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박정수, 네놈만 없었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될 일은 없었을 텐데!’
정수와 이하사의 악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하사는 속에 일고 있는 분노를 몸에 삭였다. 그것도 눈앞에 있는 정수를 거의 죽여버릴 기세로 쳐다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주, 죽여버릴 거다. 투수 같은 건 다시 하지 못할 정도로 손을 아예 아작내 주마.’
이하사는 살벌한 눈빛으로 계속 정수를 노려봤다. 정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예 대놓고 의아함을 드러내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하사님?”
이에 먼저 입을 열은 건, 답답함을 느낀 정수쪽이었다. 정수는 의문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이를 들은 이하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하, 신병. 네가 정녕 발뺌하려는 거냐?”
“아니.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이하사님.”
“뭐긴 뭐겠어. 한번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봐라. 신병, 그곳에 정확한 해답이 있을 테니 말이야.”
대체 얼마나 흥분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하사는 남은 한 손으로 정수의 멱살을 잡으면서 말했다.
정수는 딱딱하기만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개겼다가는 군 위계질서를 흐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게 틀림없었으니까.
‘어제 내가 뭘 했었지?’
정수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날름거리면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동시에 이하사와 자신과 연관이 있을 법한 사건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봤는데. 제법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 같은데?’
정수는 미친 것처럼 앞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하사와 접점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정수는 남자답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아주 솔직하게 이하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하사는 부러뜨릴 기세로 붙잡고 있던 정수의 손을 놨다.
‘드디어 용서해 주시려는 건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정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긴장했다. 상황을 보니 무슨 사건이 하나쯤은 터질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네 녀석이, 네 녀석이 연대장님의 투구폼을 건드렸다고 했지. 신병?”
정수가 희망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려던 그때, 정수의 머릿속을 강타한 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내가, 내가 그 폼을 만드는 데에 얼마나 큰 시간을 투자했는데. 연대장님께서 최대한 허리를 쓰지 않고 던지는 법까지 가르쳐 줬는데. 그걸 네 마음대로 바꿔?”
이하사는 남은 한 손으로 정수의 멱살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신병 네가 정녕 사람이냐!”
이하사는 사자후를 내지르듯이 정수의 면전에 대고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이 별관 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정도였다.
‘아, 그 글러 먹은 투구폼을 만든 장본인이 당신이었어?’
해당 사실을 들은, 정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 야구부 만악의 근원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죄송합니다. 이하사님. 제가 괜한 참견으로 이하사님의 일을 방해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되었지.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망하는 길로 나를 인도하게 되었지.”
이하사는 정수의 멱살을 놓으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정수를 향해서 살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어제 마음대로 투구폼을 바꾼 덕에 말이야. 어제, 내가 연대장님께 깨져도 아주 거하게 깨졌거든.”
이하사는 분노에 가득 찬 듯이 타닥, 하고 뼈를 튕기는 소리를 내면서 양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꼴에, 경찰 야구단 출신이라서 기용해 줬는데, 유명 선수들을 육성한 것도 다 허풍이었다느니, 투구의 ‘투’자도 모르는 투수 코치 같지도 않은 새끼라는 등···.”
이하사는 연대장에게 깨질 때 들었던 말을 다시 되새김질했다. 그 되새김질의 수준이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 이하사 본인은 크게 훌쩍일 정도였다.
“신병, 나는 어제 네놈 때문에 3시간이나 가까이 얼차려를 받았다.”
“······.”
“뭐, 할 말이 없나. 신병?”
“죄송합니다.”
정수는 이하사를 향해서 90도로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사죄했다. 자기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고, 우리 선수 출신 신병님이 이렇게 머리까지 숙여주시다니. 너무 감개무량해서 어쩌냐?”
“그 말씀은 혹시···?”
“뭔 말씀은 말씀이냐. 신병과 병장급 빼고 투수조 전부 다 엎드려뻗쳐.”
이하사는 느낌 있게 오른팔을 휘익, 휘두르면서 명령했다. 그러자 병장급들을 제외한 이들은 죄다 바닥에 얼차려 자세를 취했다.
“자, 하나 하면 동기야 하면서 내려가고. 둘 하면 잘하자 하고 일어난다. 알겠나?”
“네엡!”
주위에 있던 이등병부터 상병까지는 죄다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사하사는 호랑이처럼 엄격한 목소리로 구령을 넣었다.
“자, 하나!”
“동기야!”
“자, 둘.”
“잘하자!”
얼차려 자세의 병사들은 죄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수를 노려봤다. 정수는 최대한 바닥만을 응시하면서, 그들과 눈 마주치기를 피했다.
‘저 아이들의 눈빛을 봤다가는, 앞으로 투구를 가르치는 데에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정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약간의 눈물을 훔쳤다. 곧이어 이하사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려고 허리를 숙이기까지 했다.
‘남자들끼리 사과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것만 한 게 없으니까.’
그대로 정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자존심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쿨한 면모를 보이려고 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두 병장만 없었다면 말이다.
“이병장님, 차병장님?”
정수는 어둡기만 했던 낯빛을 밝히면서 양옆을 쳐다봤다. 양옆에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으려던, 정수의 팔을 한 쪽씩 붙잡은 이성민 병장과 차수호 병장이 있던 것이었다.
“어이, 신병. 자존심 지켜라. 군인은 자존심 하나 빼면 완전히 시체니까.”
“그래, 신병. 나중에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도.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을 거냐?”
이병장과 차병장은 정수를 향해서 각각 한마디씩 거들었다. 정수는 그대로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지금, 두 병장의 말에 틀린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근데. 지금,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이병장님, 차병장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냐.”
“이하사님을 어서 말려야지.”
이병장과 차병장은 정수에게 미소를 보내며, 그를 다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두 사람은 유유히 이하사가 있는 정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하사님. 신병도 충분히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연대장님이 이런 부조리 문화에 민감하신 것,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두 병장은 이하사에게 진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했다.
“이성민, 차수호, 너희 둘이 그걸 어떻게 알지?”
“이하사님, 보면 모르겠습니까? 저 아이의 표정을 보십쇼.”
차병장은 정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정수는 최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것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흠···. 그래, 그러면 뭐. 이쯤만 하지. 모두 일어나도록!”
이하사는 정수의 태도를 보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얼차려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조금 늦기는 했지만, 지금부터 투수들, 모두 피칭 연습 들어가도록 한다.”
“네엡!”
이하사는 정수에게서 등을 지면서 그물망이 가득한, 피칭 시설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가지 얼차려 하고 있던 병사들은 서둘러 각자의 글러브와 공을 챙기고 피칭 시설로 들어갔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그래, 아침 먹기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두 병장은 길목에 서서 머뭇거리는 병사나, 농땡이를 피우는 병사들을 서둘러 피칭 시설로 들어가게끔 유도했다. 그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흡사 양치기 소년이 양을 모는 걸 보는 것 같았다.
*
찰랑, 하고 야구공이 묵직하게 그물망을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이 부대 야구부의 투수조들이 아침부터 강하게 던지는 공들이 그물망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어이 거기, 너. 투구폼이 그게 뭐야. 이리 와봐.”
투수코치라는 직책을 역임하고 있던, 이지훈 하사는 호루라기를 불면서 한 병사를 불렀다. 해당 병사의 투구폼은 자신이 알려준 것과는 제법 달라져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말했지. 오버핸드로 던질 때는 공을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놓는다고 생각하라니까?”
이하사는 한 병사를 붙잡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피칭 이론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와 동시에 다소 흐트러져 있는 병사의 투구폼을 봐주기까지 하는 등. 과연 그는 투수 코치의 일을 제대로 배운 건 확실해 보였다.
“좋아, 그러면 다른 병사들을 봐보러 갈까?”
이하사는 천천히 그물망 뒤로 투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곳 야구부에는 대충 16명 정도의 투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며칠 후에 있을 경기를 위해서, 공을 던지는 감각을 최대치로 올려놓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투수코치 이하사는 투수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서 방치해 두면, 알아서 최고의 피칭을 선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 루키 리그에 출전하는 애들은 얘기가 달라지지.’
이하사는 1군급 투수들이 피칭하는 곳을 지나쳐, 루키 레벨의 투수들이 피칭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거기 너. 이리 와봐.”
이하사는 손으로 한 이등병을 가리키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피칭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며. 그들의 투구폼을 체계적으로 바로 잡아줬다. 과연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좋아. 그렇게만 던지도록 하게.”
“충성, 이하사님.”
“그래. 쉬어.”
이하사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하사의 귓가에는 찰랑, 하고 공이 거세게 그물망을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캬, 나이스 피칭!”
1군급 투수가 던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카로운 공이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자. 투수 코치였던 이하사는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그 공을 던진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어, 이하사님. 가, 감사합니다. 충성!”
정수는 글러브를 낀 오른손으로 거수경례하면서 말했다. 이하사는 떨떠름하기만 한 표정을 지었다. 살다 살다, 자신이 신병 정수를 축하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어이, 신병 내 신경 쓰지 말고 한번 시원하게 던져보게.”
이하사는 정수의 옆자리에 의자를 펴서 앉았다. 그러고는 거만하게 팔짱을 끼면서 정수의 부담감을 자극했다.
‘한 구라도 빠져서 개망신을 당하게 만들어 주마.’
이하사는 속으로 낄낄, 대며 사탄의 자식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그의 기억 속에 이렇게 부담을 주고도 정상적인 피칭을 이어간 녀석은, 극소수였으니까.
“흐읍!”
그렇게 이하사가 강하게 부담을 주는 가운데, 정수는 거세게 기합을 넣으면서 피칭을 이어 가는데. 정수의 피칭을 본, 이하사는 그 자리에서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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