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짐승 vs 파이터, 2차전
슥 슥
웨어울프 워리어는 앞발을 앞으로 둔 자세 그대로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아직 스텝이 어색한 모양인지 나오는 모양새가 썩 좋지는 못했다.
툭 툭
태율은 가볍게 스텝을 옮기기 시작했다. 웨어울프 워리어가 이상한 짓을 한다 해도, 그가 할 일은 딱히 변한 것이 없었다. 최적의 거리에서 끊임없이 공격을 날리고, 위험할 땐 가드를 올리며 빠질 것이다. 단순하지만 상대의 피를 말릴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태율의 발은 멈추지 않고 적당한 위치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훅!
한 번 박살을 낸 상대로 조금 느긋한 마음을 갖고 움직이던 태율 쪽으로 웨어울프 워리어가 급격하게 접근했다.
"!"
생각지도 못한 리듬에 태율의 반응이 늦어졌다. 그 바람에 미처 뒤로 완전히 빠지지 못하고, 웨어울프 워리어의 리치가 닿을 정도의 거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태율에게 충분히 접근한 웨어울프 워리어가 이를 까득 깨물며 움직임을 시작했다.
슉
앞에 둔 왼손이 먼저,
팡!
태율이 기본으로 올리고 있는 가드 위를 때리고,
슈왁!
곧이어 뒤에 둔 오른손이,
뻐억!
직선으로 쭉 뻗어 나와 태율의 가드를 강타했다.
"크앗...?!"
태율은 조금 늦은 타이밍에 백스텝을 서둘러 밟아 거리를 벌렸다. 가드한 팔이 욱신거렸지만, 육체의 타격보다도 정신적 황당함이 더 그를 뒤흔들었다.
"지금 원투 던진 거야?!"
슉 후욱!
거의 딜레이도 없이 추격의 원투가 또 날아왔다.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태율은 이번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백스텝으로 웨어울프 워리어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놈을 관찰했다.
"이 짐승 새끼, 진짜로 잽하고 스트레이트를 익혀 왔네??"
세 번째 원투까지 피하자 태율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다시 나타난 이 짐승 놈이 확실히 잽을 던진 다음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야!! 너 이거 어디서 배웠어!!!"
"크르뢍!!"
태율의 윽박지르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이 날아올 턱이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포효 한 번 후, 웨어울프 워리어는 또 원투를 날렸다.
슉 솨악!!
그런데 거리가 멀어진 태율을 의식한 탓인지, 두 번째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던질 때 동작이 커지면서 중심이 살짝 무너졌다.
슥
계속 거리를 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태율은 빠르게 파고 들어가 웨어울프 워리어의 비어있는 틈으로 오른손 펀치를 찔러 넣었다.
퍽!
웨어울프 워리어의 고개가 대각선 위로 들리면서 틈이 생겼고, 태율의 원투가 추가타로 날아갔다.
퍽! 샥...!
코에 잽을 맞은 웨어울프 워리어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이어 날린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닿지 않았다.
"크르르르...."
운좋게 위험한 펀치를 피한 웨어울프 워리어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코피에 뭔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놈은 머리를 가로로 휘휘 젓더니 다시 처음 때처럼 복싱 자세를 딱 잡았다.
그 꼴을 지켜보는 태율은 불현듯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스스로 떠올랐다.
"아... 혹시 나냐?"
"크르릉...!"
"내 꺼 보고 베낀 거야??"
슉!
웨어울프 워리어로부터 대답의 포효 대신 원투가 뻗어 나왔다. 태율은 뒤로 확 거리를 벌리며 피했지만, 짐승 놈의 공격은 단발로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계속 원투를 쏟아냈다. 마치 오늘 싸움에선 이거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온 것처럼, 웨어울프 워리어는 끈질기게 원투를 반복했다.
"이... 씨발...!"
태율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일순 보기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리치와 속도와 힘 같은 모든 조건이 인간 이상인 웨어울프의 피지컬에서 나오는 원투는 쉽지 않은 공격이었다. 태율은 옆으로 계속 돌면서 웨어울프 워리어의 기관총 같은 펀치 세례를 벗어나고 있었지만,
텅!
워낙 팔이 길다 보니 이따금 태율의 가드 위를 때리는 일도 생겼다.
"하~ 이 새끼..."
놈이 앞발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쑥 내민 스트레이트가 태율의 가드를 뚫을 기세로 뻗어왔다.
탁
태율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패링으로 스트레이트를 쳐냈다. 그러자 곧바로 틈도 없이 왼손 펀치가 날아 들어왔고, 이번엔 가드를 붙인 채 고개를 옆을 돌려 흘리는 방식으로 공격을 받아냈다.
"...잘 하는데?"
단순하지만 줄기차게 공격을 넣는 웨어울프 워리어에 대한 감상이 태율의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계속해서 웨어울프 워리어의 공격을 방어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적개심조차 잊어버리고 열심히 방어하는 데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캬아악!!"
한참 동안 공격을 휘두르던 정타가 단 한 대도 들어가지 않자, 결국 짜증이 있는 대로 나버린 웨어울프 워리어가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큰 펀치를 휘둘러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지겹도록 태율이 수비를 하면서 기다려 온 적절한 기회였다.
팡!!
성질부린 대가는 금방 찾아왔다. 웨어울프 워리어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태율의 왼손 잽이 늑대의 코를 때렸다.
팡! 파방!
연이어 펀치가 웨어울프 워리어의 얼굴을 때렸다.
"...??"
펀치에 밀려 살짝 물러선 웨어울프 워리어는 의아했다. 분명 아프긴 아팠는데, 아까 맞았던 것보다는 훨씬 견딜 만 했던 것이다. 특히나 처음 싸웠을 때는 태율이 날리는 한방 한방이 뼈까지 뭉개지는 것 같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는데, 이건 결코 그만한 위력이 아니었다.
스윽
웨어울프 워리어가 데미지와 혼란으로 주춤거리는 사이, 잠깐 뒤로 빠졌던 태율이 가드를 붙이고 앞으로 쑥 밀고 나왔다.
"...!! 카아악!!!"
부웅!
다급하게 날린 앞발 후리기는 공중만 갈랐다. 고개를 훅 숙이고 스텝을 넓게 밟아 웨어울프 워리어의 오른쪽으로 파고든 태율은 그대로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로 허리를 돌렸다.
퍽! 퍽!
태율이 좌우로 허리를 돌리며 웨어울프 워리어의 바디 양쪽을 연타했다.
"훕...!"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힌 웨어울프 워리어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끄르...."
아까와 같았다.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복부 타격으로 인해 막혔던 호흡도 금방 돌아왔다.
"크르르르...."
이 모든 현상으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도출한 웨어울프 워리어가 낮고 굵게 으르렁거렸다. 놈은 태율이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척
놀림감 취급을 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차오르자, 웨어울프 워리어는 도리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시도 중에서 가장 유효한 성과를 보였던 무기로 끝을 보기로 각오했다.
슉! 슈욱!
웨어울프 워리어가 크지 않은 동작으로, 여전히 어설픔이 남긴 했으나 좀 전보다 훨씬 간결한 궤도로 원투를 날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리치가 길고 힘이 좋으니까 원투만 해도 위협적이네. 아마 훅 같은 걸 섞어서 궤도가 다양했다면 지금처럼 편안하게 피할 수는 없었겠지.'
태율은 빠르게 가드를 올리고 뒤로 물러서며 웨어울프 워리어가 쏘아 대는 연타를 피해냈다.
계속된 수비 끝에 웨어울프 워리어의 사정거리를 완벽하게 파악했기에, 태율이 더 이상 정타를 맞을 일은 없었다. 아무리 웨어울프 워리어가 각오를 다지고 동작을 빠르게 해도 그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놈의 공격이 가진 일정한 리듬에 따라, 태율은 너무도 쉽게 회피하고 막아냈다.
쉭
태율이 오른쪽으로 가는 척했다가 빠르게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돌아갔다. 페이크에 넘어간 웨어울프 워리어는 한순간 밸런스가 무너졌고, 내보인 빈틈은 곧바로 반격의 빌미가 되어 돌아왔다.
팡!!
다시 거리를 좁힌 태율이 왼손 훅으로 웨어울프 워리어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웨어울프 워리어는 반격하려 했지만, 짧은 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이동한 태율을 맞출 수 없었다.
파방! 팡! 팡!! 팡!! 파방!!
완전히 꽉 쥐지 않은 주먹으로 가볍게 날리는 펀치들이 쉴틈 없이 웨어울프 워리어에게 꽂혔다. 때리는 태율이야 '팡팡' 정도의 가벼운 느낌으로 던지는 것이었지만, 맞는 웨어울프 워리어는 '뻑뻑' 정도의 타격감으로 얻어맞으며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반격하려고 주먹도 내밀어 봤다가, 나중엔 손을 휘저어 봤다가, 그것도 안 되어서 결국 머리를 감싸 쥐고 얻어터지던 웨어울프 워리어는 결국 맞다가 지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끄르르르....."
사실 태율이 죽일 작정으로 줘팬 것은 아닌 터라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순전히 너무 아파서 웨어울프 워리어의 전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항복이냐?"
태율은 머리를 싸매고 웅크려 앉은 웨어울프 워리어에게 물었다.
"크르르르...."
겁을 잔뜩 먹은,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는 패배의 분함도 섞여있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담은 눈빛이 대답처럼 태율에게 돌아왔다.
“어휴....”
숨 한 번 크게 쉰 태율은 주먹을 풀고 편안하게 섰다. 그리고는 웨어울프 워리어를 툭 발로 찼다.
"가라, 새꺄."
"크르릉...??"
"가라고."
재촉하듯이 태율이 두어 번 발로 더 툭툭 차자, 웨어울프 워리어는 얼떨떨한 듯 멍청한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주춤주춤 일어섰다.
"크... 크르릉...?"
"아, 거 새끼!! 빨랑 안 가?!!!"
"캬... 캬웅!!!"
자꾸 밍기적거리는 웨어울프 워리어에게 짜증이 난 태율이 주먹을 들어 때리려는 모션을 취하자, 화들짝 놀란 웨어울프 워리어가 그제야 펄쩍 뛰며 왔던 숲으로 황급히 도망갔다.
"...."
태율은 사라지는 짐승 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싸움과는 다르게, 복싱 처음 배운 놈하고 스파링이라도 한 판 했던 것 같은 대단찮은 기분밖에는 남지가 않았다.
"쯧, 희한하네..."
왜 자신이 사람도 아닌 짐승 놈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지 이해가 안 되었던 태율은 혀를 찼다. 그리고 편의점 누나가 두고 간 지게를 짊어지고 터덜터덜 말테츠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로 돌아간 태율은 웨어울프 워리어를 상대하기 위해 경비대를 포함한 사냥팀을 꾸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과 편의점 누나를 만났다. 그는 편의점 누나에게 지게를 돌려주며, 어찌어찌 웨어울프 워리어로부터 빠져나왔다고 대충 설명했다. 자세히 설명하기 귀찮아서 적당히 씨부린 태율의 말을 들은 말테츠 마을 사람들은, 그를 '편의점 누나를 구하고 자신도 잘 빠져나온 영리한 소년' 정도로 여기고 칭찬했다. 마을 사람들의 칭찬에 이어진 편의점 누나의 감사 인사를 받은 태율은 그 길로 바로 집에 돌아갔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간, 아라미레스와 폴트스가 호들갑스럽게 돌아와 소파에서 처자고 있던 태율을 깨웠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태율에게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제법 놀라운 것이었다.
"오늘 퇴학생들이 쳐들어왔다고?"
"그래, 알마크로 일당 5명이 들이닥쳐서는 자신들이 지구에서 온 놈들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싸움을 건 거야!"
폴트스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투로 떠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지구에서 온 애들 중에서 선별해서 5대5 결투를 벌였지!"
"그래서?"
"경기가 둘다 2승2패가 되고, 마지막 대장전이 남았는데, 그때 나선 게 퇴학생 쪽에서는 알마크로, 드란지엘 쪽에서는 이시현이었어!"
"시현이가?"
"원래 2학년 지구 출신 중에... 어... 아, 베일리 로건이란 애가 나오기로 했는데, 걔가 부상이라고 해서 시현이가 대신 나간 거야."
"뜬금없네."
"어쨌든, 이 대장전이 재밌었어. 초반에는 시현이가 알마크로보다 우세했거든? 그런데 밀리던 알마크로가 갑자기 무슨 주문 같은 걸 외우더니, 느닷없이 마력이 엄청나게 치솟더라고."
"엥? 파워업이라도 한 건가?"
태율의 의문에 아라미레스가 끼어들었다.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평범한 수단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니라는 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되니 이번엔 시현이쪽이 밀렸지. 거의 지기 직전까지 몰렸는데, 이번엔 시현이도 알마크로랑 비슷한 파워업을 하더라."
"어? 시현이도?"
"어. 그리고는 그대로 당황한 알마크로를 압도한 뒤에 시합은 끝. 드란지엘 측이 이겼어."
"오오, 시현이 완전히 영웅 됐겠네."
폴트스가 낄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걔 쫓아다니던 애들이 죄다 튀어나와서 안으려고 들던데, 볼만 하더라."
"오우."
"힘을 다 쓴 탓인지 시현이가 기절해 버려서 결국 아수라장으로 끝났지만."
"인기인도 피곤하구만. 어쨌든 내일 가면 또 시현이 때문에 난리나 있겠네."
"그렇겠지, 뭐. 그나저나, 너는?"
"나?"
"오늘 뭐하고 있었냐?"
태율은 오늘 숲에서 웨어울프 워리어와 마주쳤던 이야기를 형들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엄청나고도 대단한 사건들이 있었던 결투가 벌어진 드란지엘과는 뚝 떨어진 곳에서, 원투 배워온 짐승 새끼와 단둘이 스파링 같은 싸움을 치뤘던 태율의 이야기가 덤덤하게 세 사람 사이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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