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와 세례자

세례자들의 앞에서 마귀들은 한 순간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에 부여된 순수한 신성력은 그들을 초인으로 만들었고, 달리 말해 그들은 마귀들에게의 괴물이었다.
내질러지는 주먹의 풍압이 광풍이 되어 말들을 비명지르게 하고 터져 나오는 고함이 일대의 공기를 뒤흔든다.
부서지는 마귀들의 검은 파편이 흩날리는 가운데, 8만 명 중 300명.
'척살자' 세례자들이 뤼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구원받으라ㅡ!"
퍼어엉ㅡ!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세례자의 주먹이 뤼델이 타고 있던 짐승을 박살 냈다.
뤼델이 심어 놓은 불꽃도 없었기에 짐승은 강력하다기보단 비참한 모습으로 터져 버렸다.
"흐읍!"
뤼델은 빠르게 짐승의 등에서 마귀 개의 등 뒤로 뛰어들었지만, 뤼델이 올라타기도 전 개의 머리로 날아드는 주먹이 있었다.
콰와앙ㅡ!
그 무지막지한 타격음은, 살갗과 살갗이 닿아 나는 것이 아닌 바람이 찢어발겨지며 나는 소리.
일격의 풍압에 뒤섞여 흩날리는 금빛의 빛살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그 압도적인 공격에 직격당한 이뉘빌의 개는 그대로 온 몸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덕분에 뤼델은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크하...!"
뤼델은 재빨리 일어섰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나부끼는 가운데, 눈앞에 차오르는 거대한 광휘.
성스러운 발길질이었다.
뻐어억!
뤼델은 으깨지다못해 아예 내려앉아 버린 얼굴을 부여잡으며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튀어오르는 흙덩이와 핏덩이.
어떻게든 일어선 뤼델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입안 가득히 씹히는 부서진 이빨들과 말을 듣지 않는 턱뼈 때문에 불가능했다.
다시 시야 한켠에 비치는 눈부신 빛.
성스러운 주먹이 뤼델의 왼얼굴에 작렬했다.
바람이 찢어지며 나는 우악스러운 굉음.
그 주먹은 올려쳐지는 류의 공격이었고, 뤼델은 아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카하ㅡ 하학...!"
조금 전과 비슷한. 온 몸이 으깨진 채 허공을 활보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뤼델이 의도한 적 없다는 부분에서 전혀 다르다.
허공에서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해 팔다리를 휘적대는 뤼델의 아래로, 그를 추격하는 광채들이 있었다.
투학ㅡ!
투콱ㅡ!
투콱ㅡ!
투학ㅡ!
몰아치는 수만의 병력들 사이사이에서 빛으로 온 몸을 감싼 세례자들이 척살할 이단을 쫓아 허공으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날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 얼굴을 회복한 뤼델이 무어라 말하려는 참이었다.
"이봐들, 잠깐 내 말을ㅡ"
콰드드득ㅡ!
그의 수직 아래에서 뛰어오른 세례자가 뤼델의 척추를 부숴 버리며 뛰쳐올랐다.
고개가 홱 돌아가는 일격.
뤼델은 목구멍 안의 산소가 순식간에 압박당하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은 멀쩡했고, 그의 시야는 다시 그 저주스러운 빛으로 가득 찼다.
허공에 뛰어오른 세례자들은 뤼델과 마찬가지로 제 몸을 어찌할 수 없었기에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고, 찾았다.
세례자 하나가 집어던진 또 다른 세례자가 뤼델에게 주먹을 뻗으며 날아들었다.
아직 뤼델이 숨을 채 다 마시지도 못한 채였다.
아직 닿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미친 듯한 풍압.
광휘의 폭발과 함께 그 위대한 주먹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앙ㅡ!
그 궤도는 땅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였기에 뤼델은 그대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콰르르르르르!
자갈과 돌덩이와 흙먼지가 시야를 스친다.
거창하게 구르던 뤼델은 급하게 입을 뻐끔댔고, 이윽고 필요한 만큼의 바람을 마실 수 있었다.
"[루디알]"
행사되는 권능, 퍼져나가는 마기.
뤼델은 그 말과 함께 구르는 것을 멈췄다.
그의 살갗 사이사이에서 그물처럼 뛰쳐나온 혈관들과 부서진 뼛조각들이 땅을 긁어 그의 육신을 멈춰세운 것이었다.
그 상식 파괴적인 장면에 세례자들조차 잠시 멈칫했다.
콰드득, 빠드득, 꾸드드득ㅡ
몸을 돌보지 않는 과격한 재조립.
뤼델은 순식간에 그 모든 파괴의 흔적들을 몸에서 지워 내고 일어섰다.
그렇게 멀쩡하게 선 뤼델은 그의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어 털었다.
터져버린 안구가 쑥 빠져서 떨어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눈이 부풀어 차오른다.
머리카락의 피를 턴 손으로 코를 집어 거세게 비틀자 부러진 코뼈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뤼델은 그렇게 멀끔한 얼굴이 되어 씨익 웃었다.
"아픈데, 응?"
그의 옆으로는 마버크의 제국군들이 그를 짓이기기 위해 치달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뤼델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세례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지?"
세례자들은 말 그대로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이 짙은 마기... 역겨울 정도야. 넌, 넌 뭐지?"
뤼델은 찰나 동안 봉황과 가장 반대격인 조류가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까마귀시다."
그에게 질문한 세례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런 그의 뒤로 돌격했던 모든 세례자들이 다가와 섰다.
최초로 뛰쳐나왔던 세례자들은 수십 명에 가까웠지만, 이제 그의 뒤에 선 세례자들은 250에 달했다.
선두의 세례자는 떨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너는 나의 형제들을 죽이고... 위대한 주를 모욕했다. 죄의 무게를 알겠는가?"
"응."
"그렇다면 어째서 그리하는 것이지. 너는 미쳤나?"
"그렇긴 하지만, 미쳤기 때문은 아니야."
커져 오는 제국군들의 돌격 소리.
양익의 그들 모두가 당당하게 내세운 섬광 방패의 거대한 광휘가 찬란하게 비쳐 온다.
세례자는 그의 금빛 머리칼을 넘기며 물었다.
"그렇다면?"
"죄가 무거운 만큼 더 즐겁거든, 응?"
흔들리던 동공이 제자리로 모아졌다.
"...뭐?"
"강력범에게 행해지는 고문자의 고문은, 그 잔혹함만큼의 강력범에게의 죄이지. 그런 이치에서, 나는 즐겁고 또한 옳다."
그와 말을 주고받던 세례자를 포함한 250명 전원의 눈이 금빛으로 불타올랐다.
성물은 30년 이상을 사용할 수 없다.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신성력이 아무리 강력한 금속이라도 천천히 내부부터 갉아먹어 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살아갈 나날의 절반에 해당하는 목숨을 바치는 일.
다르게 말하면 세례자들은 신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생명을 바친 자들이다.
신을 위해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이들에게 들린 신성 모독.
"너...!"
신념과 사상은, 올곧고 단단할수록 그에 반하는 것에 거칠게 대적한다.
"그 말...!"
신앙의 모욕은 감정에서의 분노로, 그 주인의 분노는 육신의 각성으로.
"감당해라ㅡ!"
땅을 달리는 유성우가 되어 치달아 오는 250명의 세례자들과 이제 직전까지 다가온 두 개의 섬광 방패가 흩뿌리는 빛들이 눈부시게 끼쳐 온다.
뤼델은, 정말 즐겁게 웃었다.
교만한 아이들의 콧대를 눌러줄 만한 무언가를 들고 오는 소년처럼.
그의 얼굴의 그림자를 지워 가며 다가오는 빛을 보며 뤼델은 혀를 빼물었다.
그리고 깨물어 끊었다.
꽈득ㅡ!
그렇게 뜨거운 피로 흥건해진 혀의 단면으로 손가락을 핥은 뤼델은 그 피로 이마에 둥근 문양을 그리며 말했다.
'[쉐본]"
세 개의 빛나는 돌격이 뤼델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ㅡ!]"
영혼을 진감케 하는 무시무시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쩌적, 쩍!
제국군들이 선두에 세우던 섬광 방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포효는 소음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대화재가 의심될 정도의 미친 듯한 마기를 뿜어 내며 공기를 뒤흔든 그 울부짖음은 분노에 찬 성기사들도 주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크아ㅡ아아아아아악ㅡ!]"
뤼델의 상체가 우드득거리며 부풀어올랐다.
루디알의 권능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 장기와 근육들의 크기 자체를 키우는 것이었다.
양 다리는 부러지는가 싶더니, 꺾인 자리에서 새로운 관절이 생겨나 짐승의 그것처럼 역관절을 가지게 되었다.
거대하게 벌어져 근육으로 뒤덮이는 어깨.
세 배로 커진 양 손 끝에 자라는 핏빛의 손톱.
온 몸에서 시커먼 털이 빼곡하게 자라나 원래부터 검은 털의 짐승이었던 것처럼 뒤덮는다.
"[크르르르ㅡ 커아아아아아악ㅡ!]"
양 관자놀이로 벌어진 두 눈의동공이 길게 늘어진다.
코와 입이 짐승의 주둥이처럼 늘어나고 거대하게 변한 치아들이 그 추악한 입술 뒤로 빼곡하게 배열되었다.
길게 늘어져 너풀대는 귀.
얼굴까지 뒤덮는 시커먼 털가죽.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양 갈래로 뭉쳐져 어지럽게 꼬여 있는 뿔로 굳어진다.
그 모든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ㅡ!]"
그렇게, 뤼델은 마귀 쉐본의 형상을 빌렸다.
염소의 가장 기괴하고 끔찍한 친척쯤 될 듯한 모습으로 변한 뤼델은 그대로 양 팔을 벌렸다.
그의 거대한 손바닥으로 깨져 가는 섬광 방패가 부딪쳐 왔다.
쩌저저정ㅡ
콰과과과과광ㅡ!
방패들은 가볍게 박살 나며 금빛의 파편을 온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것은 제국군들의 유일한 믿는 구석이자 자신감이었고, 방금 막 부서졌다는 점에서 그것들과 동일했다.
"흐아ㅡ아아아아악ㅡ!"
마귀의 육신이 제국군을 휩쓸기 시작했다.
와우우우우웅ㅡ
거대한 밭갈이처럼 변한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는 끔찍한 노래.
그 무지스러운 손짓의 앞에는 터져 나가는 머리들이, 뒤로는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유혈의 강이 있었다.
콰드드드드드득ㅡ!
걸음마다 말들을 짓밟고 손길마다 수십 명이 죽어 나간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악ㅡ!]"
그런 그의 몸뚱이로 날아드는 세례자들이 있었다.
"죽여라ㅡ!"
무수한 주먹들이 빛을 뿌리며 작렬했다.
투콰콰콰콰콰콰콰!
공격들을 견디지 못해 뒤로 넘어간 쉐본은 웅혼하기까지 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르라라아아아아아악ㅡ!]"
그러면서 놈은 양 팔로 땅을 때렸고, 그대로 대지가 토양으로 파도쳤다.
그것은 분명히 파도였다.
흩어짐과 쏟아짐, 울림과 흐름을 모두 갖춘.
하지만 그것은 대지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ㅡ
병사들은 이미 고꾸라지고 있었고 세례자들 역시 발딛고 선 땅이 울리는 것은 일찍이 느껴본 적 없던 것이었기에 경악했다.
그 자신이 초래한 급작스러운 재앙을 딛고 일어서며, 쉐본은 미친 듯이 포효했다.
"[크아ㅡ아아아아악ㅡ!]"
놈은 오른팔을 휘둘러 세례자 하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바람이 찢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푸아아아악!
머리가 수박처럼 사방으로 비산하며 박살났다.
악몽 같은 광경.
이미 이성 따위 없는 뤼델의 육신으로 마귀가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악ㅡ!"]
세례자들이 형제의 죽음에 무한한 분노를 불태우며 마주 고함친다.
"흐아아아아아악ㅡ!"
그들은 그 순간 신앙심의 세례자가 아닌 이단 심판의 척살자들이 되었다.
수백 개의 도약과 돌격과 공격.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수만의 군세 중심(혹은 위)에서, 지상에서 가장 성스럽고도 추악한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ㅡ!]"
"죽여라아아ㅡ!"
투콰과광쾅쾅콰과광ㅡ!
시커먼 주먹과 손찌검이 스치며 터져 나오는 유혈.
빛으로 된 주먹이 꽂히며 울려퍼지는 묵중한 타격음.
바람의 비명과 피비린내의 발광.
척살자들은 이제 그 속도와 광도 덕분에 형체 없는 빛무리들이 되어 미친 듯이 날아다닌다.
쉐본은 양 손발과 뿔과 이빨로 유혈의 파도를 만들어내며 무시무시하게 울부짖고 있다.
수백 마리의 이리 떼와 한 마리 산 만한 범의 회전 같은 모습.
전장은 그렇게 피와 굉음과 혼돈과 공포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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