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격추

"이런 개좃같은...!"
공중으로 떠버린 고스트 드래곤을 향해, 태율은 욕부터 씹어 뱉었다.
원거리 공격 수단인 [선풍의 권]이 충분한 위력을 갖추지 못한 지금, 고스트 드래곤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은 [강철의 권]뿐이었다. 그런데 아예 놈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면, 공격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리는 것이었다.
'....큭."
이렇게 된 이상 시현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인지라, 태율은 황급히 시현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 시현은 안타깝게도 전혀 자신의 힘을 각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도움이 안 되기는 바깥쪽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심각해지는 게 눈으로 보이자 관중석의 몇몇 마법사들이 방어벽을 부수려고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기는 했다. 하지만 쓸데없이 강력함을 자랑하는 방어벽은 여전히 뚫릴 기미조차 안 보였다.
'결국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거지.'
도움 받기를 완전히 포기한 태율은 머리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킈이이이이이-"
몇 번을 들어도 적응 안 되는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고스트 드래곤은 땅 아래를 보며 숨을 들이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냉혹의 브레스를 사용하려는 딱 그 모션이었다.
"!"
태율의 눈이 위기감으로 크게 떠졌다. 아까 봤던 브레스가 비록 방어벽을 부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일으킨 진동이나 파장 그리고 마력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저걸 맞으면 난 뒤진다...!'
시현이 [리플렉션 쉴드]로 막아 주더라도 놈을 공중에서 끌어내리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태율이 해결책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아마 연이어지는 브레스 공격에 계속 폭격당하다가 힘이 고갈되는 순간 가루가 되는 운명 외엔 기다리는 게 없을 터였다.
'오, 씨발...! 그래, 그렇게 하면 혹시....!'
위기를 마주하고 강제로 팽팽 돌아가던 태율의 뇌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려 냈다.
'굳이 저놈을 끌어내릴 필요가 뭐 있어?'
태율은 방금 떠올린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 [강철의 권]을 해제하였다.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다가 뒈지는 것보단 낫지!'
그는 양 팔을 내리고 주먹을 밑으로 향한 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나서 작심한 듯 힘차게 주문을 외쳤다.
"[질풍의 권]!!"
퍼어엉-
그동안 상대방을 휭 날려 버렸던 강력한 바람이 지면을 향해 발사되었고, 질풍의 힘에 떠밀린 태율의 몸뚱이가 그야말로 로켓처럼 퓽 하고 위로 쏘아 올려졌다.
"와아아아아라할라라랋!!"
엄청난 속도에 저절로 입이 벌어져, 어마어마한 바람이 밀려 들어갔다. 고스트 드래곤 못지 않은 기괴한 고함을 지르며, [질풍의 권]을 추진력 삼아 날아오른 태율은 순식간에 고스트 드래곤이 떠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어....?'
처음 해보는 공중전을 앞두고 거의 비명에 가까운 마음의 소리를 외치던 태율은 그만 적당한 때에 공격할 기회를 놓치고, 고스트 드래곤을 지나쳐 그보다도 더 위로 휭 올라가 버렸다.
"끠이이이이...?"
고스트 드래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솟구쳐 올라가는 태율을 따라 고개를 치켜올렸다.
"으와아악!!!"
천장을 막고 있는 위쪽 방어벽에 부딪히기 직전 태율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천장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파아앙!!
주먹에서 발사된 강풍이 천장과 부딪히며 태율의 몸을 아래로 밀어냈다.
피유우웅!
"끼에헤에에에엑!!"
올라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바람에 태율은 두 배로 정신을 못 차릴 뻔했다. 그렇지만 눈을 찌르는 바람을 이겨내며 간신히 뜬 눈으로 고스트 드래곤의 모습이 보자,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처단할 목표물을 향한 목적의식이 그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킈이이이이!"
"으갸아아악!!! [강철의 권]!!"
브레스를 장전하는 고스트 드래곤을 향해 급강하하며, 태율은 기합처럼 주문을 외쳤다. 그리고 낙하의 가속도가 더해진 강펀치를 고스트 드래곤의 해골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빠가악!!!
태율의 수직낙하 펀치에 명중당한 놈의 턱이 확 비틀리며 대가리 전체가 휙 돌아갔다.
"쿠와아아아아...!"
고스트 드래곤은 삐뚤어진 턱으로 브레스 쏘기를 멈추지 않긴 했지만, 이미 돌아간 입은 태율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으로 맥없이 브레스를 흘려냈다.
쒸이이이이잉!!
고스트 드래곤에게 한 방 먹인 후, 태율은 그대로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려갔다.
"이기기기기긱...! [질풍의 권]!!!"
퍼어엉!!
낙하의 두려움을 이겨내며 다시 [질풍의 권]을 시전한 태율은 땅바닥을 향해 강풍을 쏘았고, 땅에 부딪히기 바로 일보 직전에 그의 몸은 다시 위로 떠올랐다.
'뒤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태율은 위아래로 한 번씩 충돌할 위기를 넘기고 나자, [질풍의 권]을 이용한 비행 컨트롤에 대한 감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자, 간다!"
퍼엉!!
침착하게 아래쪽으로 강풍을 쏜 태율은 처음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로 솟구쳐 날아갔다.
"[강철의 권]!!"
빠각!!
대공 미사일처럼 치솟은 태율의 주먹이 고스트 드래곤의 아래턱에 정확하게 꽂혔다.
"[질풍의 권]!!"
태율은 또다시 마법을 교체하고 나서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방어벽에 부딪히기 직전에 강풍을 쏴 방향을 바꾼 뒤, 다시 고스트 드래곤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철의 권]!!! [질풍의 권]!!! [강철의 권]!!! [질풍의 권]!!! [강철의 권]!!!"
빠각!! 쒸이잉-- 뻐억!! 쓔우우웅-- 빠악!! 쒸이이잉!! 빠바바박!!!
[질풍의 권]과 [강철의 권]을 초고속으로 빠르게 반복 교체하며, 공중 히트 앤 런이 고스트 드래곤을 난타하였다. 거기에 태율의 비행에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붙으면서 비행&타격의 간격이 점점 짧아져 갔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 다음 좌상단에서 우하단, 이어서 우하단에서 좌상단...
존재하는 모든 방향에서 작렬하는 섬광처럼, 태율은 중심에 고스트 드래곤을 두고 이쪽저쪽을 번개같이 초고속 비행을 하며 놈을 덮쳐들었다.
피유우우우우웅- 빠아악!!!!
고스트 드래곤과 태율이 교차될 때마다 마른나무가 산산조각 나는 파쇄음이 폭발했다.
"끠이이이이....!"
아무리 통증을 느끼지 않는 고스트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성문을 부수는 공성퇴 이상의 강펀치를 1초의 틈도 없이 연달아 처맞으니 별다른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놈은 전신을 울리는 거대한 연쇄 충격에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차츰차츰 망가져 갔다.
시현에 이어 태율까지 놀라 자빠질 만한 광경을 선사하자, 관중석의 회색 머리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설마 고스트 드래곤씩이나 되는 마수가 저렇게 쪽도 못 쓰고 당할 줄이야~ 지구에서 온 놈들은 다 저런가?"
그는 품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구슬을 하나 꺼내 쥐었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되겠지~ 하고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되는 거야~"
중년 남자의 손으로부터 나온 마력이 은빛 구슬로 흘러 들어갔고, 구슬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크드드드득...
그 순간, 마땅한 움직임도 없이 신나게 처맞던 고스트 드래곤의 오른손이 훙 하고 바람을 가르며 위로 휘둘려졌다. 관절의 꺾이는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치 팔 자체만 따로 독립한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휘둘린 오른팔은 방어벽 천장을 찍고 아래로 내려오고 있던 태율 쪽으로 향했다.
"윽?!"
난데없이 거대한 팔이 자신 쪽으로 날아오자 태율은 당황했다. [질풍의 권]에서 [강철의 권]으로 전환되기 직전의 짧은 그 타이밍을 완벽하게 찔린 것이다. 게다가 마주 날아오는 속도까지 더해져, 단순한 팔 휘두르기는 최고로 위험한 카운터가 되어버렸다.
"좃됐다!!!"
태율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 섞인 욕이 터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뇌를 굴렸고, 마력의 움직임을 다급하게 이미지화하였다.
"[강철의 권]!!!"
[질풍의 권]이 미처 해제되지 않은 상태로, 태율은 [강철의 권]을 발동시켰다.
후우웅
쒸우우우웅
올라오는 고스트 드래곤의 뼈 손바닥 후리기와 내리꽂히는 태율의 펀치가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콰캉!!!!
두 공격이 정면충돌하자, 대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시합장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파바바바바바바박!!
깨져 나간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마구 퍼지며 유성처럼 땅에 떨어져 내렸다. 뼛조각이라곤 하지만 하나하나의 크기는 어린아이 크기 정도는 되는 큼직한 파편이었다.
"이... 이런...!"
충돌 후 오른팔이 박살나 사라진 고스트 드래곤을 뒤로 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태율은 황급히 아래를 살폈다. 시현이도 걱정이 됐지만, 한쪽 구석에 기절한 심판들을 둔 것이 그때 생각이 난 것이다.
"아..!"
태율은 시현이 어느 틈에 심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녀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태율의 분투에 정신을 차린 시현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시현은 [레드 블라스터]를 연신 쏘며 날아오는 파편들을 부셔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리플렉션 쉴드]가 상대적으로 물리 공격에 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역시 시현이! 잘 했어! 좋아!!!"
시현이가 심판들을 지켜주고 있는 걸 보고 안심한 태율은 이제 마지막 남은 과제인 '고스트 드래곤 끝장내기'를 위해 다시 위를 향했다.
"킈...이....이......이...."
팔다리가 하나씩 날아가고 남은 뼈 덩어리들도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채 공중에 떠있는 고스트 드래곤은 고장난 기계 같이 희미한 소리를 냈다.
"...어?!"
그런데, 3분의1 정도가 날아간 놈의 두개골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심상치 않았다. 한쪽밖에 안 남은 놈의 눈구멍은 정확히 시현과 심판들이 있는 곳을 보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고스트 드래곤의 시선과 요동하는 놈의 마력으로 태율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아차렸다. 태율이 시현 쪽으로 신경을 돌렸던 순간부터 이미 일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즈콰아아아아아아앙!
고스트 드래곤의 입에서 백색의 안개 같은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어?!"
파편을 부수는 데 전념하고 있던 시현은 공중으로부터 밀려 내려오는 브레스를 뒤늦게 발견하였다.
"트... [트리플...!"
자신 뿐만 아니라 뒤의 심판들까지 모두 지키려면 [트리플 리플렉션 쉴드]가 필요했다. 하지만 타이밍은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브레스는 시현이 주문을 끝마치고 반사 방패를 펼치기 전에 그들을 삼키고 말 것이었다.
"읏...!"
시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퐈아아아아아앙!!!
"....?!"
그런데 각오했던 고통스러운 최후 대신 폭발음과 함께 그를 쓸고 지나간 충격파가 그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브레스에 피폭당하는 신세를 면한 시현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어....?"
시현은 시합장 한쪽 바닥에 하얀 연기를 뿜으며 내팽개쳐저 있는 덩어리 같은 것에 눈이 멈췄다. 잠시 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시현의 입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 태율아!!"
시현이 덮쳐지기 직전에 뛰어 들어 대신 브레스 공격에 당한 태율은 바닥에서 전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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