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드란지엘 경연 결투 분야 본선, 4강전

"4강전 제1시합, 샬레니엔 드루실 알마크로 대 최태율, 경기 시작합니다!"
삐이이이이이
"[바람의 권]!"
상대가 누구든 여지없었다. 태율은 [바람의 권]을 날리고 샬레니엔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대쉬 도중 샬레니엔이 왼쪽으로 살짝 움직여 바람을 피하며 주문을 외치는 것이 보였다.
"[나의 대적을 베는 은색의 검이여]!"
샬레니엔의 오른손에 은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이 만들어졌을때, 태율은 즉각 다리를 멈추고 두 번째 주문을 발동시켰다.
"[질풍의 권]!"
후와아아아아아!
거칠고 강한 바람이 태율의 주먹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샬레니엔을 덮쳤다. 16강전에서 상대의 장외를 얻어낸 수법이었지만, 샬레니엔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샤악!
샬레니엔이 머리 위로 든 검을 아래로 죽 내리긋자, 태율의 바람이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바람을 갈랐어?!'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자 태율은 놀랐다.
탓
이번엔 바람을 가른 샬레니엔이 먼저 태율에게로 검을 겨누며 달려왔다.
태율은 신속하게 백스텝을 밟아 샬레니엔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이동했고, 검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졌다.
"똑같군요."
샬레니엔은 사정 범위 밖으로 나간 태율의 행동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투로 말했다.
샤악!
태율이 섣불리 들어올 기미가 없자, 또 다시 샬레니엔 쪽에서 먼저 행동을 개시하였다. 태율에 못지않은 스피드로 다가와 휘두른 그녀의 칼은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돌아 물러선 태율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샥! 샤악! 샥!
검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로 세 번 더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리듬을 타며 백스텝으로 물러서는 태율은 아까와 똑같이 금방 검의 공격 범위 밖으로 나갔다.
"언제까지 도망만 갈 수 있을 것 같아!"
약이 오른 샬레니엔이 속도를 붙여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샬레니엔을 보며, 태율은 어젯밤 로델이 해줬던 얘기를 상기했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입니다."
뒤로 뛰는 속도보다 앞으로 달리는 속도가 당연히 빨랐기에, 샬레니엔은 결국 태율을 따라잡았다.
태율은 주문을 외쳤다.
"[강철의 권]!"
휘이익! 캉!!
샬레니엔의 검격이 태율의 왼팔에 부딪히자 쇠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태율은 가드를 올린 상태로 위빙과 더킹 동작을 섞어 끊임없이 흔들고 숙이면서 발을 멈추지 않았고, 검은 가드에 막히거나 허공을 갈랐다.
"상대가 유리한 거리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받아줄 이유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털고 나오면서 상대가 연타를 먹일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태율은 로델의 가르침대로 샬레니엔이 힘을 실어 날리는 검을 계속해서 막고 빠져 나오고 또 피하고 빠져 나오길 반복했다. 그 바람에 샬레니엔은 겨우 태율에게 닿을 만한 공격을 했나 싶으면 멀어지고 또 멀어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추격을 해야만 했다.
"우우우우- 비겁하다-"
"겁쟁이!"
"알마크로, 힘내요!!"
태율이 계속 거리를 벌려 피하기만 하자, 짜증이 난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동시에 태율을 때려잡길 바라는 희망은 더욱 커져서 샬레니엔에 대한 응원 소리는 더 커졌다.
"괜찮다!! 잘하고 있어!!"
"흔들리지 말고 준비한 대로 해!!!"
태율 응원단을 자처한 아저씨들은 주변의 반응과 반대로 태율에 대한 격려와 응원을 목청껏 쏟아냈다.
'슬슬...'
태율은 반복되는 술래잡기에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샬레니엔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마력 강화로 신체 능력이 상승했더라도, 무한히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공격이 안 나오는 타이밍 그리고 밸런스가 무너지는 타이밍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태율 군이 찔러야 할 순간은 바로 그때입니다."
로델이 언급했던 그때가, 태율이 기다렸던 그 순간이 다가왔다. 태율을 검의 범위 내로 잡아두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 급급했던 샬레니엔이 검을 휘두르지 않고 거리만 좁혔던 것이다.
'왔다!!!'
기다렸던 타이밍이 도래하자, 태율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면서도 자신은 공격이 가능한 거리로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꽉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 든 태율은 샬레니엔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쑤셔 넣은 뒤 팔을 확 걸며 클린치를 걸었다.
"뭐... 뭐야!!!"
샬레니엔의 당황한 목소리가 거의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지켜보던 관객들도 모조리 경악했다. 드란지엘 경연 대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결투 시합 중에 남녀가 껴안는(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평상시 태율이라면 남녀가 함부로 껴안는 행위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테지만, 시합에 선수로 나선 그는 달랐다. 그에게 지금의 샬레니엔은 남자니 여자니 따질 것 없는, 그저 이겨야 하는 시합 상대일 뿐이었다. 그리고 거리를 좁혀 클린치를 건 것은 마땅히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써야 할 기술 중 하나에 불과했다. 샬레니엔이 놀라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관중들이 야유에 비명까지 쏟아내도, 태율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놔...! 놓으라고!"
샬레니엔은 자신에게 들러붙은 태율을 떼어 놓으려고 아둥바둥 댔지만, 완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태율에게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갑자기 바짝 붙어버린 통에 검을 휘두르기도 애매한 상황에 놓인 그녀는 태율을 검 대신 손으로 내리치며 클린치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놓으라...."
뻑!
"컥...!!"
소리를 지르던 샬레니엔은 옆구리에 격한 통증을 느끼며 숨을 콱 몰아쉬었다. 태율이 클린치를 건 상태로 그녀의 옆구리에 숏펀치를 갈긴 것이다.
뻐억!
"웍..!!"
두 번째 펀치가 전해주는 충격은 샬레니엔의 두 눈을 거의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도록 만들었다. 워낙에 짧은 펀치라 다운을 시킬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데미지를 주는 데에는 충분했다.
퍽! 퍽! 퍽! 퍽!
태율의 숏펀치가 연이어 샬레니엔의 옆구리를 때렸다. 샬레니엔은 꼼짝 없이 붙들린 채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토해냈다.
"이... 이게 뭐야...?!"
"알마크로!!"
상당수의 관중들은 설마 마법 결투 시합에서 볼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원시적으로 폭력적인 장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누군가는 샬레니엔이 이 위기를 탈출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을 날렸다.
"좋다~~~!! 계속해라! 계속해!!!"
"쥐어박아!! 두들겨 패!! 박살을 내!!"
경악에 빠진 관중들 중에서 신이 난 것은 아저씨 응원단뿐이었다.
'이...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론... 악!'
콜로세움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절박한 샬레니엔은 또 옆구리를 파고드는 태율의 주먹에 비명을 질렀다. 이젠 거의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바디를 당해버린 그녀였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빠져 나와야 해...!'
그러나 명문가의 귀족으로 엘리트 교육과 훈련으로 정신력을 단련해온 샬레니엔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으로 인해 위기에 내몰린 순간, 단련된 정신력은 오히려 그녀에게 마지막 집중력을 선사하여 주었다.
'만약.... 검이 길어서 공격하는 것이 문제라면....! 검의 사이즈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태율에게 두 번의 펀치를 더 당하는 동안 떠올린 궁여지책을 어쨌든 실행해보는 수밖엔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추하게 얻어맞다가 패배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에 몰린 그녀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육신의 고통마저 이겨내며 새로운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슈욱
샬레니엔이 검에 들어가는 마력을 감소시키며 검의 새로운 형태를 이미지화 하였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펀치에도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샬레니엔은 이미지화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그녀의 의도대로 은빛의 마법검의 크기가 차츰 줄어들었다.
'됐다!'
상상한 대로 은빛검이 단검 사이즈로 변형 시키는 데 성공한 샬레니엔은 쾌재를 불렀다.
"...!"
클린치를 붙느냐 샬레니엔의 왼쪽 어깨에 바짝 얼굴을 대고 있어 그녀의 오른손을 볼 수는 없었지만, 태율은 이때 쎄함을 느꼈다.
팍!
휙!
태율이 클린치를 풀며 샬레니엔을 밀쳤을 때, 샬레니엔이 은빛 단검으로 붙어있었던 태율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저거 길이 조절이 가능한 거였어?'
샬레니엔의 은빛 검이 새로운 기능을 선보이자, 태율은 살짝 당황했다. 검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것은 방금처럼 클린치로 괴롭히는 건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끙...."
태율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 샬레니엔은 계속 얻어맞았던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숏펀치로 축적된 데미지가 지끈거리며 그녀의 신체를 괴롭혔다. 그러나 반격의 기회를 잡은 샬레니엔은 온힘을 다해 고통을 억눌렀다.
"이제부턴... 내 차례야."
은빛 단검을 든 샬레니엔의 손이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려졌다.
'이미지화를 통해 검을 조절할 수 있다면....!'
샬레니엔은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조금 전과는 반대되는 이미지를 구체화 시켰다.
"받아라!!!"
이미지화를 끝낸 그녀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든 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원래의 길이보다도 훨씬 길어진 은빛 검이 거대한 원호를 그리며 내리 그어졌다.
콰자작!!
태율이 옆으로 얼른 피했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내리쳐진 은빛검은 시합장을 일직선으로 박살을 냈다.
"와아아아아!"
샬레니엔이 새로운 힘을 일깨운 뒤 상황을 반전시키자 관중석에서 다시 열띤 환호성이 터졌다.
"고마워해야겠어. 네 덕분에, 내 마법검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것 같으니까."
아픈 티를 안 내려고 애를 쓰면서, 샬레니엔은 위풍당당하게 태율에게 말했다.
"...."
태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강철의 권]이 걸린 두 팔을 올려 가드를 붙이고, 앞뒤로 두 다리를 벌린 뒤 조금씩 몸을 흔들었다.
뒤바뀐 경기장 분위기도, 자신감을 되찾은 샬레니엔도, 잡았다가 놓쳐버린 기회도 아무 상관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새로운 힘을 각성한 샬레니엔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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