게 울어젖혔다.
[음워워워워워워ㅡ!]
그리고 그런 울음 위로 내리떨어지는 빛의 창이 었었다.
찰나 동안 창공과 대지를 잇는 불규칙한 광선.
콰과광쾅ㅡ!
집행관의 뜨거운 벼락은 그 짐승을 순식간에 형체 없는 무정물로 바꾸어 버렸다.
미처 타들어가지 않은 짐승의 내장과 곪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
라이렛은 피어오르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심호흡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거세게 외쳤다.
"우리의 형제들이 바로 저기에 있다, 길을 내어라!"
"와아아아아아ㅡ!"
밤을 추방해 버릴 것처럼 밝은 광휘.
군대는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짐승들을 베어넘기고, 부숴 버리다, 태워 버리며 진격했다.
.
.
.
두두두두두두두ㅡ
이윽고 그들은 건물의 외벽. 그리고 뱀 허물의 코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신성기사는 이를 악물고 각오했다.
그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결심의 이행을.
'나는, 형제들을 구출한다!'
라이렛은 그 지위만이 가지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을 외쳤다.
"신성기사의 이름으로 명한다, 충돌을 각오하고 끝까지 돌격한다!"
아무런 혼란도 발생하지 않았다.
교회의 위계는 신의 질서이고, 신의 질서는 성직자들에게 절대적이다.
라이렛은 그녀의 검을 드높이 치켜들었다.
영원할 듯한 돌격. 시야에 맺히는 뱀의 비늘이 무자비하게 커져 온다.
"집행관 형제들이여, 전부 나의 이 검에 벼락을 내린다, 당장!"
위계는 절대적이다.
내쏘아지는 오십 줄기의 수평 벼락이 그녀의 오른팔을 향해 쇄도했다.
그 내재된 힘과 열기.
찰나가 수십 조각으로 쪼개진다.
극도의 긴장 속에, 라이렛은 그녀의 감각 하나하나를 되짚는 듯한 감각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벼락이 가까워지고, 비늘은 커져만 간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왔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ㅡ!
"끄윽...!"
오십 개의 벼락이 그녀의 검날에 작렬하는 순간,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빛의 중첩으로 태양 같은 위세를 떨치는 검을 휘둘렀다.
"흐ㅡ아아아아아아ㅡ!"
콰자자자자자작ㅡ!
그녀는 성공했다.
박살 나는 비늘 뒤로, 찬란한 성기사단이 오두막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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