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와 전쟁한다는 것은
대군의 움직임은 급격하지 않다.
폭풍이 닥치기 전 수면은, 오히려 조용히 물결치며 터뜨릴 파도를 끌어모은다.
차분히, 고요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말들의 발굽 소리가 빨라지며 겹쳐 들린다.
열기에 절어 거친 숨결들이 전장에 덧쌓인다.
이윽고 발굽 소리들은 산사태의 울림이 되고, 숨결들은 열풍으로 변해 질주의 전면에 치닫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ㅡ
일대가 진감하는 거대한 돌격.
5만 명의 성기사단이 정면에서 육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색 파도처럼 보이는 그 돌격의 중앙에서, 신성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칼날을 받으라!"
뤼델은 여유롭게 손톱을 뽑아 내며 말했다.
"그러지."
음산한 주문 뒤로, 떨어진 손톱 아래에서 주검 같은 짐승이 솟아나왔다.
그것에 올라탄 뤼델은 천천히 마주 달리며 기괴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루디알]"
뤼델의 상체가 펼쳐졌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박피된 박제 동물처럼, 무두질되어 근육과 가죽이 발라진 흑곰처럼. 껍질이 갈라진 석류처럼.
마버크는 심장이 시큰해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에 찰나 동안 현기증을 느꼈다.
펼쳐진 상체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나부끼는 피의 장막.
허공으로 흩뿌려진 핏줄기는 액체 특유의 장력으로 바람을 껴안고 넓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끝내 방울방울 흩어지다, 어떤 생물로 변모해 거칠게 날개치기 시작한다.
뤼델은 미친 듯이 웃었다.
완전히 드러난 그의 가슴 내부 사이로 폐의 맥동이 비쳐 보인다.
저주받은 짐승이 점점 거칠게 달리기 시작한다.
덩달아 성기사단도 찰나가 지날수록 거대하게 육박해 들어온다.
뤼델은 질주하며 스치우는 바람을 끌어안으려는 듯 양 팔을 펼쳤다.
그리고 그의 열 손가락에서 손톱들이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로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신체 부위에까지 시전자의 명령을 전달하는, 마귀 루디알의 권능.
그리고 권능의 시전과 동시에 발현된 악령의 주문은 그대로 성기사들의 악몽이 되었다.
"[테르칼론]"
뤼델의 주위에 넓게 깔린 황적색의 메뚜기 장막 사이로 짐승들의 악취가 존재를 드러냈다.
[음웨웨웨웨웨웨웨ㅡ!]
[음우우우우우우우우ㅡ!]
동시에, 뤼델의 이빨들 역시 그 주위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잇몸을 강제로 벌리고 내부에서 이빨들을 밀어내어 만드는 그 충격적인 장면.
이미 최고치에 달한 질주의 뒤로 이빨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짐승의 발아래로 떨어져 굴렀다.
마귀의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는.
"[이뉘빌]"
대략 서른 개 가량의 이빨이 한 번에 사라져 약간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마귀는 그 권능을 드러냈다.
촤르르르륵ㅡ
황충들의 비행 아래로 보잘것없이 구르는 이빨들이 마기를 내뿜는다.
이빨들은 그 자신들이 만드는 조막만한 그림자에 둘러싸이는가 싶더니, 닥쳐 오는 밤에 삼켜지듯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떨어져 구를 때마다 곱절로 거대해졌고 동시에 어떤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약 다섯 번째 굴렀을 때, 그것들은 밤과 그림자와 그을음으로 된 개 떼가 되었다.
[크라라라라라락ㅡ!]
순수한 맹폭함으로 타오르는 울음을 내뱉은 마귀 개들은 늑대보다 거대한 그 육신들을 산개했다.
그리고 그들의 뜀박질 뒤로 또 다시 구르는 손톱 조각들과 이빨들.
저주받은 짐승이 한 번 땅을 박차고 또 딛을 때마다, 뤼델의 뒤를 따르는 끔찍한 피조물들이 늘어난다.
이제 말의 구동으로 세 번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육박해 들어오는 뤼델을 보며 프릴은 아연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혼자서 군대가 되고 있다...!"
5만 대 1의 압도적인 비율은 이제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끌어모은 모든 힘들이 격돌하는 순간인 첫 번째 돌격.
그 힘들의 준비와 관리까지 전쟁의 일부로 포함한다면 기병 돌격은 감지되지도 않을 만큼 찰나다.
하지만 뤼델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단신으로 달리며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군단을 만들었다.
"뭐 저런...!"
이렇게 된 이상 수적 우위라는 절대적 유리함 속에서 으스댈 수 없다.
전장을 바라보던 제국군의 대군단장은 다급히 그의 10만 군세를 투입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등 뒤에 접혀 있던 깃대를 조립해 들어올리며 짧게 생각했다.
'검집 없는 검 속에서 용광로로 대검을 주조하는 꼴이군. 신을 저버린 만큼 불합리하다는 말인가!'
마버크는 붉은 제국기를 힘있게 들어올려 허공을 휘저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뤼델의 시커먼 군대와 백색의 성기사단이 부딪쳐 들어갔다.
일대에 휘몰아치는 무시무시한 혼돈.
"흐아아아아아아ㅡ!"
[음웨웨웨웨웨웨웨ㅡ!]
"주여어어어어어어ㅡ!"
[크르르라라라라라ㅡ!]
비명 같은 함성과 함성 같은 비명.
그리고 그 어떤 것과도 헷갈릴 수 없는 살의로 무장한 짐승들의 포효.
그 사이에 낀 말들의 새된 비명이 애처롭다.
첫 번째 격돌 이후 성기사단의 전방은 계란 깨지듯 부서져 나갔다.
점차 비명의 비율이 높아지는 전쟁의 소음들.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그 전투를 보며, 프릴은 그녀의 빛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빛을 모아라ㅡ!"
페일은 바보가 아니었다.
5만의 대군세 속에는 강력한 성물을 지닌 이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성물의 광휘는 그 접근만으로 마귀의 피조물들을 해친다.
최전방의 성기사들은 어쩔 수 없다. 교회의 방식은 확실한 만큼 잔혹하다.
최고의 것들로만 구성된 병사들의 무장과 말들, 훈련 정도들까지.
모두가 페일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요소들이지만, 가장 위력적인 것은 집행관이다.
그리고 현재 성기사단은 일만의 집행관들이 있다.
신성관의 명령이 하달되고, 집행관들이 그 전투에서 처음으로 신성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일만의 양 손. 총 이만 개의 빛살들.
그것들은 파랗게 타오르는 번개가 되어 어떤 곳으로 미친 듯이 내쏘아졌다.
넓게 도열한 그들의 손에서 뻗어나오는 빛줄기들이 한 지점으로 일시에 모여드는 광경.
찰나 동안, 허공에서 그것을 봤다면 빛으로 된 부채라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콰루루루루루루룽ㅡ!
이만 가닥의 벼락이 모인 지점은 프릴의 성물 검날.
무수히 많은 신성력의 결실들이 가히 엄청난 모습으로 중첩되고 결집되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ㅡ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광휘.
프릴은 그 무시무시한 번개의 작렬을 한 손으로 견디면서도 그것에 삼켜지지 않았다.
그녀의 신성한 어깨 갑옷이 복잡무쌍한 문양을 빛내며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의식을 간신히 붙들고 있을 수 있게 할 뿐. 번개는 여전히 미친 듯이 위력적이다.
콰자자자자자자자작ㅡ!
"끄으으으윽...!"
신성관을 태워 버리지 못한 번개들은 그 자신들의 주체 못할 힘들을 퍼뜨리며 하늘을 향해 꿈틀꿈틀 치솟는다.
번개의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하지만 무수히 많아 곡선의 검날처럼 보이는 마법의 중첩.
번개로 빚어진 프릴의 검은 이제 그것을 휘둘러 달이라도 조각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칼날이 되었다.
프릴은 그것을 휘둘렀다.
이만 줄기의 번개들로 된 프릴의 검은, 대군의 중앙에서 최전방의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투콰과광콰콰콰콰콰콰광쾅쾅ㅡ!
작렬하는 번개로 된 칼날의 첨단이 마귀들이 딛고 있는 지면을 거칠게 파헤치며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쿠아아아아아악ㅡ!]
[그웨웨웨웨웨웨웩ㅡ!]
마귀들의 역겨운 울음들이 마지막 숨결로 변모해 사라진다.
뤼델은 그의 피조물들이 그 일격에 4할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실소했다.
"멋진데, 응?"
부두술사는 그렇게 말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그노르가]"
발치된 치아로 화염을 만드는 악령의 주문.
그리고 뤼델의 주변에서 백색이라면 무엇이든지 덮쳐들어 깨물어 부수고 있는 개 떼는 전부 이빨로 된 것이다.
화르르르르르르르ㅡ!
그을음과 칠흑으로 된 개들의 몸이 폭발하는 화염에 휩싸였다.
움직이는 숯더미처럼 변모한 검은 개들은 그렇게 작렬하는 화염을 끌어안고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크라라라라락ㅡ 커르러러럭ㅡ!]
프릴의 공격은 그 압도적인 위력만큼 몸에 거대한 무리를 주는 것이었고, 프릴은 그녀의 어깨를 추스르며 갑자기 타오르는 전선을 황망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성관의 공격으로부터 얻었던 병사들의 희망은 빠르게 휘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비명지를 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참이었다.
[그우워워워워워워ㅡ]
흩날리는 불씨들이 죽음으로 썩어들어간 짐승들에게 번지기 시작했다.
이미 깊숙이 침투해 날뛰고 있는 짐승들의, 기습적이고도 치명적인 폭발들.
푸콰쾅콰광쾅ㅡ!
콰콰광콰콰콰광ㅡ!
콰광쾅콰콰광ㅡ!
투쾅콰과쾅ㅡ!
늙은 짐승의 피부에 일어난 무수한 염증들처럼, 드넓은 전장의 수많은 곳에서 기름진 폭발들이 작렬했다.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일순간에 선두에 서던 형제들을 모조리 잃게 된 신성관은 모진 신음을 흘리며 그녀의 검을 다시 다잡았다.
휘둘러지는 두 번째 공격.
쿠르르과쾅콰콰콰과광콰콰콰콰과콰ㅡ!
먼젓번보다 훨씬 갈무리되고 침착한 동작으로 행해지는 번개 검격.
그것은 지면을 휩쓸 때마다 미친 듯한 괴광으로 폭발하며 모든 것을 불태우고 찢어발겼다.
또 다시, 마귀 병력의 4할 정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투를 지속하며 끊임없이 그 신체를 나눠 병력을 양산하고 있던 뤼델이었지만, 이런 식의 손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이었다.
점점 마귀들의 밀도가 줄어 병사들의 검이 그에게 닿을 뻔하는 것을 느끼며 뤼델은 혀를 찼다.
"...아직 물러서기엔 이른데 말이야."
확실히 그랬다.
전방의 군사들을 거의 갈아버리다시피 하며 전진한 뤼델은 이제 성물을 소지한 이들이 대거 섞여 있는, 부대의 전방 중앙 구간에 들어섰다.
그들의 칼날은 신의 힘과 함께라는 자신감으로 보강되어 더욱 매서웠고, 성물의 광휘에 닿아 약해진 피조물들이 쉽게 쓰러져갔다.
이제 뤼델의 발아래 짐승도 한계까지 부패되어 내부부터 고동치고 있었다.
"허어, 제기랄."
뤼델은 짐승의 등 위에서 그의 뒤를 바짝 쫓아 달리던 또 다른 짐승의 등 위로 뛰어올라 갈아탔다.
[그워워워워워워워ㅡ!]
메뚜기들 같은 유약한 피조물들은 성물의 광휘에 닿자 그냥 가루가 되어 부서져내린다.
황충의 장막이 점차 걷히기 시작하며 페일의 백색이 다시 찬란함을 발산한다.
짐승들은 도전의 포효보다 죽음의 비명을 더 많이 내지르고 있다.
그리고 뤼델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보았다.
이빨이 드러나는 깊은 미소.
"네놈들이었군!"
뤼델이 발견한 첫 번째는 마버크의 10만 제국군들 중 돌격 가능한 전원,
즉 8만 명이 양익 4만으로 쪼개진 채 우회기동하여 뤼델의 좌우측을 동시에 좁혀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페일의 섬광 방패로 전방을 강화한 채 육박해 오고 있었다.
마버크는 우익의 부대에 섞여들어간 채 사병처럼 함성질렀다.
"짓이겨 죽여 주지. 어디 한 번 뒤로 돌려 봐, 멍청한 이단 놈!"
하지만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마버크가 무색하게도, 뤼델이 집중하고 있는 요소는 그의 전략이 아니었다.
그가 의식하고 있던 건 성기사단의 병사들 사이사이에서 말도 타지 않은 채 맨몸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하는 기묘한 병사들이었다.
"세례자들...!"
병사들은 맨발로 전장을 짓이기며 맨주먹으로 마귀들을 으깨 버리고 있었다.
그 격렬한 동작에서 퍼져 나오는 강렬한 신성 기류.
"이단이 저기 있다, 비켜라, 형제들!"
"내 주먹으로 때려죽이겠다, 전부 꺼져라!"
성물이란, 세례를 받은 물건.
교회의 진실된 세례는 물건에 영구적인 신성력을 깃들게 해 엄청난 위력을 가지도록 한다.
그리고 사람이 세례를 받으면, 그 체내에 영구적으로 신성력이 깃든다.
거동 하나하나가 위력적인 마법의 운용인 자들.
세례자들이 뤼델의 마귀들을 쳐부수며 달려들어 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일반연재로 승격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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