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제물 부두술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공모전참가작

파뤼투나읫
작품등록일 :
2024.10.01 11:48
최근연재일 :
2025.01.17 18:12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828
추천수 :
103
글자수 :
215,880

작성
24.11.27 03:36
조회
15
추천
1
글자
11쪽

조용하고 처절한 말들

DUMMY

흔들리는 감각.


파도의 것이 아닌, 자갈의 것 같은.


덜컹이는 소리와 이따금씩 튀어오르는 바닥, 실내에서는 불 수 없는 바람.


어지간한 미림의 길은 수레가 다닐 수 있게 정돈되어 있을 텐데.


밖이고, 외곽지이며, 나는 지금 달구지 같은 것에 실려 가는 모양이군.


뻑뻑한 눈꺼풀이 무겁다.


몇 번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껌뻑인 뤼델은 개어 오는 시야로 어느 정도 주위를 둘러보려 했다.


신통찮았다.


다음날 밤인지, 아니면 여전히 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로서 뤼델은 몇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묶여 있는 모양이군.


옆으로 엎어져 있고.


그럴 땐 뭐라도 말하는 게 좋은 처사다.


그래서, 뤼델은 그렇게 했다.


"...이봐, 여긴 지금 어디지, 응?"


"깼군요. 조용히 하십시오."


"뭐야?"


"쉬이잇!"


뤼델은 짧게 혀를 차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 끊겼던 수레 끄는 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덜컹이며 주기적으로 튀어오르는 뤼델의 몸.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뤼델은 뒤로 포박된 손으로 손바닥을 긁어 피를 내었다.


그리고 작게 영근 핏방울에서, 시커먼 지네가 기어나왔다.


무수한 다리를 휘저으며 뤼델의 온 몸을 돌아다닌 그것은 이윽고 한 자리에 멈춰서서 이빨을 곧추세웠다.


작은 가윗날처럼 휘둘러지는 이빨과 발톱.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ㅡ


이윽고 뤼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자유로워진 목을 돌려 그것을 본 뤼델은 어이가 없었다.


"밧줄이라, 이건 그냥 구색만 갖춰 놓은 거 아닌가, 앤 아가씨?"


대답이 없자 뤼델은 일어나 앉았다.


그가 앉게 된 것은 꽤나 세련된 짐수레 위였다.


달캉이는 수레 바닥.


고개를 돌리면 시야 전체에 퍼져서 일렁이는 별들.


밤하늘을 가리는 방해물 없이 탁 트인 지평선이 드러나는 것을 보아, 이미 도시 전체가 번화가인 미림은 떠난 모양이다.


뤼델은 이제 그의 수레 앞에서 말을 몰고 있는 앤에게로 시야를 옮겼다.


그녀의 동료들 전부의 말들을 끌고 온 것인지 거의 열 마리가 넘어 보이는 말들의 끈을 쥐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자주 휘청대며 대열을 통솔해야 했다.


뤼델은 말없이 양 손을 뻗었다.


"[루디알]"


그의 팔뚝의 살갗이 장미꽃 피어나듯 개화하더니 내부의 온갖 혈관들이 뻗어 나와 앤의 옆을 지났다.


그 피비린내와 마기로 진작에 느꼈던 앤은 그 광경에도 큰 반응은 하지 않았다.


다만 뤼델은, 그 혈관들로 앤의 손에 들려 있는 말고삐들을 뺏어들며 그녀의 머리칼이 곤두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혈관들 위로 힘줄과 살점들을 뒤얽어 끊어지지 않도록 보강하며 뤼델은 넌지시 말했다.


"보아하니 갑자기 내게 반해 버려서 사랑의 도피를 한 것 같지는 않고, 응? 무서워서 그리 벌벌 떠는데 말이야. 이봐, 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이미 미림은 떠나온 것 같은데."


앤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이제 그녀의 손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삐인 그녀가 탄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뤼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혈관에 감던 힘줄 하나를 뻗어 그녀의 볼을 건드렸다.


"이봐, 이봐?"


얼굴에 닿는 차가운 감각.

그것은 덜 마른 피의 것이다.


"흐윽...!"


앤은 발작하듯이 경련하며 고개를 틀었다.


뤼델은 거의 뛰쳐오르는 그녀를 보며 살풋 웃음지었다.


"카하, 이것 봐. 이렇게 잔뜩 긴장해 있을 거면서 왜 날 성물로 잔뜩 찔러놓지 않은 거지?"


이번에는 먼젓번처럼 무시하기 힘들었다.


이미 거창한 반응을 보였고, 무시한다면 저 정신병자가 무슨 짓을 또 할지 몰랐기에.


앤은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로 얼룩진 눈으로 뤼델을 잠시 동안 노려보았다.


그 눈물까지 어리는 쏘아봄에 태연한 얼굴로 응수하는 뤼델을 보고 그런 식의 기싸움은 체념해 버린 앤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 결과죠."


뤼델은 어깨를 움직이지 않으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의 혈관들이 고삐들을 잡은 뒤로 말들은 대열을 흐트러뜨리거나 이탈하지 않았기에 이동은 한층 수월해져 있었다.


"내 말?"


"적막한 그림자와 날카로운 빛살 이야기 말입니다."


"아하, 그래, 그거. 어떻게, 결정해 봤나?"


"...아뇨. 하지만 이 둘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이 문득 보였습니다."


당장 자신을 해하지는 않는 제국 최악의 범죄자와 자신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신의 권위.


그 우습기까지 한 역설 사이에 끼어 있게 된 그녀의 이야기였다.


뤼델은 그것을 이해하고는 씩 웃으며 혈관들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 나 따위와 페일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하는 네 처지도 처지라는 거군, 응?"


마귀의 권능에 의해 비정상적인 형태로 세상 아래 드러난 혈관들, 그것들의 움직임 사이로 번져 오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앤은 더욱 처절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래요, 당신과 페일을... 제국의 누구도 하지 않을 고민을 저는 해야 하지요.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앤은 말을 멈춰세웠다.


그녀를 따라 뤼델이 쥐고 있던 열 마리 가량의 말들도 천천히 멈춰섰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저를 왜 죽이지 않았죠?"


"죽여? 너를?"


앤은 그 모호한 태도에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뤼델이 암살자들을 걸레짝처럼 죽여 버리고 소름 끼치는 방식으로 구속해 버리던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는 그것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지금 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된 것은, 뤼델이 그녀를 살려둔 것이 단지 여흥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뤼델 역시 그녀에게 있어 추기경이나 다름없어지기에.


'ㅡ첩? 첩이라니, 봉제인형 수집 취미라고 보아 주게. 신의 거룩함만을 반려 삼는 내가 어찌 정실도 없이 첩을 이리 들이겠나ㅡ'

'ㅡ그대 아니었다면 굶어 죽었을 여인들에게 가혹한 말씀이시군요ㅡ'


앤은 짧은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뤼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초부터 하나는 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너는 열쇠 같은 거였지."


앤이 좌절하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너일 필요는 없었어, 기왕 살릴 거였다면 열정 넘치는 칼잡이 친구나 악착같이 살아야 했을 마법사 친구를 살려 놓았겠지."


"...무슨 말이죠?"


"뭐, 이해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이 내 집에 쳐들어올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거기서 기가 막힌 생각을 하나 착안했지, 응? 너희는 나를 죽이든 포박하든 해서 페일로 데려갔을 거 아냐. 그렇다면 나는 아무런 경계 없이 페일에 입성하게 되는 거지. 너희 따위에게 잡혔으니 특별히 예리한 취급도 없이, 그렇다고 내 두 발로 걸어서 갈 필요도 없이, 응?"


앤은 말을 들을수록 절망이 아닌 어처구니없음을 더 짙게 느끼게 되었다.


뤼델은 계속 지껄였다.


"하지만 너희들 전부일 필요는 없었어. 내가 잡히려고 했던 건 페일의 거성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으니, 응? 따지고 보면 너는 위험한 패지. '멍청한 아군'을 이용할 때는 너무 유능한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거든."


"...그렇다면 왜...?"


뤼델은 씩 웃으며 힘줄을 움직여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너희들이 제대로 된 성직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별로 죽이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고, 진짜 목숨이 달린 놈들은 공 욕심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도 했지. 하지만,"


"...카하, 글쎄.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한 게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


앤은 그녀의 양 옆에 식물의 줄기마냥 펼쳐진 혈관들을 보지 않으려 완강히 시선을 고정해 두었던 정면에서 뤼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공감이요? 지금, 제게 그런 걸 들이댈 수 있다는 겁니까?"


뤼델은 웃음지었다.


그것은 다른 표정으로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웃음이었지만, 동시에 절대로 웃음 같지 않은 표정이기도 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하늘 아래 한 명이라도 겪어서는 안 될 최악의 죄에 대해 알고 있는, 저 이외의 사람에게 공감을 말할 때는.


"...같은 인물을 알고 있는 것으로 증명하기는 힘들겠군. 알 만한 자들은 내가 전부 죽이고 나왔으니까. 음... 페일의 거성 아래의 지하실을 알고 있나?"


앤의 눈이 상처입은 동물처럼 커다래졌다.


"...!"


"마법의 주인이 자리한 그 씹어먹을 성의 아래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신성 마법도 허용되지 않지. 밤에도 신성력의 빛살로 휘황한 거성의 지하는 촛불도 사용하지 않아 언제나 어둡다. 가끔 호롱불이라도 들어올 때면, 반드시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가 있지. 지하의 그 어떤 이들도 그 빛을 좋아하지 않아."


앤은 입꼬리를 푸들푸들 떨며 뤼델을 바라보았다.


"당신, 당신ㅡ"


뤼델은 그녀의 말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화의 맥이 손상되지 않을 만한 찰나의 시간 동안 수만 번의 고민을 뇌리에 아로새겼다.


하지만 고민은 무익한 시간끌기일 뿐. 뤼델은 입을 열었다.


"나는 뤼델. 신의 의지가 빚은 악마의 사생아지. 추기경들에 의해, 타락한 성물의 세례를 받았다."






.

.

.







호롱대는 풀벌레들이 수풀을 우석대며 스치우는 소리가 가득하다.


밤의 별빛들은 나무들의 다갈색 손가락 사이로 부서져 쏟아져내리며 우거진 숲을 파랗게 덧그린다.


구슬피 우는 숲짐승, 나무 우듬지를 긁어내리며 호곡하는 바람.


저무는 해의 그림자가 하늘에 드리우노라면 이곳은 언제나 그렇듯 검푸른 애가로 달을 맞이한다.


이 숲은 확인된 지역 중 그 어떤 곳보다 최서단에 위치하지만 서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국이 아닌 대륙의 단위에서나 취급되는 미답지의 땅이기 때문이다.


귀신 숲,


사람들은 그곳을 그렇게 부르고 또한 취급한다.


귀신 숲에는 아무도 가지 않고, 또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지리학적 위치에서는 정 반대이나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친척뻘인 땅, 대륙 최동부의 미궁 숲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악의적으로 뒤틀린 생태계의 미궁 숲은 들어서는 이들에게 기괴한 지형과 이상 기후, 괴질과 야수들로 무장한 자연의 잔학함을 드러내보인다.


하지만 그런 미궁 숲과는 달리, 귀신 숲의 공포는 훨씬 추상적이고 그렇기에 짙푸르다.


간단하다.


들어선 이들 중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귀신 숲과 아주 약간이나마 경계를 맞대고 있는 우루둘에서는 밤의 그림자 속에서 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그림자에 대한 소문이 떠돌지만 증명된 적은 없었다.


그런 숲으로 인간들을 맞이한 지 수백 년, 숲은 그렇게 날 때처럼 인간들에게서 고립되었다.


그리고 그 귀신 숲에서, 짐승이 아닌 무언가가 수풀을 헤치며 일어섰다.


그것은 두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다섯 손가락을 흔들고 있었으며 덥수룩한 머리칼을 긁고 있었다.


이름은 렐린.


귀신 숲에서 깨어난 그는 천천히 말했다.


"움직일 때가 되었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한 제물 부두술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내 24.11.27 23 0 -
40 도강 25.01.17 11 0 12쪽
39 강림과 속임수 25.01.10 12 0 11쪽
38 둘러싼 설전들 25.01.02 17 0 11쪽
37 거성의 아래 24.12.26 17 0 12쪽
36 나포되다 24.12.22 18 0 11쪽
» 조용하고 처절한 말들 24.11.27 16 1 11쪽
34 딸려 가려면 이빨을 붙잡으라 24.11.25 18 1 12쪽
33 최후의 여인과 최악의 사내 24.11.20 22 1 11쪽
32 안전불감 24.11.19 21 1 12쪽
31 범굴에 들어가려면 24.11.15 21 1 13쪽
30 계약은 성립되었다 24.11.12 22 2 12쪽
29 시체매 공작 24.11.11 22 1 11쪽
28 세상이 저버린 자들 24.11.09 23 1 12쪽
27 너무 미치진 말게 24.11.07 23 1 12쪽
26 불씨 24.11.05 27 1 12쪽
25 아디젤 24.11.04 29 1 14쪽
24 전장의 이념 24.11.03 34 2 11쪽
23 마귀와 세례자 24.11.03 34 2 12쪽
22 마귀와 전쟁한다는 것은 24.11.01 37 3 12쪽
21 대담한 광태 24.10.31 46 3 12쪽
20 길 좀 물읍시다 24.10.31 43 3 13쪽
19 교황의 분노, 황제의 준동 24.10.29 49 3 11쪽
18 사탄마귀가 돌아왔다 24.10.28 43 5 13쪽
17 아무도 살아 나갈 수 없다 +1 24.10.27 41 3 13쪽
16 번개 치는 낮 24.10.26 43 3 11쪽
15 절체절명 24.10.25 45 4 12쪽
14 사면초가 24.10.24 44 5 12쪽
13 뒤바뀐 추격전 24.10.23 46 4 12쪽
12 의심과 말로 24.10.22 42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