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유래 없는 재능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화려한 검 솜씨를 앞세운 샬레니엔은 불꽃의 폭풍을 뚫고 차츰 앞으로 나아갔다.
"아.. 아아앗....!"
화아아아아아
은빛 마법검을 매섭고도 빠르게 휘두르며 한 발짝씩 다가오는 샬레니엔을 향해, 알레스디는 있는 대로 마력을 끌어올려 점점 더 많은 불꽃을 쏟아냈다.
샤사사사사사삭
그러나 샬레니엔은 침착하게 증가하는 불꽃 공격에 맞춰 검의 속도를 높여갔으며, 차분하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
죽을힘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퍼붓는 알레스디의 이마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어찌나 불꽃을 뿜어냈는지, 불의 폭풍 속에 파묻힌 샬레니엔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다. 지글대는 열기는 시합장의 공기를 덥혀 아지랑이를 만들어 냈다. 아마 관중석을 둘러싼 방어벽이 아니었다면 그 뜨거운 기운이 관중들에게 직격으로 맞닿았을 것이었다.
관중들은 이제 휘몰아치는 불꽃 덩어리로 완전히 뒤덮인 경기장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과연 알레스디의 전력 공세가 과연 전년도 준우승자 샬레니엔을 이겨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었다.
"...뚫렸네."
지켜보고 있던 태율이 중얼거린 그때,
촤악!!
샬레니엔의 검이 은빛 무지개와 같은 곡선을 그리며 불꽃 폭풍 밖으로 튀어나왔다.
촤차차착!
십자로 두 번 긋는 마법검이 알레디스 바로 앞의 불꽃들을 흩어 소멸시키며, 샬레니엔도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검을 휘둘러 앞으로 전진하던 샬레니엔이 끝내 알레디스의 모든 힘이 담긴 꽃잎 폭풍을 뚫고 알레디스의 코앞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척
불의 비 세례를 통과하여 마침내 알레디스의 코앞에 도착한 샬레니엔이 알레디스 목에 검 끝을 대었다.
"캬~~ 그림 멋지네~"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불꽃 속에서 마침내 결착을 낸 두 미소녀... 한 폭의 명화 같은 멋진 장면에 태율이 할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구수하게 감탄했다.
"져... 졌습니다."
샬레니엔의 검을 목전에 둔 알레디스는 눈을 꾹 감고 항복을 선언하였다.
"승자, 샬레니엔 드루실 알마크로!"
심판이 승자인 샬레니엔의 이름을 외치자, 경기장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환성이 폭발하였다.
"어이구야... 진짜 대단한 인기다."
태율은 귀가 얼얼해지는 느낌이었다.
샬레니엔이 우아한 동작으로 검을 사라지게 하고, 패배한 알레디스를 매너 있게 위로한 뒤,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환호성은 더욱 크게 울렸고, 샬레니엔이 퇴장하고 난 뒤에도 얼마간 이어졌다.
"다음 상대, 결정이네?"
올리야의 한 마디에, 함성에 팔려있던 태율의 정신이 돌아왔다.
"아, 아아, 그렇네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태율은 4강전 상대가 된 샬레니엔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넣고, 그녀를 상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각종 경우의 수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검을 만들어 낸다.'라는 단순한 마법이었지만, 마법을 뚫어내는 위력을 지닌 검과 그것을 다루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샬레니엔은 지금까지 봐온 그 누구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태율은 진지하게 승부를 이리저리 예측하는 데에 몰두했다.
"아하하하하하~ 진지한 얼굴이네~?"
올리야가 심각한 표정으로 뇌내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태율을 놀리듯이 말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태율은 올리야의 놀림에 퍼뜩 현실로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을 싱글거리면서 보는 올리야와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쥬드미네를 새삼 깨달았다.
"......"
심각하게 다음 경기에 대해 예측하고 있는 모양새가 두 여자의 눈길을 끌었단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주목받기 싫어하는 태율의 성향이 여지없이 불쑥 뛰쳐나왔다.
"아까 그 칼 진짜 간지나지 않나요? "
"샬레니엔의 마법검 말이야?"
"기왕 마법을 가질 거면 저런 멋진 걸 가졌어야 했는데~ 제 마법 같은 거야 그냥 봐선 마법인지 뭔지 잘 티도 안 나잖아요?"
"아하하하하하하~ 그런 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거야?"
올리야는 별것도 아닌 걸로 표정을 굳혔던 태율을 재밌다는 듯 한 번 웃어 주었다. 대충 지어낸 마음에도 없는 싱거운 소리는 태율의 의도대로 잘 작동하여, 심각한 표정 뒤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듯 접근했던 올리야를 성공적으로 털어내 주었다.
"....."
그런데 쥬드미네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태율의 적당한 소리에도 여전히 태율 쪽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 저기..."
부담스러워진 태율은 쥬드미네에게 '왜 그렇게 보냐'라고 묻고 싶어서 운을 뗐다.
"아니, 그냥."
태율의 의도를 훤히 안다는 듯 쥬드미네가 바로 대답을 꺼내기 시작했다.
"꽤나 적당히 말하는구나 싶어서."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쏠린 관심을 돌리려고 가벼운 소릴 꾸며냈다는 걸 간파라도 한 듯한 쥬드미네의 말이었다.
"적당히라뇨. 나름대로 진심인걸요."
태율은 얼버무리며 눈을 돌렸다. 쥬드미네가 여전히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끄질 않으니, 어쩔 도리 없이 자신 쪽에서 시선을 회피하는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이어지는 8강전 세 번째 경기에서는, 바위 거인 소환 마법을 사용하는 키 작고 매섭게 생긴 붉은 머리 여학생이 몇 번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환호 속에 퇴장하는 세 번째 경기 선수들 뒤로, 조금 전과는 또 다른 흥분된 열기가 솟아올랐다.
"나오는구나~"
태율 또한 흥미롭게 선수들이 나오는 입구에 눈을 두었다.
"3학년, 베아트린 고레온 엑시단스!"
먼저 구불거리는 회색 곱슬머리를 망가진 커튼처럼 늘어뜨린, 눈에 보이는 모든것을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짓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여학생이 등장하였다. 그녀는 16강전에서 독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던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
베아트린의 등장 이후 다음 상대를 호명하는 심판의 첫 마디부터,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초의 지구 출신 남자 마법사, 마법을 배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여러 활약을 보이는, 그로 인해 최근에는 드란지엘 뿐만 아니라 몇몇 귀족들의 시선 또한 받는 인물이 등장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이시현!"
"예아~~!! 시현아~~!!! 화이티이이이잉!!!!!"
드란지엘, 아니 그룬마가트에서의 유일한 동성 동갑 친구를 향해 태율은 있는 힘껏 응원의 목소리를 뽑아냈다. 예전 복싱부에서 했던 그대로 복부에서 끌어내 쩌렁쩌렁하게 내지른 응원 소리에 쥬드미네와 올리아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먼저 시합장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던 베아트린의 눈은 올라오는 시현을 보자 이상한 광채를 빛냈다.
"지금부터 8강 제4시합, 베아트린 고레온 엑시단스 대 이시현의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이이이이!
시합이 시작되자, 베아트린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주문을 외쳤다.
"[베놈 버스터]!!"
후와아아아아
불났을 때 나는 것 같은 시커먼 연기가 베아트린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엑?? 입이 발현구야?"
태율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문을 외치며 벌어진 입으로 독무를 쏘는 베아트린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하하하하, 좀 보기 그렇지? 그래도 얕봐선 안 돼. 엑시단스 선배는 저래뵈도..."
"졸라 멋진데?"
"......"
올리야는 자신과 엇나간 감상평을 내놓은 태율 때문에 처음으로 특유의 웃음이 옅어졌다.
"아하하... 그거 비꼬는 거야?"
"엥? 아닌데요? 진짜 멋지잖아요. 드래곤 같아서."
올리야가 태율의 감상에 별로 동의하고 있지 못하는 사이, 검은 독무가 시현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관중석에서 시현의 이름을 부르는 어느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 같은 목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순식간에 당해버린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후후후후후후후..."
시현을 독무 속에 파묻어 버린 베아트린이 음울하면서도 잔인해 보이는 웃음을 터뜨리며 승리를 확신했다. 예선전부터 16강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독무에 삼켜진 상대는 모조리 중독되어 기절했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드란지엘의 학생이나 선생들은 이번 시합이 이걸로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람의 권]!!"
독무 속에서 시현이 주문을 외쳤다.
후우우우웅!
강력한 바람이 독무 안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그대로 독무를 밀어냈다. [바람의 권]에 의해 독무가 흐트러지자, 손바닥을 편 양손으로 바람을 쏘고 있는 시현의 모습이 드러났다.
시현이 무사히 위기를 넘기자, 관중들은 감탄이 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 엑시단스 양의 독무를 고작 바람 마법으로 밀어냈다고?"
역시나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노란 올림머리 귀족 부인이 진심으로 탄복하며 말했다.
"사장님, 방금 저 마법은..."
"그래, 최태율 군의 그 바람 사출 마법이지."
"대단하네요. 어느새 최태율 군의 마법까지 복사했을까요? 진짜 놀랐어요."
귀족 부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옆자리에 선 남색 포니테일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
"놀라야 할 포인트는 그게 아닐 텐데?"
"아아...? 어... 그럼....?"
"엑시단스 양의 독무 마법은 위력은 B급이지만, 실체가 없는 독연기가 대상자를 둘러싸 언제까지고 가둬버리는 특유의 성질 때문에 파훼하려면 제대로 된 방어마법을 써야 해. 본래대로라면 바람 마법으로 단순하게 날려봤자 다시 돌아와서 타겟을 도로 가둬버린다고."
"네에? 그렇지만 이시현 군은..."
"그래, 밀어냈지. 그 말은..."
귀족 부인은 날카로운 눈을 시현 쪽으로 향했다.
"이시현 군이 가진 마력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단 뜻이야."
"말도 안 되요... 지금도 이미 A급에 랭크시켜 놓은 마력인데...."
남색 포니테일은 할말을 잃고 귀족 부인과 같이 시현 쪽으로 놀라움이 가득 들어찬 눈을 돌렸다.
"와하하하하!! 잘한다, 시현아!!! 방금 니가 쓴 거 내 마법이니까, 이기면 잊지 말고 밥 사라!!!"
모두가 놀라는 이 광경을 목격한 태율은 신이 나서 마구 소리쳤다. 그는 그저 단순하게 동갑내기 친구가 이기는 게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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