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제물 부두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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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뤼투나읫
작품등록일 :
2024.10.01 11:4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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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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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계약은 성립되었다

DUMMY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잔뜩 휘저어놓은 흙먼지들이 점차 흩어져 사라진다.


뤼델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당신의 하수인을 빌리길 원한다."


벌쳐의 목이 부러질 듯 꺾이며 뤼델을 노려보았다.


시체매의 목덜미는 노인의 팔뚝처럼 깃털 한 촉 없다.


그 기다란 목에까지 깃털이 돋아 있다면 사체에 머리를 막고 파먹을 때 덩이진 핏덩이와 살점들이 엉키기 때문이다.


{ㅡ당돌함은 변하지 않았군. 달갑지 않게도.}


그 정체성이 반전 윤리와 뒤틀린 도덕, 만연한 악의로 점철되어 있는 악마의 차분한 언행.


그것은 칼날이 포효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존재 자체가 살의이기에 칼날은 존재 이외에 다른 행동으로 적의를 드러내보일 필요가 없다.


뤼델은 그 감정의 고조만으로 주변의 마기가 날카로운 모래바람처럼 회돌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섭섭하군. 내가 눈뜬 시간 동안 악령의 이름을 말하고 잠에 들 무렵에는 마귀의 권능을 속삭이던 당신이었는데."


벌쳐의 목이 쳐들렸다.


아다시피 그 죽음의 청소부들은 땅에 붙은 것만을 뜯어먹고 살기에 구부정하다.


그랬기에 시체매의 목이 곧게 들리는 광경은 그 자체로 이질적이었다.


{차(此)는 불망하기에 또한 무억(無憶)한다. 정을 가지지 않는 존재에게 그것을 들이대지 마라.}


뤼델은 함지박만한 웃음을 지으며 벌쳐의 예쁘다고 하기에는 많은 비약이 필요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오만함.

동일 선상의 존재로의 인식 배격.

성정으로 빚어진 냉혹함.


전부 뤼델이 기억하던 악마의 목소리였다.


'실감이 나는군. 이제 나를 쥐어짜는 주박이 없다는 것이.'


부두술사는 칼을 들어 귀를 잘라냈다.


잔혹함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잘려나간 귀는 그대로 떨어져 뤼델의 발치에 떨어졌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벌쳐에게, 뤼델은 귀를 집어서 가볍게 던졌다.


"청취의 귀."


벌쳐의 부리를 열어 듀크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뤼델의 칼날이 한층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잠시 호흡을 남겼다.


칼날은 눈 아래로 파고들었다.


쑤우욱ㅡ


안구를 깨뜨리지 않고 빼어낸 뤼델은 그것 또한 집어서 벌쳐에게 던졌다.


"감시의 눈."


벌쳐의 살벌한 발톱에 굴러가 닿는 눈알.


시허연 눈의 시체매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쪼아먹기 시작했다.


뤼델은 그것을 시체매 공작의 긍정이라고 판단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니 자존심에 뻗대지 않는다. 타당한 대가가 주어지면 그저 계약할 뿐...'

'제기랄, 너무 익숙해서 생경한 감각이라. 미칠 것 같군.'


뤼델의 얼굴은 점차 귀신처럼 일그러지며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을 짓는다.


그는 칼을 손목에 가져다대었다.


톱질하듯 하며 그것을 끊어 낸 뤼델은 이제 귀의 반절 정도를 삼키고 있는 벌쳐에게 마저 던졌다.


"권한의 손."


"여기까지, 제물로 바친다."


벌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잘린 왼손을 잘게 찢어 쪼아먹느라 부리가 바빴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머리 위에서 썩은내나는 깃털 한 촉이 떨어져내렸다.


또 다른 벌쳐였다.


우아함과 천박함이 공존하는 듯한 기괴한 비행.


그것은 뤼델의 어깨를 움켜쥐며 내려앉았다.


뤼델은 그 의미를 깨닫고 흡족한 얼굴로 숨을 들이켰다.


시체매 공작은 조용히 선언했다.


{받아들인다, 당돌한 꼬마여. 모자라면 대가는 차가 직접 가져가겠다. 요구를 말해라.}


그 기쁨과 희열로 들썩이는 입꼬리.


"...당신의 벌쳐를 빌리길 원한다. 이 도시의 하늘을 날며, 오늘 나를 목격한 이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즉시 독충으로 숨을 끊을 수 있도록."


어느새 손을 전부 삼킨 벌쳐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뤼델의 어깨에 앉아 있는 벌쳐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을 감시하고 들을 수 있도록, 눈과 귀.}


"지불했다."


{너의 피로 빚은 피조물들을 움직일 권한의, 손.}


"지불했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시체매 공작은 긍정했고, 부연하지 않았다.


뤼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벌쳐는 희뜩이 뒤집어진 눈을 되돌려놓은 뒤 승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하늘을 맴도는 두 마리 시체매의 주위로, 어디에선가 나타난 또 다른 벌쳐들이 몰려들어 날기 시작했다.


곧이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은 새 떼가 하늘을 뒤덮으며 천천히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삐이ㅡ비비비비비ㅡ


삐비ㅡ비이이이이이ㅡ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고발하는 듯한 울음소리들.


악마의 하수인들이 상업도시를 감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뤼델은 그 광경을 보며, 드디어 웃음을 터뜨렸다.


불가피한 홍소였다.


그는 그토록이나 즐거웠다.


"으, 으하! 카하, 하하하학! 크하하하하하하학!"


복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온 몸을 비틀며 웃어젖히던 뤼델은 얼마 후에야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추억은 대단하군, 응? 하하... 이토록이나 즐겁다니."


뤼델은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의 입막음 이외에도 뤼델이 할 일은 많았다.


"이제 곧, 페일도 장난이 아니란 걸 알겠지. 성물을 든 세례자나 주교가 찾아올지도 모르겠군."


볼 사이로 들어서는 날서린 칼날.


대비하기 버거운 전력은 초장부터 흔들어 놓으면 된다.


뤼델은 칼날로 입을 찢으며, 본래 지을 수 있는 미소보다 훨씬 더 깊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

.








제국의 중심. 그런 이름이 쓰일 수 있는 유일한 땅.


오래 된 시조에서 일컫기를 부유한 여인들을 찾을 수 있는 곳,

지혜로운 노인들이 말하기를 역사의 시체로 된 산 위에 나부끼는 깃발.

어떤 부두술사는 그곳에 곧 유혈이 낭자할 것이라 말하는,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제국의 수도라고 말하는 도시.


칠란트.


그것이 그 땅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멀리에서 언뜻 보면 무르익은 밀밭의 드넓은 지평선처럼 보이는 제국군 진채는 충격적일 정도의 군사력을 드러내고 있다.


진채의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담배의 그것처럼 허공으로 풀어헤쳐지며 어떤 윤곽을 가리킨다.


그것들이 달리 다른 것을 가리킨다고 오해할 수는 없다.


어디를 가리키든, 온 시계를 하늘 대신 뒤덮고 있는 그것을 향하기에.


그것은 돌로 된 하늘. 황제의 궁전이자 제국 최고의 천혜의 요세,


철혈성(鐵血姓)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철혈궁(宮)이었다.


철혈성의 앞에 마치 지리적 군계처럼 보일 정도로 넓게 지어진 진채는 이교도 정벌을 위해 꾸려진 보조 군대였다.


150만 명의 지원군들. 차라리 나룻배를 건지기 위해 초대형 군함을 띄우는 꼴이다.


앙상한 숲처럼 세워져 있는 무수한 창자루들, 자욱한 말 냄새와 쇠비린내.


그 드넓은 진채를 지나, 뒤편에 암산처럼 일어서 있는 철혈성의 작은 방이 있었다.


그 단촐한 사신들의 숙박용 방에는, 제국군 대군단장이 시체 같은 얼굴을 한 채 앉아 있다.


탁자 맞은편에는 총사령관을 둔 채.


왕과 같은 위세를 가지는 대장군의 바로 아래 직함인 총사령관.


개인이 50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는 그 위대한 권력을 가진 남자를 앞에 둔 마버크는, 당연히 주눅들어 있었다.


심지어 패배하기까지 했으니.


그는 쇳소리 같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 잃은 것이 사천이라."


잠시 동안의 정적.


방 안의 창살을 스치는 먼지들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총사령관은 수염 가득한 입술을 다시 움직였다.


"패배를 칭찬하지는 않겠으나, 귀관의 판단은 훌륭했다. 페일의 성기사단, 심지어 그 폭풍 같은 세례자들까지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하니."


마버크는 그 말에 경솔히 동조하지 않았다.


대신 무거운 한숨으로 뉘우침의 말을 반복하며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최근에 쓰여져 때묻은 데 없는 작전서가 펼쳐져 있었다.


제후국 총병합 작전.


윈덴에 출몰한 이교도를 빌미로 서부 제후국 전역에 제국군을 투입하여 주둔시켜서 강제로 병합하는 작전이었다.


페일은 이교도의 척살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물불 가리지 않는 만큼 다른 세력의 처사에 불평할 수 없고, 이미 점령당한 제후국들은 무어라 불평하든 상관없어진다.


하지만 이는 지금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단 하나.


그 '빌미'에게 제국군 10만이 패배해 돌아온 것이었다.


빌미의 위험성이 증가한 것은 더 많은 세력을 논리의 비약 없이 빠르게 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빌미라는 것이 제국의 목덜미에 단검을 들이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총사령관 이고 다스알은 그 단검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크으음... 부두술을 사용한다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마법병들 일부는 마기의 운용을 느꼈다고도 말했고, 일부는 마귀의 것이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밝힌 바 있습니다."


나이만큼의 연륜을 그 주름살에 덧쌓은 노무사 이고는 마귀의 힘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욱이... 잘 후퇴했네, 대군단장. 주술을 사용하는 족속은 쇠로 다스릴 수 없는 법일세. 악몽을 말발굽으로 짓이기려는 처사를 했다간 말과 기수 모두를 잃었겠지."


"...송구합니다."


이고는 책상의 작전서에 쌓인 먼지를 훑어 내며 말했다.


"그래, 다만 아쉬운 점은, 귀한 마법사 병력을 그렇게 잃어버렸다는 것이지. 그들은 마기에 대항할 제국군의 유일한 검이네. 비록 페일의 눈초리를 산다는 점에서 양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버크는 꺼내놓으려 그토록 애썼던 동시에 절대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그 손실에 대한 지적에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동안, 내려앉는 침통한 분위기.


총사령관은 곧 군인으로 돌아왔다.


군인의 작전은 감정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귀관에게 묻겠는데, 살아남은 마법사 병력들 중 악마를 느꼈다 진술한 자가 있었나?"


"악마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악마를 부릴 수 있는 이교도라면 우리는 작전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네. 페일조차도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생포는커녕 사살도 어려울 걸세."


세례자들의 그 경악스러운 위력을 전부 목도했던 마버크에게는 거짓말 같은 소리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일단 대답하게, 대군단장. 악마를 느꼈다 진술한 자가 있는가?"


"일단은... 없습니다. 무언가 이해하지 못할 힘을 느꼈다 증언한 자들은 있어도, 악마의 마기를 느꼈다고 진술한 자는 없습니다."


"푸후으... 최악은 아니군. 차악 중에서는 최악이지만."


이고는 그의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탁자 한켠을 더듬었다.


그의 아들만큼이나 오래 된 투구가 손끝에 닿는다.


그 흠집 가득한 투구를 집어 쓴 이고는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일어나 보겠네. 대장군께는 내가 잘 말씀드리겠네."


마버크는 황송해하며 뒤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초, 총사령관님. 그렇다면 이번 군 작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고의 나이에 비해 기이할 정도로 하얗게 반질거리는 치아가 드러났다.


늙은 무사는 젊은 야만인처럼 웃으며 말했다.


"악마가 없다면 우리가 대적할 수 있네. 이제 락사자르 2세 폐하는 침략자에서 구원자가 될 뿐이지."


그 노무사의 갑옷에 아로새겨진 흠집들은, 피끓는 시절의 난폭함의 역사.


야만인 세력들을 가차없이 찢어발기며 남하하여 별빛 밀림의 불모지들을 개척한 망나니 장수 이고는 세월에 가공되어 이제 갈무리할 줄 알게 된 난폭함을 드러내보였다.


"통일 제국의 시조, 그 역사에 이 늙은이의 검이 한 획을 더하는 것이네. 멋지지 않은가, 마버크 대군단장?"


문을 열고 나서는 이고의 뒤를 뒤따른 마버크는 눈앞에 파도처럼 범람하여 들어오는 군 진채들을 보게 되었다.


150만.


마버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그 대군을 휘몰아쳐 제후국들을 짓밟을 것이다.


그 전에, 이교도를 정리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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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나포되다 24.12.22 18 0 11쪽
35 조용하고 처절한 말들 24.11.27 15 1 11쪽
34 딸려 가려면 이빨을 붙잡으라 24.11.25 18 1 12쪽
33 최후의 여인과 최악의 사내 24.11.20 22 1 11쪽
32 안전불감 24.11.19 21 1 12쪽
31 범굴에 들어가려면 24.11.15 21 1 13쪽
» 계약은 성립되었다 24.11.12 22 2 12쪽
29 시체매 공작 24.11.11 22 1 11쪽
28 세상이 저버린 자들 24.11.09 23 1 12쪽
27 너무 미치진 말게 24.11.07 23 1 12쪽
26 불씨 24.11.05 27 1 12쪽
25 아디젤 24.11.04 29 1 14쪽
24 전장의 이념 24.11.03 34 2 11쪽
23 마귀와 세례자 24.11.03 34 2 12쪽
22 마귀와 전쟁한다는 것은 24.11.01 37 3 12쪽
21 대담한 광태 24.10.31 46 3 12쪽
20 길 좀 물읍시다 24.10.31 43 3 13쪽
19 교황의 분노, 황제의 준동 24.10.29 49 3 11쪽
18 사탄마귀가 돌아왔다 24.10.28 43 5 13쪽
17 아무도 살아 나갈 수 없다 +1 24.10.27 41 3 13쪽
16 번개 치는 낮 24.10.26 43 3 11쪽
15 절체절명 24.10.25 45 4 12쪽
14 사면초가 24.10.24 44 5 12쪽
13 뒤바뀐 추격전 24.10.23 46 4 12쪽
12 의심과 말로 24.10.22 4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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