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마귀가 돌아왔다

검은 뱀이 내뿜은 독구름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핏발이 빼곡히 곤두서 붉은색 일색으로 변해버린 눈.
거센 기침과 뒤따르는 토혈.
숨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생물이기에 죽음을 들이마셔야 하는 비극적 광경들.
그들은 내쉴 숨도 부족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피해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말들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와 입에서 피거품을 끓여 대던 군마들은 이윽고 눈을 뒤집으며 목석처럼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위의 기수들 역시 독구름에 몸부림치며 낙마했다.
생기 없이 비척비척 쓰러지는 형제들. 보랏빛으로 가득한 시야. 다시 들려오는 황충들의 날갯짓 소리.
그들 사이에 자욱하게 번진 죽음.
신성기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최대한의 통솔력과 정신력을 발휘하며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독안개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있을 때, 그들의 상관 달랐다.
새애액ㅡ!
가이슨은 그의 손잡이 없는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며 독구름을 베어 냈다.
"집행관ㅡ!"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명령을 들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양날검인 그 검신에 자신의 손바닥을 베어먹으면서도 가이슨은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기도를 시작해라, 치유장을ㅡ!"
농도 짙은 성물인 그 칼날은 마귀의 기운에 실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이슨은 온전히 호흡하며 소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뤼델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영혼이 난자당하는 주박의 고통 속에서도 뤼델은 정신을 또렷하게 붙잡았다.
생의 8할이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 그다.
용광로와 일하는 대장장이는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듯, 자신의 몸을 해하는 것이 삶인 자는 영혼의 괴로움에 무너지지 않는다.
"후우우ㅡ"
뤼델은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격통의 범람에도 신음 한 토막 없이.
비척대며 걷던 뤼델은 이윽고 가이슨에게 달려들었다.
독기로 혼탁한 사방, 광휘기사에게 뤼델은 허공을 찢으며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허...!"
가이슨은 저도 모르게 칼날을 휘둘렀다.
후웅ㅡ
기술보다 본능이 더 많이 가미된 검격.
칼자루 없는 칼부림은 그 주인의 피까지 마신다.
몸을 굽혀 그것을 피해 낸 뤼델은 가이슨의 사각으로 몸을 던졌다.
칼날뿐인 검을 휘두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큰 동작을 소모해야 했던 가이슨은 대처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닥쳐온 기습에서, 빗나감은 뼈아프다.
뤼델은 그대로 가이슨을 들이받았다.
카앙!
"커헉!"
두터운 갑주 덕분에 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균형을 잃은 가이슨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거친 숨결.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자세를 추스르는 가이슨을 향해 암흑이 날아왔다.
눈앞을 뒤덮는 검붉은 손바닥이었다.
파악!
가이슨은 속절없이 얼굴이 움켜쥐어진 채 몇 걸음인가 뒤로 밀렸다.
두 눈과 함께 코 전체를 뒤덮은 손바닥은 찌릿한 피 냄새가 진동한다.
가이슨은 암흑으로 가득한 눈 앞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숨이 차다는 사실도.
"크하ㅡ 커컥! 쿨럭 쿨럭!"
호흡은 자각되지 않는다.
속절없이 짙은 독구름을 가득 들이마신 가이슨은 그대로 맹렬하게 기침했다.
"콜록, 켈록 켈록! 커허헉!"
기침은 토혈의 끓어오름으로 젖어 간다.
광휘기사는 정말로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다고?
내가?
아니.
인정할 수 없다.
"끄르르...아아아아아아아ㅡ!"
목구멍 안으로 피거품을 끓이며, 가이슨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괴성과 뒤따르는 거대한 검격.
휘우우우웅!
수평 방향의 최우측에서 최좌측으로 크게 베어가르는 무지스러운 검격은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절단했다.
스걱ㅡ!
"...크윽!"
뤼델의 왼팔이 잘린 채 빙글대며 날아갔다.
그는 욕지기를 뱉으며 상체를 젖혔다.
그리고 거칠게 발을 뻗었다.
콰앙!
거대한 참격만큼 극심한 반동을 억제하느라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던 가이슨의 복부 갑옷은 거창한 추돌음을 내었다.
강철판을 사이에 두고 울리는 둔중한 충격.
"커하...!"
결국 그는 크게 나동그라지며 복부를 부여잡고 웅크렸다.
그리고는 극심한 내상에 헛숨을 들이킨 가이슨은, 또 다시 후회하게 되었다.
치명적인 독구름이 또 다시 한 번의 들이쉼만큼 그의 폐를 난도질한다.
"쿨룩, 커허헉, 카ㅡ학!"
이제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핏덩이는 확연하게 늘어났다.
"커르륵, 커흐, 커허ㅡ"
가이슨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뤼델과 그의 어깨에서 똬리를 틀고 쉬쉿대는 뱀 두 마리, 그리고 잘린 손가락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어?"
가이슨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손은 방금 전에 잘려 날아갔을 터인 왼팔이었다.
뤼델은 그 팔의 잘린 손가락으로 가이슨을 겨누고 있었다.
'...주술.'
막아야 한다.
가이슨은 서둘러 그의 검집을 움켜쥐었다.
칼이 잡히지 않았다.
"...!"
심장에 꽂히는 망치질 같은 당혹감.
가이슨은 세 번째로 숨을 들이쉬었다.
"카학, 카하ㅡ카악! 크르릅, 케허악!"
이제 그것은 기침 이상의 거친 무언가였다.
가이슨은 숨이 부족에 맺힌 눈물을 후려치듯 훔쳐 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쿠루룩, 컬룩! 안돼, 크르륵, 에...!"
칼날은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교도... 뤼델에게 얼굴을 잡혔을 때 놓쳤구나!'
어둠 속에서도 별빛처럼 빛나는 성물은 자욱한 독안개 속에서도 분명하게 광휘로 빛난다.
광휘기사는 그 빛에서 본 것은 구원이었다. 유일한.
가이슨은 빛을 향해 몸을 나렸다.
땅을 박차는 군홧발. 날아가는 혈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혀보다 빠르지 못했다.
"[르칼브]"
그렇게 말하며, 뤼델은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콰직!
뼈가 내려앉으며 무릎이 반대로 굽었다.
가이슨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커르르륵... 크르아아아아악ㅡ!"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넘치는 핏덩이와 광열적인 비명.
뤼델은 천천히 앉아서 그의 무릎이 다시 낫기를 기다렸다.
비명과 토혈로 점철된, 차분한 기다림.
"..."
이윽고 뤼델은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꺼져 가는 의식 중에도 성물을 집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 가이슨의 손을 짓밟아 버린 뤼델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끝나지 않아, 깃털."
뤼델은 가이슨이 그토록이나 애쓰며 집으려 하던 칼날을 집어들었다.
그 성물은 악마의 신체를 베었을 때처럼 백열하진 않았지만, 뤼델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뤼델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 칼날을 휘둘렀다.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그 신도를 지키는 검은 제 능력을 발휘했다.
스하악ㅡ
자욱한 독구름이 갈라져내렸다.
검의 궤적 사로 벌어진 독구름의 틈.
그것은 사방에 자욱한 밤을 몰아내는 미약한 등불 같은 광경이었다.
이윽고, 가이슨은 숨이 쉬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쿨룩, 쿨룩, 커헉...! 허억, 허억..."
하지만 부서진 무릎의 통증은 여전히 끔찍스러웠고, 가이슨은 그저 호흡만 편해졌을 뿐 여전히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뤼델은 그의 귀 옆의 땅에 칼날을 꽂아넣었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가이슨은 고개만 겨우 돌려 한쪽 눈으로 뤼델을 바라보았다.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이겼다."
하늘은 다시 어둑해지고 있다. 다시 날아올라 그 그림자로 만든 밤을 드리우는 메뚜기들.
그 일련의 싸움이 있은 후에도 성기사들의 비명과 기침소리는 잦아들 생각이 없는 듯하다.
교회에겐 미안하게 되었군. 신의 재산을 축내다니.
"하지만 물어보고 싶다."
뤼델은 그답지 않은 차분한 태도로, 하지만 웃음기가 진하게 베어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즐거운 모양이군. 너는... 쿨럭! 왜, 왜... 이러는 것이냐?"
"무슨 말이지?"
"숨어 살 수 있었다... 너는 분명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교회의 인물들을 죽였다.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너는 교회와 형제들을 싫어한다. 왜 그런 것이냐?"
뤼델은 고개를 숙여 가이슨의 흐린 눈동자를 보았다.
"틀렸어."
"틀렸다고?"
뤼델은 한숨처럼 말했다.
"증오하지."
"...그게 중요한가?"
"봉황을 닭이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차이지."
가이슨의 어깨가 약간 경련했다.
"이... 명예를 알아라, 부두술사. 싸움에 패한 성직자의 앞에서 신의 이름을 모욕하지 마라."
뤼델의 어투도 다소 거칠어졌다.
"모욕한 적 없다. 네놈들 같은 머저리들이 닭이 아닌 봉황을 생에의 이유로 꼽듯이, 그것만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증오가?"
뤼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이슨은 그 침묵에서 수만 마디의 긍정보다 더 격정적인 동의를 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긍정조차 하지 않는군. 자신의 증오가 보편타당하다는 듯이.'
일순간 의식이 흐려지는 감각에도, 가이슨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그럼... 묻고 싶군. 그 증오의 이유가 뭐냐. 이 끔찍한 사달을 내고도, 제기랄. 그렇게 즐겁게 말할 수 있는 광적인 증오는 어디서 비롯된 거지?"
뤼델은 이제 웃음기가 가신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하지 않겠어... 나는 명예를 알거든, 응?"
뤼델은 고개를 들어 가이슨의 옆에 꽂혀 있는 검을 뽑아들었다.
"명예를...? 그건 무슨 말이냐."
그리고는 칼날에 잔뜩 엉겨붙어 있는 핏기와 기름기를 발아래의 흙먼지에 문질러 닦았다.
광휘기사는 자신이 어떤 거대한 본질에 닿았다는 본능적인 감각을 느꼈다.
"대답해라, 뤼델. 그건 무슨 말이냐!"
"...하, 내 이름을 아는군?"
"제기랄! 대답해!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다!"
격렬하게 외친 탓에, 가이슨은 또 다시 거칠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뤼델은 아랑곳 않은 채 그의 괴로움을 즐기며 말했다.
"그래, 옛날 이야기가 아직까지 도는 모양이군. 이름이 팔려서야 좋을 게 없는데, 응?"
교황이 움직일 테니까.
뤼델은 그 교황의 이름에 울컥 치미는 해묵은 감정을 느꼈다.
'잘 지내십니까, 성하. 당신의 기둥들이 만든 나는, 이 고통과 선혈로 자욱한 생을 당신의 피눈물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데. 성하는 잘 지내십니까.'
끝없이 덧나고 퍼지고 곪지만 절대로 아물지는 않는 깊은 상처.
그것이 뤼델의 증오였다.
"대답하라고, 이 빌어먹을 부두술사 놈아ㅡ!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다!"
뤼델은 발을 들어 가이슨의 턱을 즈려밟았다.
"말했지. 나는 명예를 아는 인물이라고.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언젠가는 창공의 바람을 스치우며 날 것을 다짐하는 짐승에게 먹구름과 날벼락과 폭풍우를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네게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겠다."
가이슨은 무어라 더 외칠 기세였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외치지 못했다.
뤼델이 잘 닦인 칼날을 휘둘렀기에.
성둥ㅡ
단칼에 잘려 나간 가이슨의 머리가 몇 바퀴인가 굴렀다.
"...카하하."
뤼델은 그 쾌감에 부르르 떨었다.
"으하, 하. 카하핫!"
이제 성기사들의 비명은 없다. 비명을 지를 상황에 처했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거룩한 이들의 무성의한 죽음들 사이로 광적인 웃음소리가 퍼졌다.
"카하ㅡ하하학! 아하하하하하하하ㅡ!"
뤼델은 알았다. 이제 그가 주박을 풀어내기 전까지 무시무시한 맹공이 닥칠 거라는 것을.
2,000기의 성기사단을 몰살한 범죄자의 취급은, 그 전례조차 없기에 뤼델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뤼델은 그저 즐거웠다.
그 무고한 이들의 비명을 듣는 것이.
죽기 직전까지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얼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이.
죽일 것이 확실시된 그 위대한 성직자와의 대담까지도.
뤼델은 가이슨의 잘린 머리를 챙겨들었다.
네놈의 머리로 내 주박을 뜯어 주지.
부두술사는 그렇게 자욱한 독구름 너머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
.
.
뤼델의 말과 달리,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한 백마가 사람이 가득한 윈덴의 번화가를 질주하고 있다.
그 위의 기수 역시 백색의 금속 갑주로 무장해 있다.
하지만 그 갑주만이 위대함을 암시할 뿐, 기수에게서는 성기사의 기품과 영용함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페일에 한 마디 말을 전하기 위해 직접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지위를 안다면 그 정도 되는 자가 어째서 전령 노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표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위대한 신성기사 갤딘은 눈물과 게거품과 절망으로 얼룩진 동작으로 말을 몰았다.
안면을 스치우는 거센 바람에 말라 버리는 눈물.
하지만 그 충격적인 기억들과 공포는 고작 바람 따위에 휘발되지 않는다.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ㅡ
대로의 행인들이 광적인 질주에 기겁하며 물러선다.
갤딘은 아랑곳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과묵한 사내였던 그는, 말로 뱉는다면 피를 토하며 외쳐야 할 만한 공포심조차 그 속으로 삼키고 있던 것이었다.
그 꾹 다문 입술 뒤로 한 문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페일에 전해야 할 바로 그 말.
'사탄 마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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