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서걱서걱, 하고 낫의 날이 가시덤불을 베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 이러면 되었습니까. 대대장님?”
차일병은 흔들리는 동공을 뒤로 한 채로 대대장에게 물었다. 이를 지켜보던 부대원들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치, 낫을 다루는 차일병의 솜씨가 별로라는 것처럼.
‘아이고, 낫 그거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정수는 입꼬리를 올려 실실 웃어댔다. 그 정도로 지금 차일병의 낫질 실력은 형편없었으니까.
“황이병님, 혹시 차일병님. 낫질해 보신 적 없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신병, 내가 들어왔을 때도 차일병은 일병이었는데.”
황이병은 언짢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수는 표정을 종이처럼 구기면서 등 뒤에 있는 선임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특히, 이 6생활관의 최고참인 이병장에게 말이다.
“이병장님, 혹시 차일병님 낫질해 보신 적이···.”
“정수. 조용히 해라.”
“아, 넵.”
이병장이 정수를 살기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눈치를 주자. 정수는 허겁지겁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물어봤다가는, 어떤 운명을 당할지 알았다는 것처럼.
‘꼴 좋습니다. 이병장님. 그냥 진실을 말하면 될 것이지. 뭣 하러 거짓을 말하셨습니까. 흐흐흐흐···.’
정수는 이병장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사악하게 웃어댔다. 이병장은 망연자실한 듯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준비해 뒀던 계획이 수틀리기라도 한 것처럼.
“흠, 그만하면 되었네. 차일병, 가시덤불에서 나오도록 하게.”
대대장은 실망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말했다. 이에 차일병은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한 채로 가시덤불에서 기어 나왔다.
“이성민 병장,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내게 거짓말을 한 건가?”
대대장은 이병장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으면서 물었다. 이병장은 정곡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제, 제가 사람을 착각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어이, 이성민이 같은 생활관의 전우를 착각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대대장은 섬뜩하고 살기가 가득 실린 눈빛으로 이병장을 노려봤다. 이병장은 공포에 가득 질린 표정만 지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 대대장님.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흠, 그러도록 하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중징계라네. 알겠나?”
“벼, 병장. 이성민, 꼭 명심하겠습니다.”
이병장은 군기가 바짝 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제야 대대장은 쉬어, 라고 말하며 딱딱해진 분위기의 숨통을 트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병장.”
“병장 이성민!”
“이 물건들을 발견한 병사는 누구지?”
대대장은 덩그러니 놓여 있는 탄피와 불발탄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병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바, 박정수 이병, 앞으로 나서라.”
이병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손으로 정수의 등을 떠밀었다. 정수는 다소 엉성한 걸음걸이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대대장과 눈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흠, 이병장. 이번에는 거짓말 같은 건 치지 않았겠지?”
“병장 이성민, 이번에는 틀림없는 진실입니다.”
“흠, 그런가?”
대대장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병장을 흘깃 쳐다본 후, 다시 정수를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박정수라고 했나?”
“이병 박정수!”
“자, 그렇다면 자네도 한번 낫으로 저기에 있는 가시덤불을 베어보도록 해보게.”
대대장은 손가락으로 가시덤불을 가리키면서 명령했다. 정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낫을 조심스럽게 주워들었다.
“이병, 박정수! 한번 베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수는 군기가 바짝 실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가시덤불을 향해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긴장하지 말자. 그냥 조금 전까지 하던 일을 그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만 하면 되는 거야.’
가시덤불 앞에 선, 정수는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등 뒤에서는 이병장의 강렬한 눈빛이 뒤통수를 때려왔으니까.
‘확, 그냥 엉성하게 베어서 이병장님 한 방 먹여볼까?’
낫으로 가시덤불을 베려고 준비를 마친 순간, 정수의 머릿속에서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왔다. 여전히 정수에게 이병장의 모습이 괘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감히 내 공적을 내가 아닌, 차일병에게 돌리려고 해?’
정수는 손에 쥐고 있던 낫을 덜덜 떨면서 다시금 이병장을 쳐다봤다. 조금이라도 그가 반성하고 있는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덜덜 떨리는 동공, 망연자실해 보이는 눈빛, 굳어있는 표정···. 쩝, 그래도 반성은 하고 있네.’
이병장의 표정을 본, 정수는 다시 눈앞에 있는 가시덤불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이병장의 표정에서는 반성하는 태도가 확실하게 보였으니까.
정수는 그렇게 낫을 휘두르며 조금 전에 했던 것처럼, 낫으로 가시덤불을 베어 나갔다. 곧이어 주위로는 서걱서걱, 하고 낫으로 가시덤불을 베는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휴우···.”
주위에서 해당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선임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라도 정수가 실수할 것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흠, 그만하면 되었네. 이만 가시덤불에서 나오도록 하게.”
대대장은 팔을 휘두르면서 정수를 불렀다. 하지만 정수는 그의 말을 들었음에도, 가시덤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대장님께서는 아직, 나를 의심하고 있어.’
대대장의 목소리를 들은 정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라는 게 실려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게끔,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해. 마치 야구선수에서 주전 선수로 눈도장을 받는 것처럼!’
정수는 두 눈에 불을 켜면서 계속 가시덤불에서 낫을 휘둘렀다. 대대장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 전까지.
“어이 박정수, 얼른 나오라니까?”
“박정수, 너 미쳤어? 대대장님께서 나오라고 하지 않았냐. 얼른 나와라!”
6생활관 선임들은 계속해서 정수의 이름을 불렀다. 탁하고 어둡기만 한, 가시덤불에서 어서 나오도록 말이다.
“이병 박정수, 죄송합니다. 이쪽에 얽힌 가시덤불만 다 베고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정수는 계속 서걱, 하고 낫으로 가시덤불을 베면서 답했다. 이에 선임들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머지않아 선임들은 해탈한 듯이 고개를 가로로 내 저으면서 답했다. 흡사 정수의 독기를 차마 이기지는 못하겠다는 듯이.
“박정수 이병, 헛짓거리하지 말고 어서 나오거라. 그 가시덤불 안에 뭐가 있을지 알고.”
대대장은 경고하는 것처럼 그윽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이 말을 들은 정수는 표정을 구겼다.
‘여전히 의심하고 계시는구나.’
대대장의 목소리를 확인한 정수는 그의 명령에 따르기는커녕, 계속 낫으로 가시덤불을 베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대대장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지 않았으니까.
“으휴, 박정수 이병. 이제 의심하지 않을 테니. 가시덤불에서 나와주게.”
서걱서걱, 하고 가시덤불을 베는 소리가 들린 지 40분 정도가 흘렀을까? 대대장은 해탈해 버린 듯한 목소리를 내며, 정수를 불렀다.
“이병, 박정수! 금방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수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는 환희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침내 대대장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 게 틀림없어서였다.
“드디어 나오는구먼···.”
“저, 독한 녀석···.”
무성하게 자라나 있던 가시덤불 벽, 한쪽을 다 베어 내면서 정수가 밖으로 나오자. 6생활관 선임들은 정수를 서늘하게 째려봤다. 흡사 독종을 쳐다보는 것처럼.
“박정수 이병, 나와줘서 고맙네. 그리고 이 위험한 물건들을 발견해 줘서 한 번 더 고맙네.”
대대장은 정수가 기특하다는 듯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이지. 그에 따른 보상으로는 휴가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대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정수에게 물었다. 그 순간, 정수는 화들짝 놀란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입대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은 신병에게 휴, 휴가를 주신다고?’
정수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유지한 채로 대대장을 쳐다봤다. 혹시라도 대대장이 자신을 시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이병 박정수. 잘못 들었습니다?”
“지금, 들은 말 그대로라네. 거짓과 같은 건, 하나도 없어. 나는 이 위험 물질을 발견해 준, 박정수 이병에게 보상은 휴가로 할지. 그것을 물었을 뿐이라네.”
대대장은 새하얀 건치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면서, 최대한 친근하게 거짓 같은 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은 진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는 이에 한 번 더 당황한 기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진, 진심이다. 틀림없어. 대대장님께서는 지금 2일차밖에 되지 않은 내게 휴가를 주려는 게 틀림없어.’
정수는 겉과 다르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몇 배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지금껏 정수가 지켜본, 대대장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친근하게 대해주다가도, 말 한마디로 180도 돌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침착하게 생각해야 해. 어떤 답이 대대장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지 말이야.’
정수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고민에 빠졌다. 같은 6생활관 선임들의 눈빛을 한눈에 받는 상황에서 말이다.
‘엄···휴가를 과연 지금 받아야만 할까?’
고개를 살짝 돌려 선임들의 눈빛을 확인한 정수는 본의 아니게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째려보는 선임들은 죄다 살벌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이병장, 차일병, 상병님들 등등··· 당신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해. 근데 황이병님, 당신까지 저를 그렇게 쳐다보시면···.’
정수는 멋쩍은 듯이 식은땀을 흘렸다. 평소에는 친근하게 대해주던 맞선임 황이병도 정수를 강하게 째려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눈치를 챙기라는 것처럼.
‘일단, 휴가는 포기하도록 하자. 어차피 휴가를 받아도 나중에 상병쯤은 되어야 쓸 수 있을 게 분명한데. 내가 굳이 휴가를 받아야 할까?’
정수는 속으로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휴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를 보기보다는, 그 뒤에 있는 커다란 숲을 보는 거야.’
정수는 주먹을 움켜쥐면서 고민을 끝냈다. 휴가보다는 다른 걸, 더욱 추구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저, 대대장님. 그 보상을, 휴가 말고 다른 걸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까?”
고뇌 끝에 정수는 입을 열었다. 대대장은 귀를 기울였고, 이를 들은 대대장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박정수 이병, 휴가를 포기한다는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정수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제야 주위 선임들의 날카롭기만 하던 눈빛은 조금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뭐, 그러면 그러도록 하게. 박정수 이병.”
대대장은 정수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동시에 정수의 공적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듯해 보였다. 정수가 다시 입을 떼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이, 이병 박정수. 그 대신에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대대장님?”
대대장과의 대화가 끝나가려는 그 순간, 정수는 오른팔을 높게 들면서 크게 말했다. 슬슬 등을 돌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대대장은 허겁지겁 시선을 다시 정수를 향해서 돌렸다.
“부탁이라, 박정수 이병. 간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야?”
“그, 그렇습니다!”
정수는 당당하게 대답했고, 대대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일단은 한번 들어나 보도록 하지. 내게 무슨 부탁을 하고 싶나. 박정수 이병?”
“저, 다음 경기에서 한 이닝이라도 좋으니. 다음 경기에서 데뷔전을 가지고 싶습니다!”
정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크게 말했다. 이 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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