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저버린 자들

홉슨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것을 신호로 열 명의 사절들은 절도 있는 자세로 도열했다.
두 명의 우둘투둘한 남자들은 그들의 말에서 뛰어내려 맨 앞에 섰으며, 그들의 뒤로 네 명의 마법사가 말을 탄 채 이동했다.
활과 화살을 든 사람은 침착하게 말에서 내려 활줄을 당겼으며, 장창을 든 남자는 호호탕탕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대열의 최우측에 붙였다.
맨 앞에는 두꺼비의 사제들, 그 뒤로는 네 명의 마법사와 한 명의 창잡이.
맨 뒤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활잡이 하나.
그 일련의 과정으로서, 그들은 더 이상 편지와 답신 대신 불의와 흉기를 건네는 불측한 사절이 되었다.
홉슨을 위시한 네 명의 마법사들은 그들의 허리에 둘러져 있던 복대를 풀어 얼굴 아래에 두건처럼 둘렀다.
두꺼비의 사제들은 그 특유의 외모 때문에 어떻게 하든 숨길 수 없지만, 마법사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얼굴이 팔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황제의 적. 어떤 사소한 병력이라도 서툴게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이윽고 그런 대형을 한 사절단의 앞으로 한 군세가 다가왔다.
투각, 투각, 투각, 투각, 투각ㅡ
잘 연마된 편자가 자갈을 으깨며 접근하는 소리.
드록의 셈은 정확했고, 사십 명 총원이었던 그들 중 맨 앞, 투구에 붉은 술을 달고 있는 병사가 물었다.
"누구냐!"
사절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말을 거는군. 꼴에 말이야.
"우리는 최근 서부 제후국 사이에 있었던 불측한 사건을 해결키 위해 파병된 칠그쉬 제국군이다, 정체를 밝혀라!"
홉슨은 발을 약간 구르고 헛기침했다.
그것이 신호다.
마법사들은 신력을 끌어모으고, 사제들은 드러나지 않게 근육을 긴장시키며, 후방의 활잡이가 교묘하게 말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각도 속에서 화살을 먹인다.
그것은 찰나 동안 아무 소리도 없이 완료되었다.
드록은 그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명예를 차릴 필요 없는 족속들이다.
적어도 황제의 군단에게는.
"쳐라!"
두 명의 사제들의 통렬한 외침과 경쾌한 도약.
그것은 수십 미터의 높이였다.
그를 시작으로 모든 사절들이 각자의 무기를 드러내보였다.
먼저, 마법사들.
아직 무기도 빼어들지 않은 제국군의 전방 다섯 명을 향해 네 개의 마법구가 날아든다.
"<쉬데올 람!>"
실체화된 적의로 빚어진 바람들이 지팡이 끝에서 터져 나왔다.
쾅쾅쾅쾅ㅡ!
두터운 가죽 갑옷에 가해지는 둔중한 충격.
그것은 보이지 않는 주먹이 된 바람이었다.
헛숨을 삼키며 낙마하는 그들의 전방 병사들을 보며 나머지 제국병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때, 사제들이 떨어져내렸다.
쿵ㅡ!
쿠웅ㅡ!
크게 도약했던 두 사제는 그대로 제국군 대열의 후방에 착지한 것이었다.
흙먼지가 거세게 휘날리고 땅이 경련한다.
그 커다란 울림은 기수들에겐 약간의 긴장만을 주었지만, 뒤를 볼 수 없는 말들은 자지러졌다.
"히우ㅡ 푸르히히히히힝ㅡ!"
"우웃, 우아악!"
말들이 양 앞발을 치켜들고 허공을 걷어차며 기수들을 던져 버렸다.
떨어진 것은 무려 다섯.
그들 중 두 명은 꽤 나쁜 자세로 떨어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그 무렵에서야, 제국군은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너무 늦었음도.
"크하하하하핫ㅡ!"
두 명의 사제들이 말들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다.
이미 말 머리를 반도 돌리지 못했을 때였다.
드록은 그의 왼어깨를, 또 다른 사제인 랙손은 두터운 가슴팍을 내밀며 괴상한 자세로 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좀처럼 하지 않을(특히 전시 상황에는 더욱 더) 행동을 했다.
다급히 몸을 돌린 말들의 옆구리를 향해 몸을 던진 것이다.
말은 겁 많은 생물이며, 제국군에서의 훈련은 그런 성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사방에서 화살이 빗발쳐도 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하지만 말들은 갑자기 뒤편에서 튀어나와 달려드는 인간을 보면서도 침착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고, 그래서 본능대로 행동했다.
말들의 뒷발이 화살처럼 휘둘러진다.
뻐억!
뻐억!
무언가 심각한 충격음이 들린 이후, 말들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히우히히히히히히힝ㅡ!"
"푸르히히히히히히ㅡ힝ㅡ!"
기수들은 또 다시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내린 후 미쳐 날뛰는 제 말의 발굽에 짓이겨지지 않으려 땅을 기었다.
붉은 술을 단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들을 돌아보았다.
놈들은 각자 휘두른 뒷발에 또 하나의 관절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 다리를 딛은 순간, 한 번 부러진 수수깡처럼 맥없이 휘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무릎이나 발목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부러진 건가...?!'
병사보다 귀한 군마를 상하게 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가슴팍이나 어깨를 걷어차고 제 발이 분질러진 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걷어차인 자들은 그저 두어 발짝 밀려난 채 멀쩡히 서서 비죽비죽 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화강암처럼 울퉁불퉁한 피부.
"...반신의 사제들! 반란군들이다!"
참으로 이른 깨달음이었다.
마법사들이 두 번째 마법을 발현할 신력을 끌어모으기 충분할 정도로 이른.
우렁찬 영창과 처절한 명령.
"<타오 루!>"
"흩어져라ㅡ!"
네 개의 불덩어리들이 작렬했다.
사제들이 초래해 놓은 혼란 속에서 발빠르게 산개해 있던 마법사들은 대단히 까다로운 경로로 날아드는 화염구를 쏘아냈고,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빗나가는 것을 기대하는 건 성직자도 하지 않을 기대였다.
다행스럽게도(병사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 발만 명중했다.
퍼어어어엉ㅡ!
직격당한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탄화했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누린내나는 불티.
사람에 뿌리내려 개화한 불꽃이었다.
또한 불덩이는 복수였고, 명중하지 않은 화염구들이 지면으로 거칠게 범람했다.
퍼어어어엉ㅡ!
퍼퍼어어엉ㅡ!
화르르르르륵ㅡ!
이제 제국군에겐 끔찍한 혼란과 미칠 듯한 공포와 다 부서져 버린 대열만이 남았다.
또한 수적 우세도.
말에서 떨어져 아직도 헐떡이고 있는 병사가 대충 세어도 여덟을 넘었고, 당황하여 정신이 나간 병사는 더 많았다.
그들의 지휘관은 그 술이 달린 투구를 고쳐쓰며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대체 왜 이러는 거냐ㅡ!"
그는 제국검을 휘두르며 말을 걷어찼다.
그의 덩치 큰 흑마가 거칠게 구동하며 돌격했다.
네 명의 마법사들 중 하나를 향해.
투각 투각 투각 투각 투각ㅡ!
자신을 향해 실시간으로 거대해져 오는 흑마를 보며, 홉슨은 한 점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차분히 신력을 끌어모으며 말했다.
"젠!"
"예ㅡ입!"
창을 든 남자, 젠이 말을 달리며 홉슨의 옆을 스쳤다.
그리고 홉슨을 향해 떨어지던 칼날을 창자루로 가로막았다.
까아앙ㅡ!
기묘하게 청아한 쇠의 비명소리.
예상치 못한 경로에서 공격이 가로막힌 남자는 당황에 손목을 감싸쥐며 상체를 젖혔다.
젠은 씩 웃으며 창을 빙빙 돌려 고쳐 쥐었다.
"이름은?"
"...반란군 따위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나도 안 알려줄 거였어."
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두 칼잡이는 동시에 말을 걷어찼고, 쇠의 비명으로 되태어난 언어로 다시 언쟁했다.
그런 그들의 뒤에선 가히 일방적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장보병을 뛰어넘는 방여력과 경장보병을 초월하는 날렵함을 가진 두 명의 사제는 말이나 창칼조차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이었다.
그들은 그저 뛰어올랐다 내려서며 기수들의 허리를 분질러 놓거나 말을 기겁하게 하는 정도로도 적진을 휘저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할 유일한 병기인 도끼가 날아들 때는,
훌륭하게 산개한 마법사들이 그들을 보조했다.
드록은 낙마했다 일어선 병사 하나가 그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려 하다 화살에 맞고 나가떨어지는 꼴을 보며 웃음지었다.
"이거, 참. 오랜만에 즐거운데."
그리고 드록은 다시 도약했다.
이제 멀쩡하게 전투할 수 있는 상태의 제국군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인원 수로는 네 배에 달하는 전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하하하하!"
달아나던 말의 눈 앞에 떨어진 드록은 이번만 세 번째 낙마인 병사를 한껏 비웃었다.
그리고 두툼한 발로 그 불쌍한 병사를 내리누르며 창잡이를 바라보았다.
"호, 저놈은 갈수록 느는데."
지휘관과 젠은 말 그대로 불꽃 튀게 싸웠다.
그들의 주위로 칼날과 창날의 불협화음이 튕기는 불꽃이 가득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철의 비명들.
각자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흩날린다.
남자는 젠이 계속해서 목덜미를 왼쪽으로 보내놓는 습관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칼날의 길이가 모자라 번번이 노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젠은 남자가 몇 번이나 무방비하게 어깨를 말아 검의 유효 범위를 죽여 놓는 것을 보았지만 창의 특성 상 제대로 내찌르거나 베어들어가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파악은 더욱 세밀해져 가고 맹목적인 살의가 갈수록 예리해지던 때.
반란군과 제국군의 가장 큰 차이가 그때 드러났다.
사적인 감정.
그것은 악의로 변질되어 명예를 도려내는 박피기가 될 수 있다.
쐐애액ㅡ 팍ㅡ
바람처럼 날아든 화살이 남자의 어깨에 꽂혔다.
화살촉의 예리함보단 그 속도의 위력에 의한 고통.
어깨가 움푹 내려앉는 듯한 뜨거운 감각에 남자는 발작하며 칼을 놓쳤다.
칼날은 말굽 아래로 떨어져 요란스레 쨍그렁거린다.
젠은 그런 그를 절대로 기다리지 않았다.
아래에서 올려쳐지며 그어지는 창날의 궤적.
그것은 기묘하게 비틀려 올라가 남자의 투구를 꿰어 걸었다.
"하하!"
젠은 그 투구를 날 끝으로 빙빙 돌리며 웃어댔다.
남자는 점점 욱신거리는 어깨를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제기랄."
그의 뒤로,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한 반란군들이 도열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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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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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남자는 그 당당한 흑마에서 끌어내려져 포박당한 신세가 되었다.
"신에게 버림받은 족속들이 미친 게로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드록은 남자의 말 옆에 다가가 섰다.
"버린 건 너희들이지. 마법도, 사제들도."
"닥쳐라, 역겨운 사제 놈...! 네놈 몰골을 봐라, 그것이 저주가 아니면 무엇이냐! 반신을 섬기는 것은 명백한 배교이자 반역이다!"
"으흠, 그에 대해 토 달 생각은 없어. 우리가 특별히 정의와 화합을 추구하는 건 아니니까."
"허...? 그러ㅡ"
"그리고, 다 뒤짚어엎을 상차림을 두고 이러저러 논평하는 것도 웃기고."
남자의 눈이 확 불타올랐다.
"무슨 말이냐!"
홉슨은 말 위에서 혀를 한 번 찼다.
'너무 많이 말한다, 드록.'
드록은 그 뜻을 이해하고 입맛을 다시며 그의 말에 올라탔다.
하지만 남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봐, 제기랄! 그게 무슨 말이냔 말이다!"
남자가 무릎으로 다가오자 젠이 기다란 창끝을 드리워 그를 가로막았다.
"이..!"
남자는 폭풍 같은 숨소리를 내며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홉슨은 그런 남자를 철저히 무시하며 일행을 살폈다.
"여흥은 끝났다. 다시 출발한다. 이제부터 다시 너희는 사절단이다."
웃음섞인 동조.
말들이 투각거리며 출발하자, 남자는 당황하여 아무 말이나 내질렀다.
"제기랄, 전쟁을 일으킬 셈이냐! 그만 둬라! 제국을 상대로 너희 따위 소규모 제후국들이 승산이 있을 줄 아느냐!"
홉슨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맨 뒤에서 일행을 호위하던 젠은 반응했다.
그는 그의 품 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어 흔들며 말했다.
"만들러 가는 거야. 승산."
"만들어?"
"뭐, 섭외하는 거지. 우린 여기 적힌 그 '승산'에 대한 걸 본국으로 전달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 양반이 넘어올 지를 생각해 보는 거고."
남자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가는 일행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쳤다.
"고작 너희들의 아니꼬움 때문에 제국의 무고한 집들에 불을 싸지르겠다는 거냐ㅡ!"
덩달아 희미해진 젠의 답변이 돌아왔다.
"정의에 호소하지 마, 제국군. 우리는 이해 관계가 맞아서 협력하는 것일 뿐, 불의에 맞서는 전사들 따위는 아니니까. 그리고,"
"불은 없을 거야. 시체와 메뚜기면 몰라도."
홉슨이 그를 돌아보며 주의를 주었다.
"사탄마귀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 젠."
드록이 눈알을 굴리며 말을 덧댔다.
"그래. 우리의 '칼'은 드러나서 좋을 게 없지."
- 작가의말
수행이 너무 많아서 요즘 뜸해졌군요...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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