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최초의 폭발은 의외로 아무런 사상자도 남기지 않았다.
신성력으로 빚어진 섬광 방패는 그 신도들을 훌륭하게 보호해 내었고, 덕분에 그 뒤편의 성기사들은 멀쩡할 수 있었다.
해일이 벽에 부딪쳐 치솟아오르며 부서지는 듯한 광경.
해일은 피고름과 내장들로, 벽은 마법적 방어막으로 비유된다.
그렇게 첫 번째 폭발은 완벽하게 상쇄되었지만, 본래 첫 번째라는 것은 두 번째가 있을 때에만 사용되는 말이다.
성기사들의 안도는 방어막의 파괴와 함께 저편으로 사라졌다.
산산조각나는 광휘의 파편 뒤로, 아홉 마리의 썩어 가는 짐승이 달려오고 있었다.
채드윌은 과격한 어휘를 씹어뱉었다. 차마 욕설을 뱉지 않은 것은 그가 성직자였기 때문이다.
[음웨웨웨웨웨웨웨ㅡ!]
"두 부대로 나눠서 보낸 것이오! 폭발에 대비하시오!"
채드윌은 그 자신조차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달려오는 폭발을 대비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성기사단은 돌격하고 있고, 짐승들은 가까워져 온다.
성기사들은 지푸라기를 움켜쥐는 심정으로 중앙에 밀집해 있는 집행관들을 돌아보았지만 그들은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신성력을 한 번에 지나치게 소모한 탓도 있지만, 그들과 마법으로 연결된 채 유지되고 있던 방어막의 일제 파괴는 그들에게 신성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채드윌은 투구를 단단히 눌러쓰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음워워워워워워ㅡ!]
끝없이 가까워지는 짐승들이 느껴진다. 특히, 그 역겨운 냄새가.
'주여.'
채드윌이 마음 속으로 신의 이름을 되뇌였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형제들을 사수하라!"
파아앗ㅡ!
채드윌의 감은 눈꺼풀 뒤로 찬란한 섬광이 비쳤다.
그리고 눈을 뜬 채드윌은, 붙일 단위도 찾기 힘들 만한 찰나의 찰나 동안 온갖 것을 보았다.
어쩐 일인지 다시 굳게 세워진 섬광 방패. 반투명한 그 방어벽을 사이에 두고 코 앞에서 울부짖는 역겨운 짐승들.
그리고, 그의 양익에 비치는 또 다른 흙먼지들.
일대에 퍼져 있던 성기사단의 합류였다.
"주여!"
투과광쾅쾅쾅ㅡ!
그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무지스러운 폭발에도 채드윌은 미친 듯이 웃었다.
또 다시 박살 나는 방어벽 뒤로 보이는 그의 파안대소를 본 신성기사 라이렛 역시 씩 웃어 보였다.
그녀는 목청껏 외쳤다.
"형제여, 웃음도 좋지만 숨은 잠시 멈춰라! 그대의 아래에 짐승의 내장과 불꽃이 가득하다!"
그는 아차하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힘찬 말발굽들이 흩어진 내장을 짓이기고 불씨를 밟아 댄다.
밀집해 있던 채드윌의 군대 양익에 가깝게 따라붙는 거대한 두 대군을 보며 채드윌은 흥겹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봉황께서는 저를 보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외곽지 방어가 아닌 직접 수색의 임무를 하달받은 신성기사 라이렛은 웃으며 대꾸했다.
"언제나 그렇다네, 형제여. 이름이 뭐지?"
"채드윌입니다. 헌데 어째서 물으십니까, 신성기사님?"
그 대화는 흔들리는 마상에서, 그리고 사방에 가득한 메뚜기 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약간 혼란스러웠다.
"형제의 군대에게 명을 전달하려면 그 통솔자 형제의 이름을 알아 두는 편이 좋겠지."
채드윌은 그제서야 자신이 그의 뒤편의 이백오십 군대를 이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벅찬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라이렛 자매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라이렛은 빙긋 웃으며 말고삐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채드윌의 왼편을 가리켰다.
"들었습니까, 갤딘 형제여? 이 형제에게 명령은 내리되, 우리와 같은 신성기사로 대우하십시오."
신성기사는 구체적인 임명에 의해 부여되는 직위가 아닌, 군대를 통솔하는 이에게 붙는 일종의 책임.
라이렛은 그 점을 들어 말한 것이었다.
윈덴에 파병된 3,000기의 성기사단에 포함된 두 명의 신성기사, 그 두 명 중 하나인 갤딘은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소."
라이렛은 수신호를 보냈고, 갤딘과 라이렛의 군대는 채드윌의 양 옆에서 멀어져 갔다.
그를 중앙에 두고 두 신성기사가 군대를 펼치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광경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던 채드윌은 곧 정신을 다잡았다.
'내가 신성기사라는 것은, 내 뒤의 250 형제들의 책임은 내게 달렸다는 것.'
메뚜기 떼의 기세가 약해지고 있다. 이교도의 주술이 끝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채드윌은 빠르게 계산해본 결과 이제 그는 800명에 육박하는 대군과 함께 적을 쫓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하!"
또 다시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기괴한 짐승들의 윤곽들을 보며, 채드윌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외쳤다.
"돌격ㅡ!"
.
.
.
"아후, 팔 아퍼, 제기랄."
뤼델은 내내 가슴을 파헤치고 있던 단검을 다시 품 안에 갈무리했다.
영원할 것처럼 피를 뿜어내던 상처는 빠르게 붙어 아물었다.
메뚜기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 대략 세 번쯤 바꿔 탄 짐승이 또 다시 꿀럭대기 시작했다.
[음우우우우우ㅡ]
내부가 다 썩어들어가 곧 있으면 푹 쓰러져 버리거나 터져 버릴 징조였다.
"좀 오래 가면 좀 좋아, 응?"
뤼델은 혀를 차면서도 능숙한 동작으로 일련의 과정을 빠르게 거쳤다.
짐승의 등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손아귀에 품고 있던 불씨를 내민다.
고삐 따위 쥐고 있지 않았기에 한 손이 더 남는다.
남는 손에는 칼날을 쥐고 휘두른다.
썩어 쪼그라든 뱃거죽에 깊숙이 남는 자상.
그 속으로 불씨를 빠르게 던져 넣고 속삭인다.
"머리를 돌려라."
이로서 탈것이었던 짐승은 생체 폭발물이 되어 성기사단을 향해 거꾸로 질주한다.
다시 자신의 두 발로 뛰면서 새로운 짐승을 만들기 위해 손톱을 뜯어낸 뤼델은, 갑자기 어떤 것을 깨달았다.
"흙먼지가 많아졌는데."
윈덴 내의 구역들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유령도시에 정착해 있었던 뤼델은 마음껏 대로와 골목과 민가를 치달리며 질주할 수 있었고, 대규모인 성기사단을 상대로 그런 식의 도주는 지금껏 계속 유효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불어난다면 이런 식의 도주는 독이다.
"빙글빙글 돌다가는 그냥 머릿수에 가로막혀 버리겠군."
뤼델은 이제 교회의 사람을 헤치는 데서의 그 폭력적일 정도의 희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였다.
차가워진 머리를 굴리며 방도를 골똘히 물색한 뤼델은, 이윽고 말했다.
"답이 안 뵈는데."
뤼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커다랗게 일어난 흙먼지를 날리고 있던 원인들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보인다! 아무 것도 타고 있지 않다! 사로잡아라!"
신성기사 라이렛의 외침이었다.
라이렛은 그녀의 270기 정도 되는 군대를 산개한 채 소수 정예의 병력과 함께 앞서 달리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크게 우회했던 것이다.
뤼델은 약간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아직 짐승조차 새로 불러내지 않은 채였다.
"그렇다면..."
그 자신에게는 별로 기쁘지 않게도, 뤼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앞서서 달리는 그녀의 뒤로 조각조각 쪼개진 270기의 군대가 한 부대 한 부대씩 모이는 방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상공에서 본다면 두 자릿수로 소분된 백색 모래를 한 데 모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산개한 부대들은 윈덴의 온갖 골목과 공터, 무인가(無人街)와 대로들을 거쳐 달리다가 그들의 지휘관과 마찬가지로 우회하여 같은 지점에서 다시 속속들이 만나게 된 것이다.
뤼델은 그의 오른편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삼백 명이 되는 군대를 언짢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것은 당혹과 분노의 얼굴로 일그러졌다.
왼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갤딘의 부대였다.
"허."
뒤에서는 본래부터 쫓고 있던 채드윌의 부대가, 양 옆에서는 두 신성기사의 부대가 좁혀 온다.
그런 상황에서는 수려한 지식의 노인도 다섯 살배기 어린애의 답과 똑같은 답을 도출해 낼 것이다.
'앞으로 주파한다.'
"[테르칼론]"
뤼델은 즉시 짐승을 불러내 올라탔다.
그리고 그 달리는 짐승 위에서 다시 메뚜기 떼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라이렛은 급속도로 탁해지는 뤼델 주변의 공간을 보며 외쳤다.
"메뚜기 떼를 부른 것이다! 집행관 형제들, 방어벽을!"
이와 같은 명령이 채드윌과 갤딘에 의해서도 내려졌다.
이윽고 세 조각의 800기 군대는 신성 방어막이라는 휘황한 광휘로 둘러싸인 채 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라이렛은 만족하지 않았다.
"집행관 형제들이여, 방어벽에 번개를 두르라!"
집행관들은 아무런 의문의 표시 없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
하늘에 대한 고발처럼 우뚝 솟은 집행관의 손들.
이윽고 무수한 벼락 줄기들이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에 내리꽂혔다.
우루루루루루룽ㅡ!
하지만, 섬광과 함께 폭발하지는 않았다.
집행관들은 그들의 마법에 모종의 조작을 가했고, 굵직한 빛줄기였던 번개는 섬광 방패에 닿기 직전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수백 줄기의 빛살로 쪼개져 방패를 휘감았다.
그들이 라이렛의 뜻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리한 것은, 단지 신성기사의 명령은 '번개를 두르라'는 것이었지, '방어벽을 때려 부수라' 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행관들이 이해했건 아니건, 라이렛의 작전은 훌륭하게 작용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ㅡ!
폭풍의 눈 속에서 들려오는 벼락의 광성들이 그러할까.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번개로 휘감긴 방패 앞으로 메뚜기들이 뛰어들었다.
타탁, 탁ㅡ 타타타타타타타타ㅡ
그것들은 두 번 이상의 추돌은 감행할 수 없었다. 첫 번째로 방패에 부딪칠 때마다 예외없이 타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라이렛의 지혜를 깨달은 성기사들과 집행관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라이렛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네놈의 얄팍한 작전 따위에 내어줄 결속력은 없다, 이교도.'
뤼델이 준비한 혼란을 간단히 회피한 라이렛은 목청껏 외쳤다.
"곧 짐승들이 다가올 것이다, 집행관의 3할은 번개를 거두고 짐승의 요격을 준비하라!"
"예!"
집행관들의 보기 드문 일제 대답.
그것은 신의 이름으로 정해진 절대적 위계에 따른 명령 복종이 아닌, 그녀 개인에게의 찬성의 의미였다.
라이렛은 이빨을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전장 저 멀리에서 다른 부대들의 방패 역시 그런 식으로 빛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지혜에 탄복하여 모방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뤼델의 방해 공작을 완벽히 상쇄해 낸 성기사단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속도로 이교도를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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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델은 굳이 짐승들을 만들어 보내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손톱을 뽑아 내는 고통이 거슬렸을 뿐.
누구보다 교회를 증오하기에, 뤼델은 역설적으로 교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사랑과 증오는 그 대상에의 맹목적인 추구의 면에서 닮아 있다.
뤼델은 성기사단이 바보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그런 식의 얄팍한 방해 공작에 굴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뤼델이 그들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 없게 하는 데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ㅡ고 뤼델은 생각했다.
어차피 뤼델이 달리는 방향으로 계속 달린다면 윈덴의 동쪽 외곽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 시궁창 도시 라뤼엠이 나온다.
제국 모든 곳에서 발생한, 사형수보다 못한 최악의 말종들을 보내는 일종의 유배지.
그 도시 특유의 기괴성 탓에 교회의 인물들은 입성을 극도로 꺼릴 것임을 잘 알았던 뤼델은 아무런 걱정 없이 짐승의 질주를 즐겼다.
아니, 즐기고 있었다.
그의 경로 앞에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광휘들을 목격하기 전까진.
"...어?"
윈덴의 이교도 체류 의심지에 배치된 성기사는 1,000기.
그리고 그를 뒤쫓고 있는 자들은 800기.
뤼델은 분노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당혹했고, 그래서 크게 실소했다.
"너무한 거 아니야, 응?"
이교도 한 명을 처단하기 위한 천 대 일 비율의 사면포위. 실로 교회의 방식이라 할 만 하다.
뤼델의 앞에서, 200기의 성기사단이 치달아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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