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광태

"물러... 물러나시오."
프릴의 말에는 짙은 경계심이 아주 강하게 묻어났다.
마버크와 차르탄은 한 마디 의문도 없이 프릴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신성관이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ㅡ
몇 걸음이 지나 남자의 기괴한 말 앞에 서게 된 프릴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페일의 신성관이며, 신부에 준하는 신성적 권한과 권위를 가진다. 내게 고해해라."
남자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런, 나는 밀폐되고 음습한 방구석에서 단 둘이 하는 것이 고해인 줄 알았는데요."
"...그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그리고, 너에게서는 신에 대한 존경을 찾을 수가 없군."
차르탄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성직자인 그녀의 과격한 언사를 보고서 점차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미친 놈, 설마 저놈이 그 이교도란 말인가? 저를 죽이기 위해 모인 대군의 앞에 비루먹은 말 한 필 타고 나타난 저것이?'
그리고 무인인 마버크는 조금 다른 것을 보았다.
그녀의 손이 검집에 얹혀 있었다.
"..."
남자는 말의 뒤통수를 눌러 그것이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러자 말의 문드러진 주둥이에서 피고름 섞인 체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남자는 그렇게 말의 숙인 고개 뒤에서 프릴의 얼굴을 마주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말입니다, 하하. 고해할 사항이 많이 개인적인 것이라서요. 오직 신에게만 그 죄를 알리고 뉘우치는 것이 고해 아니덥니까?"
어투는 가볍다 못해 경박스럽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가 기도 따위 하고 살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은 여실히 드러나지만, 프릴은 그의 말은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말이 쏟아 놓은 체액에 있었다.
마기를 뿜어 내는 수준이 아니라, 마기로 이루어져 있는 그 피고름들.
프릴의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마버크는 차르탄의 어깨를 짚으며 속삭였다.
"당신의 호위병들과 함께 군 진영 앞에서 벗어나십시오."
"예, 예?"
그 말에 대해 차르탄이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도 전에, 프릴의 입이 먼저 열렸다.
"뒤의 이들이 듣지 못하게 말해라. 너의 죄가 무엇이지?"
[음웨에에에에에에ㅡ]
온 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그 기괴한 울음에 마버크의 등 뒤로 도열한 18만 대군의 경악이 번져 나갔다.
손가락만 튕겨도 18만 번의 울림이 있을 대군의 경악은 공기를 잠시 동안 흔들어 놓을 만큼 소란스럽다.
남자는 그 소란 속에 그의 속삭임을 섞어넣었다.
"성기사 살해."
그 말을 끝으로 짐승이 폭발했다.
푸콰광콰쾅ㅡ!
"신성관ㅡ!"
폭발의 색은 불꽃의 붉은빛보다 부패되어 녹아내린 내장의 녹색을 띤다.
말 그대로 시체 썩는 냄새가 끼치고 온 사방에 담즙과 체액이 터져 나가는 그 찰나의 광경.
하지만 프릴은 멀쩡히 서 있었다.
그녀의 백색 갑주에 부착된 어깨 갑옷에 새겨진 복잡한 파형문들이 금빛으로 빛나며 어떤 마법을 뿜어낸 것이다.
그녀의 전방에 당당하게 세워진 섬광 방패가 빛으로 일렁이는 가운데, 프릴은 그녀 자신의 안위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했다.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마기를 느꼈을 때 칼을 뽑아야 했는데, 머저리같이!
프릴은 그녀의 군대를 향해 거칠게 달리며 외쳤다.
"그자가 이교도다! 찾아서 죽여라ㅡ!"
하지만 마버크는 다른 말을 외쳤다
"아니, 전투를 준비해라. 위다!"
위.
병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 맺히는 괴악한 광경.
폭발의 충격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던 남자는 짓이겨진 고깃덩이가 되어 낙하하고 있었다.
"커흐, 커커커커커...!"
남자는. 뤼델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지만 폐가 다 찢어져 바람 새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짧게 말했다.
"[루디알]"
마기가 터져 나온다.
빙글빙글 돌며 낙하하던 뤼델은 갑자기 짜맞춰졌다.
그의 체내에서 핏줄이 뼛조각들을 휘감아 제자리에 맞춰 놓고, 찢어진 근육들이 제 조각을 찾아 엉겨붙으며 연골이 스스로 모양을 비틀어 골격의 뒤틀림을 되돌린다.
그것은 재생이 아닌 변형.
의지가 닿지 않는 신체 모든 부속지까지 움직이며 부서진 것들을 제자리에 놓는 과정이었다.
내부의 소란에 밀려 살갗을 찢고 터져 나오는 핏줄기와 골수.
인간의 360개 관절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동작들.
정신이 공포를 희석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헛웃음들이 부대 전체를 휘감아돌았다.
산산이 부서진 인간을 마귀의 바느질로 꿰매어 고치는 과정.
그 충격적인 작용이, 늦가을의 드높은 창공에서 18만명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카하하하하하하ㅡ!"
이제 웃음소리는 분명하고 명확하다.
그렇게 웃으며, 뤼델은 넓게 도열한 군사들의 앞에 떨어졌다.
퍼어억!
착지를 가장한 추락.
그는 지면에 납작하게 뭉개지며 피와 모래를 거창하게 튀겼다.
하지만 곧 일어섰다. 기괴한 장면과 함께.
일어서는 동시에 으스러진 무릎을 재조립하고 비틀린 발목을 짜맞춘다.
온 사방에 흩뿌려진 핏줄기가 메뚜기 떼가 되어 남자의 주변을 새카맣게 뒤덮는다.
몸체의 재구축은 줄기의 발아를, 터져 나오는 메뚜기들의 질량감은 묘하게 다갈색의 플라타너스 잎들을 닮았다.
마치 식물의 생장 같은 그 기립.
그것이 인간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는 가히 신성모독적이다.
퍼드드드드드드득ㅡ
정신을 질리게 하는 메뚜기 소리가 굉굉하다.
그 순식간에 지나간 일련의 과정을 통해, 뤼델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당도한 18만 대군의 앞에 서게 되었다.
"고해를 했으니 신부께서는 보속을 해 주셔야지, 응?"
그리고 그런 신성모독의 광경 앞에, 신의 기사들이 할 일은 명확하다.
"신을 저버린 자가 보속을 요구... 우습지도 않구나."
어느새 그녀의 본대 지휘관의 위치에 서 있는 신성관의 목소리.
"성물이 찔려 죽는다면 그 또한 보속이겠지. 네놈에게 어울리는군."
그렇게 말한 프릴은, 그녀의 우아한 거동과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척살을 준비한다ㅡ!"
페일의 백색 갑주들이 윤무처럼 움직이며 돌격 대형을 갖췄다.
마버크는 그의 말에 날듯이 올라타 소리쳤다.
"제국군은 물러서라! 돌격은 성기사들이 한다, 상대는 부두술사다!"
강철과 강철들의 치열하고 절제된 자리바뀜들.
말들이 기수의 흥분에 전염되어 투레질한다.
전원을 보여주기 위해 도열한 부대는,
비로소 전장의 모습으로.
프릴은 그녀의 세례를 받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 검끝으로 겨냥당한 뤼델은 천천히 웃으며 무언가를 중얼댄다.
과열로 휘저어진 맹포한 공기 속.
수만의 목숨이 피로 물드는 전투는 한 마디 말로서 시작된다.
"죽여라ㅡ!"
제국력 522 9월 35일.
신의 광휘와 제국의 강철이 윈덴의 땅을 거칠게 짓밟으며 돌격했다.
.
.
.
바람의 백작은 황급히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친 말발굽 소리 뒤로 울려퍼지는 격정적인 함성을 들으며, 왜 마버크가 자신을 보낸 것인지 깨달았다.
보낸 것이 아니다. 치운 것이다.
그 거대한 군세의 돌격 거리를 위해.
"...그래, 잘 됐지. 백작이 전장에 있어서 위협받기 말고 뭘 할 수 있나."
가슴 깊은 곳에서 그의 뭉개진 자신감과 권력에 뒤따르는 영향력 행사 욕구가 무어라 외쳤지만 차르탄은 그것을 고이 갈무리했다.
범접하기 어려운 권력(그것도 순차적으로 거대해지는)을 세 번쯤 겪고 나면, 그런 무익한 욕구는 저절로 내리눌러진다.
자신의 영지 내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 일말의 개입할 여지도 없는 백작은 그렇게 말을 달렸다.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ㅡ
인근의 거리는 군사들이 제대로 막고 있기에 방랑할 길을 잃은 일대의 시민들은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참이었기에 거리는 한산했다.
새삼 그런 자신의 영지에 괴상함을 느끼던 차르탄은 그의 저택이 보이자 속도를 조금 늦췄다.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ㅡ
그리고 속도는 완전히 낮아져 정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를 따라 달리던 호위병들의 속도도 점차 늦어져 멈춰섰다.
"출발하시죠, 백작님."
그의 옆에서 말을 달리던 데로스가 말했다.
"..."
이젠 차라리 익숙하다.
"...왜 멈추시는 거냐고 물어라."
"예. 왜 멈추시는 거죠?"
차르탄은 한숨을 쉬며 앞을 가리켰다.
데로스는 주군의 손가락을 따라 시야를 옮기며, 자세히 보기 위해 미간을 찡그렸다.
"말을 탄 사람들이군요. 열 명? 조촐한 차림에... 일반인이 아닌 분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허, 그런 것까지 보이나?"
"아뇨, 다가옵니다."
"뭐?"
차르탄은 다급히 앞을 돌아보았다.
저 앞에서 작은 덩어리로 보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도 속도가 붙기 전 따라잡을 만한 거리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백작은 크게 당혹했지만, 그의 보좌관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인 모양이군요. 최근 들어 유명하지요."
기묘할 만큼 침착한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차르탄은 이윽고 다가오는 자들이 어떠한 무기도 들고 있지 않으며 말의 속도 또한 질주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차르탄은 침착함을 가장한 태도로 물었다.
"그들?"
"온갖 도시에 들이닥쳐선 협조를 요구하고 홀연히 떠나 버린다는 사절들 말입니다. 자신들을 '혁명의 불꽃'이라 칭한다더군요."
"혁명의 불꽃... 잠깐, 들어본 적 있는데."
"곧 직접 들으실 겁니다."
...그렇겠군.
그들은 이미 고함치지 않아도 들릴 만한 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데로스와 차르탄의 예상대로, 그들은 무례하지 않을 만한 거리에 다달아 멈춰섰다.
총 열한 명인 그들은, 확실히 데로스의 말대로 일반인들로만 구성된 자들은 아니었다.
도저히 피부병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우둘투둘한 피부를 가진 사람 둘, 마법사들 특유의 지팡이를 꽂을 수 있는 허리띠를 멘 사람 넷.
'저 둘은 반신의 사제. 저 사람들은 합법 같지는 않은 마법사군.'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런 자들과 대화하는 것이 품위에 맞지 않다.
애초에 제국에서 그리 환영하지 않는 그들이기에 주로 대화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차르탄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백작이긴 하지만 '윈덴의 백작'이었기에.
"반갑습니다, 바람의 백작님. 이렇듯 통보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점 사과드립니다."
"아, 아닐세. 존대를 아는 것만 해도 나는 이제 만족하네."
어리둥절해 하는 사절들, 엷게 웃음짓는 보좌관.
간만에 본인은 하대하고 상대는 존대하는 상황이 되어 약간의 즐거움을 느낀 차르탄은 짐짓 밝게 물었다.
"하지만 별로 중요치 못한 일이라면 우리는 오랫동안 어울려주지 못할 것 같군. 아마도 알 듯 싶은데, 윈덴이 지금 상당히 어지러운 때라서 말이야."
성기사 살해 사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사실상 그것은 꺼져 달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사절들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특이한 태도에 데로스의 미간이 좁혀진다.
"아, 그렇지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걱정이었는데, 잘 되었군요."
"어, 뭐라고 했나?"
마법사처럼 보였던 자가 실제로 허공에서 양피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인 후 말했다.
"저희는 혁명군의 사절입니다. 이 도시에 현재 체류 중이라고 알려진 뤼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데, 협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작가의말
전 회차의 뒷부분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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