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려 가려면 이빨을 붙잡으라
"..."
어두운 저택, 죽지 않은 벌레들이 따각대며 기어다니는 소리만 나지막이 들린다.
그림자를 짓밟는 발자국 소리.
그 자신의 피에서 비롯된 곤충들을 짓이기며 다가온 남자는 부서진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여유롭게 다리를 교차해 꼬는 그의 앞으로 날카로운 시선이 보인다.
온 몸이 의자에 결박당해 있는 로카였다.
그녀는 몸을 흔들거나 고성을 질러대는 것이 아닌, 그저 상대를 쏘아보기만 하는.
피박자로서는 꽤나 비일반적인 처사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녀를 마주 보며 앉은 남자, 뤼델은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지었다.
"넌 독한 년이었어. 인정하지, 로카. 주박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군, 응?"
싸움은 광적이고 과격했으며 순식간이었다.
채 한 합도 되기 전에 종결났지만, 그녀와 뤼델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불과 한 순간 전까지는.
반쯤 죽었다고 믿어도 무방한 상태였던 뤼델은 이윽고 멀쩡히 일어서 로카를 제압했다.
그리고 체내의 신성력과 체력을 지나치게 많이 끌어다 썼던 로카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로카는 의자 등받이 뒤로 묶여 있는 두 손을 움직여 보았다.
아주 제대로 묶여 있었다.
보기보다 분명히 치밀하다. 거의 집착적일 정도로.
뤼델은 그녀가 움직임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게, 다만 그것을 절대로 움켜쥘 수는 없게 묶어 놓았다.
로카는 그런 편집증적 행태를 알아차리고는 새로운 공포를 느꼈다.
'이런 자와 말을 섞는 건 정신적 구타나 다름없겠군.'
어둠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대충 짐작한 뤼델은 별 말 없이 이를 쑤시고 있었다.
이윽고 로카는 갑자기 비릿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에 움찔했다.
뤼델이 이빨을 뽑아든 것이다.
그것에 피 섞인 침을 탁 뱉고 주문을 외우자 피비린내와 동시에 마기까지 거세게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이그로느가]"
뤼델의 손안에서 촛불 같은 불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그 미약한 불빛으로 윤곽이 그려지는 뤼델의 얼굴이 로카에게 뚜렷하게 드러났다.
거무잡잡한 피부와 매부리코, 이리 같은 눈매, 그리고 쩍 벌어진 입.
그리고 그 입 안에서 기어나오는 메뚜기.
로카는 간신히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빨을 뽑으며 스며 나왔던 피로 빚어진 그 메뚜기는 뤼델의 손안에 피어오른 불씨를 자신의 몸에 붙이고 날아올랐다.
푸드드드드드드드ㅡ
곤충의 살갗이 타는 누린내와 잿더미가 되어 떨어져내리는 꽁무니.
메뚜기는 비틀대면서도 높은 천정을 향해 날아갔고, 이윽고 커다란 샹들리에 위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 메뚜기를 쳐다보던 뤼델은 그것이 안착하자 마자 시선을 돌려 로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저택에 부드러운 빛이 번졌다.
샹들리에의 첨단에서 수많은 불똥으로 폭발해 버린 메뚜기의 조각들이 촛불 몇몇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 따스하게 일렁이는 불빛 아래 드러나는 저택의 광경은 참담했다.
사방에 가득한 톱밥과 목재 조각, 그보다 더 많은 핏덩이.
마법으로 파괴된 흔적들은 칼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거대하다.
그리고 나팔의 것들은 가히 괴멸적이다.
뤼델은 건물의 뿌리격인 기둥 두 개를 반파시켜 놓은 공격의 흔적들을 보며 헛웃음지었다.
그것들은 로카의 소행이었다.
"살벌하군그래, 응?"
로카는 말없이 뤼델을 노려보고 있다.
뤼델은 잠깐 동안 내가 입을 막아 뒀나 생각했다.
흔들리는 불빛.
뤼델은 태연한 동작으로 이빨을 뽑은 뒤 날카로운 이빨의 뿌리로 팔뚝을 긁어 피를 내며 말했다.
"도도한 아가씨군, 응? 네 친구들은 안 그렇던데."
로카는 고개는 돌리지 않고 눈만 움직여 그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무력화된 그들은 밧줄 대신 힘줄과 혈관으로 단단히 포박되어 있었다.
'...나는 밧줄로 묶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로카는 나비를 날리는 소년처럼 맑은 표정으로 불타는 메뚜기를 날려 보내는 눈앞의 남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뤼델."
뤼델은 반색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 그래. 말해 볼 의향이 생겼나?"
"왜, 나는 살려 둔 거지요?"
뤼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로카는 턱으로 그녀의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말입니다."
뤼델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싸우는 도중 로카가 한 번 집어던졌던 그 의자는 다리 하나가 꽤나 내려앉아 있었기에 듣기 싫게 삐걱댔다.
"네가 제일 우월하다고 하더군, 어떤 조류께서 말이야. 그리고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납득할 수... 없군요."
"원래 다 그런 거야."
뤼델이 날려보낸 메뚜기들이 전부 사그라들며 밝힌 불이 늘어났기에 저택 안은 따스하다 싶을 만큼 밝아졌다.
난장판이 된 거실, 널브러진 몸뚱이들과 진동하는 피비린내 속, 기형적인 그 따스함.
로카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겁니까?"
"글쎄, 말해 줘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한 거지. 그런 재미없는 얘기 말고, 내가 관심 있는 얘기 좀 해 보자, 응?"
로카는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미친 자와 말을 섞는 것, 특히 그 미친 자가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정신에 대단히 해롭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온 뤼델의 말은 정신 질환자의 것처럼 어질더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단히 날카로웠다.
"너희들, 성직자 아니지?"
로카는 그녀의 동요를 8할 가까이 숨겼다.
하지만 미처 새어 나온 2할은 뤼델에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괴상해, 응? 모가지 뻗대대한 페일 놈들이 갑자기 암살이라는 방법을 고른 것도, 마법사를 끼워 넣는 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도, 그리고 너희들 하나하나도."
뤼델은 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말했다(그 '손가락을 꼽는' 것은 '부러져 나뒹구는' 식으로 행해졌다).
"갑옷도 정식 갑옷이 아니고, 언사도 경박스러워. 서로 형제자매 거리지도 않고, 응? 무엇보다, 성물을 들고 마법을 쓰는 놈이 너 밖에 없어, 로카."
뤼델은 이제 약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바닥을 흔들어 내며 말했다.
그 괴악스러운 루디알의 권능은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로카는 식물처럼 꿈틀꿈틀 자라나기 시작하는 뤼델의 손가락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죠."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
뤼델은 감탄했다.
"카하, 재밌는 년이군, 응? 좋아. 정식 성직자가 아닌 건, 내가 이러지 않을 이유가 되지."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콰당탕탕!
쇄도해 온 뤼델의 오른손이 로카의 얼굴 코앞에서 멈춰섰다.
휘저어진 공기.
격렬해진 바람.
로카는 턱 멎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허어, 그렇, 군요..."
뤼델은 낄낄대며 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로카는 웃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진짜 살의였다.
그것을 상기하자 다시 가슴이 찌릿하게 저렸다.
그녀는, 그 순간 죽을 뻔했다.
여유롭게 다리를 꼬는 뤼델을 보며 로카는 떨리는 숨결을 내쉬었다.
"...교회를 싫어하십...니까?"
"으흠, 좋아했다면 부두술사를 하지는 않았겠지."
"대답을... 회피하시는군요.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뤼델은 짧게 혀를 찼다.
"카, 당돌한 년 보게, 응? 그게 궁금하냐? 그렇게 땡땡 묶여서?"
로카는 조용히 말했다.
"...체념이지요. 어차피, 이제는 살 수 없게 됐으니까요."
그녀의 미친 증세를 찾아 보려 고개를 기웃대던 뤼델이 멈칫했다.
"그건 무슨 말이지?"
"어차피, 이제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뤼델은 천천히, 하지만 가볍지 않은 태도로 고개를 기울였다.
"...나. 그리고, 누구지?"
ㅡ너를 죽일 수 있는 것이.
로카는 그 순간 숨이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말을 하는 것을 평생 동안 염원해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혈하듯 뱉어지는 말.
"교회가...! 저를 죽일 겁니다."
로카는 숨을 헐떡였다.
평생 동안 질러 버리고 싶었던 그 참람된 고백은 기이하게도 가벼웠다.
"교회가? 너를, 신도를?"
로카는 눈앞의 부두술사를 바라보았다.
우스웠다.
평생 동안 감춰 왔던 교회의 추악함을, 그 교회의 정 반대 대척점에 서 있는 이교도에게 털어놓다니.
"저는, 저는... 신도가 아닙니다. 교회에 입양된 이름 없는 아이지요."
뤼델은 천천히히 허리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말해 봐, 로카."
"그건... 제 이름이 아닙니다. 앤, 앤 샤렐. 그게 제 이름이지요. 샤렐의 성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성씨를 쓰시는 분들이 제게서 그것을 몰수하고 로카의 이름이라는 함에 넣어 저를 교회에... 바쳤던 것이니까요."
뤼델은 그녀의 짧은 망설임을 읽을 수 있었다.
"공양이라는 말이군. 페일 외곽의 가난한 소작농들이 술과 빵이라는 '은총'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그녀는 무언가 해명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말은 하지 않았다.
고개를 천천히 떨구는 그녀를 보며 뤼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괴상한 감정을 느꼈다.
"...허."
뤼델은 저택 한구석에 포개어져 널브러진 암살자들을 돌아보았다.
"저것들은?"
앤은 떨군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았다.
"떠돌이들이지요. 스스로가 자초한 이유가 있어 정착을 할 수 없던. 돈 몇 푼에 페일의 용병이 된 자들입니다."
말을 끝낸 그녀는 거칠게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뤼델은 양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중얼대고 있었다.
"...변한 게 없군."
뤼델은 눈앞의 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경직되고 딱딱한, 하지만 눈만은 깨질 것처럼 그렁한 그녀의 표정은 뤼델에게 생전 처음 느끼는 괴상한 느낌을 주었다.
뤼델은 일어서서 그녀의 포박을 단검으로 끊었다.
앤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눈을 굴릴 뿐이었다.
끊긴 밧줄 뭉치를 대충 갈무리해 둔 뤼델은 의자에 털썩 소리나게 다시 앉았다.
"...앤, 이라고 했나? 나에 대해 어디까지 듣고 왔지?"
"이름과 위험성만 듣고 왔습니다."
"카하하... 그럴 줄 알았다."
뤼델은 손을 들어 포박된 암살자들을 가리켜 보였다.
"힘줄을 뽑아서 사람을 묶어 놓고, 온 몸이 찢어져도 살아 있지. 세상 모든 이교도가 다 그럴 것 같나?"
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뤼델은 어쩐지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휘감아 정리하며 말했다.
"투르샤먼 사태의 사탄마귀. 그게 나다. 너와 네 친구들은 그냥 버리는 패였던 거야. 교회에 있어서도."
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말이 길군요, 그리고 저 역시."
앤은 천천히 일어섰다.
무장 해제된 그녀였지만 맨손으로 주먹을 그러쥔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필요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일어서십시오, 최악의 형제. 제 최후를 당신과의 괴상한 대화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뤼델은 마주 일어섰다.
"아니, 의지하게 해 주지."
그렇게 말하며 뤼델은 자신의 의자를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의 의자 아래에 쌓여 있던 박살 난 성물 조각들이 휘황하게 드러났다.
뤼델은 그것들 중 날카롭게 떨어진 조각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범이 물 생각이 없으니, 이빨에 몸을 던져 줄 수밖에."
성물이 백열하며 뤼델의 손가락을 짓무르게 한다.
뤼델은 아랑곳 않으며 앤에게 다가갔다.
"너, 곰곰히 생각해 봐. 적적한 그림자 속에서 살 지, 날카로운 빛살 속에서 연명할지."
뤼델은 성물 조각을 그의 가슴팍에 박아넣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익ㅡ!
영문을 알 수 없던 앤은 그대로 경직된 채 뤼델을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성물 조각을 집어들어 목덜미에 박아넣은 뤼델은 끓어오르는 영혼의 고통에 부들대면서도 입을 열었다.
"전자를... 커학...! 권하고, 싶군... 우린, 우린... 나눌 말이 많을 것 같, 으니까."
세상의 인물도, 교회의 신도도 아닌 여인은 그렇게 자신의 품으로 쓰러져내리는 이단아를 받아들며 어찌할 줄 모르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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