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 이병 박정수. 어제 해당 부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정수는 오른손으로 거수경례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어제 입단 테스트에서···.”
“연대장님께서 제법 칭찬했던 녀석입니까?”
병사들을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정수에 대한 특이한 소문이 이 부대에 퍼진 것만 같았다.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
“반갑다. 신병, 나는 차용준이라고 한다.”
용준은 정수를 향해서 손을 내밀며 그를 반겼다. 그의 손 모양과 손을 내민 각도를 봐선, 악수를 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수는 악수하기는커녕, 오히려 거수경례하면서 인사를 올렸다.
“충성, 이병 박정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차병장님.”
용준의 계급장을 본, 정수는 풀려있던 눈빛을 바로 잡으며 곧바로 군기가 바짝 실린 목소리를 냈다. 용준은 이에 흥미롭다는 듯이 자아냈다.
“오호, 뭐야 생각보다 똘똘하잖아?”
용준은 부럽다는 정수 뒤에 있는 이병장을 쳐다봤다. 이병장은 이에 거만하게 콧대를 높게 들었다.
“그동안 폐급애들 좀, 거느리느라 고생 많았다. 이 병장.”
“에이, 별말씀을 다 해주시네. 차병장. 그쪽 생활관 애들은 죄다 우리 정수 같은 애들밖에 없으면서.”
이번에는 이병장이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차병장을 쳐다봤다. 실제로 차병장 뒤에 있는 패거리들의 덩치나, 체격을 보면 정수보다는 아니지만 선수로로써는 적합한 애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얘들? 에이, 분명히 좋은 애들이지. 그래도 진짜 선수 출신이었던 애보다 좋을 수가 있겠냐. 이병장?”
차병장은 정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거들먹거리기까지 했다.
“신병?”
“이병 박정수?”
“이야, 지금 글러브를 오른손에 낀 거 보니까. 왼손잡이인가 보네?”
“아, 넵. 그렇습니다.”
정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했다. 계속 거들먹거리던 차병장은 입맛을 다셨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오, 그러면 신병은 어떤 유형의 피처야? 삼진을 잡으려고 하는 파워 피처, 아니면 타자를 맞춰 잡으려고 하는 피네스 피처, 신병은 이 중에서 어느 쪽인가?”
차병장은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는 이에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낯빛을 흐렸다. 아직 왼손으로는 어떤 유형의 피칭 스타일을 고수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병 박정수, 저 아직은 왼손으로 공을 던지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 그렇구나. 그러면 아직 피칭 유형은 정하지 못했나 보구나.”
차병장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자기 자식을 보는 부모처럼 말이다.
“어이 차병장. 이제는 파워 피처, 피네스 피처, 얘기까지 하면서 영업까지 하는 건가?”
이병장은 강렬한 눈빛으로 차병장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그것도 자신의 먹잇감을 건드리지 말라는 맹수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여, 영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차병장, 괜히 사람 서운하게.”
“서운하게? 차병장, 지금 말 다했나. 전에도 자네가···.”
“에이, 그때 그건 내가 사과하지 않았나. 이병장,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건 내가 내린 결단이 아니라. 박상병이 내린 결단이라니까?”
이병장과 차병장은 서로를 강하게 노려보면서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얼마나 신경전이 거셌는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정도로 주위에 병사들은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었다.
“으휴, 됐네. 그냥 내가 잘못한 걸로 하겠네. 이병장. 그러니까 우리 둘은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하세.”
차병장은 정수의 어깨 위에 붙여놓은 손을 떼면서 이병장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이병장은 차병장을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것처럼.
“어허, 전우들 모여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혹시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어?”
두 병장의 신경전으로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갑자기 한 남성이 병사들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남성은 170cm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반삭머리에 똘망똘망한 광인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저, 저분은?’
정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차갑게 얼어붙었다. 총 두 가지 이유에 한해서였는데. 하나는 조병장과 같은 야구부 간부들이나 착용하는 노란 완장을 왼팔에 착용해서였다.
‘그리고 저 계급장은···?’
정수는 머리를 내민 남성의 모자에 꽂혀 있는 훈장을 보고 순간 흠칫했다. 남성의 군모에는이등병, 일병, 혹은 병장과 같은 검은 줄이 아니라. 부사관들이나 달 수 있는 노란 줄이 그려져 있던 것이었다.
“충성!”
군기가 바짝 실려있던 이등병들은 죄다 남성을 향해서 거수경례했다. 그리고 이에 정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분은 그냥 병사가 아니라. 부사관이시니까.’
정수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며 긴장했다. 그러고는 다시 군모에 박혀 있는 남성의 계급장을 확인했다.
‘노란 선이 하나만 그어져 있으니까. 저분은 부사관 중에서 가장 낮은 하사님이시구나.’
정수는 조심스럽게 날숨을 내뱉으면서 안심했다. 하사 정도면 어지간한 병장보다 한 끗 위에 있는 계급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정수는 안심했다. 흔히들 하사라고 하면, 친근하고 가볍고 무엇보다 힘없는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정수는 오른손을 내리며 거수경례를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정수는 알았을까? 이 남자는 정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약한 하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어이, 거기 너. 지금 선임이 말도 안 끝났는데 경례 내리려는 거냐?”
정수가 오른손을 이마에서 떼려는 그 짧은 순간, 하사는 길게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검지를 펴서 누군가를 가리키는데. 그 자리에는 정수가 있었다.
“뭐야, 이등병? 이등병 따리가 먼저 경례를 내리려고 한 거냐. 이거 완전 폐급 아니야?”
남성은 쯧쯧, 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안 되겠네. 저 이등병 맞선임 나와라.”
“···.”
“뭐야, 없어? 그러면 같은 생활관 쓰는 놈이라도 나와.”
“옙.”
정수의 뒤에 있던 이병장은 정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남성의 앞으로 걸어갔다.
“오호, 이거 이성민이 아니야.”
“병장 이성민, 맞습니다.”
“어이, 이성민이, 후임 관리 똑바로 안 하냐?”
남성은 이병장의 볼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정수는 그때 떠오르게 되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으휴, 됐다. 그럼 6생활관이 그러면 그렇지. 다른 사고 안 낸 게 어디냐. 들어가도록.”
“알겠습니다.”
이병장은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자리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정수의 귀에다가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한번 보자.”
이병장의 말을 들은 정수는 다시 정신을 바로잡았다. 지금, 저 말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전군 차렷.”
“충성!”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한 입 모아서 말한 후, 잘만 하고 있던 거수경례를 내렸다. 그것도 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말이다.
“반갑다. 제군들, 나에 대한 소개는 별로 필요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 얼굴을 처음 보는 이들을 위해서 나에 대한 소개하도록 하겠다.”
남성은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며 말을 이어갔다.
“본인은 이지훈 하사라고 한다. 해당 야구부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모두 잘 부탁한다.”
“넵!”
병사들은 모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몇 병사들은 그를 향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며 아부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야구부에 신병이 들어왔다고 하지? 앞으로 나오도록.”
이하사는 나오라고 손짓하면서 신병을 불렀다. 정수는 낯간지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제대로 찍힌 걸로 보이는 자신이 나가도 되는지 의문이 들어서였다.
“정수.”
“이, 이병 박정수.”
“얼른 나가보도록.”
이병장은 정수를 소름 돋게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에 정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하사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네가 신병이었냐?”
“이병 박정수, 그렇습니다.”
정수는 낯빛을 새까맣게 흐리면서 대답했다.
“흠, 선수 출신이라고 했지. 내가 잘 봐줄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신병.”
이하사는 정수를 향해서 악수하자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아, 넵. 감사합니다.”
정수는 곧바로 오른손을 아래에서 위로 들며 그의 손을 맞잡았는데. 정수는 순간 화들짝 놀란 것처럼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엄청난 악력으로 내 손을 꽉, 붙잡은 것이었다.
‘뭐, 뭐지?’
정수의 머릿속에서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렇게 신병의 손을 강하게 꽉, 잡는 게 이 부대의 문화인지, 아니면 잘못된 행위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하사님, 악수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정수의 오른손을 아작낼 정도로 강한 악력이 느껴지자. 정수는 맞불을 뒀다. 바로 그와 똑같이 악력을 줘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다.
“에헴, 손이 아주 고와서 말이야. 그것도 투수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이 고와서 말이야.”
이하사는 살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정수는 웃으면서 표정을 찡그렸다. 더는 늘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악력이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이상한 기류가 흐르자, 정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주위에 병사들은 이를 처음 본다는 것처럼 의아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하다. 이건 내게 개인적인 악의로 이러는 거야. 그런데 대체 왜?’
정수는 주위에 있는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의아함을 가득 찬 눈빛으로 이하사를 쳐다봤다. 볼에 거대한 검은색 점이 달린, 그는 정수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여버릴 거다. 투수 같은 건, 다시 못할 정도로 네 손을 짓 뭉겨주도록 하마.’
한편, 이하사라는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겉으로는 살기로 가득한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저, 이하사님? 악수가 너무 길어진 것 같은데. 인제 그만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수는 손이 아작날 것만 같은 이하사의 악력에 결국 양손을 들면서 항복했다. 그러나 이하사는 이에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정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었다.
‘혹시 나랑 사회에서 만났던 사람이라도 되는 건가?’
정수는 조심스럽게 사회에 있을 때, 여태껏 자신이 살아온 여생을 떠올려 봤다. 하지만, 이하사처럼 저렇게 큰 점이 얼굴에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그러면 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
정수는 계속해서 의문만 표했다. 자신에게 화를 낼 건더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기강을 잡는 것도 아니고, 이 부대의 문화도 아니고, 그렇다면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건지.
정수는 원인을 알고 싶었다. 과연, 이하사라는 사람이 어째서 자신에게 앙심을 품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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