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날아오르다

퇴치를 위해선 반드시 최소한 15명 이상의 수준급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마수인 고스트 드래곤을 일격에 무력화시킨 시현은 시합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시현의 초강력 [블루 블라스터]가 작렬하기 전에 태율이 깔아 놓은 수많은 밑밥들이 있었지만, 워낙 화려하고 엄청난 마무리다 보니 사람들 뇌리에서 태율의 활약은 많이 지워진 상태였다.
시현을 좋아하는 소녀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시현의 활약에 놀라워하며 환호를 보냈다. 물론 그중에 태율을 향한 환호도 있긴 했지만, 그를 주역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저씨 응원단 외에는 없었다. 아저씨들 말고 태율의 이름을 외쳐주는 이들은 '혜성같이 등장한 소년 영웅을 도운 능력 있는 동료' 정도 대우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어나서 열광하는 주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회색 머리의 중년 남자 또한 시현 쪽으로 관심이 쏠려 있었다.
"야아~ 이거 참 대단한걸~?"
그는 흥미로 가득하다는 게 대놓고 드러나는 얼굴로 감탄했다. 다만, 그의 감탄은 단지 시현이 보여준 능력에 대한 순수한 반응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겐 결코 말할 수 없는 그의 진심은 오로지 그의 속에서만 맴돌았다.
'오늘 처리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그는 처형식 전의 유희 시간을 즐기는 기분으로 일부러 소리를 내서 다른 이들의 환호에 동참했다.
한편, 경기장 안의 태율은 회색 머리 중년 남자의 자신감대로 아직 고스트 드래곤이 완전히 끝장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출력이 생각보다 안 나왔어...'
그가 불안한 확신의 첫 번째 근거는 그의 예상을 한참 밑도는 시현의 위력이었다.
"제기랄... 내가 느낀 대로라면, 분명히 대가리쪽 마력을 완전히 날려버리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태율은 고스트 드래곤 머리 쪽의 마력을 감지하고 이를 악물었다. 거의 날아가긴 했지만, 놈의 대가리에 얇은 천 정도로 미세하게 남은 마력이 두 번째 근거였다. 태율은 축제 분위기로 변해가는 주변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시현에게 소리쳤다.
"시현아! 아직 마음 놓으면 안 돼! 저거 다시 일어날 거다!"
태율의 주의에 시현은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럴 수가... 분명히 머리가 날아간 것 같았는데...!"
"적당히 하면 안 됐어! 풀파워로 갈겼어야지!"
"하지만 난 진심으로 있는 힘껏 [블루 블라스터]를 쏜 건데...!"
시현의 말에 이번엔 태율이 당황했다.
"그게 풀파워였다고?"
크드드드...
그 순간, 중년 남자와 태율의 예상대로 고스트 드래곤이 서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재개한 놈의 머리 쪽 마력은 점점 다시 두터워지고 있었다.
"씨발, 저럴 줄 알았어. 시현아, 한 방 더 쏴야 할 것 같다."
다시 치솟는 위기감에 축제 분위기였던 관중석에 찬물이 끼얹어진 그 때, 태율은 시현을 재촉했다.
"그.. 그렇지만, 난 이미 마력이 바닥났어... 아까 그게 진짜로 온 힘을 다한 블라스터였다고...!"
시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태율은 여전히 태산 같은 풍겨 나오는 마력의 기운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시현아. 네 힘은 그 정도가 아니야."
“태율아, 진짜야...! 지금 [블루 블라스터]는 되지도 않고, [레드 블라스터]도 겨우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고!”
태율은 시현의 말을 단호히 부정했지만, 시현 또한 절박하게 현실을 말했다.
‘젠장...!’
태율은 입장로 쪽을 돌아 봤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들은 여전히 안쪽으로 진입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게 확실히 보였다. 이로써 고스트 드래곤이 다시 공격해오기 전에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건 포기해야 했다.
"이시현."
밖으로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발견할 수 없었던 태율은 굳은 표정으로 시현의 눈을 보았다.
"나도 이런 장담 하긴 싫은데... 네가 네 진정한 마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면 오늘 우린 다 뒈지는 거야."
곤란함과 초조함에 압박감까지 받고 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현의 얼굴은, 그가 이미 전력을 쏟아 부었단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재차 강력하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시현은 마치 태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요구하는 것처럼 굴었다.
"후우...."
그런 시현의 얼굴을 응시하던 태율은 한숨을 내쉬며 옷소매를 잡았다.
"알았어."
쫘악
그는 옷소매를 찢어낸 뒤, 피투성이가 되어 둥근 공처럼 부어오른 주먹을 둘둘 감았다.
"태율아, 어쩌려고...!"
태율은 시현에게 대답하는 대신 왼손과 입을 이용해 오른 주먹을 천으로 단단히 묶은 뒤, 양손을 들어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강철의 권]."
부우웅
태율의 두 주먹이 마력의 움직임과 함께 강화되었고, 오른쪽 주먹을 감은 천이 마력의 압박 때문에 터져 나온 피로 붉게 물들었다.
"쯧, 네가 할 수 없다는 데 어쩔 도리 있냐? 다 죽을 순 없잖아?“
태율은 혀를 찬 뒤, 거의 다 일어서서 머리 쪽 마력을 회복시키고 있는 고스트 드래곤 쪽으로 다시 눈을 고개를 돌렸다.
"다만 내가 분명히 말해 두는데, 네가 가진 힘을 제대로 끌어내면 저 뼈다귀 놈을 날려 버리고도 남을 것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그러니 살고 싶으면 되도록 빨리 그걸 끌어내도록 해."
"어쩌려는 거야...!"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시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율에겐 문득 '나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그는 의문과 함께 시현을 다시 돌아보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그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어느 정도의 호감과 그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이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둘 중 어느 하나 목숨까지 걸만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니긴 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피어오르는 생각의 끝에, 태율이 결국 스스로에게 내린 답은 이러했다.
'그딴 걸 따져서 뭐하게?'
그는 잡념을 뱉어 버리듯, 침을 한 번 탁 뱉었다.
'애당초 군인이나 경찰을 하려고 마음먹은 나다. 원래부터 알지도 못하는 불특정 다수를 지켜주는 걸 직업으로 삼으려 했던 주제에, 뭔 잡생각이 이렇게 많아?
남자 새끼가 좀스럽게.'
태율은 스스로를 꾸짖으며 투지를 끌어 올렸다. 어차피 언젠가 다른 이를 위해 피 흘릴 작정이었다면, 그게 지금이라도 상관없다는 오기까지 덩달아 같이 끓어올랐다.
"네가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마."
“뭐... 뭐라고?!”
태율은 왼손을 뒤로 뺀 사우스포 자세를 잡으며 시현에게 당부했고, 시현은 태율이 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태율아, 혼자서는 안 돼!"
"어설프게 둘이 달려들었다간 다 죽어. 내가 저놈을 상대하는 동안 네 모든 힘을 다 끌어낼 방법을 찾던지, 아님 도망갈 길이라도 찾아.
...솔직히 나도 어지간하면 안 죽고 싶으니까, 될 수 있으면 나까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면 고맙겠고."
해야 할 말은 모두 끝났다.
타타탓!
시현이 부르짖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태율은 아직 회복을 마무리 짓지 못한 고스트 드래곤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나아갔다.
"끠이이이이이이이이...!!"
"오와아아아아아아아아!!!!"
어느 정도 마력이 복구된 고개를 까딱거리며 기이한 울음소리에 대항하듯, 태율은 목청이 터져라 기합을 지르며 달려갔다.
"처먹어어어어어!!!!"
태율이 가진 온 무게와 마력이 고스란히 왼손 훅에 실렸다.
쾅!!!
펀치는 철퇴처럼 고스트 드래곤의 오른쪽 정강이뼈에 명중하였고, 오함마로 돌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꽈지직
그리고 펀치가 박힌 부분이 유리창 깨지듯 금이 쩍 갈라졌다.
'어... 어라?!!'
생각보다 쉽게 고스트 드래곤의 뼈에 눈에 보일 정도로 타격을 입히자, 태율은 깜짝 놀랐다.
'머... 먹히네...??!!'
죽음을 각오하고 시현을 위해 시간을 끌려고 뛰어들었던 태율은 혼신의 힘을 다한 [강철의 권]이 이 정도로 위력을 낼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력은 잘 봤지만 정작 자신의 마력 사이즈는 제대로 알지 못한 탓, 그리고 그 동안 전력을 다해 [강철의 권]으로 타격한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이... 이크!"
고통을 느끼지 않는 고스트 드래곤이 다리뼈에 금이 갔어도 공격하려고 팔을 들어 올리자, 잠시 정신을 팔았던 태율은 다시 움직임에 집중했다.
파팟
쿠우웅!!
태율의 몸은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고, 고스트 드래곤의 일격은 빈 땅만 부수고 말았다. 그리고 커다란 동작 가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 생긴 큰 빈틈은 태율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내 주먹이 먹힌다면...!"
태율은 다리를 땅에 딱 박아 넣고 총력 타격 자세를 갖추었다.
"아예 내가 박살을 내주뫄아아아아아아아아!!!"
쾅!! 쾅!! 쾅!! 쾅!! 쾅!! 쾅!! 쾅!!!!!
기합과 혼신의 힘이 꽉꽉 눌러 담긴 양손 훅 연타가 금이 간 고스트 드래곤의 오른다리에 사정없이 때려 박혔다. 그야말로 뼈를 부수는 본 크러셔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콰앙!!
앞선 타격보다 더욱 무게를 실은 마지막 8번째 펀치가 놈의 다리에 작렬하는 순간, 발생한 충격파가 지켜보던 시현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우득...!
와지직!! 쾅!!
태율의 오른손 주먹에서 심상치 않은 파열음이 울림과 동시에, 그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는 파쇄음이 터지며 고스트 드래곤의 오른쪽 정강이뼈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끠이이이이...."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이 가루가 되어 버리자, 중심을 잃은 고스트 드래곤이 기우뚱거리며 앞으로 넘어지려 하였다
'기회다!!'
태율은 고스트 드래곤의 대가리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길 기다렸다. 머리통을 완전히 부셔 끝장을 낼 천재일우의 찬스가 다가오자, 태율은 완전히 터져서 천 조각이 미처 막지 못할 정도로 피를 철철 흘리는 오른 주먹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형편 좋은 기회는 쉽게 와주지 않았다.
"끠이이이이이이이...!"
파팟
무너져 내릴 듯 했던 고스트 드래곤이 별안간 뼈만 남은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어어...?! 씨발, 뭐야??!"
후욱!
태율의 당황한 목소리를 두고, 고스트 드래곤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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