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러면 신병, 너는 아무래도 다음 경기에 출전 못 하겠네.”
황이병은 다 마신 페트병을 찌그러뜨리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정수는 불쾌하다는 듯이 두 눈썹을 찌푸렸다.
“이병 박정수, 제가 경기에서 제외된다니. 황이병님,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말씀입니까?”
정수는 억지로 웃음을 자아내면서 최대한 속의 분노를 감추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계속해서 야구해 온 정수에게,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자존심에 큰 스크레치였으니까.
“지금 말, 그대로라네. 박정수 일병. 아마도 자네는 다음 경기에서 출전하지 못할 거라네.”
황이병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는 그런 황이병을 강하게 노려봤다.
‘나, 분명히 어제 야구부 간부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었나?’
정수는 어색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분명히 정수의 기억 속에 어제는, 첫날치고는 제법 괜찮은 하루로 기억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병 박정수. 황이병님, 혹시 그게 무슨 말씀인지···.”
“어이, 신병. 슬슬 더워지니까. 그건, 별관에 들어가서 말해주겠다.”
“아, 넵.”
황이병은 하늘에 밝게 떠오른 태양을 가리켰다. 언제부터일까. 붉은 석양을 그리면서 떠오르던 태양은, 하늘에서 밝은 빛을 내뿜으면서 연병장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모두, 별관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 넵.”
연병장에 쓰러져 있던 6생활관의 병사들은 하나둘씩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 후, 각지게 대열을 맞춰서 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30분간, 캐치볼 하면서 몸 좀 풀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박스 안에 들어있는 글러브를 손에 착용하도록!”
별관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조병장은 큰 목소리로 말하면서 훈련 세션을 진행했다. 정수와 6생활관 병사들은 모두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왼손잡이는 나, 혼자인 거려나?’
정수는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주변에 있느 6생활관 전우들은 죄다 오른손잡이 글러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2인 1조로 마주 보고 서서 캐치볼을 진행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넵.”
“그러면, 본인은 30분 후인 6시 30분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전까지 편하게 캐치볼을 하고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
조병장은 제법 날렵한 눈매로 6생활관을 쳐다보곤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것도 마치 거대한 들판에 양을 방목해 두는 양치기처럼 말이다.
‘나는 누구랑 캐치볼을 해야 하려나?’
정수는 떨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6생활관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병장부터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차 일병, 그리고 정수의 맞선임인 황이병 등등, 제법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맞선임인, 황이병님이랑 캐치볼을 하는 게 좋겠지?’
검은 동공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위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던 정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저 많은 선택지 중에서, 자신과 그나마 가장 친숙한 황이병과 함께 캐치볼 할 것을 말이다.
“황이병님!”
정수는 글러브를 낀 오른손을 흔들면서 황이병을 불렀다. 황이병도 그런 정수의 목소리에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고, 당연히 이 둘은 캐치볼 서로 캐치볼을 하는 건가 싶었다. 이성민 병장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신병, 사회에서 야구 좀 하다가 왔다고 했지 않았나?”
“맞다, 그것도 아마추어 리그에서 12승이나 했던 에이스라고 했잖아.”
“이야, 그러면 당연히 캐치볼도 다르겠지?”
정수가 황이병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어제 생활관에서 정수가 한 일을 떠올리면서 말했는데. 이는, 최고참인 이병장의 시선이 정수에게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이, 신병. 잠깐 나 좀 볼까?”
성민은 정수의 어깨 한쪽을 손으로 붙잡으면서 말했다. 그 순간, 정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이병 박정수?”
“야, 너 사회에서 공 좀 던지다가 왔다며.”
“그, 그렇습니다.”
“오. 그러면 신병, 너 나랑 캐치볼 할레?”
이병장은 정수에게 공을 건네면서 물었다. 정수는 충격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공을 쳐다봤다. 공은 다른 공과 별로 다른 게 없었지만, 정수는 그 자리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것처럼.
‘나, 제구가 아직 제대로 안 될 텐데?’
정수는 이병장이 내민 공을 쉽사리 받아서 들지 못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던지는 공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병, 왜 공을 받아서 들지 않는 것이지. 혹시 나랑 캐치볼 하기가 싫은 거냐?”
정수가 공을 쉽사리 받아서 들지 못하자, 이병장은 새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예리한 이병장의 물음에 정수는 어색하게 두 눈을 번뜩 뜨면서 공을 받아서 들었다.
“그깟, 캐치볼쯤이야. 한번 해보도록 하시죠!”
“그러도록 하지. 신병, 자. 한번 던져보도록.”
이병장은 공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글러브를 낀 왼팔을 내밀면서 말했다. 정수는 꼴깍, 침을 삼키면서 긴장했다.
“더, 던집니다.”
“그래. 한번 던져봐라. 신병, 지금 네놈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한번 던져보거라.”
이병장은 꼭, 정수에게 부담을 주는 것처럼 말했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정수는 오른쪽 다리를 들면서 와인드업을 취했다.
‘저, 작은 미트 안으로 공을 던지는 데에만 집중하는 거야. 지금은 그냥 단순한 캐치볼이잖아. 그냥 피칭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투구폼을 취한 정수는 쭉, 길게 왼팔을 뻗으면서 공을 던졌다.
“흐읍!”
정수는 재채기를 참는 것처럼 기합을 넣으면서 손에서 공을 놨다. 공은 적당한 회전이 걸리면서 이병장에게로 날아갔다. 다소 비스듬한 각도로 말이다.
‘잠깐만, 저 각도라면···?’
정수는 불안함에 살살 떨려오는 눈빛으로 공을 쳐다봤다. 그리고 정수는 절망하게 되었다. 공이 회전하는 각도와 향하는 방향을 봤을 때, 지금 정수의 공은 예리한 궤적을 그리면서 이병장의 발을 강타할 게 틀림없었으니까.
‘조졌다.’
정수는 조금 전까지 공을 붙잡고 있던 왼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왼손은 평범한 직구의 그립보다는 커브 그립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긴장한 탓에 실수한 모양이구나.’
정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불안한 앞날을 예상했다. 그대로 공이 이병장의 발을 강타하면서, 이병장에게 안 좋은 인상만 심어줄 게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미리 크게 외쳤다. 공은 이병장의 발을 강타한 걸 직감한 것처럼 말이다.
“제가 아직 왼손으로는 제구가 안···.”
“신병, 갑자기 죄송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나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냐?”
정수의 죄송함이 담긴 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병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 말했다.
‘어라? 분명히 공은 이병장님의 발을 강타했을 건데?’
정수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감겨있던 두 눈을 떴다. 정수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대로 떨어지는 줄만 알았던, 공을 이병장은 팔을 뻗어서 공이 떨어지기 전에 낚아챈 것이었다.
“이야. 신병. 공 좋은데?”
이병장은 글러브 속에 있던 공을 꺼내 정수에게 던졌다. 정수는 오른손을 움직여 다소 엉성하게 공을 포구했다.
‘가, 가볍다?’
정수는 오른손 글러브에 들어간 하얀 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공은 다른 야구공과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야구공이었다.
‘뭐지? 공에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공을 받아본 정수는 의아함만 느꼈다. 지금, 이병장이 던진 공은 중학생이 던진 공보다, 몇 배는 훨씬 더 가벼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병장님, 혹시 포지션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수는 글러브 속의 공을 왼손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가볍게 왼팔을 휘둘러 공을 던지면서 물었다.
“투수인데. 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신병?”
이병장은 왼팔을 위로 뻗어 정수가 던진 공을 부드럽게 받아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정수는 의심으로 가득 한 시선을 지어 보였다. 지금 정수가 던진 공은 제법 포구하기 어려운 높은 코스였으니까.
“아, 아닙니다. 이병장님. 투수라고 하시기엔, 공을 포구하시는 능력이 너무 좋아서 그랬습니다.”
정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병장은 투수라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포구 능력을 갖췄던 것이었다.
“혹시 평소에 투수 말고 다른 포지션에 서 본 적이 있습니까. 이병장님?”
정수는 이병장이 던진 공을 가볍게 포구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것도 투수로써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끔 최소한 조심스럽게 말이다.
“어··· 딱히 없던 것 같은데. 뭐, 그나마 지명타자 정도?”
“지, 지명타자요?”
정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되물었다. 지명타자라고 함은, 보통 야구에서, 투수를 대신하여 공격을 전담하는 선수나 서는 포지션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타격 능력 하나만은 으뜸인 선수나 서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에 섰다고?’
정수는 이병장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몇 번 정도 서 보셨나요. 이병장님?”
“지명타자 자리? 한 주전으로 서른 번 정도?”
“네에에?”
정수는 이병장이 던진 공을 포구하지 못하고, 바닥에 놓치면서 외쳤다. 마치 눈앞에 귀신이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오우, 신병 미안하다. 제구가 제법 잘못되었다.”
“아, 아닙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명타자로만 서른 번이나 출장하셨으면 타격에 재능 있는 거 아니에요?”
정수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우면서 물었다. 이병장은 이에 그렇지 않다는 듯이 양손을 격하게 내저었다.
“에이 막, 그렇게까지. 뛰어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렴. 정수.”
“아, 알겠습니다.”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공을 던졌다. 이병장의 목소리에는 부담을 느끼는 듯한 기색이 가득해서였다.
‘과연 지명타자로 얼마나 치시길래. 저런 반응을 보인 걸까?’
속으로 정수는 그 누구보다 궁금해했다. 던지는 공은 이렇게 가벼운 투수 이병장이, 대체 타석에서는 어떤 성적을 거뒀길래. 30경기나 지명타자로 출전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6생활관 전우들, 모두 캐치볼 하면서 몸은 잘 풀었나?”
“넵!”
“좋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투수는 피칭 연습을 하러 가고, 반대로 타자들은 수비 훈련을 하러 간다.”
캐치볼 하면서 몸을 푼 지도 벌써 30분이 지났을까. 조병장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정수를 포함한 전우들에게 다음 훈련 세션으로 안내했다.
“신병, 같이 가도록 하자.”
“아, 넵!”
정수는 이병장을 따라서 허겁지겁 좌측에 있는 투수조로 걸음을 옮겼다. 투수조가 있는 곳에는 투구를 돕기 위한 로진백과 야구공이 가득 구비되어 있었다. 거기에 공이 바깥으로 튀기지 않게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오셨습니까. 이성민 병장님?”
각자 자리에서 피칭을 이어가던 투수들은, 느닷없는 성민의 등장에 곧바로 허리를 숙이면서 그에게 인사했다.
“그래. 반갑다. 다들, 오늘도 열심히 한번 던져보도록 하자꾸나.”
이병장은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이 투수조에서 제법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근데 이성민 병장님, 옆에 그 몸 좋은 병사는 누구인가요?”
“아, 이 녀석? 인사해라. 신병.”
이병장은 정수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 정수가 차갑게 얼어붙어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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